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4 이간질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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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온기가 감도는 동굴 벽에 등을 기댄 실비아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고통스러워서가 아니라, 일어났을 당시의 상황 때문이었다.
깨어나 보니 속옷차림, 그런 자신의 몸에 딱 달라붙은 팬티바람의 지혁.
낯선 광경이었고,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실비아는 자신의 앞에서 곯아떨어져있는 지혁을 보며 고뇌했다.
냉정해져야한다. 지혁이 자신에게 욕구가 있어서 이러지는 않았을 터.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뺨을 짝! 소리가 나도록 때린 그녀는 상황을 파악해보았다.
지혁이 붙어있었던 이유는, 정신을 잃기 전에 추워했던 자신을 위해서이리라.
타오르고 있는 많은 양의 땔감은 나가서 구해왔을 테고...
옆에 굴러다니는, 빻은 흔적이 있는 나무껍질과 잎은 약초라고 생각되었다.
발목의 환부를 살펴보니 발린 흔적이 없는데... 그렇다면 아마 즙을 내어 자신에게 먹인 모양이었다.
결론이 나왔다. 지혁은 사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살피고, 보호하기 위해 이렇게 했다.
모든 상황을 이해한 실비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바보 같은 자식... 놀랐잖아...’
지혁을 향해 투덜거린 실비아는 다리가 괜찮은 것 같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후 동굴 벽에 기대어져 놓여있는 단검을 챙기려다가 멈칫했다.
한 단검에 녹색 액체가 말라붙어있어서였다.
“이건...”
이건 분명 촉수마물의 피.
이상했다. 어미 촉수마물을 죽였을 때 피는 전부 닦아냈었는데...
고개를 갸웃하던 실비아는 빗물로 단검을 씻어내기 위해 입구 근처로 갔다가 경악하고 말았다.
밖에 덩치가 꽤나 큰 촉수마물이 세 마리나 죽어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동굴을 발견하고 올라온 것 같았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
놈들의 머리부근엔 얇고 긴 구멍이 수십 개나 나있었다.
누가 봐도 단검에 찔린 거라고 확신할 만한 구멍.
설마 싶었던 실비아는 황급히 돌아가 지혁을 살펴보았다.
그의 얼굴은 멀쩡했다. 하지만 조종복 밖으로 튀어나온 다리에 기다란 찰과상이 존재했다.
촉수마물과 싸우다 생긴 상처가 분명하다.
침을 꼴깍 삼킨 실비아는 지혁의 몸을 덮은 조종복을 조심스레 걷어냈다.
그리고는 입에 손을 가져가 새어나오려는 비명을 삼켰다.
그의 전신에 자리한 빼곡한 상처.
몇 군데를 빼면 모두 촉수에 의해 생긴 것들이었다.
손가락은 절벽을 기어오른 듯 말라붙은 피로 범벅되어있었고, 손발톱마저 깨져있었다.
벗어둔 신발 앞코가 죄다 찢어진 것으로 보아 엄청난 고생을 한 듯했다.
탈출하기 전엔 죽기 싫다고 겁을 집어먹던 녀석이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다니 너무나도 고마웠다.
또한 미안했다. 탈출시도를 강요한 건 자신이었는데, 탈출에 성공하지도 못하고 생고생만 시킨 셈이 되어버렸으니까.
모든 사정을 파악한 실비아는 지혁의 몸에 조종복을 덮어주었고, 허벅지에 감긴 자신의 상의를 풀어서 입었다.
동굴에 걸어져있는 청바지까지 입은 그녀가 밖을 살펴보았다.
아직도 많은 마물. 온도도 매우 떨어진 상태라 춥다.
다시 안쪽으로 들어간 그녀는 지혁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미안해...”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지혁에게 사과한 실비아는 보관함을 확인해보았다.
남은 에너지는 9퍼센트. 탈출을 위해 다 쓸 의향이 있지만 나방의 인분이 변수였다.
바닥에만 있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높은 허공까지 흩뿌려져 있어서 곤란했다.
게다가 인분의 범위도 문제였다.
딱 봐도 그랜드캐니언 전반에 퍼져있을 것 같은데, 이 예상이 맞다면 아이테르를 쓰는 건 지양해야 했다.
공중을 날아가다가 몸이 녹아버리면 개죽음이잖은가.
연신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던 실비아는, 지혁이 입맛을 쩝쩝 다시자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뭐 맛있는 걸 먹는 꿈이라도 꾸나보다.
그를 위해 먹거리를 구해다주고 싶지만 여기 있는 식물들을 아예 모른다.
동물들은 도망쳤거나 마물들에게 먹혔을 테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실비아는 결국 지혁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녀는 지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자신의 몸에 처음 손을 댄 남자. 그러나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
선의의 마음으로 다가왔음을 알고 있으니까.
실비아는 저도 모르게 지혁의 손을 잡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안타까워했다.
“손톱 진짜 예뻤는데... 다 깨져서 어떡해...”
투닥거리면서 정이라도 든 걸까? 지혁의 상태를 보자니 가슴이 아려온다.
연구실의 의료기기에서 완치가 됐으면 좋겠다.
지혁의 손을 조심스레 내려놓은 실비아는 동굴 입구로 갔다.
여긴 이젠 안전하지 않다. 혹시라도 촉수마물이 다시 습격을 해오면 안 되니까 경계해야겠다.
이번엔 자신이 지혁을 지켜줄 차례.
그를 위해서라면 남은 아이테르를 다 쓰리라.
어차피 디바이스가 만들어지면 충전도 되니 아끼지 말자.
‘근데... 누구랑 충전을 해야 하지?’
좋아하는 사람도 없는데... 애인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싶다.
막연한 고민을 하던 실비아는 문득 지혁이 파트너라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나쁘지... 않은 것도 같았다. 믿음직한 녀석이고, 같이 함께하면서 보니 성격 또한 잘 맞는다.
지혁은 안 맞는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건 그냥 장난 식으로 투정을 부린 거고...
그런데 혹시 서로 좋아하기만 하면 충전이 되는 건가?
이성으로서 지혁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동료로서 좋아는 하는데...
그리고 방금처럼 껴안고 자는 행위도 성적인 일로 치나?
만약 충전이 된다면 아델에게 지혁과 충전해도 되냐고 말해볼까?
서로에게 이성으로서의 감정도 없는데... 대의를 위해서라면 그녀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실비아는 머리를 털어냈다.
지금은 쓸데없는 생각 따윈 하지 말고 경계에 집중해야 한다.
복잡해지는 마음을 삼킨 실비아는 눈을 부릅뜨고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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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뒤편에서 들려오는 짤막한 신음.
한 시간 가까이 경계를 서고 있던 실비아가 고개를 홱 돌렸다.
지혁이 얼굴을 찡그린 채 상체를 일으키고 있는 것을 본 그녀가 후다닥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몸은 어때? 괜찮아?”
걱정이 잔뜩 담긴 물음.
지혁이 실비아를 잠깐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실비아 씨는요?”
지금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지... 몸에 상처도 많은 주제에.
혀를 찬 실비아는 지혁의 등에 손을 대고 밀어주었다.
조종복이 내려가면서 드러난 그의 상체.
저 탄탄한 맨살이 자신의 등에 닿았구나.
괜히 낯부끄러워진 실비아가 시선을 약간 돌리며 대답했다.
“발목이 조금 시큰한 걸 빼면 괜찮아.”
“다행이네요.”
“저 나무껍질이랑 잎은 뭐야?”
“버드나무인데, 소염, 진통효과가 있어요. 즙을 내서 실비아 씨에게 먹였죠. 근데 속은 괜찮으세요?”
“속...?”
의아한 눈빛을 하는 실비아.
지혁이 그런 그녀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용량을 조절하긴 했지만 생즙이라... 위가 쓰릴 가능성이 있거든요.”
“몸 상태는 아주 좋아. 속도 괜찮고.”
“다행이네요.”
진심으로 안도하는 지혁의 모습을 보니 괜히 기뻤다.
입꼬리를 희미하게 올린 실비아가 물었다.
“근데 이거 발라도 되는 거야?”
“네.”
“그럼 내가 빻아줄게. 네 상처에 바르자.”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실비아 씨에게 먹이고 남은 걸로 제 상처에 발랐으니까요. 지금은 전혀 아프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미간을 구기고 있으면서도 아프지 않다니... 거짓말도 더럽게 못한다.
“뻥치지 마. 이거 더 구해올 테니까 어디 있는지 알려줘.”
“협곡 절벽에 조금 튀어나온 부분을 떼어온 건데, 지금은 다 잠겼을 겁니다.”
“확신해?”
“네. 주변엔 그 나무 하나밖에 없었어요. 괜히 힘 빼지 마시라는 뜻이죠.”
미덥지 않았지만 어쩌랴? 나무의 위치도 알려주지 않고 계속 괜찮다고 하는데.
실비아는 그냥 말을 돌리기로 했다.
“저 괴물들은... 네가 잡은 거지?”
“예. 갑자기 올라와서 싸웠는데... 별 거 아니더라고요.”
“별 거 아니라고? 네 몸이나 보고 말해, 이 멍청아.”
“영광의 상처라고 생각해요. 3대 1로 싸워서 이겼는데, 저도 비스트 슬레이어나 되어볼까요?”
이런 와중에도 장난스런 말투... 얘도 참 웃긴 놈이다.
콧바람과 함께 피식한 실비아가 말했다.
“넌 그냥 얌전히 컴퓨터나 두들겨.”
“말씀이 심하시네...”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알고 있습니다. 근데 실비아 씨, 다리가 괜찮으시다면 절 입구까지 부축해줄 수 있어요?”
“왜?”
“빗소리를 더 크게 듣고 싶어서요.”
예전엔 몰랐는데 저런 엉뚱하고 능글거리는 면이 지혁의 본모습 같았다.
의정부에서 무료하게 운동만 하며 시간을 보낼 때보다, 여기서 같이 역경을 겪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물론 이런 상황은 다시는 겪기 싫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
“그래, 알았어.”
지혁을 부축해 동굴 입구로 간 실비아는, 그와 함께 나란히 앉았다.
쏴아아아! 하며 세차게 떨어져 지면과 맞닿아 후두둑 소리를 내는 빗줄기.
지혁이 들어보라고 하지 않았다면 이 좋은 소리를 평생 느끼지 못할 뻔했다.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를 흘긋거린 실비아가 말했다.
“야.”
“예?”
“우리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돼?”
“모르죠.”
“전투기가 떨어진 장소에 가볼까?”
“버드나무를 찾다가 실비아 씨가 죽인 촉수괴물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그 근처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파편이 모조리 급류에 휩쓸린 것 같아요.”
“그래...? 그럼 꼼짝없이 죽기만을 기다려야겠네?”
지혁이 황당한 표정으로 실비아를 돌아보았다.
“무서운 소리는 하지 마시죠?”
킥킥거린 실비아는 엉덩이를 옮겨 지혁에게 더 가까이 붙었다.
골반과 골반이 맞닿을 정도로.
자신이 이런 행동을 했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한 그녀가 양반다리를 했다.
“나 궁금한 거 있어.”
“뭔데요?”
“아이테르는 꼭 디바이스가 있어야만 충전돼?”
“정확히 말하자면 폴리머스로 만든 디바이스가 있어야 해요. 그 물질이 아이테르의 진정한 힘을 이끌어내 주거든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린 실비아가 재차 물었다.
“확실해?”
“지금까지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그런데... 단언할 수는 없네요. 아이테르는 워낙 변칙적인 에너지라서...”
“그렇구나... 좋아하는 사람과의 성적인 행위로 충전된다고 했지?”
“네.”
“그 좋아하는 사람의 기준은 뭐야? 이성적으로 좋아해야 돼? 아니면 동료로서 좋아하는 것도 포함돼?”
그에 지혁의 고개가 15도쯤 꺾였다.
확신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그가 회의적인 말투로 말한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말끝을 흐린 실비아가 지혁이 깜짝 놀랄만한 제안을 했다.
“그럼 나한테 실험해볼래?”
“예...?”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엄청 부끄러웠다.
지혁의 당황해하는 얼굴을 보니 더더욱.
하지만 이유가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하고 싶으니까 뭐라도 해보려는 거다.
이게 맞다. 다른 감정은 일체 없다. 아마도... 아니, 분명히.
그리 생각한 실비아가 부끄러운 투로 핑계거리를 늘어놓았다.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잖아. 박사님의 도움을 바라기도 힘들고, 마물들이 깔려있기도 하고... 넌 여기서 싸우기도 했지. 가만히 있으면 진짜 죽을 판이야.”
“그건 그렇지만...”
“난 널 동료로서 좋아하는데, 혹시 넌 안 그래?”
“저도 정말 좋아하기는 하죠...”
‘동료로서’라는 말이 빠지고, ‘정말’이라는 강조가 포함된 지혁의 대답에 괜히 가슴 한켠이 뛴다.
아무래도 긴장했나보다.
실비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한 번 실험해보자. 만약 충전이 되면 탈출이 가능할지도 몰라.”
“탈출...? 어떤 식으로요?”
“에너지가 많으면 뭐든 할 수 있어. 땅굴을 파도 되고, 인분이 없는 곳을 빠르게 찾아봐도 되고... 방법은 많아. 충전이 된다는 전제라면 활로가 넓어져.”
“어... 음... 그... 어떻게... 하실 계획인데요...?”
눈에 띄게 말을 더듬거리는 지혁을 보니 왠지 웃기다.
“글쎄...? 그건 네가 더 잘 알겠지.”
지혁이 옆머리를 긁적이면서 실비아 자신의 눈치를 보았다.
무언가 생각나는 것이 있는 모양. 작게 호흡을 고른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돼?”
“진짜 하시게요...?”
“해보라니까. 어쩔 수 없잖아.”
“하... 미치겠네... 그럼 가만히 계세요... 놀라도 때리지 마시고요.”
“알았어.”
코로 숨을 길게 빨아들인 실비아가 목석마냥 빳빳한 자세를 취했다.
심장이 무척 빠르게 뛰었다. 이렇게 긴장한 건 난생 처음이었다.
과연 지혁이 어떤 행동을 할까? 뭔가 기대감이 생기는 것도 같다.
나중을 위한 답사 같은 거라고 생각하자.
속으로 이렇게 다짐한 실비아는, 지혁의 손이 자신의 허리로 다가오자 눈을 질끈 감았고, 그의 손길이 헤진 티셔츠 안으로 파고들어 배에 닿자 몸을 움찔 떨었다.
“기분이 어떠세요...?”
지혁의 조심스런 물음.
실비아가 대답했다.
“아, 아직 모르겠어... 간지러운 것 같은데...”
“음... 잠깐만요. 뒤로 갈게요.”
“마음대로 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얼마 뒤, 실비아는 자신의 등 뒤에 지혁의 단단한 상체가 부딪히자 헉! 하는 소리를 냈다.
이후 그의 양손이 골반, 허리, 그리고 명치 부근을 부드럽게 쓰다듬자 얼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 호흡이 절로 가빠지면서 체온이 올라간다.
눈을 감고 있어서 촉각과 청각이 곤두세워졌다.
후각도 마찬가지였다. 방금까진 맡을 수 없었던 야릇한 냄새가 풍겼다.
이건 지혁의 체취인 걸까? 향긋한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다.
실비아가 그 냄새를 더 맡으려 하는 순간, 지혁이 그녀의 뒷목에 입술을 대고는 쪽! 소리를 내며 빨아들였다.
그러자 온몸에 소름이 돋아난 실비아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양쪽 어깨를 턱선에 닿을 정도까지 올렸다.
입술을 오므리고 강하게 빨아들이는 행위. 이건 들어본 적이 있었다.
바로 아델이 저번에 말해주었던 키스마크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야... 잠깐만... 핫...!”
실비아는 그를 말리려다가 완전히 굳어버렸다.
지혁의 입술이 그녀의 귓볼을 살짝 물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의 혀가 살짝 튀어나와 귓볼 끄트머리를 톡톡 건드리자, 실비아가 입을 살짝 벌리고는 뜨거운 숨결을 토해냈다.
“흐읏...!”
몸에 힘이 빠져버린 그녀는 지혁의 가슴에 등을 기댔다.
기분이 너무나도 야릇하다. 자신의 밑가슴까지 올라온 지혁의 손과, 귀를 할짝거리는 혀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허허헉...!”
숨을 여러 번, 빠르게 끊으면서 내뱉은 실비아는, 이번 일은 아델에게 무조건 비밀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건 절대 말하면 안 된다. 만약 어쩔 수 없이, 무슨 일이 생겨서 말하게 되더라도 지금 이 감정만큼은 무조건 감춰야 한다.
그리 생각한 실비아는, 지혁이 애무를 멈추자 힘이 완전히 풀려버렸다.
그의 품에 몸을 파묻고 헉헉거리던 그녀가 힘겹게 보관함을 확인해보았다.
충전량은 그대로. 실험은 실패였다.
헌데 왜 갑자기 멈춘 거지? 한창 흥분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실비아 씨.”
“응...? 왜...?”
“저기 좀 보실래요?”
지혁이 실비아의 어깨너머로 손가락을 뻗었다.
그가 가리킨 장소에서부터 엄청난 크기의 붉은 빛이 허공에 떠선, 촉수마물들을 집어삼켜 녹이고 있었다.
저 색깔은 분명 나방의 인분.
저게 만약 앞서 존재했던, 자신들을 막았던 인분이 움직인 거라면... 탈출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생겼다고 볼 수 있었다.
기뻐해야할 일. 가설이 틀렸다고 해도 당장 움직여서 확인해보아야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아쉽고 서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