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248화 (248/471)

EP.248 질투 #2

“지금 지혁 씨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시겠다는 거죠?”

안다. 아주 잘 안다.

아델의 머리끈을 허락도 받지 않고 실비아에게 사용한 죄, 잘 알고 있다.

“잘 모르겠는데...”

“지혁 씨는 정말 바보로군요! 이해가 안 가요! 어떻게 저만을 위한 머리끈을 언니에게 쓰실 수가 있나요?”

“어... 그게 잘못인가요...? 아델에게만 쓰라고 한 적은 없잖아요. 그리고 그저 머리를 묶어줬을 뿐인데...”

“이익...! 지혁 씨!”

허리춤에 양손을 올려놓고 빼액 소리를 지르는 아델.

깜짝 놀란 내가 어깨를 떨었다.

“예...?”

“지혁 씨가 언니의 머리를 묶어줘서 제가 화났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게 아닌가요?”

“그건 일부일 뿐이에요! 제가 가장 화난 건, 지혁 씨가 여자친구의 물건을 남에게 쓴 부분에 대해서에요!”

“하, 하지만 실비아 씨는 아델에게 있어 남이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과연 지혁 씨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언니의 머리를 묶어주었을까요? 분명히 아무 생각 없으셨을 거예요! 그렇지요?”

사실 맞는 말이었다.

그저 실비아가 내게 더욱 호감을 가지도록 하기 위한 수작질에 불과했다.

머리끈을 내어줄 때 아델을 생각하긴 했지만, 실비아가 당연히 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나에겐 횡재와도 같았다. 뜻밖의 수확.

기가 완전히 죽은 척한 내가 고개를 푹 숙였다.

“예... 듣고 보니 잘못 같습니다.”

“같습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신 것처럼 보이네요!”

“아뇨. 잘못했습니다.”

“하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아델이 안마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버튼을 눌러 안마를 시작한 그녀가 말했다.

“처음 실수하셨으니까 그냥 넘어가겠지만, 다음번에도 이러면 혼쭐이 날 줄 아세요!”

뭘로 혼내주게? 몸으로?

“알겠습니다...”

지금이라면 아델의 아이테르에 악의를 넣어 봐도 되지 않을까?

아니, 절대 안 된다. 아직 모자라다.

아델이 실비아를 짧은 순간만이라도 싫어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

지금의 아델은 그저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에게 다정한 행동을 해서, 여자친구의 물건을 써서 화가 난 거다.

질투를 느끼고는 있을지언정, 실비아를 향한 원망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이런 것들이 쌓이면서 폭발하는 거다. 조급해하지 말자.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거리던 아델은, 나와 리모컨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에 나는 재빨리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이후 음량을 잔뜩 높여놓고 물었다.

“저 여기서 나갈까요...?”

“가만히 계세요!”

화내는 모습도 너무 좋잖아... 사랑해, 아델.

“예...”

깨갱한 내가 소파에 누우려고 하는데, 아델이 눈총을 쐈다.

어디서 감히 편하게 있으려고 하냐는 말이 들리는 것 같다.

오늘 내 컨셉은 미련한 곰이었다.

평소엔 다정하고 생각이 깊지만, 이런 상황은 낯선... 그래서 방심하면 엇나갈 수도 있다는 느낌을 아델에게 풍기고자 했고, 성공했다.

소파 가장자리에 부동자세로 앉아있던 나는, 내게 시선을 고정한 아델의 구겨진 얼굴이 점점 풀리기 시작하자 입술을 안으로 오므렸다.

방금 버럭버럭 화를 낼 땐 언제고, 안마의자에 몸을 맡긴 채 늘어지는 표정을 짓는 게 너무 웃겼다.

간신히 웃음을 참아낸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델이 눈을 부릅떴다.

“가만히 계시라고 했잖아요!”

나는 부르르거리며 진동하고 있는 안마의자 앞으로 걸어가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아델을 향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그러니까 화내지 말아주세요.”

“.... 이, 이게 화나지 않을 일인가요...?”

목소리를 낮춘 아델.

따지고는 있었지만, 눈빛엔 날 향한 미안함이 가득했다.

“당연히 화날 일입니다. 근데... 아델이 화를 내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서글픈 눈을 아래로 내리깐 나.

아델은 이런 날 보자마자 안마의자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와 품앗이하듯 안았다.

“죄송해요, 지혁 씨... 제가 너무 흥분해버리고 말았어요... 울지 마세요...”

울긴 누가 울어.

네 말랑말랑한 가슴을 느끼느라 정신이 없다고.

당장 만지고 싶은데 그러면 음흉하다면서 뭐라고 할 거잖아.

“제가 화를 낸 건 지혁 씨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알아. 다 알지.

내가 왜 네 마음을 모르겠니?

고개를 쓰윽 내린 나는 아델의 복부에 얼굴을 묻었다.

너무 편안하다. 절로 졸음이 솔솔 몰려와.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나는 아델의 품에서 심신을 달랬다.

사실 달랠 심신 따윈 전혀 없었지만, 그냥 달랬다.

**

아델과 자연스레 화해한 나는, 그녀가 사용할 망치의 뼈대를 보여주었다.

손잡이가 길고 양쪽 면으로 타격까지 가능한 매우 거대한 크기.

아델 같은 힘캐가 사용하면 괴물의 머리통을 그대로 터뜨릴 수 있을 정도로 위압감이 넘치는 디자인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아델은 내가 보여준 전투망치를 좋아했다.

“제가 쓰기 딱 좋은 무기에요!”

“그렇죠?”

“네! 지금부터 만드실 거예요?”

“그래야죠. 실비아 씨의 디바이스 때문에 잠깐 멈췄었는데,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아델은 이걸로 지구를 지키겠노라 다짐하겠지.

하지만 아니다. 그녀가 망치를 휘두르는 대상은 인간들과 로사리오, 그리고 그년의 신도들이 될 것이다.

이번처럼 배신자 마물들이 나오면, 그들의 처리도 맡길 거고.

인자한 미소를 띠우고 있던 내가 말을 이었다.

“아이테르 에너지는 얼마나 소모하셨죠?”

“아, 러시아에서요?”

“예.”

“4퍼센트를 사용했어요.”

소모량이 얼마 안 되는구나.

그럴 만도 했다. 나타난 마물들은 한 방에 뒈진 D급 마물 한 마리를 제외하면 죄다 F급이었으니까.

러시아군이 아주 잘 처리했네. 짜증나게.

그래도 충전은 해야겠지. 그치?

난 아델의 팔을 잡아끌고 내 무릎에 앉혔다.

그리고는 그녀의 입술에 여러 번 뽀뽀를 해주면서, 가디건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우웅-!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디바이스의 충전소리.

그걸 들은 아델이 당황해선 몸을 마구 비틀었다.

마치 주인의 품에서 벗어나려는 강아지 같다.

“지, 지혁 씨...! 오늘 지혁 씨는 큰 잘못을 저지르셨거든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용서를 비는 건데...”

“용서를 무슨 이런 식으로 빌지요...? 어서 손을 떼세요...!”

“뽀뽀도 하지 말까요?”

“그, 그건 해도 돼요... 흡...!”

벌어진 입술 안으로 혀가 파고들어서였을까?

아델의 눈이 몽롱해지더니, 이내 지그시 감겼다.

혀가 얽힌 상태로 그녀의 입 안을 탐하던 나는, 아래가 아파왔던 일이 생각났다.

안에 싸지만 않으면 괜찮은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은 정보로 도박을 하기엔 신성력이 무섭다.

악의를 넣을 때까진 참아보자.

키스를 그만두고 얼굴을 떼어낸 나는, 입술끼리 연결된 타액의 실을 혀로 끊어내며 말했다.

“바래다줄게요. 돌아가죠.”

“.....”

무언가 아쉬운 얼굴로 날 바라보는 아델.

내가 물었다.

“왜요? 더 하고 싶어요?”

“아, 아니거든요...?”

“그럼?”

“오늘... 성경공부 해요... 요즘 통 안 했잖아요...”

뜬금없이 성경공부?

진짜 싫은데 지은 죄가 있으니 거부하기 힘들다.

로사리오에 대해 더 알아보기도 할 겸, 오늘만큼은 따라야겠다.

“알겠습니다.”

**

그날 새벽.

집으로 돌아가려던 나는, 실비아가 찾아오자 눈을 크게 떴다.

“실비아 씨?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검은 바람막이와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그녀는 모자를 풀 눌러쓴 채였다.

누가 봐도 몰래 온 것처럼 보인다는 뜻.

고개를 살짝 치켜든 그녀가 답한다.

“.... 널 만나러 왔어.”

“저를요?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아시고...”

“있을 것 같더라. 시간 돼?”

“예. 마침 잘됐네요. 보여드릴 게 있었는데... 이리 와보세요.”

나는 유행하는 장난감을 본 아이마냥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실비아의 손목을 잡아 컴퓨터 앞으로 끌고 왔다.

이후 실비아가 입을 슈트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어때요?”

세화, 유리아의 슈트와 색만 다르고 대동소이한 디자인.

실비아는 그걸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싫어.”

“예...?”

“나는 엄청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게 좋아. 그런 나더러 저런... 레오타드랑 치마를 입으라고? 움직이면 다 보일 것 같아. 죽어도 안 입어.”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설마 이 에드워드의 역작을 싫어할 줄이야?

그래, 레오타드는 그렇다 치자.

너는 마법소녀라고! 마법소녀한테는 치마가 필수란 말이야!

“실비아 씨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을 텐데요?”

“그래도 싫어. 차라리 바지로 바꿔줘.”

바지라... 하긴, 실비아는 마법소녀를 하기엔 너무 성숙하다.

도적 느낌으로 바꿔주마. 정성을 다해서 만들어줄게.

타락하면 전혀 입지 않을 슈트지만, 너한텐 미안한 감정이 정말 많으니까 특별히 해준다.

아주 섹시한 타이즈, 그리고 제복 느낌을 섞어서 만들어주면 되겠지.

“예, 뭐... 그렇게 하겠습니다.”

“초안 나오면 무조건 나한테 연락해줘.”

“알겠어요.”

“꼭이야. 꼭 해줘야 돼. 알았어?”

거듭 강조하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불안한가보다.

“알았다니까요. 근데 왜 찾아오셨습니까?”

“.....”

잠깐 복잡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실비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더니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랑 아이테르 충전 좀 하자.”

이럴 줄 알았지.

속으로 쾌재를 부른 나는, 겉으론 미간을 잔뜩 좁히며 실비아를 쳐다보았다.

“아이테르... 충전요...?”

“그래. 난 너도 알다시피 당장 아이테르 에너지를 채워야해. 하지만 난 만날 사람이 없어. 성적인 행위를 할 사람이 너밖에는 없단 말이야.”

“아...”

애써 침착하게 말하고는 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게 들렸다.

자존심 따윈 내팽개칠 정도로 인류를 구원하고 싶은 저 고결함을 보라.

어찌 승낙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다만 조금 튕겨야지.

충전은 합의하에 한 게 아니라, 실비아의 강요에 못 이겨 반강제적으로 한 게 되어야 한다.

“실비아 씨, 죄송하지만...”

“그랜드캐니언 때처럼 눈 딱 감고 한 번만 하자.”

한 번만? 거짓말하지 마!

남자가 없다는 핑계로 나와 계속 충전할 거면서!

“하... 미치겠네...”

“이렇게 된 건 네 탓도 있어. 그랜드캐니언에서 널 구하려다가 에너지를 거의 다 소모했단 말이야.”

“아니... 저번엔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셔놓고...”

“그만큼 급박하다는 거잖아. 대의를 위해서 한다고 생각해주라. 아델한테는... 내가 말할게.”

선 조치 후 보고를 하시겠다? 게다가 네가 직접 말한다고?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여기서 실비아가 ‘너 그랜드캐니언에 캠핑 갔을 때, 자의로 날 만졌잖아!’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어진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어차피 생각해도 빠져나갈 구멍은 잘 만들어놓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입 다물고 있어야지.

벽에 양손을 짚고 ‘대의’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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