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241화 (241/471)

EP.241 권속화 #2

정의로웠던 사람이 내 색으로 물들어가면서 타락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박사의 경우는 이블 발키리가 아니라 마르셀라와 같은 음마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변화의 첫 신호탄은 음문이었다.

자궁이 있는 위치에 생성된 음문은 검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이제부터 새카매질 박사의 마음처럼.

박사의 변화는 세화나 유리아처럼 악의가 몸 전체로 퍼져나가지는 않았다.

적응이 덜 됐다는 방증.

이는 박사가 마족이 되어서도 가용할 수 있는 힘이 떨어진다는 것과 상통했다.

만약 세화의 계획대로 전부 됐다면 악의가 쫙 퍼졌겠지만, 박사가 자꾸 이리저리 튀어서 그렇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마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된 건 확실했으니, 시간이 지나면 점차 강해질 터.

연구실에서 연구만 하던 박사가 일선에 서게 되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박사는 마치 마약에 취한 사람마냥 흐리멍덩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 침착한 얼굴을 바라보며 안정을 얻으려는 듯했다.

그러다가 이내 눈이 완전히 감겼고, 공중에 두둥실 떠올랐다.

이윽고,

쩌어억-!

박사의 날개뼈를 감싸고 있던 살이 쫙 찢어지면서, 기다란 날개가 튀어나왔다.

유리아의 어미인 마가렛을 타락시켰을 때와 같은, 누가 봐도 악마라고 생각할만한 날개였다.

곧이어 완전히 펼쳐진 날개의 익폭은 2미터가 훌쩍 넘어보였다.

날개의 양 끄트머리가 방의 양쪽 벽에 살짝 닿을 정도.

약간 검붉은 빛을 띤 그것의 끝부분에서는 살갗이 찢어지면서 나온 피를 뚝뚝 흘렸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심을 심어줄 정도로 괴이했다.

물론 내 입장에선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다음은 꼬리였다.

꼬리뼈 윗부분의 살이 불룩 솟아오르더니, 날개가 나타날 때보다는 약한 찌이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튀어나왔다.

끝이 하트모양으로 된 뾰족하고 긴 꼬리였다. 마르셀라의 것과 완전히 같은.

꼬리는 자아를 가진 생물마냥 유연하고 강하게 방 안을 휘저으며 몇몇 기물을 동강냈고, 이내 얌전해졌다.

이어서 피부.

내 마력이 주입되면서 창백해졌던 피부가 더 하얘졌다.

선천적으로 하얀 아일랜드인처럼 말이다.

다음으로 피부가 더욱 탄력적으로 변하고, 손발톱이 뾰족해지고, 송곳니가 날카롭게 튀어나와 아랫입술을 살짝 덮는 것으로 변화가 끝이 났다.

다만 마지막으로 확인해야할 것이 남아있었다.

우웅-!

마족이 된 박사의 몸이 허공을 유영하며 내 곁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박사의 등과 오금에 팔을 넣고 살포시 안아든 나는, 눈을 감은 그녀를 살폈다.

‘아름답다.’

완전히 젊어진 박사의 모습은 감탄만 나왔다.

얼굴은 20대 초반이지만, 드러난 마족의 증표와 몸매가 요염함을 더해주었고, 원체 지적이었던 얼굴이 더해져 약간 나이가 들어 보였다.

컬이 들어간 단발머리도 한몫해서, 전체적으로는 스물여섯, 일곱 정도의 농염한 누님처럼 보였다.

멍하니 박사의 얼굴을 살피고 있던 나는, 그녀가 깨어날 조짐이 보이자 귀를 쫑긋했다.

“으음...”

자다 깬 것 같은 목소리마저도 색기가 풀풀 흘러넘쳤다.

만족에 겨워하던 나는, 박사가 눈을 게슴츠레 뜨자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웠다.

새빨간 홍채와 세로동공을 확인해서였다.

이로서 박사는 완벽한 마족이 되었다.

영원히 내게서 떠날 수 없는, 내게 예속된 권속으로 재탄생했다.

“지... 혁아... 나...”

아직 자신의 상태가 낯선 듯, 박사가 말끝을 흐리며 내 목에 팔을 둘렀다.

그때, 목에서 퓻! 하는 소리가 들리고, 따끔한 느낌과 함께 피가 새어나왔다.

내 목을 지지대로 삼고 자세를 고치려던 박사가 손톱으로 목을 꿰뚫어버린 것이다.

그걸 본 박사가 화들짝 놀라서는 몸을 버둥거렸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꽉 붙들자 이내 다시 안정되었다.

“미안해... 미안해요...”

울먹거리는 투로 연신 사과를 하는 그녀.

고개를 가로저은 내가 말했다.

“괜찮아. 기분은 어때?”

“.... 이상해...”

이상하다는 짧은 단어에 온갖 감정이 함축되어있었다.

기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무섭기도 할 것이다.

인간으로 살아온 자신이 변해버린 걸 자각하고 있으니까.

사실 나도 박사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내 권속이 된 건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나는 지금까지 마음대로 활개를 치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선은 그었다.

본부의 총책이라 할 수 있는 박사의 눈치를 보면서 몰래 움직이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박사가 중역으로 앉아있는 세계연합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고, 타 국가도 마찬가지.

지구 전체를 주무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델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계속 조심하긴 해야겠지만, 행동반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어졌다.

마계가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아델만 이블 발키리로 만든다면 다시금 정상화될 터.

그 다음엔 스텔라와 실비아를 타락시킨 뒤, 마계를 정리하고 최종보스인 로사리오와 싸우기 위해 천계로 간다.

이후 로사리오를 고꾸라뜨려 내 수족으로 만들고, 전 우주를 휘어잡으면 된다.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허나 박사와 마르셀라, 두 천재가 내 옆에 있는 이상, 그리고 이블 발키리들이 있는 이상 내가 하지 못할 일은 없다.

그렇게 믿고 있다.

“뭔가... 힘이 흘러넘쳐... 등 뒤가 무거운데... 혹시 날개야...? 꼬리도 생겼나봐...”

“응. 없애고 싶어?”

“아니... 그건 아닌데... 계속 이렇게 살려면 불편할 것 같아...”

지극히 현실적인 얘기를 하는 박사.

세화와 유리아가 타락한 후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평범한 인간인 상태에서 마족이 되어 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와 한참을 끅끅대던 나는, 박사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면서 말했다.

“마르셀라처럼 숨길 수도 있어.”

“그래...? 어떻게?”

“권속이 된 누나는 내 마력을 사용할 수 있어. 사용법만 익혀놓으면 변신도 문제없을 거야. 일단 누날 내려놓을게.”

“알았어요...”

“쓰러질 것 같으면 내 몸을 잡아.”

박사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지는 것을 본 나는, 팔을 아주 조심스럽게 사선으로 움직여 그녀의 두 발바닥이 바닥에 닿도록 했다.

그 상태에서 천천히 손을 떼자, 박사가 상체를 숙이면서 양팔을 옆으로 뻗었다.

큼지막한 날개를 의식해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행동이었다.

그 4차원적인 모습에 다시 실소가 터져 나온 내가 말을 이었다.

“어때?”

“모, 모르겠어... 너무 낯설어...”

“인간 시절의 버릇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그래. 차차 적응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나는 네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나 박사를 향해 양팔을 뻗었다.

“걸어서 나한테 와봐.”

그 말에 박사가 침을 꼴깍 삼키더니 발을 옮겼다.

한걸음 한걸음씩, 마치 첫 걸음마를 하는 아이마냥 뒤뚱거리는 그녀.

그럴 때마다 날개가 펄럭이며 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이윽고 내 코앞까지 온 박사는, 거의 앞으로 쓰러질 듯 내게 안겼다.

“하아... 하아...”

잔뜩 긴장해선 숨을 몰아쉬는 게 귀엽다.

젊어진 얼굴도 그렇고... 색다른 모습을 보는 기분.

그녀의 등허리를 토닥여주던 내가 말했다.

“잘했어. 이렇게 천천히 연습해나가면 돼.”

“응...”

“이제 나가자. 세화랑 유리아와 인사를 나누고, 마르셀라한테 누나의 몸 상태를 체크해보라고 해야겠어.”

“유, 유리아는... 나한테 화났는데...”

“그건 그냥 연기였어.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누나를 친절하게 대해줄 걸? 내가 장담할게.”

호언장담을 하자 안도했는지, 박사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 그녀를 번쩍 안아든 나는 방을 나섰다.

**

예상대로, 유리아는 마족이 된 박사에게 사근사근한 태도를 보였다.

새로이 변한 모습이 너무나도 예쁘다며 칭찬을 한 건 기본이고, 자신이 붙어 다니면서 박사를 적응시키고, 마력의 사용법을 알려준다고 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유리아의 태도는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타락한 직후에도 마르셀라와 마물들을 따뜻하게 포용해주었었으니까.

세화 또한 박사를 살살 꼬드길 때보다 더욱 친절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환대를 받은 박사는 어리둥절해했지만, 이내 기뻐하며 두 사람의 환대를 즐겼다.

이후 아직 거동이 불편한 박사를 데리고 의무실로 간 나는, 마르셀라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대기하고 있자 피식했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음마가 된 박사를 친자매 바라보듯 했다.

저럴 만도 하다. 유일한 음마에서 유이하게 되었으니까.

박사 또한 본능적으로 마르셀라에게서 익숙한 기운을 느꼈는지, 호의가 가득한 눈으로 그녀에게 미소를 보여주었다.

두 사람의 상봉을 뒤로 미룬 나는 의료기기에 박사를 눕혔고, 마르셀라와 함께 상태를 면밀히 체크했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아이였다.

박사의 신체가 재구성되면서 아이에게 무리가 갔을까 불안했다.

시뮬레이션을 거듭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걱정이 됐는데, 다행스럽게도 기우로 끝났다.

결과는 아주 정상적. 박사의 몸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다행이군.”

“네. 박사님은 아주 자연스럽게 변화했어요. 왕비님의 공정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

“이제... 자리를 피할까요?”

피한다고? 아... 내가 박사를 안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물론 그렇게 하긴 할 거다. 마족이 된 기념비적인 일을 축복하기 위해 당연히 서로의 살을 맞대고 얽혀야지.

하지만 적응이 먼저였다. 고개를 가로저은 내가 말했다.

“거동이 자연스러워지는 게 먼저다. 세화와 유리아, 그리고 네가 옆에서 많이 도와주어라.”

“허면 마왕님께선...”

“한국으로 돌아가 봐야겠다. 누나가 잘 적응이 됐을 때 연락하거라. 그리고 슬슬 미뤄두었던 연구를 재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아이테르 복제 연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다.”

신성력 때문에 마계의 영향력이 떨어지고 있는 지금, 아델만 바라보는 건 너무 도박성이 짙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 때를 대비하여 여러 대비책을 강구하는 게 맞았다.

아이테르 연구를 가장 많이 한 박사가 가족이 되었으니 연구에 가속도가 붙을 터.

완전한 복제는 아니더라도 비슷하게나마 찍어낼 수 있다면, 그리고 그걸 내 멋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군단을 만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구상에 널린 인간으로 전사를 수급하는 게 아이테르 복제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영향력이 떨어졌다고 주인을 물어뜯으려 하는 놈들보다 훨씬 쓸데가 많을 거다.

천계와 싸울 때도 큰 도움이 되겠지.

이제 거의 절반쯤 왔으니까, 착실하게 미래를 그려나가자.

“알겠습니다.”

“그리고 누나는 본부나 한국에 올 일이 많으니까, 아이의 마기를 무리 없이, 최대한 안전하게 감추는 방법도 생각해 놓아라. 나는 마기를 지우러 가보겠다. 누나가 깨어나면 불안해하지 않게 잘 챙겨주고.”

“물론이에요.”

“믿겠다.”

마르셀라의 머리를 헝클어뜨려준 나는, 그녀의 다리가 풀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킥킥거리다가 의무실을 나섰다.

이후 포탈을 타고 한국에 있는 박사의 집으로 돌아와서, 마르셀라가 만들어둔 약을 먹고 온 창문을 활짝 열었다.

조금만 지나면 겨울이라 그런지 바람이 차다.

소파에 앉은 나는 기다란 숨을 내쉬었다.

한 챕터가 끝나고, 새롭고 어수선한 챕터가 시작된 기분이다.

이 과도기를 잘 넘겨야 앞으로의 일이 수월하겠지.

우웅-!

천장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있던 나는, 아델의 문자를 받고 히죽 웃었다.

[지혁 씨, 언제 와요?(。•́︿•̀。)오늘? 내일?]

잠깐 텀을 둔 나는 답장을 보냈다.

[방금 막 비행기를 탔는데, 왜 슬픈 이모티콘을 보내요? 무슨 일 있으세요?]

[직접 보며 얘기하고 싶어요. 빨리 와주셨으면 해요...]

실비아와 무슨 일이 생겼구나.

어제 통화할 때도 목소리가 별로였는데, 의도대로 됐다.

내가 바랐던 다툼 까지는 아닌 듯한데... 들어보면 알겠지.

[도착하자마자 연락할게요.]

[보고 싶어요.]

이 마왕님도 아델이 참 보고 싶어요.

마기만 지우고 갈게요.

[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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