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6 교토삼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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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은 현재 상당히 상기된 상태였다.
세화와의 여행이 무척 재밌었기 때문.
또 가고 싶었다. 다음번엔 지혁, 그리고 언니들과 함께.
현재 그녀는 공항에서 세화와 진한 포옹을 한 후 헤어진 상태였다.
지혁에겐 일부러 도착시간을 다르게 말해주었다.
그를 놀라게 해주고 싶었으니까.
연구실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그의 앞에 짜잔! 하고 나타나면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최소한 몸이 부서져라 안아주거나, 온 얼굴에 반가운 키스를 할 것이 분명했다.
큼지막한 가방을 맨 채로 희희낙락해하며 택시정거장을 향해 걸어가던 아델.
그녀가 돌연 고개를 갸웃했다.
“어...?”
익숙하고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바로 마기. 김포공항에 마기가 존재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린 그녀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여긴 유동인구가 무척 많은 장소였다.
카메라도 많으니 힘을 완전히 개방하면 안 된다.
그저 희미할 정도만. 그냥 마기를 지속적으로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만 사용하자.
우웅-!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투명한 빛이 아델의 몸에서 피어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눈알을 데굴 굴린 아델이 주변을 살펴보았다.
‘본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제 갈 길을 바삐 가고 있었다!
역시 자신은 아주 냉철한 비스트 슬레이어였다!
스스로 자화자찬한 아델은, 눈앞에 검은색 마기의 흔적이 흐릿하게 보이자 그걸 따라가기 시작했다.
흔적은 공항 내부로 이어졌다.
지금 이 마기는 마물이 발산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예전... 실비아와 함께 지구에 도착했을 때 느껴본 적이 있었으니까.
분명히 마기에 잠식된 인간에게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불쾌한 기운이었다.
게다가 마물이 나타났다면 공항이 이리도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온 아델은, 마기가 구석자리의 여자화장실까지 이어져있자 침을 꼴깍 삼켰다.
그녀는 시계로 위장한 디바이스를 만지작거렸다.
정화가 최우선이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닥치면 변신을 하는 거다.
정체가 탄로 나는 건 싫지만 지혁이 수습해줄 테니까 괜찮다.
“후...! 후!”
가슴에 손을 올리고 심호흡을 한 그녀는, 언제든 변신할 준비를 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
“네, 대표님. 알겠어요.”
가장 구석의 사로에서 아리따운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마기도 마침 그쪽으로 이어져있고... 화장실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타이라트와 관련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한 아델이 사로 앞까지 가서 귀를 쫑긋했다.
“매니저요? 없어도 괜찮아요.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 걸요.”
속삭인다고 느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화장실이 조용해서 겨우 들을 수 있었다.
매니저도 필요 없고,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연예인인 것 같았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네... 지금요? 공항이고, 키오스크에서 탑승권 뽑았어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나누는 대화만 들어보면 전혀 마기에 잠식되지 않은 사람 같았다.
그게 아델을 더욱 소름끼치도록 만들었다.
저번 그랜드캐니언에서 잠식된 인간은 좀비처럼 흐느적거렸다.
헌데 지금 대화를 나누는 걸 보라. 아예 정상인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또 있을까봐 무서웠다.
동시에 안도도 했다. 신성력이 없었다면 감지하지도 못한 채로 지나쳤을 테니까.
로사리오를 향해 감사의 기도를 전한 아델은, 전화가 끊긴 것 같자 재빨리 옆 사로로 들어가 조용히 힘을 썼다.
우우웅-!
응축시킨 금빛 광채가 사로 아래쪽으로 들어가 잠식된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다.
더러운 마기가 지워져간다. 타락했던 마음이 정화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게 느껴진다.
“아...!”
이어서 짧은 감탄사가 들려왔다.
무언가에서 해방된 듯한 목소리.
내부를 채우고 있던 불쾌한 마기가 지워지면서 개운한 기분을 느낀 게 분명하다.
정화작업을 완료한 아델이 생긋 웃었다.
‘지혁 씨가 칭찬해주시겠지?’
자신의 무용담을 들은 지혁의 반응을 상상하며 키득거린 아델이 사로에서 나와 손을 씻는 척을 했다.
자연스럽게 심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다짜고짜 캐물으면 신고를 당할 수도 있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자신은 저 사람의 정보 일부를 알고 있었다.
이를 통해 정보를 캐낼 수 있으리라.
얼마 뒤, 사로가 열리더니 아주 예쁜 여자가 밝은 표정으로 세면대를 향해 왔다.
그 틈을 탄 아델이 연기를 시작했다.
거울을 통해 여자의 얼굴을 살펴본 아델이 물었다.
“어...? 혹시... 그분 아니에요?”
“네...? 그분이요...?”
놀란 여자의 반문. 아델이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척하다가 말했다.
“연예인이요! 드라마에서 봤던 것 같은데... 영화였나?”
그 말에 여자의 입가가 어색하게 올라갔다.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나타나서 기쁜 것 같기도 하고, 뻘쭘한 것 같기도 했다.
손을 씻은 그녀가 핸드타올을 뽑으며 물었다.
“어느 드라마를 보신 거예요?”
그 물음에 속으로 찔끔한 아델이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이름만 알면 된다. 그러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게... 잘 기억이 안 나요. 로맨스 드라마였던 것 같은데...”
“로맨스요? TVI에서 배급하는 거?”
“맞아요! 그거에요!”
“단역으로 나오긴 했어요. 잘 알아보셨네요?”
“저는 얼굴을 잘 기억하거든요.”
헤헤 웃은 아델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여기서 뭘 더 해야 할까? 라고 고민하던 찰나, 여자가 손을 내밀었다.
“지혜라고 해요. 이지혜.”
그에 냅다 내민 손을 맞잡은 아델이 생글거리며 말했다.
“사인해주세요! 사진도 찍어주세요!”
대박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탐정놀이는 아주 성공적!
이제 지혁에게 말해 이 사람을 조사하면 된다!
**
“지혁 씨! 지혁 씨!”
내가 지금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왜 아델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지? 그녀는 한참 뒤에 돌아오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연구실 안에 있는 박사의 휴게실에서 잠을 청하고 있던 내가 눈을 뜨니, 눈앞에 보고 싶어 마지않던 아델의 얼굴이 보였다.
“아델...? 여긴 어떻게... 제가 혹시 늦잠을 잔 건가요...?”
“아뇨! 지혁 씨에겐 비밀로 먼저 왔어요! 놀라게 하려고요!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제 말 좀 들어보셔요!”
아델이 낑낑거리며 내 양팔을 잡아끌었다.
눈을 비비며 침대에 걸터앉은 나는, 아델이 초롱초롱한 눈빛을 하고 있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왜 그러는데?”
“제가 사건을 하나 해결했거든요!”
“사건?”
“자, 일단 이거 먼저 보세요!”
아델이 자신의 휴대폰을 뒤적거리더니 갤러리에서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아델과 다른 여자가 찍힌 사진.
그걸 본 나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이건...’
아델의 옆에서 웃고 있는 여자는 이지혜였다.
내 악의가 담긴 피를 먹여 안전가옥으로 삼았던, WW엔터 소속의 배우.
이 여자가 왜 아델과 함께 있다는 말인가?
불안한 마음이 싹튼다. 설마... 설마 정화됐나?
침착하자, 침착해. 자초지종을 먼저 들어보는 게 우선이다.
“예쁜 여자네요. 연예인인가?”
“맞아요! 이지혜 씨라고, WW엔터 소속의 배우시래요! 유명하진 않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호들갑을...”
“지금부터 다 말씀드릴 테니 집중해주셔요! 오늘 공항에서 내린 저는...”
배시시 웃은 아델이 모든 상황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내 얼굴은 굳어만 갔다.
상황은 간결했다.
아주 우연히 아델이 지혜를 발견해 정화시킨 게 끝.
지혜는 아마 제주도에 촬영차 내려가려고 했다가 아델에게 발각됐겠지.
‘그다지 심각한 사건은 아닌데...’
아델은 내가 WW엔터와 협약하고 있다는 건 모르고 있다.
당연했다. 아델은 정화된 지혜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보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저 사진 찍고, 사인 받고, 몇 마디 나눈 게 끝일 터.
중요시 여길 사안은 절대 아니었다. 그냥 꼬리를 잘라버리면 될 일.
하지만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것 자체가 짜증이 났다.
나는 눈앞에서 칭찬을 갈구하는 강아지처럼 헤실거리고 있는 아델을 내려다보았다.
아델... 나의 아델...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라던? 응?
제발 그 좆같은 신성력 좀 그만 쓰면 안 되니?
이러면 보영이한테도 처신을 조심하라 일러두어야 되잖아.
그녀의 밝은 금발머리를 쓰다듬은 내가 말했다.
“잘했어요. 자랑스럽네요. 하지만 위험한 행동이었어요. 다음부턴 이런 일이 발생하면 무조건 저한테 먼저 연락을 해서, 상황을 설명해주세요.”
다소 엄한 말투로 꾸짖듯 말하자, 아델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저는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그리고 그렇게 위험한 일까진 아니었는데에...”
금세 저기압으로 변해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귀엽다.
“큰 도움이 되긴 했어요. 이제 WW엔터를 조사해봐야겠네요.”
“그렇죠...? 저 잘했지요?”
“네. 잘하셨습니다. 그래도 약속해줘요. 앞으로는 상의하고 행동하겠다고.”
“약속할게요... 다시는 혼자 뭘 하려고 하지 않겠어요.”
약간 삐친 말투를 보니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녀를 꼭 안아준 상태로 오랜 시간동안 상봉의 기쁨을 누린 내가 물었다.
“선물은 사왔어요?”
“네... 근데 지금 드리지 않을 거예요.”
“왜요?”
“나중에... 내일 밤에 드릴게요...”
밤에? 뭐 고급 오일이라도 샀나?
“알았어요.”
“지금까지 긴장한 상태로 있어서 피곤한데, 여기서 잠깐만 자도 돼요?”
“물론입니다. 아델이 주무시는 동안 저는 이지혜라는 분의 조사를 해봐야겠네요.”
“조사가 끝나면 깨워주셔요.”
“예.”
실내 슬리퍼를 벗고 침대에 올라간 아델.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인자한 미소를 지어준 나는, 밖으로 나와 상황판 앞에 앉았다.
이후 양쪽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세화도, 마르셀라조차도 모르는 나만이 아는 안전가옥이 하나 사라져버렸구나.
그렇게 큰 수고를 들인 일이 아니라서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경각심만은 확실하게 생겼다.
지구를 거의 수중에 넣었다고 해도 방심하면 안 돼.
몰래 연구실에서 나간 나는 보영에게 전화를 했다.
-네, 대표님.
“마르셀라한테 네 일을 수습하면서 소속사 옮기는 일도 도우라 할 테니까, 모레 중으로 모두 끝마쳐. 그리고 스텔라를 키우는데 집중해. 어디 돌아다닐 생각 말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우웅-!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하나 왔다.
[유리아에요. 통화 가능하시면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2시간 정도는 시간이 남아요.]
유리아라... 박사의 눈을 피해 또 대포폰을 하나 구한 모양이었다.
나는 곧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잘 지내고 있었어?”
-네, 지혁 씨. 용건부터 말씀드릴게요. 현재 박사가 모든 사건을 발로 뛰면서 파헤치고 있어요. 시리아에 들렀다가 현재 미국에 온 상태에요.
“시리아를 직접 갔었다고?”
-네. 그리고 지혁 씨와 세화에 대해서 여러 질문을 했어요. 갑자기 성격이 바뀐 듯 보이지는 않았는지, 마물과 접촉한 적은 있는지... 이런 것들을 물어봐요. 일단 눈치껏 받아주긴 했는데, 거기서 또 이상한 말을 하더라구요.
“어떤 말?”
-타이라트가 직접 지구에 숨어들어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고... 세화와 지혁 씨, 심지어 박사 자신도 그런 간계에 당한 것 같다고...
타이라트와 날 동일시 두지는 않았지만, 제법 많이 알아냈구나.
“그렇군. 지금 박사는 미국에서 뭘 하는데?”
-집속탄 사건 초반부터, 지혁 씨가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까지 있었던 일을 알아보는 중이에요. 그 당시 근무했던 교도관들이 전부 죽어있어 난항을 겪고 있지만... 한 명이 살아있다는 건 확인했어요. 내일 만나볼 예정이죠.
한 명이라? 분명 그 당시 싱클레어라는 교도관이 말동무를 해주어서, 그 대가로 자비를 베풀어준 적이 있었다.
녀석에게 돈을 받는 자리에 오지 말라고, 입 싹 닫고 얌전히 살라고 했었지.
“싱클레어라는 이름의 교도관인가?”
-맞아요.
허, 참... 여기까지 조사한다고?
만약 싱클레어가 입을 나불거린다면, 박사는 내가 감방에서 아주 잘 놀았다는 걸 알게 된다.
그녀가 가지게 된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키우기 위해 망가지는 척했는데, 그게 까발려진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날 더욱 의심하게 되겠지.
싱클레어가 내 경고를 마음속 깊이 기억한 상태라 해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요상한 낌새를 눈치챌 거다.
그는 지금쯤 마르셀라가 준 돈으로 떵떵거리며 사는 중일 텐데, 돈의 출처는 알아내지 못하겠지만 그 전의 재무상태 정도는 박사의 역량으로 충분히 파악할 수가 있다.
게다가 내 이름이 언급된다면, 연기자도 아닌 일개 교도관이었던 싱클레어로선 표정관리를 못할 테고... 통찰력이 깊은 박사는 놈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분명히 알아낼 터였다.
-어쩔까요?
“박사는 널 믿고 있어?”
-확실히 믿고 있어요.
“더 이상 캐면 안 되겠다 싶으면, 수상한 낌새를 보인다 싶으면 그냥 잡아와. 네 판단에 맡길게.”
-알겠어요. 싱클레어는요?
“연기력이 괜찮고, 박사가 건진 게 없으면 그냥 둬. 내 끄나풀로 쓰게. 근데 박사가 대화를 통해 무언가를 의심한다? 그럼...”
-네, 죽일게요.
“그래, 수고해줘.”
전화를 끊은 나는 휴대폰을 부서져라 쥐었다.
안전가옥이 사라진 것도 그렇고, 박사의 행동도 그렇고...
요새 운이 좋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아주 좆같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잖아. 이런데 내가 무력을 쓰지 않고 배기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