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216화 (216/471)

EP.216 자라나는 의심의 싹 #2

회복실 침대에 누워있던 나는,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있는 아델을 바라보았다.

그랜드캐니언에서 나와 실비아의 상태를 보고 연구실에 도착할 때까지 엉엉 울던 그녀.

지금은 울다 지쳤는지, 완전히 띵띵 부어버린 눈을 감고 아주 곤히 잠들어있었다.

“나는 아델이 울기만 하면 숙연해지더라. 지금까지 많이 봤는데... 그때마다 미안했어. 심지어는 잘못한 게 없을 때도.”

치료를 마치고 옆 침대에 누워있던 실비아의 말이었다.

내가 조용히 공감했다.

“맞아요. 너무 슬프게 울어요.”

“그치? 그런데 왜 연구실에 아무도 없는 걸까?”

“박사님은 프랑스에 가셨다고 했고... 세화나 유리아는 돌아가서 쉬고 있겠죠. 몸은 어때요?”

“괜찮아. 상처도 더 이상 쑤시지 않고... 솔직히 의료기기라 해서 얼마나 좋을까 무시했었는데, 기대를 한참이나 초과했어. 네 상태는 어때?”

“저도 실비아 씨와 똑같아요. 상처도 다 나았고, 흉터도 없고...”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아델이 몸을 뒤척이더니 이불을 차면서 한쪽 다리를 내 복부에 올렸다.

귀여운 뒤척임이었다. 절로 웃음이 새어나올 만큼.

떨어지려하는 이불을 붙잡아 아델의 몸에 덮어준 내가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서운하지 않으세요?”

“뭐가?”

“아델이 실비아 씨한테 안 가고 저한테 와서요.”

“뭐래... 나한테 오려고 했는데 네가 강제로 옮긴 거잖아.”

“그건 또 무슨 음모론인지? 아델은 분명 자발적으로 저한테 왔습니다. 망설임도 없었어요.”

“아니거든?”

“맞거든요.”

내 말이 맞다고 주장하며 유치한 투닥거림을 하던 우린, 어느 순간부터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침묵했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던 실비아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뒷목을 만지는 상태였다.

저번에 만들어준 키스마크가 걸리는 모양인데... 흉터는 그대로 남아있다.

거긴 치료를 하지 않았기 때문.

그러니까 들키지 않게 처신 잘해봐라. 없어질 때까지 긴 머리로 가리고 다녀보든지.

남자와 관련된 여자의 감은 무시무시하니까 감추려면 요 며칠간 고생해야할 거다.

“지혁아.”

쑥스러운 투로 날 부른 실비아.

아델의 토실토실한 뺨을 쓰다듬어주고 있던 내가 대답했다.

“예?”

“너... 그... 충전할 거야?”

“뭘요? 아델의 디바이스?”

“응...”

“그래야죠. 그랜드캐니언의 마기와 마물들을 전부 소멸시키느라 에너지를 엄청 많이 사용했을 겁니다. 근데 설마 또 저희 사이에 참견을...”

“그럴 생각은 전혀 없고... 어떤 식으로 충전시킬 건지 얘기만 해주라.”

실비아는 생전 처음 오르가즘 비스무리한 쾌락을 느꼈었다.

그렇기에 궁금하겠지. 아델과의 스킨십 수위는 얼마나 높고, 또 어떤 느낌인지.

헌데 아무리 나와의 사이가 편해졌다고는 해도, 남녀의 그렇고 그런 일을 대놓고 묻는 건 실례 아니냐?

황당한 표정을 지은 내가 실비아를 쏘아붙였다.

“제가 말할 것 같아요? 대체 이런 민감한 질문은 왜 하는 건데요?”

“그, 그냥 궁금하잖아... 말해주기 싫으면 됐어. 이제 조용히 하고 쉬자. 아델 깨겠다.”

“예.”

나는 아델의 풀어헤쳐진 금발머리를 조심스레 정리해주었다.

그때, 그녀가 몸을 둥그렇게 말더니, 짭짭거리며 잠꼬대를 하고는 내게로 더욱 바싹 달라붙었다.

그런 우리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본 실비아가 중얼거렸다.

“.... 눈꼴 시려워.”

감정표현이 너무 서툴잖아.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하던가.

@@

의정부로 돌아온 아델은 실비아와 한시도 떨어져 있으려 하지 않았다.

그녀가 뭘 하든 함께 있으려고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

TV를 보는 실비아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실비아는 아델이 지혁과 문자를 하고 있는 걸 알았다.

뭔가 기분이 묘했다. 지혁이 신경 쓰였다.

그랜드캐니언에서 함께 고난을 겪었던 일부터, 아델이 마물들을 몰아내고 자신과 지혁의 상태를 보며 펑펑 울었던 일, 회복실에서 보여준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 모조리 눈에 밟혔다.

그리고... 쾌감을 느꼈던 일이 선명하게 생각나서 절로 얼굴이 붉어질 정도였다.

TV를 보는 척하며 아델을 흘끔 살피던 그녀는, 싱숭생숭한 감정을 털어버리기 위해 아델을 불렀다.

“아델.”

“네?”

휴대폰을 확 내리고 방글방글 웃는 아델의 표정을 보니 죄책감이 느껴진다.

왜 그런 실험을 해달라고 했을까? 도대체 뭘 위해서?

지혁과 아무 일도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가 이렇게까지 불편하진 않았을 텐데... 자신은 정말 바보 같다.

어색한 미소를 감춘 실비아가 말했다.

“네가 돌아오는 길에 그랬잖아. 세화, 유리아랑 만나서 간단하게 맥주 한 잔 했다고.”

“맞아요.”

“유리아는 어땠어? 괜찮은 친구지?”

“성격이 언니랑 비슷해서 정말 좋았어요. 세화도 여전히 최고였구요. 남은 한 명의 영웅도 성격이 좋겠지요?”

남은 한 명이라... 채찍을 쓰는 비스트 슬레이어던데,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

“그럴 거야.”

“박사님, 세화, 유리아 언니, 그리고 실비아 언니까지... 좋은 동료들이 제 옆에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리고...”

말끝을 흐린 아델.

실비아는 아델의 입에서 누구의 이름이 나올지 예상을 하고도 남았다.

“지혁이?”

“네! 저는 지혁 씨를 만나기 전까지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몰랐어요.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아요.”

“그렇구나...”

“언니도 하루 빨리 이 감정을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같이 토론도 하고 싶어요.”

“난... 그냥... 뭐... 아직 내 디바이스는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태니까 천천히 생각해볼게...”

말을 마친 실비아가 저도 모르게 뒷목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던 아델이 고개를 갸웃한다.

“언니, 왜 아까부터 자꾸 뒷목을 만지셔요?”

“응? 내가 그랬어?”

“네, 지혁 씨가 저흴 데려다줄 때도 뒷좌석에서 목을 만지시던데... 혹시 상처가 덜 치료됐나요?”

그러고 보니 지혁이 뒷목을 치료해주지 않은 것 같은데...

설마 자신을 골탕 먹이려고 하는 건가?

아니, 지혁은 짓궂긴 하지만 이런 장난을 칠 정도로 악동은 아니다. 그냥 힘든 상태라 실수를 했을 것이다.

내일 지혁에게 의료기기 사용법을 듣고 스스로 없애봐야겠다.

생각을 마친 실비아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상처는 잘 치료됐어. 그냥 피곤해서 그래...”

“아...”

“나 들어가서 자도 될까? 졸리다.”

애써 태연한 척한 실비아가 전신을 꿈틀거렸다.

그러자 아델이 무릎에서 머리를 떼어내고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오랜만에 같이 잘까요?”

“아니. 너 지혁이랑 톡할 거잖아. 빛 때문에 못 잘지도 몰라.”

“그런가요...? 알겠어요. 식사는 안 하실 거예요?”

“응. 일어나면 알아서 차려먹을게. 나 들어간다?”

자리에서 일어난 실비아는 아델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는 잽싸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델은 실비아가 너무 걱정스러웠다.

은근슬쩍 시선을 피하는 것도 그렇고, 집 안에선 머리를 항상 묶고 다녔는데 푼 채로 있는 것도 그렇고...

방금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사람이 눈동자를 가만 두지 못할 땐 마음이 불편하거나 불안해하는 거라고 했다.

그랜드캐니언에서의 일이 상상이상으로 고달팠나보다.

자신의 목에 걸린 여우 목걸이를 만지면서 지혁과 톡을 하던 아델은, 실비아가 잠들었다고 생각이 들자 시트러스 향이 나는 향초를 들었다.

그녀의 방에 놓아주기 위해서였다.

향초에 불을 붙인 아델은 발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살금살금 움직였고, 실비아의 방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끼이익 소리조차 나지 않는 문. 완벽한 잠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비아는 옆으로 돌아누워 쥐 죽은 듯 조용히 자고 있었다.

그녀가 일어나면 먹을 수 있도록 초콜릿 무스 케이크를 사와야겠다고 생각한 아델은, 안으로 들어가 협탁에 향초를 놓았다.

이후 방을 나가려다가 실비아의 뒷목 부근을 살폈다.

등까지 내려오는 연한 빨간색 머리카락, 그것으로 가려진 목.

저길 왜 만지는지 궁금했다. 평소엔 건들지도 않는 부위인데 오늘은 본 횟수로만 열 번이 넘었다.

마음속으로 깊은 고뇌를 하던 아델은, 까치발을 세워 실비아에게 천천히 접근했다.

실비아의 머리카락이 허리 아래에 눌려있어서, 만약 그녀가 뒤척인다면 당겨져 아플 것이 뻔하니 빼내주어야겠다.

속으로 핑계거리를 만들어낸 아델이 손을 뻗었다.

그 손이 실비아의 찰랑거리는 머릿결 사이를 파고드는 순간,

“아델.”

자는 줄 알았던 실비아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델을 불렀다.

“흐악!”

식겁한 아델이 뒤로 벌러덩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엉덩이가 뻐근해옴에도 재빨리 일어난 그녀가 물었다.

“아, 아직 안 주무시고 계셨어요...?”

“응.”

“왜요...?”

“자려고 노력 중이었어. 지금 뭐하는 거야?”

몸을 돌리지도 않고 묻는 실비아.

왠지 분위기가 무섭다.

“그... 시트러스 향초를 놓아두었어요. 일어나셨을 때 기분이 상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래? 고마워. 그러고 보니 좋은 냄새가 은은하게 나네... 자몽이야?”

“맞아요...”

“내 머리카락은 왜 만졌어?”

마치 취조를 당하는 것 같은 기분.

긴장한 아델이 생각해두었던 핑계를 늘어놓았다.

“그게... 머리카락이 불편해보여서... 정리해주려고 했어요...”

그 말에 실비아가 몸을 돌려 아델을 정면으로 주시했다.

“그게 끝이야?”

“사실은... 계속 뒷목을 만지시길래 궁금해서... 한 번 확인해보려고...”

“뒷목... 정말 별 거 없는데... 보고 싶으면 봐도 돼. 아니면 내가 직접 보여줄까?”

실비아의 대담한 도박은 제대로 통했다.

“아, 아니요... 괜찮아요. 궁금증이 전부 사라졌답니다...”

“그나저나 막 잠들려는 중이었는데 깨웠네?”

“죄송해요...”

오늘따라 실비아가 너무 이상했다.

서로의 머리를 만지는 건 평소에 자주 하던 행동이었다.

헌데 지금 실비아의 눈빛을 보라. 마치 공포영화의 악역처럼 매섭다.

졸음이 달아나서 화가 난 건 절대 아닐 텐데...

기세에 눌린 아델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이만 나가볼게요...”

“내 옆에 누워.”

“네...? 싫어요... 저는 할 일이 있어요...”

“같이 자자며? 얼른 누워.”

“저, 저는 지금부터 밝기와 음량을 최대로 키워놓고 세 시간짜리 동영상을 볼 거랍니다... 휴대폰 빛 때문에 못 잔다고 하셨는데, 소음까지 있다면 제대로 잘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봐요...”

아델의 순진한 회피성 발언에 실비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니?”

한층 누그러진 그녀의 분위기.

그에 안도한 아델이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저... 돌아가 봐도 될까요...?”

“아니.”

“.... 그, 그럼 여기 있을까요...? 한 3분 정도만... 그 이상은 안 되어요...”

“농담이야. 가도 돼.”

“네...”

아델이 황급히 실비아의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아델.”

실비아가 아까의 그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자 우뚝 멈추었다.

“부르셨어요...?”

“넌 내 여동생 같은 사람이야. 알지?”

“알아요...”

“널 위해서라면 내 목숨까지 바칠 수 있어.”

갑자기 웬 고해성사? 타이밍이 너무 의심스러웠다.

그래도 기꺼웠다. 저렇게 말을 해주어서.

공포심이 많이 가신 아델이 대답했다.

“저도 마찬가지에요. 하지만 그런 무시무시한 말씀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목숨을 바칠 수도 있다는 말?”

“네...”

“알았어. 앞으로는 자제할게. 나 진짜 잔다?”

“안녕히 주무세요...”

고개를 꾸벅 숙인 아델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털썩 누웠다.

다리는 물론이고 온몸에 힘이 쫙 빠진 느낌이었다.

대체 왜 실비아의 분위기가 달라진 걸까?

엄청난 고생을 해서 아직 예민한 상태일까? 어쩌면 아이테르 에너지를 거의 다 소모해버려서 심란한 것일지도 모른다.

저 모습이 일시적인 거라면 좋겠지만... 걱정되니 내일 지혁을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실비아가 저렇게 된 원인이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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