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90화 (190/471)

EP.190 임신하셨네요

조금 떨어져있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한 채 성경을 읽던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로사리오교에선 사랑에 열려있는지.

아델이 예전에 해주었던 설명으로 판단해보면, 그녀의 행성은 중세 느낌이다.

보수적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터.

하지만 아델의 행동거지를 보면 그러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고개를 든 나는 크림빵을 우물우물 먹고 있는 아델을 향해 물었다.

“아델, 로사리오교에서는 사랑을 제한하나요?”

“창세기 다음 편인 과도기 초반부에 나오니 그때 알아보도록 하세요.”

“왜요? 지금 알려주시면 안 됩니까?”

“저 배불러요.”

말을 돌린 아델이 체크무늬 돗자리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얼핏 본다면 그저 밤하늘의 별을 구경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델이 어딘가에 있을 로사리오를 찾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눈빛을 보면 안다. 그녀는 로사리오에게 조언을 구하는 중이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면 되냐고 말이다.

가볍게 웃은 나는 성경을 덮고 아델의 옆에 누웠다.

그러자 그녀가 날 타박한다.

“공부에 집중하셔요.”

난 태연한 미소를 띤 채 몸을 옆으로 돌렸다.

아델은 눈동자를 굴려 내 눈치를 보다가, 자신 또한 용기를 내어 몸을 돌렸다.

서로를 쳐다보는 상태가 된 우리.

나는 손을 들어 아델의 입가에 가져가려다 멈칫했다.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

아델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나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다고 확신이 선 나는 손을 들어 아델의 입가에 묻은 크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오래 공부했으니, 조금만 쉬고 싶습니다.”

“.... 알았어요.”

밤하늘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지만, 가로등 덕분에 아델의 얼굴이 벌겋게 변한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이런 반응으로 볼 때 로사리오교의 계명이 빡빡하진 않은 것 같은데... 떡을 칠 땐 달라질지도 모른다.

“빵은 맛있었어요?”

“네...”

“제 거는 어디 있어요? 없던데...”

아델이 움찔했다.

누가 봐도 나 수상하오... 라는 표정을 지으며 내 시선을 피하는 그녀.

내가 낮고 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하자, 한숨을 푹 내쉰 아델이 순순히 실토한다.

“제가 먹었어요... 너무 맛있어서 저도 모르게 손이 갔어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대신 젤리 드릴게요. 집에서 가져온 거.”

“선심 쓰듯 말하시네요? 그것도 다 먹을 예정이었나요?”

“네...”

부끄러워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네.

나는 자신의 청바지를 뒤적거린 아델이 자그마한 젤리 봉지 하나를 꺼내 내밀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괜찮아요.”

“꼭 드셔주셨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사먹으면 됩니다.”

“제가 드리지 않은 거잖아요.”

이런 가슴이 두근거리는 말도 할 줄 알다니... 많이 컸다. 많이 컸어.

내가 못 이긴 척 손을 슬쩍 내밀자, 아델이 내 손바닥 위에 젤리를 올려놓고 배시시 웃는다.

“맛있게 드세요.”

“아껴서 먹어야겠네요.”

“그러지 않으셔도 되어요. 집에 더 있는걸요.”

“또 주실 건가요?”

“네. 내일 연구실에서 드릴게요.”

은근슬쩍 연구실로 찾아가겠다는 말을 하는 아델이었다.

솔직히 끌려 다닐 거라고만 예상했는데, 이렇게 적극적일 줄은 몰랐다.

“전 아델을 언제나 환영하지만... 내일은 하루 종일 디바이스만 만들어야합니다. 이미 많이 늦어졌어요.”

“.... 요새 지혁 씨만 일하시는 것 같던데요? 박사님은 아직도 병이 낫지 않으셨나요?”

“며칠 뒤에 복귀하신다고 하네요. 안타깝지만 내일은 안 됩니다.”

“구경만 할게요.”

“이런 말을 하셔놓고는 구경만 한 적이 없잖습니까.”

입을 삐죽 내민 그녀가 불만을 토로한다.

“저는 휴게실에서 가만히 있었는데, 지혁 씨가 제게 말을 걸으셨잖아요.”

“그건 맞습니다.”

“그것 보세요. 저는 얌전히 있을 수 있단 말이에요.”

내가 얌전히 못 있겠으니까 이런 말을 하는 거 아니냐.

널 보면 같이 놀고 싶다고.

나는 말없이 아델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무언가 찔리는 듯 긴 속눈썹을 내리깔았는데, 마치 철없이 어리광을 부려서 미안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한동안 아델의 동글동글한 얼굴을 살피던 내가 말했다.

“오셔도 됩니다. 단, 오전엔 일이 있으니 점심부터 오세요. 그때까진 참을 수 있죠?”

그 말에 아델의 안색이 매우 밝아졌다.

“네... 참을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상체를 일으킨 나는 아빠다리를 한 채로 성경책을 폈다.

그러자 아델이 비닐봉지를 뒤적거리며 바나나 우유를 꺼내 마시기 시작했다.

먹성이 좋아도 너무 좋잖아.

나는 아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손을 내밀었다.

“저도 하나 주세요.”

“아, 네...”

@@

집으로 돌아온 아델은 땀이 송골송골 맺힌 실비아가 연한 갈색으로 된 액체를 마시고 있자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간 아델이 물었다.

“초코우유에요?”

“이거? 초코 맛이 나는 단백질 보충제인데... 먹어볼래?”

“네.”

실비아가 웃는 낯으로 물통을 건넸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충제를 한 입 마셔본 아델이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이건 초코 맛이 아니에요. 초코에 대한 모독이에요.”

그 말에 실비아가 빵 터져버렸다.

어깨에 걸친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닦아낸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냥 느낌만 낸 거야. 데이트는 재미있었어?”

눈에 띄게 당황해하는 아델.

그녀가 버럭 소리쳤다.

“데, 데이트라니요! 지혁 씨와 저는 경건한 마음으로 성경공부를 했을 뿐이어요!”

“정말 공부만을 위해서 지혁이를 만난 거야?”

“.....”

대답하기 곤란한 얼굴.

인자한 미소를 지은 실비아는 아델의 윗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내가 캐묻는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네 오해야. 네가 느끼고 있는 사랑에 대해서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아니에요... 저는 세상에서 실비아 언니를 가장 믿어요. 그리고 사랑이 아니라 호감일 뿐이어요.”

“남녀관계에서의 호감은 사랑의 범주 안에 포함되어있다고 생각해. 굳이 분류해서 나눌 필요는 없잖아. 똑같이 알콩달콩한 마음인데. 그치?”

“.... 네에...”

“근데 너희 만난 지 얼마 안 됐잖아. 그런데도 매일 만나고 싶을 정도야?”

장난기가 가득 어린 실비아의 물음.

아델이 잠깐 고민하다 진중한 투로 말했다.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매일 보고 싶은 거에요. 상대방을 알아가는 단계니까 자주 만나야지요.”

당돌한 대답에 실비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본 아델이 속으로 기뻐했다.

언제나 침착한 실비아가 놀랄 정도라? 자신도 많이 성숙해졌다.

“일리 있는 말이네. 그래서, 네가 본 지혁이는 어때?”

“항상 침착하시고, 똑똑하고 친절해요.”

“그게 끝이야?”

“절 많이 배려해주세요. 저를 아끼는 마음이 느껴져요.”

“확신은 없어 보이네? 내가 넌지시 떠볼까? 지혁이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서로 좋아하니까 관계가 발전한 것 아니겠는가.

저번에 지혁이 아델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으면서... 실비아도 가만 보면 맹한 구석이 있다.

그리고 이런 쪽으로는 자신이 선배였다. 나중에 실비아에게 남자가 생기면 조언해줘야지.

그리 생각한 아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인터넷에서 봤는데, 남녀관계에 다른 사람이 개입하면 잘 되지 않는대요. 꼭 피해야 한대요. 언니의 마음만 받을게요.”

“단호하네. 알았어. 내일도 만나려고?”

“네, 점심에 연구실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디바이스를 제작하시는 지혁 씨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조용히 있을 예정이에요.”

“그렇게 자세한 이야기는 안 해도 돼. 어쨌든... 힘내. 좋은 소식 있으면 나한테 가장 먼저 알려주고.”

“네, 언니.”

대화를 마친 아델은 욕실에 들어가 욕조 위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슈와악!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차오르는 따뜻한 물.

물을 받는 일은 수십 번이나 해 와서 익숙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놀랍다.

자신이 살던 행성에선 물을 길러서 와야 했는데, 지구는 정말 발전된 행성이었다.

옷을 벗어던진 아델은 샤워기로 몸을 깨끗하게 닦아낸 뒤 욕조에 몸을 맡겼다.

“흐아아...”

절로 늘어지는 소리가 난다.

로사리오 님의 신탁을 완수하면 지구에서 눌러 살고 싶다.

실비아, 지혁을 비롯한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어깨에 물을 치대던 아델은, 옆에 걸어진 수건으로 손을 닦고 휴대폰을 만졌다.

포털사이트에 [남자가 여자에게 관심이 있을 때 하는 행동]을 검색한 그녀는 조회수가 가장 많은 글을 터치했다.

그리고는 그 글에 완전히 빠져 들어갔다.

“남자가 여자에게 관심이 있을 때의 공통적인 특징. 첫 번째는 눈. 상대방과 눈을 자주 마주친다. 이는 남자든 여자든 똑같다. 호감이 있을 때 하는 본능적인 행동으로서……”

남녀관계를 글로 배우고 있는 아델.

그녀는 내일 지혁을 만나면 여기 쓰인 것들을 확인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

다음 날 오전.

나는 주사실에서 나오는 박사의 어깨를 감싸고,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진료실 옆 벤치에 앉았다.

박사는 몸을 무척이나 떨고 있었다.

아파서 그런 게 아니라, 긴장을 해서였다.

박사의 어깨를 토닥여준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고자 했다.

“검사결과는 금방 나온대.”

“안 됐으면 어떡하지...?”

“왜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얘기해? 시간은 많아. 걱정하지 마.”

내 위로에도 박사는 손가락을 물어뜯기만 했다.

그녀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혹여 임신이 실패했을까봐.

“지혁아, 만약 이번에 안 됐으면 인공수정이라도 할까...? 지금 저기서 신청할래?”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초조해하더니... 중증이다, 중증이야.

게다가 인공수정은 무슨... 마왕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지.

채취실에 들어가서 야동 보고 딸딸이를 쳐야 된다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존엄성이 해쳐지는 기분이 든다.

물론 박사를 위해서라면 흔쾌히 할 수 있긴 하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임신하면 얼마나 좋아.

“진정해. 검사결과부터 듣자.”

“.... 알았어.”

기나긴 한숨을 내쉰 박사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런 박사의 머리를 감싸 안은 나는, 진료실에서 나온 간호사가 이사벨 파슨스의 이름을 호명하자 그녀를 부축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들후들 떨리는 그녀의 다리. 결과를 듣기가 두려운 듯 보인다.

하지만 이내 내 얼굴을 보더니 심호흡을 하며 스스로를 안정시켰다.

날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방증. 이런 박사의 행동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진료실에 들어간 나는 박사를 앉혀놓고 어깨에 양손을 올렸다.

짧은 침묵의 시간이 지나가고, 박사의 정보와 혈액검사 결과지를 다시 체크해보던 중년인 의사의 입이 열린다.

“이사벨 파슨스 씨?”

“네...?”

“임신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박사가 벙 찐 표정으로 입을 떡 벌렸다.

“무, 뭐라구요?”

그런 그녀의 반응에 의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짓더니 말한다.

“검사결과가 명확해요. 배란일 전 가임기 때 착상하셨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다른 검사는 할 필요도 없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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