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97화 (197/471)

EP.197 두 번 충격받은 성녀 #3

[우리 곁에 존재하는 영웅들. 그들에게 마땅한 찬사를 보내주지 않는다면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어제 오후 미국, 캐나다, 독일에서 나타난 S급 괴물들이 비스트 슬레이어에 의해 격퇴되었습니다. 혹자들은……]

[새로운 영웅의 등장에 대한 세간의 반응이 무척 뜨겁습니다. 캐나다와 독일에 나타난 괴물, 그들을 상대한 두 사람의 정보를 공개해달라는 세계연합의 요구에, 비스트 슬레이어 본부는 조만간 긍정적인 대답을 내겠다며……]

[세 나라의 피해상황에 대해선 지구방위조약의 조항대로, 세계연합에서 복구 작업을 진행시켜준다고 합니다.]

일제히 보도되는 뉴스.

어제 저녁부터 오늘까지, 채널을 돌려봐도 다 비스트 슬레이어 얘기밖에 없었다.

상황을 보니 며칠간 대서특필될 것이 뻔했다.

근데 이 새끼들 웃긴 놈들이네?

마물 세 마리, 그것도 S급이 동시에 나타난 건 짧게만 보도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니들 어제 지구 최후의 날을 맞이할 뻔했단 말이야.

비스트 슬레이어들이 지켜줄 거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나보다.

나는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갑작스레 짜증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작당을 모의했던 배신자 세 놈을 처리한 건 좋지만, 실비아와 아델이 너무 강했다.

실비아는 거프를 짧은 시간 만에 다진 고기로 만들었고, 아델은 아몬을 일대일로 이겼다.

두 사람 모두 여기서 더 성장하면 얼마나 괴물이 될지 가늠조차 안 된다.

하지만 괜찮다. 아델은 이미 내 손 안에 있으니까.

공략을 계속해나가면 저 잠재력이 넘치는 괴물이 내 권속으로 되는 것이다.

헌데 아몬... 그 새끼가 거대한 똥을 뿌리고 죽었다.

가증스런 타이라트에게 속고 있다고? 이 새끼가 여태까지 애지중지해온 은혜도 모르고...

‘사실 애지중지는 아니긴 한데...’

어쨌든 아몬의 이 유언은 비밀로 할 수는 없다.

왜냐? 아델이 들었으니까.

그녀가 실비아에게 유언을 전할 테고, 실비아는 또 박사에게 전달하겠지.

하지만 타이라트가 나임을 알 수는 없을 거다.

아몬이 날 특정하지 않아서였다.

‘송지혁이 타이라트다.’ 정도는 말하고 죽었어야지.

최후의 발악을 한 건 높이 사지만, 아델과 실비아에게 경각심만 조금 심어주고 끝일 터.

아몬은 실패했다. 그러니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TV를 끈 나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집 안엔 나 혼자밖에 없었다.

박사는 지금 뒷수습을 하느라 연구실에 눌러앉아 있는 상태.

문득 외로운 기분이 든다. 아델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문자도 없으니까 걱정된다.

‘어제 정말 힘들어하던데...’

그녀가 좋아하는 민트사탕을 뭉텅이로 사들고 가봐야겠다.

외투를 둘러 입은 나는 곧장 집 밖으로 나갔다.

**

“어제 돌아와서 샤워하자마자 곯아떨어졌어. 피곤하대.”

의정부에 도착한 나는, 눈 밑이 조금 퀭해진 실비아의 말을 듣고 수긍했다.

프로 복서들도 10라운드를 뛰면 녹초가 되는데, 장장 여섯 시간이 넘도록 싸웠으니 아무리 초인적인 육체를 가졌다 해도 지칠 만하지.

“그렇군요. 실비아 씨는 괜찮으신가요?”

“나도 솔직히 힘들어. 운동도 못 갈 정도로 퍼져있었어. 대신 기분은 좋아.”

“기분이 좋다니요?”

“유리아를 만났거든. 나랑 잘 맞는 동생 같아.”

실비아는 거프를 죽이자마자 세화와 유리아를 지원 갔다.

전투가 끝난 뒤엔 짧은 대화도 나눴겠지.

유리아가 싹싹하게 잘 했나보다.

고개를 주억거린 내가 말했다.

“이번 일이 정리되면 다 같이 회식이라도 하죠.”

“내가 원하는 바야.”

“마물과의 전투는 어떠셨나요?”

“첫 마물은 별 거 아니었어. 하지만 세화와 유리아를 지원 갔을 땐... 짜증이 나더라. 마물들의 수가 너무 많았고, 두목으로 보이는 마물이 깨뜨릴 수 없는 장막을 펼치고 있어서 상대하기 힘들었어.”

간결한 소감이로군. 역시 요주의인물이다.

“아이테르 에너지는 얼마나 소모하셨습니까?”

그 말에 실비아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녀가 보관함을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30퍼센트 가까이 썼어.”

3할 정도라면 내 예상보단 많이 소모됐다.

거프와 오르바스는 기대이상으로 일을 해준 셈.

아몬과는 다르게 곱게 죽어줘서 기특하기도 하다.

너희들의 죽음을 밑거름으로 삼아 두 사람을 타락시켜줄게. 걱정하지 마라.

“제법 많이 썼네요.”

“긴 전투였으니까. 세화와 유리아는 거의 바닥이라더라. 충전해야 된대.”

“타이밍이 좋았군요.”

“응. 아, 그리고 그 충전에 관해서 말인데... 어제 아델이 자기 전에 이상한 말을 했어.”

“무슨 말이요?”

“엄청 더듬거리면서 이러더라. 디바이스는 좋아하는 사람과의 성적인 행위로 충전된다고... 맞아? 도통 믿을 수가 있어야지...”

나는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이런 내 표정을 본 실비아가 입을 살짝 벌렸다.

매사에 진중하고 침착한 그녀답지 않은 반응이었다.

“진짜였어...?”

“진짜입니다.”

“하...”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켜고는 있지만 아델과는 다르게 내 말을 믿는 눈치다.

그만큼 내 신용도가 올라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동안 혼란스러워하던 실비아는 냉장고에서 스포츠 음료를 꺼내더니 벌컥벌컥 들이켰다.

연홍색 머리에 파란 음료수 조합이라... 나쁘지 않다.

“아델이 피곤해서 헛소리를 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예... 죄송합니다. 다른 방법도 찾아봤지만 전혀 없더라고요.”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 아이테르가 조금 독특한 특성을 지닌 거지. 박사님은? 뭐하셔?”

의외로 이 충전방식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연애경험이 전무해서 그쪽으로는 둔한 건가? 나야 상관없지.

“연구실에 계십니다. 실비아 씨와 아델의 등장으로 인해 세계가 떠들썩하거든요. 수습 중입니다.”

“우리 때문에 고생하시네... 너는? 안 바빠?”

“저도 바쁘죠. 다만 전 언론을 다루는 경험이 모자라기 때문에 이런 활동은 박사님께서 도맡아 하세요. 저는 따로 할 일이 있습니다. 소모품 개발, 세계 감시, 자금 유통 등이요.”

조용한 목소리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침실 문이 열리더니 아델이 눈을 부비적거리며 나왔다.

여우무늬가 그려진 복실복실한 흰색 잠옷을 입고 있는 그녀.

놀이공원에서도 북극여우 머리핀을 좋아하더니... 취향 한 번 올곧다.

“지혁 씨...”

“예. 혹시 저 때문에 깨어나셨나요?”

“아니요. 그냥 일어났어요. 저랑 얘기 좀 해요.”

일어나자마자 저런 말을 하니 괜히 찔린다.

“그럴까요?”

“세수랑 양치질만 하고 올 테니 기다려주셔요...”

“알겠습니다.”

아직도 피곤한 듯 어깨를 늘어뜨리며 화장실로 향하는 아델.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실비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괜히 서운하네.”

“뭐가요?”

“일어나자마자 너부터 찾으니까.”

“저는 기쁜데요.”

그에 깔깔거린 실비아가 일을 보라고 말하더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

분위기가 좋고 손님들이 별로 없는 카페의 구석자리에서, 나와 아델은 대화를 나누었다.

시럽을 가득 추가한 딸기 프라푸치노를 쭉 빨아들인 아델이 묻는다.

“저 어땠어요?”

“뭐가요?”

“어제요. 잘 싸웠어요?”

솔직히 잘 싸웠다고 하기엔 뭣하지만... 수긍해주자.

“잘하셨습니다.”

“S급 마물이었어요. 최고등급.”

“알고 있습니다.”

“힘들게 싸웠어요.”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전투를 몇 번 경험해보지도 않은 저였는데 무려 S급 마물을 이겼어요.”

“예.”

아델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인정을 받고 싶은데 심심한 감상평밖에 들려오지 않아 삐친 것이다.

입꼬리를 살짝 올린 나는 스푼빨대로 휘핑크림을 떠먹기 시작하는 아델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윗입술에 조금 묻은 크림을 닦아내주었다.

“지금까진 그저 일일이 챙겨 줘야할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대이상으로 해줬어요. 어제 아델이 그랬었죠? 제가 믿음직하다고.”

“.... 네...”

“저도 아델이 믿음직해요. 앞으로 믿고 맡길 수 있겠어요.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

고개를 푹 수그린 아델.

귀가 빨개진 것으로 보아 기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한 모양이다.

나는 몸을 배배 꼬고 있는 아델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녀가 손끝에 힘을 주며 말한다.

“지, 지혁 씨... 그런데 있잖아요...”

“예.”

“제가 싸웠던 마물이... 저희가 타이라트에게 속고 있다고 말했어요. 혹시 들으셨나요...?”

“들었어요.”

“무슨 말이었을까요...?”

“마물은 인류의 적입니다. 그런 녀석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되지요. 오히려 함정을 판 것일 수도 있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알아보는 건 제가 하겠습니다.”

“네에...”

아델이 빨대를 쪼옥 빨며 날 흘깃거렸다.

디바이스 충전에 관해 물어보고 싶은데, 낯부끄러워서 입이 떨어지지 않겠지.

나는 조심스럽게 아델의 어깨를 감싸고, 그녀의 반응을 보았다.

그냥 부끄러워하기만 하는 아델. 속으로 안도한 나는 그녀를 내 품으로 데리고 왔다.

“어제 정말 수고 많았어요.”

“.... 지혁 씨도요...”

아델이 말끝을 늘어뜨리면서 내 허리를 꼭 안았다.

어제 힘캐다운 면모를 봐서 그런지, 척추가 부러지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다.

오랜 시간동안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날 올려다보며 묻는다.

“내일 아침에 수업할 수 있어요...?”

“아뇨. 내일은 박사님을 도와야 해서 연구실에 있어야 됩니다.”

“제가 연구실에 가면 방해일까요?”

“저는 괜찮은데 박사님께서 조금 예민해하실 것 같습니다.”

“그럼 전 뭐해요...? 지혁 씨랑 있고 싶은데...”

“틈틈이 연락할게요.”

“네...”

나는 서운해 하는 아델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면서, 한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어 사탕상자를 꺼냈다.

거기서 사탕을 하나 꺼내 아델의 입 안에 넣어준 나는, 희미하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천천히 내렸다.

그러자 아델의 눈썹이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눈꺼풀이 아래로 완전히 내려갔다.

심지어는 입술까지 약간 내밀었다. 방금 나와 함께 있고 싶다며 칭얼댔던 것도 그렇고... 애정표현이 많이 과감해졌구나. 기특해 죽겠다.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맞댄 나는, 말캉한 촉감을 느끼다가 혀를 내밀어 아델의 입술 사이로 슬쩍 들여보냈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딸기맛과 민트맛. 동시에 따끔한 느낌도 일었다.

아델의 이빨이 내 혀를 문 것이다.

이건 키스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낯선 무언가가 들어오자 뭔가 싶어 깨물어보는 것과 같았다.

“.... 흥앗...!”

이상한 추임새를 넣더니 눈을 번쩍 뜬 아델.

입 안으로 들어간 것이 뭔지 이제야 파악한 듯했다.

눈을 뜬 그녀는 호선을 그린 내 눈을 보더니 동공을 마구 떨어댔다.

긴장한 것이 대놓고 드러난 그녀였지만 딱히 날 떼어내려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을 다시 감고 입을 조금 벌렸다.

그 틈새로 혀를 더욱 깊게 집어넣은 나는 아델의 윗니를 핥으면서 올라가 잇몸까지 툭툭 건드렸다.

그럴 때마다 허리를 감은 아델의 팔에 힘이 쭉쭉 들어갔다.

무척 긴장한 모양. 그러고 있던 그녀가 돌연 몸을 크게 달싹였다.

“흣!”

내 손가락이 아델의 갈비뼈 사이를 제법 강하게 눌렀기 때문이다.

깜짝 놀란 그녀가 날 밀어내더니 구석의 벽에 딱 달라붙었다.

그녀의 얼굴은 완전히 터져버리기 직전.

고양이 앞의 쥐 마냥 온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델에게 가까이 다가간 내가 나긋한 투로 말했다.

“괜찮아요?”

“.....”

대답은 안 하고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주억거리는 아델.

내가 물었다.

“혹시 로사리오교의 규율에 어긋난 건 아니죠?”

“.... 아니에요...”

“다행이네요.”

“저 이만 갈래요... 피곤해요...”

“그럼 갈까요?”

“아니요... 더 있을래요...”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으로 보아 방금의 일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히죽 웃은 나는 아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디바이스가 만들어지기만 하면 속도를 확 붙여야지.

이제 조만간이다... 머지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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