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3 나의 아델 #3
아델은 그렇게나 보고 싶어 하던 바다를 실제로 보고도 웃지 못했다.
제주도 서쪽 바다를 잠식한 마기 때문이다.
선착장에서 요트를 대여한 나는 시동을 걸려다가, 불쾌한 표정을 한 아델이 곁으로 오자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래요?”
“이곳에 퍼진 마기가 지혁 씨의 몸을 건드리고 있어서 너무 싫어요. 당장 정화하고 싶어요.”
진정해. 난 죽기 싫어.
“그 마기가 제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지만... 지혁 씨 같은 깨끗한 사람이 여기 있으면 안 돼요.”
내가 깨끗한 사람이라? 난 이런 퀴퀴를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마왕이란 말이야.
너도 곧 여기보다 훨씬 짙은 마기가 도사리고 있는 마계에서 살 예정이니까 적응해줬으면 좋겠어.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출발할까요?”
“네.”
아델과 함께 바다 한복판으로 간 나는, 조종석에 있던 그녀가 배의 후미로 가자 시동을 껐다.
그녀는 바닷바람에 의해 휘날리는 머리를 정리하면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심지어는 무언가를 쫓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간 나는 가져온 노트북을 꺼냈다.
“뭔가 발견됐나보네요.”
“여기 깊숙한 곳에서 마기의 숙주로 보이는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주변 생태계가 엉망이 되어가고 있죠.”
“엉망이 되어간다니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생명체들이 약육강식의 법칙도 무시하고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중이에요.”
정확하게 봤구나. 역시 아델이다.
내가 여기 풀어놓은 놈은 기생형 마물.
해양생물의 몸을 숙주로 삼아 주변 생물들에게 마기를 흩뿌려 폭주시키는 효과를 지녔다.
인간이나 돌고래 같은 고지능 생명체에겐 효과가 없지만, 그 이하는 충분히 물들이고도 남는다.
다만 좀비 바이러스처럼 숙주의 영향을 받은 생물이 다른 생물을 물들이는 효과까진 없어서 아쉬울 따름.
그래도 혼자서 이만큼의 생태계를 박살냈으면 만족스런 성과였다.
“지금 당장 신성력을 써야 해요.”
이어지는 아델의 말.
나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정화가 가능합니까?”
“네. 변신해서 단숨에 퍼뜨릴 수 있어요.”
아델이 간절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변신하게 해달라는 뜻. 내가 원하는 바이기도 했다.
아델의 아이테르를 팍팍 소모시키는 것이 내 계획이었으니까.
“확인부터 해보죠.”
“지혁 씨! 이 밑에 있는 탐색기는 고장이 난 게 아니에요! 정화만 하면 정상적으로 복구될 거라구요! 절 믿어주세요!”
성을 내기 시작하는 아델.
나는 침착한 얼굴로 그녀를 진정시켰다.
“아델을 못 믿는 게 아닙니다. 탐색기 얘기도 아니었고요. 아델은 어떤 식으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지만, 저는 그런 능력이 없잖아요. 바다 속 환경을 찍어두고 방지책을 세우기 위함이니 조금만 참아주세요. 금방 끝나니까.”
“.... 네... 죄송해요...”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노트북을 조작해 탐색기와 연동했다.
이후 탐색기에 달린 카메라로 주변 상황을 죄다 찍었고, 전송되어온 사진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확실히 바다 분위기가 칙칙하네요. 죽어있는 생물들도 많고... 지금 시작하세요.”
“버, 벌써 끝났어요?”
발을 동동 구르다가 벙 찐 아델.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예. 아, 혹시 선실에서도 정화가 가능하다면 그쪽에서 하는 게 나을 듯싶습니다. 혹시라도 누가 보면 안 되니까.”
“네!”
정신을 차린 아델이 요트의 룸 안으로 후다닥 들어가 디바이스를 두 번 터치했다.
번쩍-! 하고 나타나기 시작한 금빛 광채.
급하게 달려간 나는 룸 안의 모든 커튼을 쳤다.
그 사이 셀린으로 변신한 그녀는, 빛 때문에 미간을 구기고 있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고마워요, 지혁 씨.”
그리고는 그녀가 살던 행성의 언어로 기도문을 외기 시작했다.
우우웅-!
아름다운 목소리가 공기 중으로 퍼질 때마다 강해지는 빛.
주변에 배는 없지만... 이 정도 빛이라면 누가 볼 수도 있겠는데?
마르셀라더러 다 확인해보라고 한 다음, 있으면 죽여야겠다.
그나저나 너무 아름다운 빛이다.
내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은 느낌.
그래, 목격자가 있으면 그냥 잡아놓고 개조해서 생체병기로 쓰던지 하자.
죽이는 건 너무 심하잖아. 마왕이 자비도 있어야지.
아델이 기도를 하면 할수록 그녀의 몸을 두른 광채도 강해졌다.
나는 현재 인간의 몸이라 그녀의 신성력에 영향을 받지 않고, 느끼지도 못한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바다 밑은 깨끗하게 복구되어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빛의 감도는 5분이 지났을 때 절정에 이르렀다가, 금세 수그러들었다.
그와 동시에 아델의 기도도 멈췄다.
그녀의 모습을 보던 나는 조금 실망할 수박에 없었다.
고작 5분가량의 기도만으로 정화작업이 끝난 것 같아서였다.
“후아...!”
힘겨운 한숨을 내뱉은 아델이 밝은 표정으로 눈을 떴다.
이런 식으로는 많은 양을 소모시킬 수 없는 건가? 그냥 마물들을 내보내면서 정공법으로 나가야 되나?
속으로 침음을 삼킨 나는 태연한 얼굴로 아델에게 다가갔다.
“끝났나요?”
“네... 끝났어요. 그 마물도 소멸했고... 생태계도 정상화됐어요.”
“알겠습니다.”
나는 정화가 잘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노트북을 들었다.
그때, 아델이 힘겨운 기색으로 다가오더니 날 부른다.
“저... 지혁 씨.”
“예?”
“너무 많은 생물들에게 힘을 써서 피곤해졌는데... 저 조금만 쉬고 싶어요.”
피곤해할 정도로 많은 신성력을 쓴 거야?
혹시 물량이 많으면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건가?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물론입니다. 저기 침대에 누워 쉬고 계세요.”
“네...”
좀비처럼 휘적휘적 걸어간 아델은 침대에 쓰러지듯 털썩 누웠다.
이후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노트북으로 정화가 완료되었음을 확인한 나는, 잠깐 시간을 두고 아델을 지켜보았다.
“아델, 자고 있는 거에요?”
심지어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기까지 해보았다.
미동도 없는 아델. 그녀가 깊은 수마에 빠졌음을 확신한 나는, 조심스럽게 디바이스의 충전량 표시 버튼을 눌러보았다.
그리고는 눈앞에 나온 수치에 쾌재의 쾌재를 불렀다.
[31%]
내가 생각한 방법은 제대로 적중했다.
이젠 짧은 시간 안에 아델의 에너지를 잔뜩 소모시킬 수 있다.
**
“지혁 씨... 여기가 어디에요...? 침대가 달라요...”
음량을 최대한 낮춰놓고 TV를 보던 나는, 졸린 눈을 한 아델이 침실에서 나오자 방긋 웃었다.
“서귀포의 호텔입니다.”
“호텔... 이요...?”
“예.”
아델은 자신이 호텔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멍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던 그녀가 묻는다.
“왜... 호텔에 왔어요...?”
“아델이 곯아떨어지고 한참 뒤에 요트가 흔들리더라고요. 비바람이 올 것 같아서 육지로 갔는데, 그때까지도 깨어나지 않아서 호텔로 옮겨왔습니다. 편히 쉬었나요?”
“그렇긴 한데요... 저희 돌아가야 하지 않나요?”
“지금 새벽 두 십니다. 비행기 안 떠요. 내일 돌아가야 합니다.”
“제, 제가 새벽까지 잤어요...?”
“오래 잤죠? 실비아 씨가 걱정했어요. 얼른 연락하세요.”
고개를 주억거린 아델은 앞으로 일어날 일은 꿈에도 모른 채 침실로 다시 들어갔다.
얼마 뒤, 실비아와 통화를 마친 그녀가 내 옆에 다가와 앉았고, 앞에 놓인 물을 조신하게 마시고는 말한다.
“내일 가겠다고 했어요.”
너 지금 나랑 단둘이 호텔에 있다고.
경계심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니냐? 나야 좋긴 한데...
“내일 못 다한 관광도 하다가 저녁쯤에 돌아가죠.”
“네... 근데 저 오늘 잘했죠?”
잘하다마다. 신성력의 약점을 알아내서 아주 예뻐 죽을 지경이다.
그녀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은 내가 대답했다.
“예. 정말 멋있었어요. 자랑스럽기도 했고요.”
아델은 현재 비스트 슬레이어로서의 사명감이 큰 상태다.
이런 식으로 인정하는 말을 해주니 기쁨도 클 터.
내 예상대로, 칭찬을 들은 그녀가 신이 나선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난 흐뭇한 표정으로 아델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뒤로 가서 어깨를 주물렀다.
“잘한 건 사실이지만 보기가 힘들었어요. 신성력을 사용했을 당시 아델은 정말 지쳐보였거든요.”
“정화할 생명의 수가 많아서 어쩔 수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 나았답니다... 흐아암...!”
콧대를 세우며 잘난 척을 하다 나른한 하품을 뱉는 아델.
그녀가 입맛을 다시다가 말을 이었다.
“지혁 씨랑 놀고 싶었는데... 잠만 자서 죄송해요...”
“그런 말씀 마세요. 아직도 조금 피곤하신 것 같은데, 더 쉬실래요?”
“아니요. 지혁 씨랑 대화할래요.”
“무슨 대화요?”
“제가 어떤 식으로 죄 없는 물고기들을 정화시켰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방금 말했잖습니까. 발버둥을 치는 물고기들을 부드러운 신성력으로 감싼 뒤 안정시켰다고.”
“아, 그랬죠... 후아암...”
다시금 늘어지는 하품을 한 아델이 힘을 쭉 빼고 소파에 등을 묻었다.
어깨 마사지가 마음에 든 것 같다.
나는 이번엔 그녀의 얄상한 목을 만져주기 시작했다.
“.....”
내 손길을 느끼던 아델의 귀가 점점 빨개져왔다.
이상한 기류를 감지한 모양.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뒤로 치켜들어 날 바라보았다.
“지혁 씨...”
“말씀하세요.”
“언제 방으로 돌아가실 건가요...?”
방은 여기 하나뿐인데... 너무 순진해서 걱정스러울 지경이다.
“조금 있다가요.”
“조금 말고 오래 있다가 가주셔요. 저 방금 깨어났잖아요... 대화해요, 대화...”
“그렇게 할게요.”
“그러면 저... 양치질 하고 와도 돼요...?”
뜬금없이 양치질이라?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건가?
아니, 앞선 대화를 상기해보면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입을 맞춰주라고 돌려 말하는 건가?
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왜요...?”
“마사지부터 해드릴게요. 힘 빼세요.”
“네에...”
나는 한손은 아델의 뒷덜미로, 한손은 턱으로 옮겼다.
그 상태에서 적당한 지압으로 꾹꾹 눌러주니, 그녀가 어제 제주도에 오기 전에 차에서 보여주었던 그윽한 눈빛을 했다.
어제보다 훨씬 발전된 연기구나. 이제야 네가 뭘 원하는지 알겠다.
나는 아델의 입술을 향해 천천히 얼굴을 내려 보냈다.
지그시 감기는 그녀의 눈. 고개를 옆으로 돌리기까지 한다.
그 모습을 보며 실소를 터뜨린 내가 말했다.
“오늘은 깨물면 안 됩니다.”
그 말에 아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입꼬리가 아치형으로 변하는 것이, 분위기를 깬 내게 무언의 타박을 하는 듯했다.
킥킥 웃은 나는 아델의 지척까지 얼굴을 내렸고, 혀를 내밀어 그녀의 입술 사이로 살짝 집어넣었다.
“.... 흐우...”
그러자 아델의 코에서 뜨거운 바람이 새어나와 내 뺨을 간지럽혔다.
동시에 그녀의 손목에서 우우웅-! 하는 공명음이 미세하게 울렸다.
오늘은 입맞춤만으론 끝나지 않을 거다.
내가 노리는 건 충전량 100퍼센트, 그리고 절정에 다다를 정도의 오르가즘.
그때까지 진득하게 만져줄 테니, 지금이라도 마음의 준비를 했으면 좋겠구나.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