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2 자극 #2
[٩(♡ε♡ )۶]
[뭐하세요?]
[(°◡°♡)]
[쉬고 계십니까?]
[╰(✿´⌣`✿)╯♡]
이모티콘만으로 나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아델을 보며 실소를 터뜨린 나는, 인적이 드문 곳에 차를 몰고 가 세웠다.
마르셀라가 급하게 보자고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다.
차에서 나온 내가 몇 분간 기다리고 있으니, 포탈이 열림과 동시에 마르셀라가 나타났다.
상당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는 내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용건을 말했다.
“어제 마계에 들렸었는데... 그쪽에서 명을 기다리고 있는 아몬, 놈을 필두로 한 마물들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사와요.”
“수상한 움직임?”
“타 마물들과 단체를 만들고 친목을 다지고 있어요. 좋지 않은 생각을 할까봐 두렵습니다.”
마물들도 서로 친목을 다지긴 한다.
번식활동도 하고,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다.
본래라면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일.
하지만 아몬은 외로운 늑대 스타일이다.
과묵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길 좋아하는 최상위 마물.
그런 놈이 타 마물들과 단체를 만들고 친목을 다진다?
확실히 수상하긴 하나...
“나는 마왕이다.”
내 이름에 묶여있는 마물들이 배신할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짧은 문장에 담긴 의미를 파악한 마르셀라가 순순히 동의했다.
“네, 맞아요. 마왕님은 마물들의 왕이십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네 의견을 들어보고 싶구나.”
나는 마르셀라를 신뢰한다.
직감이 잘 들어맞는 만큼 그녀의 의견을 듣고 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내 말에 기쁜 얼굴을 한 마르셀라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잠시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현재 마왕님께서는 마기를 꽁꽁 감춰놓은 상태세요. 아델라인에게 들킬 것을 우려하셔서 완전히 봉인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로 인해 마왕이라는 이름이 가진 힘이 옅어진 건 아닐까 걱정이 되옵니다. 만약...”
마르셀라가 침을 꼴깍 삼켰다.
뒷말을 하기가 두려운 모양.
나는 그녀가 하고픈 말을 대신 해주었다.
“만약 이대로 쭉 인간 상태를 유지하면, 영향력이 사라져 마물들이 반역을 일으킬 수도 있다?”
“네...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고 사료돼요.”
“그렇군.”
확실히 일 리 있는 말이었다.
최근 이례적으로 불안해했던 마물들도 그렇고, 갑작스레 이런 움직임도 포착되고... 내 영향력이 옅어진 것은 사실인 듯했다.
팔짱을 낀 채 여러 가설을 세워보던 내가 물었다.
“마르셀라, 네 지금 마음은 어떠하느냐?”
“네...? 제 마음이요?”
“충성심이 굳건하느냐 이 말이다. 뭐 달라진 점 같은 건 없나?”
“전 항상 굳건해요. 절대 마왕님을 등지지 않사옵니다.”
하긴, 마르셀라는 내가 죽었음에도 다섯 차례나 부활시킬 만큼 충실한 권속이고, 지금은 기존에 주지 않았던 정까지 준 상태다.
오히려 충성심이 더 올랐으면 올랐지, 배신할 가능성은 아예 없을 거다.
이런 민감한 사안을 꺼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르셀라는 신용할 수 있다.
“모였던 마물들은 누구지?”
“아몬, 오르바스, 거프입니다.”
하나같이 최고의 능력을 지녔고, 야망까지 큰 우수한 마물들이었다.
아몬은 가공할 최면능력, 오르바스는 지략이 무척 뛰어난데다 군단을 거느렸고, 거프는 주변의 폭력성을 자극해 광분하도록 만든다.
내가 정해놓은 급수로 따지자면 모두 S급.
한 마리만 통제가 안 되어도 마계에 엄청난 피해를 입힐 것이다.
“반역을 일으킨다면 마계를 크게 뒤흔들기 딱 좋은 놈들이로구나. 공교롭다고 생각되지 않는군.”
“네...”
“무료한 일상에 의한 친목은 정말 아니라고 보느냐?”
“아몬은 수백 년간 혼자 있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답이 나와요. 무언가를 획책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안식을 내려주어야 합니다.”
“심증만으로 저들을 쳐내기엔 아깝다. 말파스에게 확인을 해보아야겠구나.”
그 말에 마르셀라가 움찔했다.
“마, 말파스에게요...?”
“음습한 놈이긴 하나 진실을 알아내는 데엔 이만한 마물이 없지.”
“그렇긴 하지만... 대가가 필요할 텐데요... 그것도 납득이 안 가는 대가가...”
“그만. 확인이 불가하다면 발품을 팔면 되니 걱정하지 말거라. 유리아의 활은 완성되었느냐?”
“완성됐어요. 유리아 님께서 아주 만족해하셨습니다.”
“허면 마실을 나갔다 와야겠군. 세화와 유리아에게 연락해두어라.”
“네, 마왕님.”
마르셀라는 곧바로 포탈을 타고 사라졌다.
한숨을 내쉰 나는 잠깐 가만히 서있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치를 감상하는 게 아니라, 포탈로 인한 마기가 내 몸에 묻었을 테니 그걸 날려버리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적당히 시간을 보낸 나는 차에 타고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또 제 톡을 그냥 무시하셨어요!]
화난 아델이 보낸 톡.
피식한 나는 답장을 보내려다 문득 이러한 생각을 해보았다.
인간인 상태를 유지하느라 영향력이 옅어진 게 아니라, 아델의 신성력이 알게 모르게 내 내면을 파고들어서, 마기를 알음알음 지워가고 있었다면?
저번에 느낀 이상한 감정, 그리고 마르셀라가 내게 유해졌다고 말했던 것을 상기해봤을 때, 이 또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확인부터 해보자.’
그래, 확인이 먼저다.
생각을 마친 나는 휴대폰을 두드렸다.
[어떤 식으로 답장을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이모티콘만 보내시니까요.]
[지혁 씨도 이모티콘 보내면 되잖아요!]
[그걸로 대화가 됩니까?]
[( -᷅_-᷄)]
[생각해보겠습니다. 저 집에 도착했는데 쉬어도 될까요?]
[알겠어요. 저도 이만 쉴래요. 잠 잘 거에요.]
제발 자라. 네가 자야 내가 편해져.
[좋은 꿈꾸세요, 아델.]
[지혁 씨도요. (๑ᴖ◡ᴖ๑)]
**
집으로 돌아온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식탁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많은 음식이 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
천천히 부엌으로 향하는 내게 환한 미소를 지은 박사가 날 반긴다.
“왔어?”
“이게 대체 뭐야?”
“축하하자고 했잖아. 음식으로 기분 좀 내봤어. 얼른 손 씻어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을 씻고 나온 내가 자리에 앉자, 박사가 따뜻한 밥을 퍼서 내 앞에 둔다.
이후 맞은편에 앉고는 날 바라보며 생긋 웃는다.
이런 예쁜 행동을 하다니... 얘도 현모양처 다 됐네.
나는 기꺼운 듯 숟가락을 들었다.
식사를 마친 우린 함께 설거지를 했다.
고무장갑을 끼고 서로의 얼굴에 퐁퐁을 묻히거나, 심심하면 입술을 부딪쳐 애정을 표현하거나 했다.
설거지가 끝난 후엔 소파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 누구도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여느 때처럼 딱 달라붙어 코미디 영화를 시청했다.
그러던 중, 영화의 중반부가 지나갔을 때...
박사가 돌연 내 위에 올라탔다.
나는 자연스럽게 박사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박사가 울먹거리는 투로 말한다.
“오늘 하루 정말 힘들었어. 병원에서의 일이 꿈이 아닐까, 설마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해볼 정도로.”
“상태가 별론데... 내가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라고 했잖아. 지금 연구실 의료기기에 들어가자.”
“조현병이 도진 게 아니라, 기쁘다는 얘기야.”
“그래?”
“응...”
나는 박사에게 맞춰주면서도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아이에게 마기가 내재되어있다면 박사도 영향을 받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일단 홍채는 괜찮고, 동공도 원형.
피부는 희긴 했지만 창백하진 않았다. 박사의 원래 피부색이었다.
정상이긴 하지만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
아직 태아는 신체부위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왜 그래?”
의아해하는 박사의 물음.
어색하게 웃은 내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아냐. 기쁜데 초를 쳐서 미안하지만... 출장이 잡혔어. 중요한 일이야.”
“출장?”
낮게 가라앉은 박사의 목소리.
눈썹을 구긴 그녀가 따진다.
“명색이 사장인데 출장이 너무 잦은 거 아니야? 아랫사람 시키면 되잖아.”
“아랫사람 누구?”
“네가 회사에서 가장 믿는 사람. 저번에 말했던 전무나, 아니면 그 싹싹하다고 했던 애...”
“아람이?”
“응, 걔.”
“아람이가 일은 잘하지. 근데 누나도 알잖아. 중요한 건은 내가 직접 처리하는 거.”
“그렇긴 해도...”
나는 탐탁지 않아 하는 박사를 옆으로 옮겨놓고 달랬다.
박사가 입은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배를 살살 문지르기 시작하니, 그녀가 조금 진정이 된 듯 나른한 표정을 짓는다.
“회사를 더 크게 키울 기회야.”
“이미 크잖아... 그렇게까지 일할 이유가 있어?”
“욕망은 끊임없이 생기는 법이거든. 특히 권력욕이나 금전욕 같은 건 더 그러지. 인간이란 게 그래. 그리고 이제 비스트 슬레이어가 두 명... 아니, 세 명이나 더 생기는 만큼, 연구실 운영도 수월하게 해야 하니까 돈이 많이 필요해. 이해해줘.”
박사의 안색이 바뀌었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얼굴.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좋아. 급한 불은 껐고... 이제 마계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는 화재를 진압해야겠다.
**
오랜만에 들른 마계는 정감이 있었다.
온몸을 찌르는 불쾌한 공기부터 시작해서 칙칙한 하늘까지... 아주 좋다.
마왕성 알현실 옥좌에 앉아있는 내 양옆으론, 낫과 활을 든 레오나와 유리아가 함께했다.
이블 발키리로 변신한 레오나는 당장에라도 낫을 휘두르고 싶은 듯 몸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반면 유리아는 우수에 젖은 눈으로 한 곳을 쳐다보는 상태였다.
그쪽 방향에 있는 별채, 그 옆 산속에 사는 메릴을 찾아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번 일만 처리하면 데리고 오도록 해주어야겠다.
마계는 매우 조용했다.
내가 기분이 별로라는 티를 팍팍 내고 있어서 모든 마물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따로 모아놓고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온 마계가 내 기운을 눈치채고 얌전히 있을 정도라면 마기가 옅어지진 않은 것 같은데...
옥좌의 팔걸이에 팔을 괸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포탈을 열었다.
쩌어억-!
그 안에서부터 나온 마물은 온몸의 피부가 거뭇한 인간형 마물, 말파스였다.
다 말라죽어가는 꼽추 노인네처럼 보이는 이놈은 아주 특이한 마물이다.
신체능력은 허접쓰레기, 겉으로 드러나는 마기도 별로다.
지구에 나타난다면 F급을 벗어나지 못할 정도의 미약한 마기만 풍기고 있다.
하지만 놈이 능력을 사용할 땐 달라진다.
단숨에 S급으로 점프할 만큼 엄청난 마기를 뿜어낸다.
말파스의 능력은 소원 성취.
바라는 소원을 말하면 말파스가 대가를 요구하고, 그 대가는 마왕이든 F급 마물이든 모두 지불해야 한다.
특별대우 같은 건 없다는 소리다.
소원과 대가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 등가교환이 아닌, 한쪽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부등가교환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손해를 보는 쪽은 소원을 빈 존재. 말파스는 절대 자신에게 불리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놈이 못 들어주는 소원 따윈 없다.
만약 소원이 실패로 끝난다면 그건 의뢰인의 대가가 모자랐던 거다.
놈이 양손을 비비는 모습을 지켜보던 내가 말했다.
“말파스.”
“예, 마왕님. 하명하시옵소서.”
칼칼거리는, 듣기 싫은 목소리.
레오나와 유리아가 미간을 살짝 구겼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가만히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네게 의뢰를 해야겠다.”
그 말에 말파스가 몸을 흠칫 떨었다.
“의뢰를 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마왕님께서...?”
“귀까지 먹은 모양이로구나. 제대로 들었다.”
“흘흘... 오래 살고 볼 일이로군요. 유희거리라도 찾으신 모양입니다. 하지만...”
“알고 있다. 네놈의 능력은 의뢰자가 누구든 무조건 대가를 지불해야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렇사옵나이다. 허면 말씀해주십시오. 어떤 소원을 바라십니까?”
“아몬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느냐?”
“아몬... 마계의 최고참이자 최고위 마물인 아몬이 반란이라... 흥미로운 의뢰로군요...”
말파스의 시꺼먼 눈동자가 감겼다.
주판을 두드리고 있다는 뜻. 잠시 침묵하던 놈의 눈이 번쩍 뜨였다.
“대가는 마왕님의 팔 한 짝입니다.”
팔 한 짝? 그것도 마왕의 팔?
이 씨발 사기꾼새끼가...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