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9 이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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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웅-! 우웅-!
화장실 안을 환하게 비추던 금빛 광채가 점점 수그러들고, 흐트러진 정신을 한데 모아 열심히 회개의 기도를 마친 아델이 욕조의 물을 뺐다.
부디 헤픈 여자인 자신이 아직 성녀의 자격이 있길 바라며 로사리오 님께 기도를 올렸는데, 답변을 주실지 안 주실지 모르겠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힘없이 샤워기를 틀었다.
“책임져야 돼... 책임...”
연신 책임이라는 말을 되뇌는 아델.
그녀는 지혁에게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
세 치 혀로 자신을 유혹하여 생각지도 않던 창피한 일을 하게 만든 그.
완전히 말려들었다. 자신은 더럽혀졌다.
그러니 지혁은 책임을 져야 한다.
아델은 애꿎은 샤워기의 수전을 좌우로 움직이며 온수와 냉수로 찜질을 했다.
오랜 시간 찬물, 더운물을 번갈아 맞다보니 정신이 조금 드는 기분.
온몸, 특히 가랑이를 꼼꼼히, 그리고 청결하게 씻은 아델이 화장실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보았다.
‘지혁 씨는...’
없다. 하지만 분명히 돌아왔다.
거실에서 TV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침대도 새 것으로 깨끗하게 갈아져있었고, 그 위에 속옷, 긴팔 니트, 청바지, 그리고 여우 그림이 그려진 잠옷이 있었다.
수건으로 몸을 깨끗하게 닦아낸 아델은 잽싸게 달려가 팬티와 잠옷을 입었다.
‘귀엽다...’
잠옷의 디자인이 너무나도 만족스럽다. 어디서 구해온 걸까?
평소엔 눈치가 없던 지혁이지만, 이럴 땐 참 섬세했다.
침대에 털썩 누운 아델은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당기고는 헛기침을 했다.
“흐흠...!”
아무런 반응도 없는 거실.
아델은 다시 한 번, 이번엔 조금 크게 기침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지혁에게 알렸다.
“흐흠! 콜록!”
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에서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나더니, 침실 문이 열리며 지혁이 들어왔다.
“다 씻었어요?”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지혁.
그의 얼굴을 보니 아까 전에 있었던... 창피하기가 짝이 없는 일이 생각나버린 아델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네에...”
“옆에 앉아도 될까요?”
“아, 안 돼요. 서계세요.”
“알겠습니다.”
서운한 말투로 대답한 지혁이 다가와 침대 옆에 섰다.
아델은 홧김에 저리 말해버린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이러면 지혁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잖은가.
그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도 굳건한데... 아까의 일 때문에 부끄러워져 속내와는 다른 말이 튀어나와버렸다.
그녀가 말을 정정했다.
“저... 앉으셔도 돼요...”
“아니요. 불편하신 것 같으니까 서있겠습니다.”
“부, 불편하다니요... 누가 그런 말을 했지요? 어서 앉아요.”
“예.”
냅다 자신의 옆에 앉은 지혁의 표정을 보니, 자신을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꿀이 뚝뚝 떨어진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
지혁의 한결같은 마음에 안심한 아델이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저는... 더럽혀졌어요...”
말을 마친 아델이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을 자책했다.
왜 또 이런 소리를 해선... 지혁은 분명 당황하거나 실망할 것이었다.
“더럽혀지다니요...”
예상대로, 지혁이 씁쓸한 말투를 했다.
아델이 황급히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그, 그게 아니라... 너무 창피해요!”
“제가요...?”
“아니요! 제 자신이 창피하다는 말이에요!”
“예... 죄송합니다.”
“왜 지혁 씨가 죄송하지요? 저에게 죄책감을 떠넘기려는 수작인가요!?”
“무슨...”
입을 떡 벌리고 뻐끔거리는 지혁.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아델은 자신의 허벅지를 마구 꼬집었다.
또 이런 멍청한 실수를 하다니... 자신은 바보다.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힌 그녀가 말했다.
“홧김에 나온 말이에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어요... 저 참 바보 같죠?”
잠시 아델을 바라보던 지혁이 힘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말없이 다가와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바보 같은 게 아니라, 아델다운 겁니다. 그리고 전 그런 아델이 좋습니다.”
“.... 정말이요...?”
“예. 어떻게 해야 아델이 믿을까요?”
지혁은 사소한 것 하나하나 자신을 위해서 움직인다.
그가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마음이 다 드러난다는 얘기다.
또한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자신을 책임질 각오가 되어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 마음을 확인하려 하지 말자. 지혁의 말마따나 사랑은 계산적이어선 안 되니까.
“그냥 이렇게 안아주세요... 오늘도, 내일도 계속...”
“얼마든지요.”
아델의 얼굴이 행복으로 가득 찼다.
만족, 또 만족스러웠다. 자신의 첫사랑이 너무 완벽한 남자라서,
그런 남자가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어서.
나중에 함께 로사리오 님의 신전에서 평생의 연을 맺고 싶다.
그리 생각한 아델이 지혁의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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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남자와의 행복한 제주도 관광은 눈 깜짝할 새 끝이 났다.
더 관광하고 싶었으나 실비아가 눈에 밟혀서 어쩔 수 없이 돌아오게 됐다.
서울로 돌아와 지혁의 차를 타고 의정부로 향하던 그녀는, 부디 실비아가 자신처럼 좋은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내일 오전 열한시 삼십분에 전화를 걸도록 하세요. 제가 잠을 자고 있을 수도 있으니, 안 받으면 받을 때까지 거셔야 해요.”
“예.”
“제가 전화를 받으면 곧바로 출발하시구요.”
“알겠습니다.”
“내일은 성경공부 다섯 시간을 한 뒤, 방탈출 카페에 갈 거에요. 평가가 좋은 곳을 예약해놓도록 하세요. 아시겠나요?”
“그렇게 할게요.”
신나게 명령을 내린 다음 잡담을 나누고 나니 어느새 의정부에 도착했다.
지혁과 헤어지기 너무나도 싫었던 아델은, 차가 집 앞에 섰음에도 안전벨트를 풀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지혁이 씨익 웃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있을까요?”
“.... 네...”
아델이 수줍은 듯 손을 내밀었다.
잡아달라는 행동. 입이 짜악 찢어진 지혁이 냅다 그 손을 잡았고,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걱정스런 투로 말했다.
“손톱이 푸석푸석하네요. 네일은 다 깨졌고.”
“관리... 받을 거에요...”
“언제요?”
“내일... 방탈출 카페에 가기 전에 네일샵에 들러야겠어요...”
“예약해놓을까요?”
“아니요... 제가 할 테니, 지혁 씨는 앞서 말씀드렸던 임무에만 집중하셔요...”
아델은 지혁이 만져주기만 해도 작아지는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굴이 빨개지는 건 기본이고, 심장이 벌렁벌렁 거린다.
왜 이러는 걸까? 어제, 그리고 그제 있었던 일 때문에?
아니, 그 일이 있기 전부터도 그랬다.
지혁이 주는 사랑에 푹 빠져버려서 이런 반응이 튀어나오는 모양인데... 상사병이라도 앓게 된 것 같았다.
조신한 척 몸을 배배 꼬던 그녀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리고 있는 지혁에게 말했다.
“저, 저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 언니가 걱정해서...”
“3분도 지나지 않았는데요?”
“어서 문을 열어주셔요...”
“아쉽네요...”
말끝을 흐린 지혁이 갑작스레 돌진해왔다.
아델의 뺨, 입술, 그리고 목에 쪽쪽거리면서 애정표현을 하던 그가 차에서 내리더니 빠른 걸음으로 차 앞을 지나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얼굴이 화끈해진 상태였던 아델은, 자신의 입꼬리가 상당히 올라가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로 키스를 받은 부위를 어루만지며 내렸다.
이후 지혁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돌아가면 연락할게요.”
“네에...”
아델을 향해 시원한 미소를 지어준 지혁은 곧 차를 타고 떠났다.
그의 차 뒤꽁무니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제자리에 서있던 아델은,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자신의 보금자리를 향해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사흘 정도 비웠을 뿐인데 정말 오랜만에 오는 느낌이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집 안으로 들어간 아델은, 마침 샤워를 하고 있던 실비아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델! 이제 온 거야?”
속옷차림으로 달려와 자신을 반기는 실비아.
아델 또한 생긋 웃으며 실비아와 얼싸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보고 싶었어요, 언니.”
“나도 엄청 보고 싶었어. 제주도 일은 잘 끝났어? 마물은 이제 다 정화된 거야?”
“네. 생태계는 안전해요.”
“고생 많았어. 진짜 자랑스럽다.”
실비아의 격려는 지혁의 격려와 더불어 크나큰 힘이 되었다.
두 사람만 곁에 있어주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헤실헤실 거리던 아델은, 이어지는 실비아의 물음에 놀라 포옹을 풀었다.
“그런데 이 목에 있는 빨간 건 뭐야? 음식 먹다가 알레르기라도 올라온 건가?”
“아... 이거요...?”
아델이 잠깐 머뭇거렸다.
요즘 자신은 실비아에게 비밀을 하나하나 쌓아가고 있었다.
실비아는 지혁과 더불어 자신을 위해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비밀을 만들어두는 건... 못할 짓이었다.
아델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래, 다 말하는 거다.
너무 상세하게는 말고... 그냥 지혁과의 그렇고 그런 행위로 디바이스를 충전했다고 하자.
그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고도 말하자.
다짐을 마친 아델이 말문을 열었다.
“지혁 씨 때문에 이렇게 됐어요...”
“무, 뭐...?”
표정이 완전히 굳어버린 실비아.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짜고짜 지혁 씨 때문이라는 말을 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아델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아, 오해하지 마셔요. 이건 지혁 씨가 뽀뽀를 해주셔서 만들어졌어요. 키스마크라고 하는데, 살에 입술을 대고 강하게 빨아들이면 이런 상처가 남아요. 며칠 후에 사라지는 거에요.”
상세한 설명에 실비아가 입을 떡 벌렸다.
아델은 실비아의 저 순수한 반응을 보며 킥킥 웃었다.
실비아는 자신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경험이 많았다.
그러나 연애에 관해선 자신이 선배였다.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그녀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괜히 뿌듯해진 아델이 말했다.
“아이테르 충전도 지혁 씨와 함께 했어요.”
“.... 아이테르도 충전했어...?”
“네! 이제 어느 때나 백 퍼센트로 충전할 수 있어요! 신성력과 아이테르의 힘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자세히 이야기해드릴까요?”
“드, 듣고 싶긴 한데...”
침을 삼킨 실비아가 아델의 눈치를 보았다.
정말 이야기해줄 수 있겠냐고 묻는 것 같은 표정.
흔쾌히 고개를 주억거린 아델이 실비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이후 소파에 그녀를 앉히고 헛기침을 했다.
“흐흠! 어디부터 말씀드려야 할까요... 아, 여기부터 할게요. 일단...”
아델은 제주도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설명했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마물을 정화한 일부터, 지혁과 성적인 일을 하여 아이테르를 충전한 것까지.
성적인 일에 대해선 아까 생각했던 대로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다.
그저 지혁이 키스를 하던 도중 자신의 몸을 만져주어서 무척 좋았고, 그 행위로 인해 아이테르가 순식간에 충전이 되었다는 얘기만 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들은 실비아는...
“그래...? 대단한데...?”
약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예상 외였다. 놀라워할 줄 알았는데 저런 대답이 끝이라니.
창피해하고 있는 건가? 하긴, 남자경험이 전무한 실비아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방긋 웃은 아델이 실비아의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그녀를 격려했다.
“언니도 좋은 사람을 만나서 아이테르를 충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 근데 아델, 지혁이가 그렇게 좋아?”
“네! 저는 지혁 씨를 사랑해요. 지혁 씨도 저를 사랑하고 있어요.”
“음...”
무언가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 실비아.
아델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경험이 없어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네...”
“연애에 관해선 제가 스승이니까, 궁금한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 물어보셔도 좋아요!”
콧대가 높아진 아델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실비아가 피식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 얼른 씻어. 밥 먹자.”
“네!”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있던 아델이 화장실로 쏙 들어가자마자, 실비아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식탁에 놓인 자신의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지혁에게 톡을 하나 보냈다.
[나랑 얘기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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