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247화 (247/471)

EP.247 질투

다음 날, 연구실.

[현재 다섯을 보냈습니다.]

마르셀라가 보낸 간결한 문자를 확인한 나는 내역을 삭제했다.

실비아가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밝은 낯으로 다가온 그녀는, 내가 디자인한 쌍검의 초안을 보더니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이대로 해줘.”

“강조할 부분은요?”

“손잡이가 미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머지는 직접 쥐어봐야 알 것 같긴 한데, 일단은 엄청 만족스러워.”

“폴리머스는 구하기가 힘든 물질이니... 디자인에 대해 요청사항이 있다면 말씀해주셔야 해요. 만들기 시작하면 수정하기가 힘들거든요. 아직 시간은 많이 있으니까, 고민해보다가 바꿔야할 부분이 있다면 말해요.”

“그렇게 할게. 근데 너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왜 이렇게 안 좋아?”

“제가요?”

“응. 사람 한 명 죽일 것 같은 눈빛인데? 살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살기 같은 건 읽어내지 마.

그런 것들에서부터 의심이 시작된단 말이야.

어깨를 으쓱인 내가 대답했다.

“아무 일 없습니다. 그냥 조금 피곤해서요.”

“그래...? 박사님은 이만큼 쉬었으면 복귀할 때도 되지 않았어? 내가 전화해볼까?”

“놔두세요. 지금까지 휴식 없이 달려왔으니까 푹 쉬게 해줘야죠.”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제가 여기 온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박사님은 달라요. 한참 전부터 여길 만들고 운영하시기까지 했잖습니까.”

약간 나무라는 듯한 말투에, 실비아가 찔끔하더니 저자세로 나왔다.

“알아... 아는데 네가 계속 피곤해하니까 걱정돼서 그러지.”

“제가 피곤한 건 일을 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실비아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아차릴 것이다.

예상대로, 그녀가 내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아델과 내가 했던 그렇고 그런 일에 대해서 궁금하지만, 물어보기엔 곤란한 표정이 다 드러난다.

속으로 킥킥거린 내가 물었다.

“그나저나 아이테르 충전은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좋아하는 사람과의 성적인 행위로 충전된다는 건 아시죠?”

“무, 뭔... 그건 내가 알아서 해! 신경 꺼...!”

“마물이 나타나고 있는데,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잖습니까.”

“아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뭘 알아서 해? 네가 만날 사람은 나밖에 없잖아.

지금 남자를 만나기엔 아이테르 때문에 억지로 만나는 감이 없잖아 있기도 하지? 그래서 거북하기도 할 거고.

맞다, 너 내 좆도 만졌잖아.

그랜드캐니언에서 자는 척하고 있던 날 따먹으려고도 했잖아.

그러니까 화내지 말고, 약간 수줍은 듯... 그렇지만 자존심은 있는 듯 들이대보라고.

어쩔 수 없는 척 받아준다니까? 그때 네 몸을 만졌을 때처럼.

“진정해요. 물이라도 드려요?”

“.... 됐어.”

“알겠습니다.”

묵묵히 다시 쌍검 디자인을 살펴보고 있던 나는, 실비아가 이온음료를 가져와 옆 의자에 털썩 주저앉자 고개를 돌렸다.

“왜요?”

“구경하려고 그런다! 왜?”

“그럼 그러세요.”

“넌 피곤하다면서 계속 일하냐? 일중독이야?”

“구경에 잡담도 포함되어있나요?”

“.....”

할 말이 없어졌는지 조용해진 실비아.

날 죽일 듯 노려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10분 정도 컴퓨터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나는 슬쩍 실비아를 흘긋거려보았다.

키보드 앞 책상에 팔을 괸 채로 쌍검이 디자인되어있는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

약간 멍한 표정이 또 다른 매력을 주고 있다.

나도 일할 기분이 아니고, 억지로 할 생각 따윈 전혀 없고...

실비아도 심심해보이고... 그럼 남은 건 뭐겠는가? 데이트지.

모니터를 끈 내가 물었다.

“오늘 집중이 잘 안 되네요. 영화라도 한 편 보실래요?”

“영화...? 어디서? 휴게실?”

“영화관이요. 연구실에서 벗어나야죠.”

“일해야 하지 않아?”

“아까는 일중독이냐고 뭐라 하시더니, 지금은 또 다른 얘길 하시네요? 리프레쉬라도 할 겸 보러 갑시다.”

“.... 그래... 그러지 뭐.”

마지못해 승낙한 척하고 있지만 꽤나 좋아라하는 게 티가 난다.

스탠드 형 옷걸이에서 외투를 챙긴 나는, 뒤따라온 실비아의 머리에 모자를 씌워주었다.

그러자 실비아가 내 손을 치우려고 했다.

“뭐하는 거야! 머리 망가져!”

“주목받는 거 싫으니까 가만히 계세요.”

“주목?”

“화장하셨잖아요. 눈길을 끌 게 뻔해요.”

예쁘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이었다.

내 말의 속뜻을 이해한 실비아가 입을 다물더니 손을 내렸다.

가볍게 웃은 나는 그녀의 뒤로 다가가 모자의 뒷끈을 풀었고, 구멍이 뚫려있는 동굴 부분에 뒷머리를 올려놓았다.

이후 주머니를 뒤적거려 아델이 사용하던 기본 머리끈을 꺼내 머리를 묶어주고는 뒷끈을 다시 조였다.

포니테일처럼 된 그녀의 기다란 연빨간색 머리.

그 끄트머리를 정리해주던 내가 지나가는 투로 말을 이었다.

“평소에 사람들이 안 쳐다봐요?”

“몰라... 의식한 적 없어...”

“가뜩이나 양아치마냥 빨강머리를 하고 있는데, 분명 여러 번 쳐다봤을 거예요. 어딜 가나 튀어 보이잖아.”

“이게 진짜...”

욱하려는 실비아였지만, 내가 모자의 챙을 잡고 방향을 조절해주자 금세 얌전해졌다.

“갈까요?”

“.... 가.”

@@

덜컥!

문을 열자마자 우다다다 소리가 나더니, 아델이 뿅 하고 나타났다.

실비아는 자신을 보며 헤실헤실 거리고 있는 아델을 보며 흐뭇한 미소가 새어나왔다.

저 하이 텐션은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동시에 미안했다.

하루라도 빨리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아이테르를 충전하고 싶은데...

아델이 무척 사랑하는 지혁과 해야 한다는 게 죄악감을 콕콕 건드렸다.

마음만 같아선 다른 남자를 구해보고 싶었으나,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억지로 찾는다고 해도, 좋아하지도 않는데 충전이 어찌 되리.

다른 건 다 떠나서, 자신은 충전을 핑계로 지혁과 잘해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럼에도 일을 추진하려는 자신이 무척 한심했고, 짜증이 났다.

“언니! 영화 재미있게 보셨어요?”

영화?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지혁이 자꾸 팝콘을 먹으라며 들이밀다가 팔꿈치를 맞부딪쳐서.

“응. 지혁이가 말해줬어?”

“네! 절 쏙 빼놓고 가서 따끔하게 한 마디 했어요!”

따끔하게 한 마디를 했다라...

아델이 무척 서운해하고, 지혁이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사이좋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죄악을 범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 죄는 이미 지었다. 그랜드캐니언에서 나쁜 마음을 먹고, 지혁의 은밀한 곳을 만지작거렸다.

자신은 쓰레기였다. 이런 자신이 아이테르를 가질 자격이 있는 걸까?

거지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충전이 될지나 모르겠다.

요동치는 감정을 간신히 억누른 실비아가 아델을 꼭 껴안았다.

“미안해...”

그 말에 아델이 어른스러운 사람인 양 실비아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괜찮아요. 다음엔 세 명이서 같이 보면 되니까요!”

그걸 미안해한 게 아닌데...

실비아가 아델의 목을 감싸 안으며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따스한 동생의 품을 느끼던 실비아는 무심코, 충동적으로 이런 말을 했다.

“혹시 나도 로사리오교에 대해 배워볼 수 있을까?”

그러자 아델이 ‘어?’ 하는 추임새를 넣더니, 실비아에게서 떨어졌다.

눈이 동그래진 상태에서 이내 활짝 웃는 아델.

그녀가 손뼉을 짝! 하고 쳤다.

“정말 잘 생각하셨어요!”

“어... 그, 그냥 맛보기만... 일단 성경부터 읽어봐도 돼?”

“물론이에요! 잠시만요...”

아델이 재빨리 방으로 들어가더니, 자신이 쓴 성경책을 모조리 들고 왔다.

그걸 식탁에 조심스레 내려놓은 아델이 말했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이라도 좋아요! 읽다가 궁금한 것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물어보셔요! 과도기는 현재 지혁 씨가 갖고 계신데, 언니는 창세기부터 읽는 게 먼저니까 상관없을 거예요!”

추진력이 장난이 아니다.

방금보다 더더욱 높아진 텐션에, 얼떨떨해있던 실비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그래...”

“나중에 본격적인 수업을 듣고 싶어지시면 말씀하세요!”

“알았어... 고마워.”

“제가 더 고마워요!”

만세를 부르는 아델을 보던 실비아는 문득 신성력이라는 고귀한 힘이 생각났다.

아델은 아이테르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다.

만약 자신도 신성력을 쓸 수 있다면... 이처럼 조급해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하지만 그 힘을 사용하려면 신앙이 있어야 한다.

성녀로 간택되어야하기도 하고.

그저 흔들리는 멘탈을 진정시키고 위로받기 위해 의지할 곳을 찾으려는 자신 따위가 쓸 수 있는 힘은 절대 아니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창세기 먼저 읽으라고 했지?”

“네!”

식탁으로 걸어간 실비아는, 어마어마한 두께의 책을 보고 혀를 내두르다가 가장 위에 있는 책을 들었다.

“바로 읽어볼게.”

이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런 실비아의 뒷모습을 기꺼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아델이 돌연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그녀의 머리에 매어진 빨간색 끈을 봤기 때문이었다.

일회용이고, 디자인이 흔하디흔한 기본형이긴 하지만...

자신이 가끔 머리 묶기를 귀찮아할 때, 지혁이 묶어주는 머리끈이 분명했다.

‘왜 언니가 저걸...’

이상한 불안감이 생긴 아델은 총총걸음으로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꺼내 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거리는 신호음이 두 차례 지나가고, 지혁이 전화를 받았다.

-네, 아델.

낮고 중후한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는 걸 느끼며, 아델이 말했다.

“그냥... 집에 잘 들어가셨나 해서요...”

-연구실로 간다고 톡으로 말씀드렸잖아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

“뭐가요...?”

-풀죽은 목소리잖아요. 아직도 화가 나신 겁니까?

“그게 아니구요... 지혁 씨, 혹시 언니한테 머리끈 줬어요?”

-머리끈이요? 머리끈... 으음...

잠깐 고민하던 지혁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아, 그거... 그냥 주머니에 있길래 묶어줬습니다.

뭣이라? 묶어주기까지 했다고?

실비아가 머리를 묶을 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왜!?

콧바람을 훅 내뱉은 아델이 언성을 약간 높였다.

“왜요?”

-예?

“왜 묶어줬어요? 언니가 묶는 걸 서툴러하셨나요?”

-그건 아니고... 그냥... 어쩌다보니까 묶어주게 됐는데... 마침 빨간색이라 실비아 씨와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냥? 어쩌다보니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아주 화딱지가 날만한 말만 골라서 하고 있다.

-.... 저... 제가 잘못했습니까?

심지어 잘못했냐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인가!?

지혁은 정말 바보 같다! 아무리 착해도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

설사 버릇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고쳐야 한다!

게다가 여자친구의 물건을 다른 여자한테 사용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지혁 씨. 제가 지금 당장 연구실로 갈 테니, 마중 나올 채비를 하셔요.”

-지금요? 예... 알겠습니다.

뚝.

차갑게 전화를 끊은 아델은 씩씩대며 외투를 챙겨 입었다.

이후 거실로 나오면서, 굳게 닫혀있는 실비아의 방문을 한 차례 쓱 바라보았다.

실비아는 자신이 지혁과 함께 가족처럼 생각하는 소중한 동료다.

두 사람이 더욱 친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남녀 간에 묘한 분위기가 피어오를 수 있는 행동으로 가까워지는 건 싫었다.

“저 지혁 씨 만나러 다녀올게요!”

의도적으로 큰소리를 낸 아델은, 실비아의 대답도 듣지 않고 현관을 나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