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231화 (231/471)

EP.231 붕괴,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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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라는 자신의 가운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리모컨을 하나 꺼냈다.

그녀가 가장 위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우우웅하는 기계음과 함께 벽 위에서 스크린이 내려와 벽의 한 면을 전부 덮었다.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마르셀라가 떨리는 손으로 리모컨을 조작하고 있을 때, 세화가 박사를 불렀다.

“박사님.”

“....?”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사에게, 세화가 말을 이었다.

“제가 기회를 드릴게요. 박사님이 선택만 잘 하시면, 그리고 말만 잘 들으시면 유리아 언니는 무사할 거예요.”

박사가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 잡혀버렸구나. 괜히 공원으로 들어가라 해선...

죄책감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너무나도 미안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크린이 켜졌다.

양분되어있는 화면. 왼쪽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큰 감옥에 무더기로 있었고,

오른쪽엔 유리아가 병원의 개인실과 비슷한 곳에서 이불도 없이 곤히 잠들어있었다.

결박된 채로 말이다.

오른쪽 화면을 바라보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박사가 물었다.

“유리아는... 괜찮아...?”

“괜찮아요. 그저 잠든 것뿐이죠. 왼쪽 화면의 인간들은 누군지 아시겠나요?”

때맞춰 클로즈업된 왼쪽 화면.

사람들의 면면을 대충 살펴보던 박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 몰라...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래요? 들으면 서운해 하겠는데?”

“누군데...?”

킥킥거린 세화가 설명했다.

“왼쪽 화면에 묶여있는 인간들은 박사님을 아는 인간들이에요. 여러 부분에 걸쳐 박사님과 관련이 있답니다. 박사님이 이사벨 파슨스의 이름을 쓰고 계실 때 발표한 연구와 논문을 무단으로 베낀 인간들이에요. 뒤에서 박사님을 음해한 인간도 있고요. 아주 파렴치한 것들이죠.”

“.....”

“지금 데리고 온 놈들은 그저 박사님을 적응시키기 위한 장치에요. 박사님과의 관계가 부정적인, 스쳐지나간 인연 정도요. 하지만 다음번에 잡아올 인간들은 죄가 없을 거예요. 박사님과의 관계도 긍정적일 테구요.”

세화는 두 번의 벌을 준다고 했다.

선택지라는 단어를 언급한 것으로 보았을 때, 앞으로 벌어질 일은 무척 끔찍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다음번에 잡아올 인간들은 자신과 가까운 쪽일 거라니... 악독함에 치를 떤 박사가 이빨을 갈았다.

“나한테... 뭘 원하는 거야...”

“예상하시는 눈치인데요? 다음은 마르셀라더러 설명하라고 할게요.”

세화가 아직까지도 몽롱한 얼굴을 하고 있는 마르셀라의 골반을 손바닥으로 툭 치자, 퍼뜩 정신을 차린 마르셀라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내용은 박사를 충격에 빠뜨렸다.

“박사님께서 잘못하신 횟수만큼, 유리아 엘레나르 님을 마족화시킬 거예요. 대신, 박사님껜 선택지가 있습니다... 유리아 님이 마족으로 변하는 게 싫으시다면, 왼쪽 화면의 인간들을 죽이세요... 두 번 잘못하셨으니 한 회당 열 명씩, 스무 명을 죽이시면 돼요...”

유리아를 고통에 빠뜨리는 대신 인간들을 죽이라는 선택지는 예상했다.

그러나 한 번에 열 명일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마물화 또한 마찬가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혹했다.

패닉에 빠진 박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르셀라가 말을 이었다.

“보통 인간들은 한두 차례의 마물화 과정만 거치면, 이지를 상실하고 마물이 돼요. 하지만 유리아 님은 수많은 고난을 겪어 오신 만큼 정신력이 강하세요... 아마 스무 번... 많으면 서른 번 정도는 너끈히 버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마르셀라가 말을 마치자, 세화가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스위치 두 개를 꺼냈다.

빨간색 스위치를 박사의 왼손에, 초록색 스위치를 오른손에 들려준 그녀가 말했다.

“박사님이 직접 선택해요.”

“아...”

정신이 나가기 직전까지 온 박사의 몸이 한 차례 휘청거렸다.

재빨리 그녀를 부축한 세화가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부터 이러시면 안 되는데... 힘내세요. 1분 드릴게요. 선택하지 않으시면 유리아 언니와 저 인간들 모두에게 벌을 내리겠어요.”

“세화야... 너 대체 어디까지...”

세화는 어디까지 떨어져버린 걸까?

저 사악해 보이는 모습은 악 그 자체.

인간을 지켜야한다는 정의감 따윈 애초에 없는 존재 같았다.

타이라트가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알아내고 싶을 지경이다.

“시간은 가고 있답니다.”

“.....”

한 선로엔 사람 한 명을, 다른 한 선로엔 다섯 명을 묶어놓고, 스위치를 조작해 누굴 죽일 것인지 선택하는 윤리학적 사고실험인 광차문제가 생각난다.

이 딜레마를 어찌 해결해야 할까? 사실 박사의 답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박사는 숫자놀음과 가치산정을 좋아했다.

그래서 생명에 값을 매겼다.

저 사람들보단 유리아 한 명의 가치가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컸다.

그녀를 가족처럼 생각하기도 하니, 당연히 왼쪽을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으로 사람이 죽는다는 생각을 하자 본능적인 거부감이 생겼다.

지혁이 겪은 일과 그가 했던 말 때문에 인간들이 미워지긴 했지만, 이건 타이라트의 흉계에 넘어간 것.

자신의 본성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절대 죽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중인 것이 그 증거였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냥 의식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허나 선택하지 않으면 유리아와 인간들 모두에게 벌을 내린다고 말했다.

빈말은 절대 아닐 것이다. 무조건 스위치를 눌러야 했다.

“30초 남았어요. 선택하기 힘드시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이번 한 번만.”

제발... 제발 지혁이 자신의 실종을 알아차리고, 실비아와 아델을 보냈으면 좋겠다.

슈퍼맨처럼 천장을 부수고 나타난 그녀들이 세화를 정화시키고, 유리아와 박사 자신을 구출해 이곳을 빠져나갔으면 좋겠다.

신이 있다면 구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헛된 희망은 일어나지 않는다.

“10초 남았어요.”

“.....”

“9, 8, 7, 6...”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어린아이마냥 숫자를 세는 세화.

눈물을 주르륵 흘린 박사가 결국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왼쪽... 왼쪽이야...”

그 말에 세화가 아름다운 미소를 짓더니, 박사의 왼손을 잡아 구부렸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잘했어요.”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힘을 주었다.

딸깍하는 소리가 두 번, 정적에 휩싸인 방 안에 울려 퍼지고,

뻥-! 뻐버벙!

연속된 폭발음과 함께 화면이 꺼졌다.

그와 동시에 박사가 이성을 놓아버렸다.

스무 명의 사람들의 머리가 일시에 터져나가면서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변한 감옥.

그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절망, 공포에 찬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곧 눈을 위로 까뒤집고는 혼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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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아아악!!

-터졌어...! 머리가 터졌다고!

-살려줘! 내보내주세요! 잘못했어요!

“허어억!”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악몽을 꾼 박사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러다 두통이 찾아와 이마를 짚었다.

“아...”

“괜찮아요?”

옆에서 들려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박사는, 세화가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이를 악물었다.

당장 욕지거리를 쏟아내며 뺨을 갈기고 싶지만, 그랬다간 세화가 또 다시 스위치를 줄지도 모른다.

억지로 표정을 푼 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꿈이 아니었던 거지...?”

“네. 박사님은 스무 명을 동시에 죽였어요.”

“.... 우욱...!”

세화의 확인사살에 헛구역질을 한 박사가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에 얼굴을 대고 위산을 마구 쏟아낸 그녀는 힘겨운 기색으로 화장실 벽에 등을 기댔다.

그러자 세화가 다가와 젖은 수건을 내민다.

말없이 수건을 받아든 박사가 입가를 닦아내고는 말했다.

“고마워...”

“고맙다구요? 우리 박사님, 엄청 착해지셨네? 충격요법이 꽤 셌나 봐요?”

“어쩔 수 없잖아...”

“그렇죠. 어쩔 수 없죠. 이렇게만 해요. 그러면 유리아 언니는 무사할 테고, 박사님의 손에 피가 묻을 일도 없을 테니까.”

“.....”

“얼른 밥 먹어요. 탁상에 올려놨어요.”

지금 이 상황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는가?

“생각 없어... 혼자만의 시간을 주면 안 될까?”

“안 먹을 거예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박사를 주시하는 세화.

박사는 여기서 밥을 먹지 않았다간, 아까의 일이 또 일어날 거라고 직감했다.

너무나도 악랄했다. 악마가 세화의 탈을 쓰고 이러는 건 아닐까 의심이 될 지경.

그래, 먹자. 먹기만 한다면 비극을 피할 수 있는데 무엇인들 못하리.

부들거리며 일어난 박사가 탁상으로 갔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배를 만졌다.

배가 고픈 게 아니라, 아이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겐 아무 문제도 없어요. 박사님이 혼절하셨을 때 의료기기에서 검사를 했거든요.”

어느 샌가 박사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세화의 말이었다.

박사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타이라트의 수족이 된 세화는 잔혹했다.

그렇다면 아이를 볼모로 협박은 기본 옵션이라고 보는데, 왜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신경을 써주는 걸까?

세화의 온화한 표정을 보고 용기를 낸 박사가 물었다.

“왜... 내 아이를 살펴주는 거야?”

“박사님의 아이는 저의 주인님... 즉, 마왕님을 모시게 될 테니까요.”

뭐라고...? 감히 자신의 아이를 타이라트의 시종으로 부리겠다는 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황당한 답변을 들은 박사가 빼액 소리쳤다.

“개소리! 그럴 일은 없어!”

“한 번만 봐드릴게요. 지금 당장 진정하세요.”

화딱지가 곪아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세화의 말처럼 진정해야 한다.

다시 한 번 이지선다를 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씩씩대던 박사가 긴 한숨을 내쉬고는 순순히 사과했다.

“미안해...”

“박사님 마음은 이해해요. 적의 수장에게 아이를 갖다 바치려니 막막하셨겠죠. 하지만 박사님이 잘못 생각하고 계신 거라면 어쩔래요?”

잘못 생각한다니? 이건 또 뭔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인지...

“무슨 소리야?”

“아니에요. 이제 식사하세요.”

딱 보니 말해줄 것 같지도 않았기에, 자포자기한 박사가 탁상에 놓인 한국식 죽과 물이 들어있는 컵을 바라보았다.

아마 속이 좋지 않을 거라 예상해서 이런 식단을 짰나본데... 채찍과 당근 작전이라도 사용하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죽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가져가니 특유의 찐덕하고 부드러운 맛이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표정이 풀린 박사가 죽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탁상에 팔을 괴고 박사의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세화가 물었다.

“맛은 어때요?”

“맛있어...”

빈말이 아니었다. 죽은 정말 맛있었다.

매일매일 먹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제가 만든 거예요. 많이 드세요.”

“.... 응, 그럴게.”

박사는 손을 꾸준히, 적극적으로 움직여 죽을 박박 긁어먹었다.

긴장은 계속하고 있고, 속도 뒤집혔는데 걸신이 든 것 마냥 죽을 흡입하다니.

배가 어지간히 고프긴 했나보다.

죽을 다 먹고 분홍색 컵에 담긴 물까지 원샷한 박사가 혀를 내밀어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그러다가 흠칫하며 세화의 눈치를 보았다.

방금 주책맞게 입맛을 다신 건가? 스스로가 한심했고, 황당했다.

“잘 먹네요. 더 드릴까요?”

“.....”

솔직히 더 먹고 싶었다.

하지만 체면, 그리고 반항심 때문에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세화는 방긋 웃고 있는 상태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박사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했다.

짧은 시간동안 엄청난 고민을 하던 박사는 결국 유혹에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더... 줄 수 있어?”

그 말에 세화가 방긋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이죠. 가지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밖으로 나간 세화.

왠지 그녀가 친절하다고 느낀 박사는, 그릇을 빤히 바라보며 얼마간 고뇌하더니 감시카메라를 등지고 앉았다.

이후 그릇을 들어 얼굴로 가져가 거기 붙어있는 잔여물을 핥아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냥 본능대로, 마음이 내키는 대로 맛있는 죽을 먹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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