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5 두 번 충격받은 성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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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
힘차게 쏟아져 내려오는 물줄기가 뒷목과 어깨에 닿는다.
나른한 표정으로 따스한 물의 수압을 느끼던 아델은 돌연 자신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지혁의 얼굴이 선명하게 생각났기 때문.
긴장한 그의 얼굴은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기억이 났지만, 키스 때의 상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입술이 맞닿기 직전 눈을 질끈 감고 로사리오교의 계명을 외웠었는데, 말랑말랑한 촉감이 느껴진 순간 순서를 틀려버려서 로사리오 님께 죄송할 따름이었다.
아무리 당황했다고는 해도 주교 급 인사인 성녀가 되어 계명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다니... 어불성설이었다.
‘주님... 저를 용서해주세요...’
속으로 로사리오에게 사죄한 아델은 몸을 돌렸다.
얼굴 전체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온도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그녀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면서 배를 콕콕 찔러보았다.
말캉한 느낌. 요새 먹거리들을 너무 많이 먹어서 살이 조금 찐 것 같다.
실비아의 건강미 넘치는 몸과 완전히 다르다.
아델은 실비아의 시원시원한 성격, 훤칠한 키와 농염한 얼굴형을 굉장히 좋아했다.
진짜 어른이라면 저럴까 싶을 정도로 이상향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놀라고, 오버를 하는 자신은 나이를 먹어도 저렇게 될 수 없겠지.
괜히 침울해진 아델은 지혁을 생각했다.
그는 이런 자신을 매우 좋아하고 있었다.
눈에서 애정이 철철 흘러넘치는 게 보일 정도.
-저도 아델이 좋습니다.-
키스 전에 지혁이 했던 감미로운 고백을 상기한 아델의 눈이 몽롱해졌다.
샤워볼에 바디워시를 쭉쭉 짜내던 그녀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도 좋아해요...”
몸을 깨끗하게 씻어낸 아델은 수건으로 머리를 박박 닦으면서 화장실을 나왔다.
그러자 소파에 앉아있던 실비아가 웃는 낯으로 다가오더니 말한다.
“머리 말려줄게. 귀찮다고 젖은 채로 자면 베개 상해.”
“저, 저는 어린아이가 아니에요... 혼자 할 수 있어요...”
“알아. 사실 말려준다는 건 핑계고 대화를 하고 싶어서 그랬어. 너 돌아왔을 때 나한테 한 마디도 안 했잖아.”
“제가 그랬나요?”
“내 말도 무시하고 샤워실로 가던데? 무슨 일 있었니?”
무슨 일? 어마어마하게 큰일이 있었다.
아델은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실비아에게 모든 일을 공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지혁과의 키스 사건을 말하기가 무척 껄끄러웠다.
이런 쑥스럽고 개인적인 일을 어떻게 말하겠는가.
문제는 비밀이 있다는 게 얼굴에 티가 난다는 것.
어정쩡한 무마 시도로는 실비아의 안목을 피해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면초가의 상황. 아델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딱히 핑계거리가 없었다.
거짓말은 때려 죽어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화제를 돌리자니 실비아가 분명히 눈치챌 테고...
결국 아델은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말씀드리기 곤란해요...”
“그래? 알았어.”
흔쾌히 넘어가주는 실비아.
그런 그녀의 반응이 아델로 하여금 더욱 미안한 마음을 들게 했다.
여태까지 솔직하게 서로의 고민거리를 토로해왔었는데 말이다.
기가 팍 죽어버린 아델이 머뭇거리고 있자, 실비아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위로했다.
“누구나 다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는 거야. 절대 기분 나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죄송해요...”
“사과도 하지 말고.”
“네...”
“그리고 네가 샤워하러 갔을 때 지혁이한테 전화가 왔었어.”
“지혁 씨한테요?”
“응. 중요하게 할 말이 있다면서 연락하더라. 디바이스 충전방식에 관한 이야기래.”
아델은 지혁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친밀도로 따지자면 실비아보다는 자신이 더 친할 텐데, 그녀에게 먼저 말을 하다니.
물론 그게 잘못된 건 아니다.
오히려 이해력이 남다른 실비아에게 말하는 것이 더 좋았다.
허나 서운한 건 서운한 것. 내일 만나면 단호하게 혼을 내주어야겠다!
“어떻게 충전하는데요?”
“그게...”
그녀가 머뭇거리더니 말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충전된대.”
“사랑이요?”
“응. 솔직히 믿기지는 않지만... 너무 진지한 말투로 말해서 믿을 수밖에 없었어.”
실비아는 반신반의하고 있었지만, 아델은 지고지순한 힘인 사랑이 신비한 기운인 아이테르의 힘의 원천이 될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구나... 그냥 사랑만 있으면 되는 건가요?”
“잘 몰라.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너한테 해주겠다고 하네?”
그 말에 아델의 가슴속에 따스한 바람이 불었다.
역시 지혁이었다. 단호하게 혼낸다는 건 취소. 사근사근하게 나무라야지.
“그런가요...? 언니한테 말하는 게 더 좋아보였는데... 아쉬워요.”
“전혀 아쉬운 표정이 아니잖아. 너 지금 웃고 있어.”
“아닌데요...?”
피어나는 웃음꽃을 감추지 못한 아델은 대충 얼버무리고는 침실에 들어갔다.
침대에 털썩 누워 휴대폰을 드니, 지혁에게서 부재중 전화 두 통이 와있었다.
아이테르 충전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자신에게 먼저 하려고 했던 모양.
이러면 참작의 여지가 충분하니 자비를 베풀어줘야 옳다.
그리 생각한 아델이 지혁에게 톡을 보냈다.
[내일 몇 시에 만나요? (ღ'ᴗ'ღ)]
얼마 지나지 않아 지혁에게서 답장이 왔다.
[오후 7시요.]
[더 빨리요.]
[6시?]
고작 한 시간만 앞당기다니... 인상을 찌푸린 아델이 이모티콘을 보냈다.
[(,,Ծ‸Ծ,,)]
[그럼 5시...]
[(งಠ _ಠ)ง]
[그냥 오전에 상황 봐서 연락드릴 테니까, 전화하면 연구실로 오세요. 참고로 오셔도 재미없을 겁니다.]
얼굴만 봐도 즐거운데 재미없기는 무슨. 지혁은 참으로 눈치가 없다.
알겠다고 답장을 보낸 아델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베개를 끌어와 자신의 얼굴에 덮었다.
다리를 교차하며 침대를 마구 두드리기까지 했다.
절로 피어나는 웃음꽃. 자신은 지금 사랑에 빠져있었다.
**
딸깍.
됐다. 이제 아이테르를 넣어두고, 가운데를 폴리머스로 덮으면 끝.
아델을 위한 디바이스는 완성 직전이었다.
핀셋을 내려놓고 식은땀을 닦아낸 나는, 휴게실의 투명한 창문 안에서부터 어떤 시선이 느껴지자 고개를 돌렸다.
그 안엔 아델이 있었다.
그녀는 장장 두 시간동안 과자와 음료수를 먹으면서 나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은 것 같아서 어이가 없었다.
저 집중력의 원천은 사랑이겠지.
그것도 그녀가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달달한 사랑.
앉아서 기지개를 켠 나는 아델을 향해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그러자 아델이 냅다 휴게실 문을 열더니, 빠른 걸음으로 내 맞은편에 앉았다.
“왜요? 왜 부르셨어요?”
깨방정하게 이리 물어오는 그녀.
인자한 미소를 지은 나는 디바이스를 가리켰다.
“아델이 착용할 디바이스에요. 거의 다 만들었는데 한 번 보세요.”
“저, 정말요!?”
아델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내게 바싹 붙어왔다.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디바이스의 이곳저곳을 살피던 그녀가 감탄한다.
“드디어 저도...!”
“예. 세화, 유리아와 함께 비스트 슬레이어가 됩니다. 아직 마지막 공정이 남아있긴 하지만, 아이테르만 넣어두면 금방 완성될 거에요. 무기도 제작해드릴게요. 전투망치 맞죠?”
“네...! 양옆이 툭 튀어나온 둔기에요. 제가 길게 휘두르기 좋도록 자루가 길었으면 좋겠어요! 그려드릴까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너한테 맞아서 뒈졌는데 당연히 기억하고 있단다.
표본도 없이 아델의 생각하고 있는 디자인과 거의 비슷하게 만들어준다면 나와 텔레파시가 통하느니 어쩌니 하며 더욱 좋아라하겠지?
“저한테 맡겨주실 수 있을까요?”
직접 만들겠다고 돌려 말하자, 아델이 곧장 수긍했다.
“물론이에요. 저는 지혁 씨를 믿어요!”
그녀는 자신의 양손을 맞잡고 까르르거리며 좋아했다.
하루라도 빨리 영웅이 되고 싶은 것 같다.
잠자코 아델을 지켜보던 나는, 그녀가 진정이 되는 것 같자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델, 이제 디바이스도 다 만들어졌겠다... 충전방식에 관해서 긴히 할 얘기가 있어요.”
“말씀하셔요.”
앉은 자세를 바로하고 무릎에 두 손을 가져다대는 그녀.
잠깐 뜸을 들인 나는, 방글방글 웃고 있는 아델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어제 실비아 씨에게 대략적인 설명은 들었겠죠?”
“네, 언니가 사랑으로 충전된다고 했어요. 서로를 위하는 강한 마음이 아이테르의 힘을 채워주는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제 아이테르는 충전에 문제가 없겠네요?”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군.
그것도 아주 낙관적으로.
“아닙니다. 사실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한 건 매우 순화한 표현이었어요. 충전은 어떠한 행위로 이루어집니다.”
“어떠한 행위라니요?”
“그 왜... 서로 사랑을 하다보면 육체적인... 그런 애정표현을 할 때가 있잖습니까. 손을 잡는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서 어제 저희가 했던 입맞춤은 물론...”
“자, 잠깐만요!”
갑작스레 내 말을 끊고 들어오는 아델.
그녀가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어제의 일을 상기시키니 부끄러운 것 같다.
잠깐 그러고 있던 그녀가 손을 내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 이제 말해도 돼요...”
“예. 이어서 하겠습니다. 입맞춤은 물론 그것보다 더 과감한 행위까지... 아이테르는 이 과감한 행위에서 힘을 얻습니다.”
아델이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이, 입맞춤보다 과감한... 행위요?”
그녀의 반응에 속으로 낄낄 웃어재낀 나는, 심각한 표정을 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좋아하는 사람과의 성적인 행위, 그걸로 충전이 이루어집니다.”
“.....”
아델의 얼굴이 멍해졌다.
아래로 쭉 내려온 턱을 보니 놀라 자빠지기 직전까지 간 모양이다.
입은 과장을 조금 보태서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벌어졌고, 안 그래도 큰 눈은 두 배 이상 커져있었다.
입을 금붕어마냥 뻐끔거리던 그녀가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거, 거짓말... 거짓말하지 마세요...! 이런 장난을 치면 제가 웃을 줄 알았나요...?”
그래, 장난이라 생각할 만도 하지.
“아델의 디바이스가 완성이 되기 직전까지 왔으니 알려드려야한다고 판단했어요. 세화나 유리아 씨, 그리고 박사님에게 물어보셔도 같은 답을 드릴 겁니다. 장난을 치는 게 아니에요.”
아델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저런 반응이 튀어나올 만도 했다.
순진한 그녀는 성적인 행위라는 것을 해보지도, 심지어는 생각해보지도 못했을 터였으니.
현재 멘탈이 크게 흔들린 상태인 것 같은데... 아이테르의 적합자인만큼 금방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삐비빅-! 삐비빅!
서로를 마주본 채 침묵하던 우린, 연구실 안에서 울려 퍼지는 경고음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동시에 상황판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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