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91화 (191/471)

EP.191 자극

“허억...!”

병원을 나오자마자 가쁜 숨을 몰아쉰 박사는, 기쁨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안겨왔다.

“지혁아...!”

내 목을 부서져라 안는 박사.

나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내가 된다고 했잖아.”

“응...”

침착하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나 또한 상당히 흥분한 상태였다.

내 아이가 박사의 뱃속에 있다.

벅차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박사를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나흘 뒤에 다시 내원하라고 했어. 확실하긴 하지만 다시 한 번 체크해보자네.”

“네...”

“오늘은 집에서 쉴래? 아니면 평소대로 일상을 보낼래?”

“평소처럼 지낼게... 정말 기쁘지만 아직 확실해진 건 아니니까...”

“확실하다니까?”

“아, 그랬지... 미안해. 내가 지금 정신이 없어서...”

이해하고도 남는다.

오랜 시간 노력을 해왔음에도 임신하지 못해서 거의 포기상태였는데, 임신이 됐다고 하니 기쁘리라.

박사의 눈가를 닦아준 나는 그녀를 조수석에 태우고 시동을 걸었다.

이후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물었다.

“파슨스라는 성은 버린 줄 알았더니 아니네?”

“제니퍼 캐시로 쓰기엔 조금 그래서... 본부 책임자 이름이잖아. 눈치채지는 못하겠지만 의심이라도 하면 골치 아프니까 그냥 위장용 이름으로 쓴 것뿐이야. 그런 이름 따윈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그래.”

“지혁아, 내가 저번에 그랬었잖아. 몇 번이나 비슷한 식으로 꿨다던 꿈... 그거 기억나?”

“기억하지. 창백한 피부에 찢어진 동공... 그거?”

“응. 아무래도 그게 태몽이었나봐.”

허... 그게 태몽이라면 너무 불길하잖아.

나한텐 좋지만.

고개를 주억거린 내가 말했다.

“그런가보다. 그리고 누나가 멍하니 있는 동안 의사한테 물어봤는데, 조현병 약은 아이한테 엄청 안 좋으니까 끊으래. 증세가 생기면 의료기기에서 치료하자.”

“알았어요... 요즘은 먹지도 않고 있어.”

“잘했네.”

“저... 지혁아.”

“말해.”

“오늘 일찍 들어와 주면 안 돼? 디바이스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념비적인 날인데... 축하하고 싶어.”

당연히 축하해야지.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럴게.”

“시간 말해주면 내가 데리러 갈게.”

“누나는 집에 있어. 늦지 않게 돌아갈 테니까.”

“알았어.”

요가학원 앞까지 차를 몰고 간 나는, 안전벨트를 푼 박사가 들이대자 피식했다.

한동안 열정적으로 내 입술을 탐하던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갈게.”

“잘 다녀와. 집에 갈 때 연락하고.”

“응, 사랑해요.”

마지막으로 입술에 쪽 소리가 나도록 키스를 한 박사는, 차문을 열고 요가학원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 몇 번이나 날 돌아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박사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나는 연구실로 방향을 잡고 차를 출발시켰다.

‘임신이라...’

계획은 하긴 했다. 애초에 박사를 임신시켜서 절대 떠나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었다.

내 아이가 생긴다는 기분도 좋았다. 아직 실감은 제대로 안 나지만 말이다.

그런데 세화가 알면 뭐라고 할까?

유리아도 삐칠 테고... 갑자기 오한이 찾아온다.

또한 박사가 밴 아이에겐 마기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마르셀라에게 약을 만들어달라고 해야 된다.

박사와 마주친 아델이 정화라도 사용해버리면 진짜 좆 되니까.

오늘은 기쁨과 동시에 고민거리도 깊어지는 날이었다.

**

푸쉬익-!

대충 편의점 음식을 먹으면서 디바이스를 제작하고 있던 나는, 연구실 문이 열리며 아델이 들어오자 그녀를 반겼다.

“오셨어요?”

“네! 어제 안녕히 주무셨나요?”

“예. 아델은요?”

“저도요!”

말을 마친 아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뭐지? 내가 뭐 했나?

고개를 갸웃하며 아델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가 총총걸음으로 휴게실을 향해 가며 말한다.

“저는 얌전히 있을 테니까, 지혁 씨는 일 보셔요.”

아니, 얌전히 있지 마. 날 방해해줘.

아델은 늘 그렇듯 먹거리와 함께 TV를 시청했다.

하지만 평소보다 더 나를 흘긋거리면서 무언가 있다는 티를 팍팍 냈다.

10분간 눈이 다섯 번이나 마주칠 정도면 말 다했지.

그런데 저 묘한 웃음은 뭘까? 아까도 그러더니 궁금해 미칠 것 같다.

난 결국 디바이스 제작을 중지하고 휴게실로 들어갔다.

“저는 방해하지 않았어요. 지혁 씨가 온 거죠.”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이런 말을 하는 아델.

네가 궁금하게 했는데 안 올 수가 있냐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신 내가 다소 가라앉은 투로 물었다.

“왜 자꾸 쳐다보십니까?”

“잠깐만요.”

아델은 자신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나와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헤벌쭉해져선 입에 손을 가져가 킥킥거렸다.

잠깐 그러고 있던 아델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흐흠! 흠! 그냥 지혁 씨가 뭘 하시나 궁금했어요.”

“그게 끝인가요? 평소보다 더 흘겨보는 느낌이었는데.”

“제가 그랬어요? 지혁 씨는 제게 참 관심이 많으시네요.”

태연한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좋아라하는 것이 티가 난다.

혹시 인터넷에서 연애에 관한 팁 같은 걸 보는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어이가 없다.

개개인의 성격이 다른 인간의 특성상 글처럼 되지는 않을 텐데... 나중에 큰 코 다치겠구만.

일단은 놀아줘야지.

어깨를 으쓱한 나는 휴게실 밖으로 나와 디바이스를 제작했다.

한 시간, 두 시간, 그리고 세 시간...

아무 말 없이, 아까처럼 아델을 흘기지도 않고 제작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아델이 휴게실 밖으로 나와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는 바퀴를 쫙 끌어 내 옆으로 왔다.

누가 봐도 날 봐주십사 하는 행동.

심지어는 머리를 풀어헤친 다음, 양팔을 올려 다시 묶기까지 한다.

이번에 본 글은 분명히... 뒷머리를 묶는 여자는 섹시해보여서 남자가 좋아할 거라는 글이겠군.

물론 좋아하긴 한다. 하지만 유리아나 실비아처럼 여우상인 여자가 해야 좋지, 아델처럼 귀여운 여자가 하면 가소롭기만 하다.

게다가 긴팔에 박시한 맨투맨이라 겨드랑이도 안 보이잖아.

“흐흠...”

헛기침까지 하면서 관심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용접기를 내려놓은 나는 의자를 돌려 아델을 마주보았다.

“뭐하십니까?”

“머리를 새로 묶고 있어요.”

“휴게실에서 묶으면 되지, 왜 굳이 여기에서 하시는 건데요?”

“디바이스가 어떻게 만들어지나 구경도 하려구요. 왜요? 혹시 신경이 쓰이시는 건가요? 저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했는데... 방해일까요?”

“예.”

단호한 대답에 벙 찐 아델이 자신의 휴대폰을 켰다.

화면을 보던 그녀는 이럴 리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글대로 하면 내가 좋아할 줄 알았나보다.

딱 보니까 오늘 이후로 인터넷은 안 믿겠구만.

“아델.”

가라앉은 내 말투에, 아델이 깜짝 놀라 바짝 굳었다.

“네...?”

“정말 방해인지 모르셨습니까?”

“.... 아니요... 알고 있었어요...”

“어제도 그랬잖아요. 오늘은 정말 디바이스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앙다문 아델. 나는 인자한 미소로 그녀의 무릎 위에 올라간 손 위에 내 손을 포갰다.

“남녀관계에 관한 건 글로 보면 안 됩니다.”

그 말에 아델이 움찔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시선을 이리저리 굴린 그녀가 발뺌한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요...”

“거짓말을 하려면 행동까지 태연해야죠. 아델은 거짓말을 잘하는 성격이 절대 아닙니다.”

“.....”

“그럼에도 제게 거짓을 말하려 해서 조금 서운합니다. 저는 솔직한 아델이 정말 좋은데... 세상의 때가 묻어가는 걸 보니까 슬프네요.”

그리 말하며 포갠 손을 빼려고 한 나는, 아델이 저번처럼 검지를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완전히 풀이 죽은 그녀가 순순히 말한다.

“지혁 씨... 죄송해요...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지혁 씨를 떠보려고 했는데, 들키니까 저도 모르게 그만...”

“절 왜 떠보려고 했는데요?”

“그게...”

우물쭈물하는 아델.

그녀의 마음은 십분 이해가 갔다.

부끄럼이 많고 이런 풋풋한 관계가 처음인 그녀로서는 날 좋아하냐고 물어보기가 쉽지 않을 터였으니까.

생긋 웃은 나는 그녀를 조금 도와주기로 했다.

“아델.”

“네...”

“제 마음이 그대로인지 확인하고 싶었나요?”

정곡을 찌르는 말에 어깨를 움찔하는 그녀였다.

내가 말을 이었다.

“제 마음은 예전부터 드러내고 있었고, 아델 또한 그걸 잘 알고 있습니다. 맞죠?”

“맞아요...”

“그런데 굳이 절 떠볼 필요가 있었나요?”

“사, 사람의 마음은 언제든 바뀔 수 있잖아요.”

“그건 그렇죠. 성격, 처한 환경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며칠 만에 연모하는 대상이 바뀌는 사람들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니에요.”

“.... 정말이요?”

“지금 아델이 제게 그런 인상을 받았다면, 제 처신이 잘못됐다는 뜻이겠죠. 제가 더 열심히 노력할게요.”

아델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그녀는 자신이 잡은 내 검지를 손톱으로 꾹꾹 누르고 있었다.

내 검지가 마치 자신의 손인 줄로 착각하는 듯한 행동.

그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런 인상을 받은 적은 없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지혁 씨의 진심이 느껴졌구요... 그냥... 제가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처음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그래서 바보 같은 짓을 했을 뿐이어요...”

“그런 건가요?”

“네... 저는 휴게실에 가있을게요. 쥐 죽은 것처럼 가만히 있을 테니까 지혁 씨는 디바이스 제작에 집중하셔요...”

“몇 시간동안 집중을 했으니 쉬어도 될 것 같습니다.”

아델은 자신의 얼굴에 손부채질을 했다.

벌겋게 상기된 표정을 한 채 애써 열을 식히려는 모습이 귀엽다.

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델 또한 마주 일어났다.

검지는 여전히 잡고 있는 채였다.

나는 그런 아델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뒷걸음질을 치려던 아델은 침을 꼴깍 삼키더니 굳은 눈빛으로 제자리에 섰다.

난 손을 뻗어 그런 그녀의 앞머리를 정리해주었다.

“바람이나 쐬러 나갈래요?”

“네...”

“배는 안 고파요?”

“네...”

“그러면... 갈까요?”

“네...”

쑥스러움이 폭발했는지 계속 ‘네’ 라는 대답만 하는 그녀.

내 손길을 신경 쓰느라 질문은 듣지도 못한 것이 분명했다.

장난기가 든 나는 아델을 놀렸다.

“내일부턴 성경공부 안 할게요.”

“네... 가 아니라, 안 돼요!”

황급히 대답을 정정한 그녀는 실소를 터뜨리는 날 보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웠던 나는,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욕망을 이기지 못해 아델의 팔을 잡아끌고 품 안으로 가져왔다.

그녀의 여리여리한 등에 팔을 둘러 꽉 안은 내가 물었다.

“이러고 있어도 될까요?”

잠깐 가만히 있던 아델은 내 가슴팍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정쩡한 자세로 안겨있던 그녀는,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나오려고 낑낑거렸다.

그 반응을 보고 아델을 놓아준 내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덥네요.”

“네... 더워요...”

“잠깐 밖에 나갔다 올까요?”

“좋아요...”

나는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는 아델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관계가 한 단계 더 발전한 우린, 옆으로 나란히 서선 가을바람을 만끽하며 떨어지는 낙엽들을 구경했다.

아무 말 없이, 오랜 시간동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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