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5 다툼
흰자위만 드러낸 박사의 하반신이 생선마냥 팔딱거렸다.
허리가 플러터 현상이라도 일어난 다리마냥 꿀렁거렸고, 몸이 너무 많이 떨려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가로로 누운 그녀의 벌어진 다리는 침대 밖으로 내놓아져있었다.
이불보는 그 사이에서 내뿜어진 애액으로 완전히 젖어버린 상태.
박사는 자세를 고칠 생각도 못한 채로 스위치를 누른 직후 일어났던 일을 상기했다.
잘했다며 칭찬을 하고는 박사 자신의 보지 안으로 중지를 깊숙이 넣고 구부린 세화.
그 손가락 끄트머리가 지스팟에 닿자마자, 인생 최고의 오르가즘을 맛보고 볼 성 사납게 가버렸다.
참고 자시고 할 새도 없이, 조수를 마구 뿜어내며 말이다.
“하아... 하아...♡”
숨을 헐떡이며 복기를 끝낸 박사는, 자신의 얼굴과 목에 묻은 식은땀을 정성스레 닦아주고 있는 세화의 팔목을 덥석 붙잡았다.
“세화야... 네가 먹인 피... 대체... 무슨... 내 몸이... 이상해...”
횡설수설하는 그녀에게, 세화가 부드러운 투로 말했다.
“잘했어요.”
“잘... 했어...?”
“응. 엄청 잘했어요. 우리 박사님 너무 기특해.”
“아아...♡”
박사의 입가가 쭈욱 찢어졌다.
그녀는 현재 부끄러움, 체면 따윈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인간 서른 명을 죽인 일에 대한 죄책감? 그딴 건 당연히 없었다.
그저 세화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아직도 남아있는 여운을 만끽할 뿐이었다.
땀을 다 닦아준 세화는 박사의 바지와 팬티를 벗기고 화장실 안으로 던져놓았다.
이후 수건을 꺼내와 바닥에 튀긴 애액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왕비씩이나 되는 자가 아무런 불평불만도 없이 수고를 해주는 모습에, 박사의 가슴속에 환희가 피어났다.
자신 같은 미천한 존재에게 지고한 쾌락을 준 것도 모자라 살펴주기까지 하다니... 너무나도 고마웠다.
어느새 꼼꼼히 청소를 마친 세화가 박사의 허리춤으로 가서 앉더니 생긋 웃었다.
“침대보도 갈아야 되는데... 박사님 상태가 별로라 조금 쉬다 해야겠네?”
그리 말하며 박사의 보지를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리는 세화.
아래가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낀 박사가 간헐적으로 몸을 떨었다.
“앗...! 앗...♡”
“다음엔 이번보다 더 기분 좋게 해줄게요.”
박사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방금 가버렸을 때만 해도 더 이상의 쾌락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번보다 더?
어떤 느낌일지 도저히 가늠이 안 됐다.
“후우... 흐우...”
가쁜 숨을 내쉬며 흉부를 부풀리던 박사는, 세화가 손가락을 세워 자신의 쇄골 부근을 콕콕 찌르자 다리를 오므렸다.
건드려지는 것만으로도 쾌감이 찾아왔기 때문.
보지가 다시 촉촉하게 젖어오는 것을 느낀 박사가 풀린 눈으로 세화를 쳐다보았다.
“세화야... 너...”
“말씀하세요.”
하고 싶은 말은 무척 많았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세화에게 꼬치꼬치 캐묻기는 싫었다.
그냥 순리대로 살다 보면 세화가 설명을 해줄지도 몰랐기에, 박사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요. 지금은 눈을 좀 붙이시고, 저녁에 유리아 언니를 설득하러 가도록 하죠. 언니는 미리 깨워놓고 있을게. 아셨죠?”
지고의 복음처럼 들려오는 세화의 말.
박사가 대답했다.
“응...”
설득에 성공하면 방금 세화가 말했던... 더 기분 좋은 일을 해줄 가능성이 높았다.
어떻게든 유리아를 설득해서 상을 타리라.
박사의 마음엔 이러한 다짐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
“괜찮니...? 혹시 세화가 널 때리기라도 한 건 아니지...?”
결박되어있는 유리아를 향한 박사의 물음이었다.
박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유리아가 애써 힘을 내며 대답했다.
“저는 괜찮아요. 박사님은... 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여요...”
“나도 괜찮아... 빛을 못 봐서 그래... 언제 일어났니?”
“두 시간 전에요. 저한테 뭘 한 건지는 몰라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요. 평범한 인간이 된 것 같아요.”
아마 주사나 약 같은 걸 먹인 듯싶었다.
유리아의 신체능력을 고려해보았을 때, 이는 당연한 처사였다.
난동이라도 피우면 제압하기 힘드니까.
유리아의 몸 이곳저곳을 체크해보던 박사는, 그녀의 발목에 차있는 족쇄를 보고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족쇄까지 찼네...”
“네... 세화의 눈엔 제가 완전한 적으로 보이나 봐요. 걔는 완전히... 변절한 거죠?”
“아직 몰라. 그나저나 오랜만에 대화 나누니까 좋다... 나 때문에 잡혀서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아니에요. 제가 방심한 탓이죠... 박사님은 해코지 같은 건 안 당했어요?”
“응. 나는 일반인이고 아이테르가 없으니까 안심하고 있나봐. 그리고 마르셀라라는 아이가 사근사근하더라. 그 아이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
유리아의 눈썹이 꿈틀했다.
“박사님. 절대 넘어가지 마세요. 그년이 뭐하는 년인지는 모르겠지만 박사님을 회유하려는 게 분명해요. 극한의 상황에서 당근을 주며 적대감을 낮추려는 의도일 거예요.”
딱히 극한의 상황은 맞닥뜨린 적이 없는데... 유리아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
순종만 하면 무척 편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여기였다.
“유리야. 일단 최대한 순종하자. 그러면서 기회를 엿보는 거야.”
“순종...? 방금 순종하자고 하셨어요...?”
믿어지지 않는 눈을 한 유리아의 물음.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
유리아는 타이라트에게 엄청난 원한을 가진 상태.
그런 상황에서 무력하게 잡혀온 것도 자존심이 상하는데, 순종하라니 반발심이 이만저만이 아닐 터였다.
하지만 유리아는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별 수 있니? 다른 선택권이 있어?”
“박사님! 정신 차려요! 여긴 타이라트의 기지에요! 세화를 마물로 만들어버린 그 미친 새끼의 본거지라고요! 당장 살 길을 모색해야...”
극도의 흥분상태에 접어든 유리아의 외침.
박사가 미간을 약간 좁혔다.
“그러니까 그 살 길을 모색하려고 복종하는 척이라도 하자는 거잖아. 탈출하고 싶다 하면 얘네들이 문이라도 열어줄 것 같아? 냉정하게 생각해.”
“.....”
할 말이 없어졌는지 입을 앙 다문 유리아.
박사는 평소에 총명한 유리아가 이토록 변해버린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원수의 기지에 잡혀왔기 때문에, 그리고 세화의 변절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진 게 분명했다.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을 내쉰 박사가 말했다.
“우린 지금 파리 목숨이야. 네 태도는 탈출에 전혀 도움이 안 돼.”
그 말에 유리아의 눈빛에 분노의 감정이 맴돌았다.
“그래서... 그래서 일반인을 죽이셨나요? 서른 명이나?”
“뭐...?”
어떻게 알았을까? 이건 생각해보면 답이 쉽게 나왔다.
세화는 유리아를 미리 깨워놓는다고 했다.
아마 그때 유리아의 멘탈을 박살내기 위해 박사가 대신 벌을 받았다고 조롱을 했으리라.
아랫입술을 꽉 깨문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그랬어.”
“정말... 박사님이 그랬어요...? 정말로? 거짓말이 아니라...?”
“그래. 내가 했어.”
“말도 안 돼... 그 정의롭던 박사님이 어떻게... 사람들을 죽일 수가 있죠?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나요!?”
유리아의 호흡이 가빠져왔다.
그녀는 박사를 괴물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무척 슬펐던 박사가 언성을 조금 높였다.
“죄책감은 느끼고 있어! 그리고 어떻게든 벌어질 일이었어! 네가 하기 싫다고 하면 세화가 순순히 물러날 거라고 생각했니?”
“그래도 반항하셨어야죠! 굴복하지 않으셨어야죠! 박사님 바보에요? 박사님이 버튼을 누르든 누르지 않든, 세화는 사람들을 죽일 생각이었어요!”
“너야말로 바보 아니니!? 지금 네 처지가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인지하고는 있어? 내가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면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이 죽어나갔을 거야! 지금 죽은 사람들은 사회에서도 쓰레기라 불리던 것들이었어. 이쯤으로 끝난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어떻게 그런 말을... 제정신이 아니야... 박사님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에요...”
제정신이 아닌 사람은 유리아였다.
자신보다 인간들을 더 생각하는 유리아 대신 버튼을 눌러줬는데, 고마워하거나 미안해하지는 못할망정 이런 반응이라니...
박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알아!? 왜 내 마음은 몰라주고 네 생각만 하는 건데!? 나도 정말 힘들었어! 심지어 여기 온 첫날엔 스무 명이나 죽어서 기절까지 했다고!”
“여기 온 첫날 스무 명...?”
“.....”
실수를 했다. 이건 말해선 안 되는 건데...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노릇.
박사는 낭패한 표정으로 유리아의 시선을 피했다.
“그럼 설마... 박사님의 손으로 쉰 명을... 죽였다는 건가요...? 일반인을...?”
“.... 그래.”
“미쳤어... 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죠? 세화가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무언가에 당했죠? 맞죠?”
유리아의 태도에 화가 났다.
애초에 평생 굴복하자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기회를 엿볼 때까지만 얌전히 있자고 살살 구슬렸을 뿐이다.
헌데 왜 이렇게 옹고집적인 면모를 보일까? 아무리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라도 그렇지...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왔다.
그녀를 위해 자신이 얼마나 희생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한 번 당해보면 나아지려나 싶다.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난 널 도와줄 수가 없어.”
“제발 정신 차려요! 지금 박사님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다구요!”
묵묵히 유리아의 호소를 듣던 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면담 시간은 짧아. 이만 일어나봐야 돼.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건 살아서 여길 나가는 거야. 이런 선택을 한 나를 이해해줬으면 좋겠고, 제발 날 위해서라도 가만히 있어주라...”
말을 마친 박사가 문 옆에 붙어있는 스위치에 손을 가져가 꾸욱 눌렀다.
그러자 유리아의 침대가 철컹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주사기를 든 기계 팔 같은 게 튀어나왔다.
그것을 보고 덜컥 겁을 집어먹은 유리아가 소리쳤다.
“이게 뭐야!? 박사님! 지금 뭘 하시는 거죠?”
“네가 흥분하면 이걸 누르라고 하더라. 저 주사는 진정제야. 지금 넌 상당히... 과격해져있어. 한숨 자고 다시 생각해.”
“진정제...? 왜 박사님이 나한테 진정제 같은 걸 놓는 건데? 왜 제가 적인 것처럼 행동하는데요!? 박사님! 이러지 마세요! 박사님!”
유리아의 처절한 부름.
더 이상 듣기가 힘들어진 박사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후 창문을 통해 유리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주사를 맞자마자 순식간에 잠든 유리아를 확인한 박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온 세화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괜찮아요. 박사님은 열심히 했어요.”
세화의 위로를 들으니 힘이 나는 기분이었다.
박사가 구슬픈 표정으로 물었다.
“다 들었어...?”
“네. 다 들었어요. 정말 미안해요. 유리아 언니랑 말다툼을 하다가... 서운한 감정이 생겨서 홧김에 버튼을 눌렀다는 걸 말해버리고 말았네요.”
역시 그랬구나. 박사가 이해한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건 상관없어... 언젠간 알게 될 일이었으니까 미리 알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어. 근데 세화야. 너도 내가 내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생각해?”
“아뇨. 오히려 그 반대에요. 박사님은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고 있어요. 심란해하지 마요.”
박사는 세화의 그릇이 유리아보다 훨씬 크다고 확신했다.
예전엔 그 반대라고 생각했었는데, 여기 와보니 알겠다.
유리아는 현실감각이 전혀 없었다.
아무리 타이라트가 증오스럽다고는 해도, 지금 상황에선 자신의 말대로 해야 활로가 열리는 법인데...
세화에게 면목이 없었다. 유리아의 설득은커녕 오히려 반발심만 더욱 키운 것 같아서.
“미안해...”
“박사님이 미안할 필요가 있나요? 자, 우리 이렇게 해요. 유리아 언니는 너무 화가 나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태잖아요? 그러니까 시간을 줄게요. 유리아 언니의 흥분이 가시면, 그때 다시 이야기를 나누어보세요.”
당장 벌을 내리겠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제의를 하다니... 이 얼마나 자비로운가?
“그래도 될까...?”
“박사님은 유리아 언니를 포기하고 싶지 않잖아요. 저는 박사님을 믿으니까, 기회를 더 줄게요.”
“아...”
탄성을 터뜨린 박사가 말했다.
“고마워... 진짜 열심히 할게...”
“우리 박사님, 너무 침울해하신다... 잠깐 기분전환이라도 할까요?”
“기분전환?”
“기지에 있는 여러 장비들이 궁금하죠? 구경한 후에 산책 좀 하다가 돌아가요. 마르셀라한테는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방에 있는 카메라를 치우고, 이불보를 갈아놓으라고 할게요.”
이것 보아라.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아랫것’의 기분과 편의를 살펴주는데, 충성심이 안 생기고 배기겠는가?
감격에 겨워한 박사가 알겠다고 대답하자, 세화가 주변이 환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망설임 하나 없이 잡은 박사는, 자신의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세화가 이끄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