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93화 (193/471)

EP.193 자극 #3

“팔 한 짝? 장난해!?”

분개하는 레오나.

그녀의 낫이 거대해지며 말파스의 목 앞에서 우뚝 멈추자, 놈이 찔끔하더니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왕비님, 저는 그저 필요한 대가를 제시했을 뿐입니다. 지불하고 말고는 마왕님의 뜻이옵나이다.”

“이 마계의 수치 같은 놈...!”

“그건 너무 심한 비약입니다. 흘흘...”

레오나는 당장에라도 낫을 휘두르려고 했다.

유리아 또한 마찬가지. 화살을 시위에 걸고 말파스의 머리를 조준하고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그녀들을 말렸다.

괜히 말파스를 공격한다면, 놈이 지금까지 받은 대가를 공격자가 모두 지불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말파스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다.

두 사람을 진정시킨 나는 태연하게 다리를 꼬았다.

“팔 한 짝이라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산정한 가치지?”

“그건 말씀드릴 수가 없사옵니다.”

“그렇군.”

나는 말파스에게 대가를 지불할 마음 따윈 추호도 없었다.

이미 힌트를 얻었기 때문이다.

마왕의 옥체는 신성하다.

그건 모든 마물들이 알고 있는 사실. 이런 마왕의 팔 한 짝을 내놓으라고 했다?

아몬이 꽁꽁 숨기는 비밀,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비밀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이라 이 정도의 대가를 요구하는 거다.

쉽게 말해, 아몬은 반란을 획책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획책이 아닐지라도 최소한 반란을 할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겠지.

나는 그저 제자리에서 손 안 대고 코 푼 것과 진배없었다.

다른 놈들은 이런 융통성이 없었단 말이지. 대가를 내놓으라고 해서 진짜 내놓기나 하다니... 원칙주의자들이 따로 없어.

어쨌든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확고해졌다.

이로서 아몬, 오르바스, 그리고 거프의 처우는 정해진 셈이었다.

씁쓸했다. 날 위해 몸 바친 놈들인데 죽여야 하다니.

그리고 영향력이 약해진 것에 대해 경각심이 생겼다.

‘아델을 빨리 떨어뜨려야 한다.’

내가 인간의 몸으로 오래 있어서든, 아니면 아델의 신성력이 영향을 끼쳤든 상관없었다.

아델만 타락시키면 된다.

그럼 나는 다시 마왕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고, 영향력은 자연히 복구될 터였다.

나는 말파스의 흉측한 면상을 잠시 주시하다 명령을 내렸다.

“돌아가 보거라. 의뢰는 취소다.”

“그럽지요. 무언가를 알아내셨사옵니까?”

“그건 네가 알 바 아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럼 전 이만 제 골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곧 어둠속으로 사라진 말파스.

그제야 무기를 내린 레오나가 자신의 앞머리를 후 불었다.

“재수 없어...”

말파스를 향한 욕지거리였다.

유리아 또한 공감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들을 한 번씩 바라보며 씨익 웃은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자신의 고성에 살고 있는 아몬. 놈을 호출하기 위해서였다.

얼마 뒤,

고오오...!

어디서부터 나타났는지 모를 검은 연기가 옥좌 앞으로 모이더니, 까마귀의 머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어서 검은 털이 가득한, 깡마른 수인의 몸이 생겼다.

자신의 존재를 현신시킨 아몬은 날 보자마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왕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이구나, 아몬.”

“예, 마왕님. 혹여 하달하실 명령이라도...?”

“명령이 아니라면 널 불러선 아니 되는가?”

“아닙니다.”

이놈을 어찌 처리한다... 그냥 죽이기엔 정말 아까운데...

아몬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나는 좋은 생각이 났다.

실비아, 그리고 아델의 아이테르 에너지도 소비시킬 겸, 둘에게 잡히도록 만들자.

이이제이라는 거지.

아니, 실비아와 아델을 오랑캐와 비유할 수는 없으니까 이독제독으로 정정해야겠군.

“기세 좋게 지구로 쳐들어왔을 때는 언제고 숨죽인 채 마물만 소모해대니 내가 뭘 하고 있나 의문이 들 거다. 그렇지 않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마왕님께선 왕비님과 유리아 님을...”

“슬슬 지구에 큰 타격을 줄 때도 되었지.”

아몬이 침묵한 채 고개를 들었다.

그는 지금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의아해하고 있었다.

연기를 하는구나. 정말 가증스런 놈이다.

“며칠 안으로 연락하마. 준비해라.”

그 말에 아몬의 어깨가 떨렸다.

또 소모품취급을 당할까봐 두렵나보지?

놈을 향해 히죽 웃은 내가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레오나와 유리아는 널 상대하러 보내지 않을 생각이니까. 지구에서 마음껏 활개를 쳐보아라.”

“하, 하지만 마왕님. 지구엔 또 다른 강대한 자들이...”

“동료를 붙여주마.”

“동료라 하심은...”

“오르바스, 그리고 거프.”

친목을 다졌던 두 놈을 언급하자, 아몬의 시꺼먼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아차린 것이다.

놈의 고개가 아래로 조아려졌다.

“마왕님... 저는...”

“너희들에게 제약은 없다. 하고 싶은 건 전부 해봐라.”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마왕님의 명령이 있기 전까지 성에서 나오지 않을 테니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돌려 말하며 용서를 구하는 아몬.

저런 반응으로 말미암아볼 때, 놈은 확실히 내 뒤통수를 치려고 했다.

그러게 왜 그런 생각을 했니. 이런 결정을 내리는 내 가슴이 아프잖아.

어찌됐건 현재의 아몬은 내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명령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철회해 달라 읍소를 하는 것이 그 증거.

이때 빨리 쳐내버려야 한다.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해.

“나는 오랜 시간동안 헌신한 네게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기회... 라니요...?”

“남은 비스트 슬레이어들 중, 한 명이라도 생포할 수 있다면 용서를 원하건, 자유를 원하건 간에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 마왕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마.”

나는 기존처럼 마물을 그냥 사지로 내모는 게 아니라, 보상이 있는 미션을 준 거다.

지금 놈은 용서라는 단어엔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을 테지.

아몬이 신경 쓰는 단어는 자유.

내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아몬에게 있어서, 자유는 크나큰 유혹이다.

또한 꼼짝없이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데 공식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아몬으로서는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다.

“왕비님과 유리아 님은 참전하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까...?”

저것 봐라. 살아날 구멍이 생기는 것 같자 냅다 떡밥을 무는 모습을.

“그렇다. 허나 오르바스의 군단 정도는 처리하러 내보낼 수도 있겠군.”

“제, 제가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상관없습니다! 기필코 완수하겠습니다...!”

내 예상대로, 아몬은 전의를 다지며 명령을 받아들였다.

동료들을 모으려 했던 주제에 동료애 따윈 하나도 없네. 거지같은 기회주의자 새끼.

그를 보낸 나는 옥좌의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최악의 경우 아몬과 싸울 것을 대비했는데, 전투는 없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리고 집에 오면 편할 줄 알았는데 불편하기만 하다.

얼른 돌아가야지.

**

지구로 돌아온 나는 하루의 시간을 들여 마기를 꼼꼼히 제거한 다음 연구실에 들렀다.

박사가 연구실에 있다는 연락을 해와서였다.

그리고 거기엔 실비아도 있었다.

자신의 디바이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그녀는, 정장차림의 내가 연구실 안으로 들어오자 눈을 빛냈다.

“출장 갔었다며? 어땠어?”

“잘 끝냈습니다. 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

“요즘 사이클을 시작했는데, 운동할 겸 들러봤어.”

“의정부에서 여기까지요? 50킬로가 넘는데?”

“운동하기 딱 좋은 거리라고 봐.”

얘는 운동에 미친년인가...? 자전거로 세 시간이나 걸릴 텐데 어이가 없다.

헛웃음을 켠 나는 제작대에 앉아있는 박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실비아의 눈치를 보느라 당장에라도 내게 안기고 싶은 마음을 참으면서 몸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실비아를 향해 눈총도 줬다. 빨리 꺼져 달라는... 그런 눈총 말이다.

그런 박사의 바람이 통했을까? 실비아가 박사에게 사근사근한 인사를 전한 뒤 헬멧을 썼다.

그리고는 내 어깨를 툭 두드리며 신발을 신었다.

“항상 고마워.”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출장 때문에 피곤할만한데도 디바이스를 제작하려고 여기 왔잖아. 아니야?”

“맞긴 한데...”

“그래서 고맙다는 거야. 잘 부탁해.”

“예. 들어가 보세요.”

고개를 끄덕인 실비아가 연구실 밖을 나가려다 멈칫했다.

그녀가 몸을 돌리더니 내게 작게 속삭였다.

“아델한테 연락이라도 해줘. 많이 삐쳐있더라.”

“출장 간다고 말했었는데... 알겠습니다.”

무미건조하게 웃은 실비아는 곧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연구실의 문이 닫힘과 동시에, 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게 달려와 안긴다.

성큼성큼 다가와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허리를 다리로 감싼 그녀가 내 목에 진한 키스를 날려댔다.

그런 박사의 엉덩이를 받치고 그녀의 휴게실로 간 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고작 이틀 못 봤을 뿐인데 난리도 아니네. 어제 전화도 했잖아. 진정해.”

“보고 싶었으니까 그렇지... 아까 실비아가 나가기 전에 무슨 얘기했어?”

“그냥 잘 부탁한다고 그러더라.”

“그렇구나... 아, 그리고 물어볼 게 있어.”

“말해.”

“너 요새 아델한테 성경 배워?”

실비아 이년... 입이 좀 싸군.

뭐, 말하지 말라고는 안 했으니 이렇게 폄하하기엔 무리가 있었고, 박사가 언제고 알아차리는 건 시간문제였으니 넘어가자.

“다른 행성의 종교는 어떤지 알아만 보는 거야. 신기하더라고.”

“성경만 배우는 건 아닌 듯싶은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실비아가 그랬어. 아델이랑 네 관계가 정말 좋다고. 서로 호감이 있다고...”

이런 말을 하는 박사의 눈빛은 이글거림과 동시에 파리하게 떨리고 있었다.

질투에 미친 것처럼 말이다.

코웃음을 친 내가 단칼에 부정했다.

“착각이야.”

“그렇지...? 착각이지?”

“응. 아델한테 직접 물어보지 그랬어.”

“물어봤어. 지혁이를 어떻게 생각 하냐고.”

저 대답을 듣는 순간, 난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물어봤다고...? 그랬어...?

일단 태연한 모습을 보여주자.

“그러니까 아델이 뭐라고 대답했는데?”

“좋은 사람이라고만 하더라.”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마 아델은 자신이 날 좋아한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기가 창피해서 그냥 얼버무렸을 것이다.

그래서 박사가 이 정도의 반응만 보이는 거고.

역시 아델은 최고야. 실비아와는 다르게 예쁜 짓을 해댄다니까.

얼른 품에 안고 싶다.

“별 말 안 했네.”

“응.”

“나 없는 동안 입덧은 안 했고?”

박사가 피식하며 내 어깨를 툭 쳤다.

“아직 그럴 시기는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박사의 허리를 안은 채 앞뒤로 천천히 움직이던 나는, 아몬을 비롯한 세 마리의 마물이 실비아와 아델의 아이테르 에너지를 얼마나 소모시킬 수 있을까 예상해보았다.

알로켄이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한 방에 정화되긴 했지만... 그래도 S급 마물이 셋인데 많이 까지겠지.

일단 내일 아델을 만나서 디바이스 충전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자.

그녀도 아이테르의 개구쟁이 같은 특성을 알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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