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88화 (188/471)

EP.188 말랑말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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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말 희로애락이 무엇인지 제대로 느낀 날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감정은 오직 하나, 기쁨뿐이었다.

온 얼굴을 활짝 편 채로 집에 돌아온 아델은, TV를 보며 홈 트레이닝을 하고 있던 실비아의 인사를 받았다.

“왔니?”

“네! 언제 오셨어요?”

“두 시간 전에. 근데 너... 오늘 혈색이 상당히 좋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엄청 힘이 나는 일이 있었어요! 지금 시간 되세요?”

자신이 겪은 일을 당장에라도 말해주고 싶다는 표정.

아델의 높아진 텐션에 피식한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럼 어서 앉으세요! 빨리요!”

식탁에 앉은 아델이 발을 동동 구르자, 헛웃음을 켠 실비아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아델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후 옆에 놓인 미지근한 생수를 들이켜고는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거야?”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아델은 오늘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말했다.

지혁의 연구실에서 샌드위치와 과자 등을 먹었던 것부터,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자신이 한 실수, 그런 자신을 배려해 자동차극장으로 데려와준 지혁, 그리고 그의 진실한 조언까지.

오랜 시간동안 손짓 발짓까지 해가며 지혁의 칭찬을 늘어놓은 아델이 까르르거렸다.

“저는 그런 칭찬은 처음 들어봤어요! 지혁 씨는 성격이 정말 좋으신 분이어요!”

가만히 아델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실비아가 감탄했다.

“대단한 녀석이네. 스무 살밖에 안 됐는데 생각하는 게 어른스러워.”

“그렇죠? 내일도 연구실에 가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갑작스레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델.

연구실에 무척이나 가고 싶지만, 디바이스 제작에 방해가 될까 걱정하는 것이 분명했다.

철없는 소리긴 했다. 박사와 지혁은 디바이스를 빨리 만들어서 아이테르의 영구적인 보관을 가능토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델이 이토록 흥분에 들뜬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오늘 일이 정말 만족스러웠던 모양.

원래라면 방해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설득해야하지만... 실비아는 아델의 저 기분과 기대를 무참히 무너뜨리기 싫었다.

“헤어지기 전에 물어봤어? 내일 또 가도 되냐고?”

“아니요. 그럴 생각을 못했어요.”

“그러면 직접 물어보고, 지혁이의 대답여하에 따라서 결정하는 건 어떨까?”

“그러는 게 낫겠죠?”

“다시 말하지만, 결정은 네가 하는 거야.”

헤실헤실 웃은 아델이 고개를 몇 번이나 주억거렸다.

“그래야겠네요! 지금 당장 지혁 씨에게 톡을 보내야겠어요. 언니는 운동하러 가보셔도 좋아요!”

아델의 순진무구한 명령조에 대소를 터뜨린 실비아는, 그녀가 화장실로 향하자 다시 홈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빠르게 손을 씻고 침대에 털썩 누운 아델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따로 저장해놓은 이모티콘들을 죄다 불러낸 그녀는,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복사를 해놓고 톡을 켰다.

그리고는 지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혁 씨! 뭐하세요? (❀╹◡╹)]

[연구실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곧바로 오는 답장.

무뚝뚝한 톡이었지만 지혁 특유의 온화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만 같다.

아델은 자신의 심장이 갑작스레 두근거려오기 시작하자 가슴에 손을 올렸다.

기분 나쁜 박동이 아니라, 무언가 말랑말랑하고 푹신한... 기분 좋은 박동이었다.

기다란 콧바람을 내뱉은 아델이 손가락을 빠르게 놀렸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디바이스를 만드셔야 하는데 방해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저도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다음에 또 영화 보러 가요.]

[네! 내일 연구실에 가도 되나요?]

[음... 저녁에 오셔도 돼요.]

저녁이라니... 그때까지 자신은 뭘 하라는 말인가?

입술을 삐죽 내민 아델이 이모티콘을 복사해 보냈다.

[╭(๑¯д¯๑)╮]

[마음에 안 드세요? 점심...?]

점심? 점심도 별로였다.

[(๑ò︵ò๑)]

[그럼 오전에 오실래요...? 쉬는 시간마다 성경공부를 하면 될 것 같은데... 어때요?]

몇 개의 실망한 이모티콘을 보내고 나서야 만족스런 대답을 해주는 지혁이었다.

게다가 성경공부라니... 어쩜 이리도 믿음이 깊을까.

지혁에게 넌지시 성경을 배워보라고 권한 것은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헤벌쭉해진 아델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네! 대신 지혁 씨가 디바이스를 만드시는 동안엔 절대 방해하지 않을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죠.]

[좋아요! (✦‿✦) 조심히 들어가셔요!]

톡이 끊긴 아델은 잠깐 아쉬워하다가 눈을 감았다.

수마가 몰려와서가 아니라, 오늘 있었던 일을 곱씹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영화관에서 일으켰던 자신의 추태를 상기하며 아주 다양한 감정을 드러냈다.

극장에서 지혁의 턱을 치고 코를 받아버린 일이 생각났을 땐 허공에 주먹질을 하면서 창피함을 날려버리려 했고,

무식하게 큰 음악이 들려와 팝콘을 허공에 흩뿌린 일이 생각났을 땐 시무룩한 표정을,

지혁이 자연스럽게 일어나 주변 관객들에게 사과한 것이 생각났을 땐 믿음직한 그에게 흐뭇해했다.

자동차 극장에서 그가 했던 진지한 조언을 되뇌자 기쁨이 밀려왔고,

자신이 내어주는 캐러멜 팝콘을 맛있게 먹는 지혁을 생각하니 뿌듯했다.

아델은 아직도 입 안에 캐러멜 특유의 달짝지근한 맛이 느껴지는 것 같자 저도 모르게 입술을 적셨다.

‘맛있다...’

잠깐 입맛을 다시던 아델은 그 상태 그대로 잠들었다.

**

[도 넘은 항의에 분노한 비스트 슬레이어 본부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본부는 세계연합과는 어디까지나 협업관계지 상하관계가 아니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또한 지구를 지키기 위해 보답도 바라지 않고 선의로 도와주는 자신들의 입장을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며……]

[세간의 반응은 매우 뜨겁습니다. 대다수는 아르헨티나에 강한 비판을 했으며, 계속 이런 일이 생길 경우 본부가 손을 떼버리면 어쩌나 걱정을……]

[세계연합 또한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비스트 슬레이어들은 아르헨티나에 나타난 마물을 물리치기 위해 최대한 빨리 출동했다고 발표했으며, 세계평화를 위해 힘을 써주는 본부에게 감사를……]

아침부터 흘러나오는 뉴스의 내용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는 격언이 괜히 나온 게 아니거든.

이렇게 유한 표현으로 협박해서 길을 들여놔야지, 안 그러면 계속 기어오를 거란 말이야.

어차피 나중엔 다 뒈질 놈들이지만 그래도 교육은 시켜놔야 맞다.

계속 칭얼거리는 걸 듣다 보면 짜증나니까.

박사가 싸준 토스트를 맛나게 먹으며 뉴스를 보고 있던 나는, 아델이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휴게실을 나왔다.

오늘 그녀의 패션은... 오버핏 긴팔 베이지색 니트, 그리고 밝은 청바지.

색 조합이 괜찮다. 예쁜 애들은 타고난 패션센스가 있단 말이지.

“안녕하세요, 아델.”

“좋은 아침이에요! 그런데 왜 휴게실에 계시는 건가요? 설마 쉬는 시간을 미리 당겨쓰셔서 성경공부를 덜 하실 생각은 아니었겠지요?”

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네.

나는 웃는 낯으로 아델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아침을 먹고 있었던 것뿐입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아니요! 일찍 나오느라 안 먹었네요.”

“그럼 토스트라도 드실래요? 많이 싸왔는데.”

“감사히 먹을게요! 지혁 씨도 같이 먹어요. 먹으면서 성경을 외우도록 하지요.”

오늘 의욕이 넘쳐나는구나. 딱 봐도 성경을 펴면 과한 참견을 할 것 같다.

적당히 맞춰주다가 놀러나가야지.

알겠다고 대답한 나는 아델의 뒤로 다가가 백팩을 들어주었다.

묵직한 무게. 대체 뭘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휴게실로 향한 나는 백팩을 소파 옆에 내려놓았고, 아델과 함께 다정한 커플처럼 토스트를 먹었다.

“지혁 씨. 우유 있어요?”

땅콩잼이 발린 토스트를 먹던 아델의 물음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냉장고로 향하며 대답했다.

“예. 드릴게요.”

“저지방 우유로요.”

무식한 폭식 후 저지방으로 심리적인 안정을 원하는군.

“저지방 우유는 없는데요... 그냥 우유는 안 되나요?”

“저는 저지방이 좋아요.”

“근처 편의점에서 사올까요?”

“네.”

그냥 해본 말인데 기어코 사오라고 하네. 허탈한 웃음을 터뜨린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연구실 문을 나서려고 하는데, 휴게실에서 튀어나온 아델이 신발을 갈아 신으며 말한다.

“같이 가요.”

“쉬고 계셔도 되는데...”

“심심해요.”

“알겠습니다.”

순순히 아델을 데리고 나가려던 나는, 그녀의 입가에 토스트 부스러기가 묻어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근처에 있는 티슈를 뽑아 내밀었다.

“입가에 빵가루 묻었어요.”

“괜찮아요. 갔다 오면 다시 먹을 거니까요.”

이런 칠칠맞은 애가 성녀라니... 너무 웃기잖아.

헛웃음을 켠 나는 휴지 중앙에 검지를 집어넣고 돌돌 말았다.

그리고는 아델의 입가를 슬쩍 닦아내주었다.

아델은 이런 내 행동에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스터디카페에서 온갖 발광을 떨었던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반응.

속으로 쾌재를 부른 나는 태연하게 휴지를 버리고 연구실 문을 열었다.

그런 내 옆으로 다가온 아델이 약간 수줍은 말투로 묻는다.

“우유 사고 성경공부 하실 거죠?”

“디바이스부터 만들게요. 돌아오면 한숨 자요.”

“안 졸린데요? 하지만 알았어요.”

그래? 내 눈엔 벌써부터 식곤증이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디 돌아와서도 안 자나 보자고.

**

딸깍!

무선으로 연결된 리모콘을 누르자, 폴리머스가 기이하게 늘어지더니 아이테르가 있게 될 공간을 급속도로 좁혔다.

그것도 모자라 디바이스 전체를 꽉꽉 묶어 봉인하기까지 했다.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나는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성취감이 아주 좋았다.

디바이스 곳곳에 만들어놓은 소모품 보관함도 완벽했고, 통제장치도 제대로 작동이 된다.

이젠 조금만 더 다듬은 뒤 아이테르를 넣어놓고 마무리작업을 하면 하나는 끝. 예상보다 빠르게 만들어서 기분이 좋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생각한 나는 휴게실 문을 조용히 열었다.

이후 소파에 누워 잠들어있는 아델에게 살금살금 걸어갔고, 쪼그려 앉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은 토스트를 죄다 해치운 것도 모자라, 저지방 우유 500ml를 전부 마시고는 졸리다며 눈을 감은 그녀.

정자세로 곤히 잠든 모습이 너무나도 예쁘다.

새근거리는 숨소리도, 뽀얀 피부도, 분홍빛으로 윤기가 흐르는 입술도.

나는 오랜 시간동안 멍하니 아델의 얼굴만을 살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델이 입맛을 짭짭 다시며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다가 이불 밖으로 한 손이 튀어나왔는데,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아주 조심스럽게 잡아당겨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다른 이유 따윈 없었다.

아델의 손가락은 가늘었고, 손바닥은 조막만했다.

전체적으로 자그마한 손이었고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새하얗게 칠해진 타원형의 손톱은 마치 그녀가 갖고 있는 순백의 마음처럼 희고 곱다.

나는 아델의 윤기가 나는 손톱을 하나하나 문질렀다.

부드럽고 미끈한 감촉. 느낌이 아주 좋다.

‘헉...!’

돌연 정신을 차린 나는 머리를 몇 번이나 흔들었다.

그러다가 날 빤히 바라보는 아델과 시선을 마주쳤다.

언제 일어났을까? 내가 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을 때 눈을 떴겠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에메랄드빛 홍채를 보니 피로가 절로 풀린다.

“죄송합니다.”

담담히 사과한 나는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아델이 내 검지를 꽉 붙잡자 그럴 수 없었다.

원래라면 단숨에 뿌리칠 수 있는 미약한 힘이었다.

허나 그러기 싫었다. 에메랄드는 내구성이 약해 조금만 힘을 주어도 깨져버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을 했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지혁 씨.”

아직 잠이 덜 깼는지 가라앉은 목소리로 날 부르는 아델.

대답을 해야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 이럴까? 한 차례 침을 꼴깍 삼킨 나는 억지로 입술을 열었다.

“.... 예?”

“지금 몇 시에요?”

“오후... 네 시입니다.”

아델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그녀가 얕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한다.

“많이 잤어요.”

“예... 많이 주무셨습니다.”

“쉬는 시간인가요?”

“아마도요...”

“그럼 성경공부해요.”

“알겠습니다. 일으켜 드릴까요...?”

“목말라요. 물 마시고 싶어요.”

“갖다 드리겠습니다.”

나는 몸을 돌려 냉장고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오른손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 때문에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아델은 잡은 내 손가락을 놓지 않고 있었고, 내게 질질 끌려가 소파에서 떨어질락 말락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녀의 곁으로 돌아간 내가 말했다.

“저... 손을 놓아주셔야...”

“까칠까칠하고, 말랑말랑해요.”

어여쁜 입에서부터 튀어나온 뜬금없는 소리.

당황스런 마음을 애써 억누른 내가 물었다.

“뭐가요...?”

“지혁 씨 손가락이요.”

말을 마친 아델이 손가락을 놓아주었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친 나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꾹꾹 눌렀다.

방금 뭐지? 뭔가에 홀렸던 것 같은데... 아델의 외모 때문인가?

어쩌면 디바이스를 만들 때 생겼던 집중력이 일시에 흩어져서 생긴 현상일 수도 있다.

아니면 요새 너무 일을 많이 해서 피곤했거나.

일단 아델의 현재 마음은 확인했다. 그거면 된 거지.

조용히 호흡을 고르며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상체를 일으킨 아델에게 다가가 생수를 건네주었고, 탁상에 앉아 성경책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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