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1 이간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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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혁과의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아델은, 그가 헤어질 때 주었던 여우 목걸이를 소중한 듯 만졌다.
자신도 끼겠다면서 같이 커플 목걸이를 하자고 한 그.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아기자기한 디자인이라 남자가 착용하기엔 창피할 만도 한데, 개의치 않고 차겠다고 해주어서.
‘예쁘다...’
몇 번이고 봐도 예쁜 디자인. 정말이지 마음에 쏙 들었다.
싱글벙글 웃고 있던 아델은, 현관문에서 띡띡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침울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어썼다.
만약 실비아가 지혁을 만났다는 얘길 감춘다면 정말 실망할 것 같았다.
사실 지금도 실망 중이었다.
몰래 만난 건 그렇다 쳐도, 자신을 성인이라 칭해주며 의견을 존중해주던 실비아가 지혁의 앞에선 다른 말을 하다니...
생각할수록 서러웠다. 절로 눈물이 나온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실비아가 들어왔으니 얼굴을 봐야할 텐데, 눈물자국이 있다면 수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괜히 또 지혁에게 못할 말을 할까 두려우니 조심하는 게 맞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침실 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눈가를 닦아낸 아델이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에요...?”
“응. 들어가도 돼?”
“손 씻으면요...”
“방금 씻었는데...”
“그럼 들어오셔요.”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실비아가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아델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짓더니 침대에 걸터앉았다.
“자다 일어난 거야? 깨워서 미안해.”
“아니어요...”
“데이트는 잘했어?”
“네... 언니는 운동 갔다 오셨어요?”
“응.”
“힘들겠다... 쉬엄쉬엄하셔요.”
그 말에 깔깔거리며 좋아라한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 생각해줘서 고마워.”
“저는 언니의 가장 친한 친구니까요. 언니도 그렇지요?”
“당연하지. 너도 내 가장 친한 친구야.”
그렇게 절 생각하는 사람이 뒤에서는 어린아이취급을 하고 계셨나요?
이러한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내려갔다.
어색하게 웃은 아델은 실비아를 등지고 누웠다.
그러자 실비아가 아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할 말이 있는데, 졸리면 다음에 할게.”
지혁 씨와 만났던 일을 말하려는 거구나.
그리 생각한 아델이 실비아를 흘끗거렸다.
“깨어났어요. 해보세요.”
“그래.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
“.... 왜요?”
“난... 말로는 아니라고 했어도 속은 널 어리게 생각하고 있었나봐. 그래서 항상 걱정이 앞섰고, 챙겨주고 싶었어.”
지혁과의 대화에서 무언가 깨달은 것이 있었을까?
실비아의 첫마디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부글부글 올라오기 시작한 속이 금세 가라앉을 정도로.
“.....”
“듣고 있니...?”
“네... 듣고 있어요...”
“지혁이와 그런... 일을 했다는 걸 듣고 정말 화가 났어. 걔가 널 속였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어제 운동을 간다는 핑계로 지혁이를 만나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고, 오해를 풀었어. 그러는 와중에 흥분해선 네게 못할 말을 했는데... 너무 미안해...”
어감에서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를 악 문 아델이 물었다.
“무슨 못할 말이요...?”
“들으면 나한테 실망할까봐 무서워... 심한 말이야.”
지나칠 정도로 순진하다,
항상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며 눈치를 본다,
소심해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한다.
심한 말이긴 했다. 실망도 당연히 했고.
하지만 실언이었잖은가. 충분히 용서해줄 수 있다.
단, 만난 시간이 짧다는 둥, 지혁이 아델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둥 의심한 건 너무나도 슬펐다.
그런 말로 지혁을 흔들어놓은 것도 화가 났다.
실비아는 실언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할 게 아니라, 자신과 지혁의 관계를 무너뜨리려 했던 것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한다.
복잡한 심경을 애써 감추고 있는 아델의 머리카락을 위에서 아래로 쓰다듬어주던 실비아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희 둘의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어. 그게 가장 미안해...”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 해서 미안하다.’
가장 듣고 싶어 하던 말이었다.
아델은 실비아를 용서해주기로 했다.
“.....”
“아델, 날 좀 봐주면 안 될까...?”
아델의 몸을 자신 쪽으로 돌린 실비아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녀가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려간 입꼬리, 똥글똥글한 눈에 맺힌 투명한 눈물...
보고 있자니 너무나도 안쓰럽고, 미안했다.
북받쳐오는 감정을 간신히 가라앉히고 있었던 아델은, 실비아의 얼굴을 보자, 그리고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지자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저는... 흐윽...! 다 알고 있었어요... 언니가 지혁 씨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그리고 언니가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어요... 지혁 씨가 다 말해줬거든요...”
“그랬어...?”
“네... 흐어어엉...!”
상체를 일으키고는 눈물을 구슬땀처럼 흘리면서 대성통곡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아델.
너무나도 서러운 울음소리에, 실비아가 아델을 확 끌어안고 연신 사과를 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흐아아앙...! 언니 진짜 나빠요...! 진짜 미워요...!”
나쁘다, 밉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 절대 아님을 실비아는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느낌이었다.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너희 둘 사이에 참견하지 않을게... 용서해주라...”
엉엉 울던 아델은 실비아의 품 안에서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렸다.
자신의 티셔츠가 축축해져오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아델의 등을 토닥여주던 실바아는, 지혁이 굉장히 괘씸하면서도 고마운, 그런 모순적인 감정을 느꼈다.
고자질쟁이마냥 냅다 아델에게 일러바친 건 괘씸하다.
허나 자신이 반성하고 있다고 아델을 설득한 건 고마웠다.
덕분에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오랜 시간 아델을 달래던 실비아는, 그녀가 울다 지쳐 잠들자 침대에 조심스레 눕히고는 침실을 나왔다.
‘연애도 못해본 내가 웬 오지랖을... 진짜 미쳤지.’
이번 일은 자신의 잘못이 컸다.
사랑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까불어서 두 사람을 방해하려 하다니... 너무 한심했다.
자신을 자책한 실비아는 축축해진 눈가를 닦아내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화해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앞으로 아델과 자신의 사이는 더욱 끈끈해질 것이다.
그리 생각한 그녀가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
“다행이네요. 일이 잘 해결된 것 같아요.”
연구실에 앉아 펜대를 굴리던 내 말이었다.
휴대폰 너머로 아델의 수줍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지혁 씨 덕분이에요...
그녀는 어제 실비아와 화해했던 일을 내게 전부 말한 상태였다.
대사 하나하나 빠짐없이, 아주 디테일하게 말이다.
“당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지혁 씨에게 너무 고마웠구요... 실비아 언니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졌어요. 여전히 친언니 같고 좋아요.
“그렇습니까?”
-네... 하지만 이제는 언니가 먼저 물어보지 않으면, 지혁 씨와 관련된 이야기는 비밀로 할 생각이어요. 또 이런 상황을 맞이하기 싫으니까요.
아델은 너무 착하단 말이야.
그래서 실비아처럼 냉정하고 눈치 빠른 사람의 옆에 두기 싫어.
나만의 순수한 아델로 남겨놔야 해.
“그렇군요. 결정을 존중합니다.”
-지혁 씨라면 그렇게 말씀해주실 줄 알았어요. 오늘 만날 거지요?
“정말 죄송하지만 오늘은 안 될 것 같네요.”
-왜요?
격앙된 목소리.
빨리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 화를 낼 것 같다.
“미국 그랜드캐니언에 있는 탐색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보수해야 돼요.”
-제주도처럼요? 그러면 제가 나서야겠네요?
“제주도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요. 그땐 미약한 마기를 감지하긴 했잖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파손되어있는 상태에요. 탐색기 근처의 포탈도 마찬가지고요.”
-저도 갈래요.
“진정하세요. 번개에 의한 낙석 때문에 파손된 거라 위협은 없을 겁니다.”
-일이 생길 것 같아서 같이 가자고 하는 게 아닌데요? 지혁 씨와 함께 있고 싶어서 그래요.
아아... 이 적극적인 애정표현... 너무 뿌듯해.
사랑스러워.
“조금 있다 세화가 연락할 텐데, 정말 저랑 같이 가고 싶으세요?”
-세화가요?
“예. 유리아 씨를 소개시켜주고 싶다 하더라고요.”
아델은 유리아를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을 터.
예상대로, 아델의 관심이 그곳으로 쏠렸다.
-전 좋아요! 지금 세화에게 전화할까요? 아, 세화가 저한테 전화한다고 했지요. 기다릴게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지혁 씨는 언제 돌아오셔요?
“탐색기 상태에 따라 다른데, 오늘 중으로는 다 끝낼 수 있어요.”
-그렇다면 못 본 시간만큼 징계를 추가해야겠네요.
귀여운 투정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계산적으로 행동할 겁니까?”
-지금 지혁 씨는 징계를 받는 입장이니 제 명령을 무시해서는 안 되어요. 얌전히 수긍하셔요. 이건 양보할 수 없어요.
당연히 수긍해야지. 네 말이라면 난 뭐든 들어줄 수 있어.
“그렇게 할게요. 이만 끊습니다. 준비해야할 게 많아서요.”
-네, 잘 다녀오세요!
아델은 마지막에 까르르거리는 추임새를 넣고는 전화를 끊었다.
유리아를 만나는 게 무척이나 기대되는 모양.
두 사람에게 홀려 놀고 있어라. 나는 실비아랑 갈 데가 있으니까.
잠깐 애꿎은 키보드를 따닥거리던 나는, 연구실 근처를 감시하는 카메라에 실비아의 모습이 잡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왔구나.’
아델이 말해준 실비아의 반응을 분석해봤을 때, 그녀는 날 죄는 없지만 괘씸하고 재수가 없는 놈이라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실비아의 성격상 이번 일에 대해서 따지거나, 나무라려고 올 것 같았는데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안 왔다면 직접 부르려 했는데, 수고를 덜어서 다행이다.
실비아는 어느새 연구실 입구로 통하는 복도에 진입한 상태였다.
나는 재빨리 전투기 조종복을 갈아입었고, 공구함을 든 채로 그녀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구실 문이 큰 소음을 내며 열렸다.
이후 약간 상기된 얼굴을 한 실비아가 날 보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런 그녀를 향해 한 손을 들어 올린 내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실비아 씨.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십니까?”
“중요한 얘기를 좀 하려고 하는데... 혹시 일 있어? 박사님은?”
“박사님은 집에서 세계연합과 회의를 하고 계시고, 저는 미국에 가려고 합니다.”
“미국? 거긴 왜?”
“그랜드캐니언에 있는 탐색기가 고장 났거든요. 보수해야 돼요.”
그 말에 팔짱을 낀 실비아가 약간 곤란한 투로 묻는다.
“그래...? 바로 가야돼?”
“탐색기는 최대한 빨리 고치는 게 좋으니 그러는 편이 좋겠죠. 실비아 씨는 바쁘십니까?”
“나야 할 일 없이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데... 왜?”
“혼자 가야해서 심심한데... 할 일 없으시면 저랑 같이 가요. 중요한 이야기는 전투기 안에서 하시고요.”
“응...?”
뜻밖의 제안에 실비아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눈동자를 데굴 굴리던 그녀가 묻는다.
“얼마나 걸리는데?”
“한국시간으로 저녁 정도면 다 끝낼 듯싶습니다. 오고 가는 시간이야 전투기 속도라면 전혀 문제가 없죠. 실비아 씨 같은 강한 지원군이 있다면 안심이 되니, 더 빨리 끝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은근슬쩍 치켜세워주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내 마지막 칭찬은 귓등으로 흘러들은 실비아가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뭐... 같이 가자. 오늘 안에 돌아오는 거 맞지?”
이 정도 설득에도 승낙하는 것을 보니, 날 꼭 쪼아대고 싶나보다.
내겐 아주 좋은 일이다. 어제부터 느낌이 좋다 했는데 하늘이 돕는구나.
마르셀라야. 오랜만에 같이 합을 맞춰보자꾸나.
저번처럼 내 배때지를 뚫어버리면 뺨 맞을 줄 알아라.
“아무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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