EP.249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날 연구실에서 데리고 나온 실비아가 향한 곳은 무인텔이었다.
솔직히 의외였다. 설마 이쪽으로 갈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물론 단둘이 있을 장소가 마땅치 않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인텔이라니...
게다가 손에 쇼핑백도 들고 있다. 그 안엔 옷 여벌이 있었고.
준비성이 철저하네. 마음을 단단히 먹었구나.
키오스크 화면에 나타난 대실과 숙박 사이에서 굉장한 고민을 하던 실비아는, 결국 대실을 선택하고 계산을 마쳤다.
그리고는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뭘 찾고 있는 듯한 모습에, 내가 의아한 투로 물었다.
“뭐하세요...?”
“카드가 나오는 구멍이 없어. 방문은 어떻게 열어?”
“자동으로 열려요.”
“.... 그래...?”
무안한 듯 머리를 긁적인 실비아가 허리를 폈다.
“이런데 자주 와봤나 봐?”
난 말없이 손가락으로 키오스크를 가리켰다.
화면에 나타난 문이 열렸다는 안내문을 보고 얼굴이 시뻘개진 실비아는, 날 쳐다보지도 않은 채 바로 옆에 있는 객실 손잡이를 당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 서투른 모습에 피식한 나는 그녀를 뒤따라갔다.
대형 공기청정기가 구비된, 간결한 인테리어의 객실 안.
실비아는 침대 옆에 서서 눈동자를 데굴 굴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가간 나는 외투를 벗어던졌다.
“어떻게... 바로 시작해요?”
“.... 네가 그랬지? 강도에 따라서 아이테르 충전량이 달라진다고.”
“정확하게는 실비아 씨가 느끼는 흥분도에 따라 달라지죠.”
“그래... 그거... 얼마나 하면 다 채워져?”
“그거야 딱 잘라 말씀드리기 어렵죠... 오르가즘엔 개인차가 있으니까. 아델의 경우는 네 번 정도 가버리면 다 채워지더라고요.”
실비아가 낯부끄러웠는지 고개를 홱 돌렸다.
성적인 단어를 언급하니 창피한 모양이었다.
“이, 이제 뭐 어떡해?”
“일단 아이테르가 얼마나 남았는지부터 봐요.”
“알았어.”
실비아는 곧바로 충전량 확인 버튼을 눌렀다.
나는 허공에 뜬 2퍼센트라는 에너지에 살짝 놀랐다.
이것보단 더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2퍼센트...? 실비아 씨, 설마 변신했었어요?”
“그게... 화장실에서 한 번 해봤는데... 곧바로 풀었어.”
곧바로? 웃기는 소리였다.
분명히 아이테르를 생으로 사용할 때보다 훨씬 강하고 유연한 힘에 취해,
그리고 더욱 짙어진 빨간 머리와 눈동자에 빠져 자신의 모습을 구경했겠지.
“만약 디바이스가 없는 상태에서 에너지가 다 떨어졌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어요.”
“이젠 있잖아.”
“그렇긴 한데... 조심하시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에요.”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니까 이제 충전 좀 시켜줄래...? 넌 뭐 어떻게 하니? 그냥 아델의 몸을 막 만져?”
“막 만지다니요... 그냥 분위기를 타면서 하는 거지...”
현재 우린 너무나도 어색한 분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스킨십이 나올 수가 없었다.
이쪽으론 완전히 서투른 실비아가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허나 한 번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흐름을 탈 수 있을 터였다.
그랜드캐니언에서처럼 말이다.
실비아의 앞을 지나쳐 침대에 걸터앉은 나는, 푹신한 이불을 툭툭 쳤다.
“앉으세요. 외투는 벗으시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실비아가 긴장한 듯 목젖을 꿀렁이더니 바람막이를 벗었다.
그걸 옷걸이에 건 그녀가 내 옆에 앉아 자신의 허벅지 위에 손을 곱게 올려놓았다.
그 다소곳한 자세를 보니 절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실비아 또한 내 이런 모습에 불편함이 조금 가셨는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웠다.
그 틈을 탄 내가 말했다.
“우리가 엄청 고생했던 날... 실비아 씨가 실험을 해보자고 하셨었잖아요.”
“응...”
“그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그, 그냥... 좋았어.”
“많이 흥분하셨어요?”
“그게 중요하니...?”
“중요합니다.”
“하... 그랬던 것 같아...”
답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나는, 실비아의 손 위에 내 손을 포갰다.
이후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하나하나 만져주었다.
내 행동에 당황해하면서 손을 빼려던 실비아는, 충전을 위한 스킨십을 시작했다는 걸 자각하고는 얌전히 있었다.
웅...
얼마 지나지 않아 디바이스가 미세한 공명음을 발했다.
공기청정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섞여있었지만, 방 안이 워낙 조용해 귀를 기울이면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실비아는 그 소릴 들었다.
“바, 방금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 디바이스에서...”
“네. 저도 들었어요.”
“충전이... 되고 있는 건가?”
“맞아요.”
“아...”
한 차례 탄식을 터뜨린 실비아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인류를 수호할 수 있다는 기쁨이 큰 듯했다.
나중에 끝나고 나면 죄악감이 장난이 아닐 텐데...
“고, 고작 손을 잡는 걸로도 충전이 되네...?”
“실비아 씨가 이 행동을 성적인 행위라고 생각하시나보죠. 충전량은 아마 쥐꼬리만도 못할 겁니다.”
그 말인 즉, 더 높은 수위의 행위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내 말의 속뜻을 알아차린 실비아가 대답했다.
“알았어...”
나는 실비아의 손에 깍지를 끼고, 그녀의 검지를 살살 긁었다.
그에 실비아가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렵고 야릇한... 그런 묘한 기분을 느낀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무 말 없이 신비아의 연홍색 눈동자를 주시하며 스킨십을 계속 이어나가던 나는, 놀고 있는 한손을 슬쩍 뻗어 그녀의 허리에 둘렀다.
“아...!”
움찔하며 몸을 떤 그녀의 시선이 내 하반신으로 갔다.
사타구니 부분이 부풀어있는 것을 본 그녀가 묻는다.
“커진... 거야...?”
“네.”
“그랜드캐니언에서... 내 뒤로 가서 날 만질 때도... 커졌었어?”
“맞아요. 자극을 받으면 자연스레 되는 겁니다. 순진한 척하지 마요.”
“수, 순진한 척이라니...! 난 진짜 궁금해서어엇...!”
목소리가 쭈욱 올라간 실비아.
내가 손에 힘을 지그시 주어 그녀의 갈빗대와 허릿살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우웅...!
더욱 커진 디바이스의 소리.
손을 마구 떨어대던 실비아가 충전량을 다시 확인해보았다.
[2%]
“.... 충전이 안 됐어... 너 혹시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그거 그대로 띄워놓고 계세요.”
난 미심쩍어하는 실비아를 확 잡아끌었다.
그 뒤 그녀의 검은색 티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하복부 부근을 살살 긁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가 당황해할 틈도 없을 정도로.
“흐읏...!”
자그마한 교성을 내뱉은 그녀의 시선은 계속 디바이스에 가있었다.
퍼센테이지가 오르는 걸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 같았다.
묵묵히 실비아에게 약한 흥분감을 느끼게 해주던 나는,
“오, 올랐어... 3퍼센트야...”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그것 보라는 듯 말했다.
“거봐요. 제가 왜 거짓말을 합니까?”
“미안...”
웃음을 지어주는 것으로 사과를 받아준 나는 실비아를 천천히 넘어뜨려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상체를 확 숙여 실비아의 귓볼을 핥았다.
“허억...!”
격한 반응. 그녀가 본능적으로 내 등에 손을 올리고는 손톱을 세웠다.
귓볼은 실비아가 정말 좋아하는 성감대 중 하나.
그랜드캐니언에서도 꽤나 반응이 좋았는데,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말랑한 귓볼을 지그시 깨물다가, 귓속에 바람을 후 불어넣으니 생선처럼 몸을 팔딱이려고 한다.
입술을 꽉 깨물었는지 더 이상의 신음소리는 들려오진 않았지만, 콧바람이 내 뒷머리를 길게 훑고 지나가는 것으로 보아 제대로 느끼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수위가 서서히 올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계속 실비아의 귀를 애무하던 나는, 그녀의 흥분이 고조되는 것 같자 트레이닝 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이어서 가운데 세 손가락을 붙여 자궁이 위치한 치구 위에 가져다댔다.
그러자,
“하아...♡”
실비아의 입에서 교태 섞인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웅-!
한층 더 강렬해진 디바이스의 공명음을 들으며, 난 그녀의 엉덩이와 음순의 가운데까지 손을 내려 그 부위를 꾸욱 눌렀다.
“야... 잠깐... 흐읏...!”
버둥거리기 시작하는 실비아.
그녀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집어넣자, 실비아가 다리를 오므려 내 허벅지 양쪽을 좌우에서 누른다.
지금 내가 얼마나 힘든 자세로 널 느끼게 해주는지 알기나 하냐?
모르겠지. 그래, 넌 몰라도 된다. 그냥 주는 쾌락만 받아들여라.
널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어.
그나저나 무방비한 모습이 정말 예쁘구나.
침대보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연홍색 머리카락도 야해.
낮엔 믿음직하고 밤엔 요조숙녀 같은... 날 무척 사랑하는 누나.
애정표현을 가벼운 폭력과 장난, 그리고 욕설로 하는,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는 동네 누나.
지금 실비아의 모습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널 이용하려고만 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너에 대한 내 사랑은 진심이야.
아델에게 악의만 집어넣으면 진짜 잘해줄게.
행복에 겨워 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사랑해줄게. 그러니까 서글퍼도 조금만 참아줘라.
네가 용기를 낸 덕분에, 곧 주입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실비아의 목에 입술을 가져다대고 쪽 빨아대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애무를 시작했다.
@@
“하아... 하아...”
샤워실의 차디찬 벽에 등을 기댄 실비아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주체할 수가 없어져서, 바닥에 볼 성 사납게 주저앉고 말았다.
두 시간동안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마치 뇌가 타버리면서 정신이 끊어지는 것 같은 느낌.
그랜드캐니언보다 몇 배... 아니, 수십 배는 더 좋았다.
그 증거가 애액이었다.
현재 실비아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선 질척대는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그저 몸의 겉 부분만 허용했는데도 이 정도.
단단해진 유두를 약한 힘으로 물거나, 명치 근처를 혀끝으로 핥아주던 지혁을 생각하니 다시금 숨결이 깊어진다.
애무가 거의 끝나기 직전, 지혁이 그랬었다.
섹스는 더 기분이 좋다고.
‘이것보다 더 좋다는 뜻이겠지...?’
남녀 간의 성교는 해본 적이 없었기에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막 싫을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지혁이 상대라고 생각하니 이러는 건가? 모르겠다.
그녀는 문득 아델이 부러워졌다.
매일 지혁과 이런 스킨십을 하다니 말이다.
이 부러움이 질투라는 감정으로 넘어가려는 게 정말 추잡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 짜증나...”
찬물을 최대로 틀어놓았음에도 몸의 열기가 식지 않는다.
쪼그려 앉은 실비아는 디바이스 충전량을 확인해보았다.
[89%]
89퍼센트라... 100퍼센트까지는 아니지만 만족스런 수치.
마물을 순식간에 족친다면 오랜 시간을 비스트 슬레이어로 활동할 수 있을 터였다.
일단 급한 불은 꺼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젠 어떠한 마물이 나타나든 자신 있게 상대할 수 있다.
낑낑거리며 일어난 실비아는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씻었다.
특히나 집중해서 씻은 부위는 단연코 질이었다.
천박하기 짝이 없는 애액이 새어나온 부위인 만큼 청결하게 닦아내야겠지.
그렇게 샤워에 집중하던 실비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가슴이 아려온다. 모텔에서 홀로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니 처량해진다.
지혁을 괜히 보낸 듯싶다. 그냥 기다려달라고 한 뒤 같이 갈 걸...
‘아델에겐 어떻게 말하지...’
무조건 말해야 하는데... 아델에게 너무나도 큰 죄를 지었다.
게다가 그걸 알면서도 지혁이 좋다. 진짜 돌아가시겠다.
결국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실비아는, 로사리오에게 고해성사를 하며 그녀가 자신의 죄를 사해주길 요청했다.
‘로사리오 님... 이런 저를 용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실비아는 어제 저녁부터 지혁을 만나기 전까지 성경을 읽었다.
집중해서 읽긴 했지만 그저 맛만 본 수준에 불과했고, 교의 규율 같은 건 단 하나도 모른다.
그럼에도 실비아는 로사리오에게 믿음을 가졌다.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였다.
눈을 감은 그녀는 하염없이 로사리오를 향해 죄를 고했다.
한참동안, 몸이 얼음장이 될 때까지 기도 같지도 않은 기도를 드리고 나니, 뭔가 안정이 찾아오는 기분이었다.
의지할 존재가 생겨 든든하다고 해야 하나?
이래서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구나 싶었다.
샤워를 마저 한 실비아는 수건으로 자신의 몸을 닦아내면서 화장실 문을 열었다.
공허한 방 안. 공기청정기 소리 외엔 너무나도 조용하다.
침대를 바라보니 아래쪽 부분이 젖어있었다. 내 몸에서 나온 애액이겠지.
지혁은 벌써 간 듯싶었다.
괜시리 서러운 느낌에 울컥한 실비아는, 기존에 입고 있던 트레이닝 바지를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다.
이후 머리를 말리지도 않은 채 새 옷을 갈아입었고, 모텔을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덜컥.
그리고는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지혁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본 순간, 실비아의 심장이 빠르게 박동했다.
무심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은 그녀가 물었다.
“야... 너 집에 안 갔어...?”
“기다렸어요.”
“왜...?”
“혼자 가면 쓸쓸하잖아요. 집 앞까진 아니더라도, 근처까지는 태워다드릴게요. 슈트나 무기 디자인에 대한 대화라도 나누면서 가요.”
“.....”
아까 느꼈던 처량한 감정이 다 사라지고, 가슴속이 따뜻해지면서 봄바람이 찾아온다.
왜 쓸데없이 친절할까.
저런 지혁의 상냥함 때문에 자꾸 마음이 흔들린다.
그저 동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관계에서 시작된 사이지만... 더 발전하고 싶다.
“.... 흑!”
입가를 손으로 가린 실비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희로애락이라 부를 만한 복합적인 감정이 한꺼번에 밀고 들어와서였다.
그런 실비아의 모습을 본 지혁이 무척 당황해했다.
하지만 섣부른 위로나 격려의 말 따윈 하지 않았다.
그저 조심스레 다가가 실비아를 부드럽게 안아주고, 큼지막한 손으로 등을 두드려주었을 뿐.
그렇게 실비아는 지혁의 널따란 품에 안겨 오랜 시간동안 흐느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