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86화 (186/471)

EP.186 심경의 변화 #3

“안 태워다주셔도 됐는데...”

조수석의 탄 아델의 말이었다.

별채 근처에 차를 세운 내가 대답했다.

“밤은 무섭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래도요... 택시타면 되는데... 지혁 씨는 세계를 감시하느라 바쁘잖아요.”

감시하는 척만 한 거지.

“금방 돌아가면 됩니다. 얼른 들어가 쉬세요.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지혁 씨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물론입니다. 덕분에 오늘도 많이 배웠습니다. 고마워요.”

“지혁 씨의 태도가 좋기 때문에 저도 가르치는 보람이 있어요. 내일도 잘 부탁해요.”

나는 약간 어색한 미소를 띤 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일은 안 됩니다.”

그 말에 아델의 눈과 입이 동그래졌다.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놀란 이모티콘 같은 표정처럼 말이다.

“왜요!?”

“성경공부를 하느라 디바이스 제작이 늦춰졌습니다. 오늘 경각심이 제대로 생겼으니, 제작에 집중해야겠어요.”

“아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델은 잠깐 무언가를 고민했다.

내게 어떻게든 성경을 가르치고 싶은 듯했다.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는, 이내 검지를 들어 올리며 반색했다.

“저 좋은 생각이 생겼어요!”

“말씀해보세요.”

“지혁 씨가 디바이스를 만드실 때, 제가 옆에서 성경을 읽어드리면 어떨까요?”

“집중이 안 될 것 같은데요...”

“그런가요? 그럼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배우는 거에요!”

“전 한 번 집중하면 몇 시간은 넘게 일에 몰두합니다. 제가 일을 하는 동안 연구실에서 뭘 하시려고요?”

아델의 어깨가 축 늘어진다.

너무나도 귀여운 모습.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볼살을 집으려다 멈칫했다.

순간 자제력을 잃어버렸기에 일어난 일.

다행스럽게도 아델은 이런 내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다.

정신을 차린 나는 그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인 채로 자동차의 바닥시트를 밀어대는 아델을 향해 물었다.

“서운하세요?”

“네...”

“왜요?”

“그야... 지혁 씨는 좋은 신도가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매일, 열심히 가르쳐드리고 싶었거든요...”

“날은 오늘, 내일만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모레 시간을 내어볼게요. 오랜 시간은 못 내겠지만요.”

“네에...”

말끝을 길게 늘어뜨린 아델이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녀는 가방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 내게 내밀었고, 내가 그것을 받자 배시시 웃었다.

“조심히 들어가셔요.”

“잠시만요. 내리지 말고 계셔보세요.”

나는 아델이 의아한 눈을 하기도 전에 차에서 내렸다.

주륵주륵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조수석 문을 연 나는, 문 안쪽에 있는 버튼을 눌러 우산을 꺼냈다.

“이제 내리세요.”

“아, 네...! 저 좀 잡아주셔요. 밑에 도랑이 있어요.”

발 한 짝과 손을 동시에 뻗은 아델.

난 그녀의 손목을 잡아 조심조심, 물이 튀기지 않게끔 차 밖으로 끌어왔고, 머리에 우산을 씌워주었다.

“집 앞까지 바래다드릴게요.”

이런 내 행동에 아델의 양쪽 입꼬리가 쭈욱 올라갔다.

“고맙습니다...”

감사인사를 하고 움직이지 않는 그녀.

의아한 표정을 지은 내가 물었다.

“왜 안 가세요?”

“지혁 씨가 먼저 가시면 제가 보폭에 맞출게요!”

이 쬐깐한 기집애가... 내 보폭이 네 보폭보다 훨씬 넓은데 어딜...

“알겠습니다.”

장난기가 생긴 나는 발을 성큼 옮겼다.

그러자 아델이 당황해하더니 내 옆으로 쫄래쫄래 달려온다.

“처, 천천히 가요!”

“제 보폭에 맞춘다면서요?”

“지혁 씨 보폭은 그렇게 크지 않았어요! 절 놀리려고 그러시면 못써요!”

부드럽게 미소를 지은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천천히, 아델이 맞출 수 있게끔 보폭을 좁혔다.

그렇게 나는 아델과 짧은 시간의 교감을 즐기면서 현관문으로 향했고, 양손을 마구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는 그녀를 보내주고 차로 돌아왔다.

이후 박사의 집으로 가고 있는데, 휴대폰에 마르셀라의 번호로 연락이 왔다.

지금 만나고 싶다는 내용. 나는 박사의 집이 아닌 연구실로 방향을 틀었고, 그 주변에 도착한 뒤 마르셀라를 호출했다.

쩌어억-!

인적이 아예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 거기서부터 생성된 마물의 아가리.

안에서 민지로 위장한 마르셀라가 나타났다.

그녀가 조수석 문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나는 상체와 팔을 뻗어 문을 열어주었다.

덜컥!

그러자 마르셀라가 잽싸게 우산을 접은 뒤 조수석에 타고는 문을 닫았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느냐?”

“네...”

마르셀라가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생긴 모양.

난 행여나 마르셀라가 추울까 히터를 약하게 틀어놓고, 그녀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이윽고,

“변하신 것 같아요...”

마르셀라가 뜬금없는 말을 해왔다.

고개를 갸웃한 내가 물었다.

“변하다니? 내가?”

“온화해지셨어요.”

내가 온화해졌다고?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나는 단칼에 마르셀라의 의견을 부정했다.

“착각이다.”

“.....”

“용건은?”

“마물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불안해하다니... 이게 무슨 소리지?

미간을 좁힌 내가 마르셀라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그녀가 침을 삼키더니 말을 이었다.

“마물들의 죽음은 왕비님과 유리아 님, 그리고 다른 이블 발키리 예정자들을 위한 희생입니다. 이건 다른 마물들도 이해하고 있어요. 하지만... 일회성 소모품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겁을 집어먹고 있습니다.”

지구에서 마음껏 활개를 치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으면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장기말.

지금 마물들의 역할은 딱 이 정도였다.

그렇게 취급되어진다고 생각할 만도 했다.

고위급 마물인 알로켄을 실비아와 아델의 능력 확인 용도로 보낸 것도 그렇고... 이번 일도 그렇고... 확실히 심하다고는 자각하고 있다.

아무리 마물들이 내게 굳건한 충성을 바친다고는 하지만, 의욕은 또 다른 문제이긴 하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불안해하는 녀석들을 한데 모아 의견을 들어보아라. 최대한 들어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겠다. 이번에 죽은 놈들과 가까운 마물들에겐 만족할 만한 보상을 내려주고.”

“.... 마왕님...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될까요?”

떨리는 마르셀라의 목소리.

인자한 미소를 지은 내가 말했다.

“물론이다.”

“예, 예전의 마왕님이었다면 이런 불안 따윈 곧바로 잠재우셨을 것입니다... 당장 마계로 돌아가 본보기로 몇 놈을 처형해도 모자란데... 의견을 들어주시겠다니요... 마왕님답지 않습니다.”

“처형은 너무 심하잖느냐. 게다가 이런 자비는 가끔 보여주고 있다만?”

“제 사견으로는... 마왕님께서 인간들과 섞여 지내시다보니 특유의 성정이 많이 가라앉으셨다고 느껴집니다...”

“내가 유해진 게 아니라, 네가 괴팍해진 것 같구나. 인간 따위는 내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 하지만...”

나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마르셀라의 허벅지에 손을 가져갔다.

움찔한 그녀의 얼굴이 금세 붉게 물들어가고, 입에서는 따스한 숨결이 새어나온다.

그런 그녀를 바라본 내가 물었다.

“요즘 도통 안아주질 않아서 삐친 것이냐?”

“아, 아닙니다...”

“내 눈엔 그렇게 보인다만?”

“저, 저는 마왕님의 심복으로서...”

“알고 있다. 쓸데없는 소리라 치부하고 싶지만 네 충언이니만큼 마음속 깊숙한 곳에 넣어두마.”

“감사합니다아...”

스커트 안으로 손을 넣어 뽀얀 허벅지를 살살 주무르니, 마르셀라의 다리가 배배 꼬였다.

몸에선 열이 나기 시작했으며, 숨소리가 가빠져왔다.

난 손을 떼어내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옆으로 삐져나온 잔머리를 정돈했고, 검지와 중지로 앞머리를 집어 빗질을 하듯 사선으로 내렸다.

“박사가 날 기다리고 있으니 이쯤하지. 나중에 들러 안아줄 테니 이만 돌아가 보아라.”

“후으...♡ 네에...”

“블랙박스는 처리하고.”

“아, 알겠습니다아...”

마르셀라가 자신의 떨리는 팔을 뻗어 룸미러 앞에 달린 블랙박스를 떼어냈다.

이후 차문을 열어 내리고는 잠깐 휘청거렸다가, 내게 인사를 한 뒤 포탈을 열고 그대로 사라졌다.

마르셀라는 포탈을 통해 왔으니 차 안엔 마기가 상당할 테지.

아델과 만날 땐 다른 차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차창 네 개를 조금 열고 박사의 집으로 향했다.

**

후두둑-!

우산의 캐노피에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차에서 내린 나는, 날 마중 나온 박사가 우산을 씌워주자 그녀의 이마에 진한 키스를 해주었다.

눈을 감고 내 애정표현을 만끽하던 박사가 묻는다.

“바로 돌아가 봐야 돼?”

“그래야지. 옷가지랑 먹거리는 싸놨어?”

“집에 있어. 지금 가져올까?”

“커피 한 잔 할 시간은 돼. 들어가자.”

“응.”

박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 나는, 손을 씻자마자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박사가 따뜻한 커피를 들고 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깊은 커피 맛을 음미하고 있자, 박사가 자그마한 가방을 들고 온 박사가 내 옆에 앉아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얼굴을 떼어내고는 내 얼굴 이곳저곳을 만져보는 그녀.

피부 상태를 체크해보는 모양이었다.

한동안 그러고 있던 그녀가 얕은 한숨을 내쉰다.

“피부가 푸석푸석해. 너 연구실에서 안 씻었지?”

“귀찮잖아.”

간결한 대답에 실소를 터뜨린 박사가 돌연 내 몸에 얼굴을 묻는다.

그러더니 숨을 훅 빨아들이며 몸 구석구석의 냄새를 맡았다.

목과 쇄골 사이부터 시작해서 가슴, 겨드랑이, 심지어 사타구니까지 킁킁댄 그녀가 고개를 들고 담담히 말한다.

“냄새나... 땀 냄새... 섬유유연제 냄새랑 섞였어.”

“싫어?”

“아니, 좋아요...”

“페티시라도 생긴 거야?”

“그냥... 네 냄새라서 좋아.”

수줍은 고백을 한 박사는 내 티셔츠를 살짝 올리고 바지 윗단을 당기더니, 입술을 오므려 하복부에 키스를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혀끝을 내밀어 할짝거리기까지.

야릇하고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은 나는, 잠깐 몸을 부르르 떨다가 박사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이후 내 몸을 핥는데 집중하고 있는 박사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많이 고팠나보네?”

간단하게 고개만 한 번 주억거린 박사의 애무는 점점 과감해졌다.

내 낭심이 있는 바지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부드럽게 움직이며 간지럽혔고, 입으로는 허리춤을 쭙쭙 빨아대기 시작했다.

슬슬 펠라치오를 할 것만 같았지만 박사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애무만 계속했다. 내 흥분이 고조되게끔.

내 숨이 가빠져 올 때쯤에야 박사는 혀놀림을 멈췄고, 희미한 미소를 짓고 풀린 눈을 한 채로 날 올려다보면서 말문을 열었다.

“이메일이 왔는데... 아르헨티나가 세계연합에 공식적으로 항의를 했대.”

소식을 들었구나. 근데 갑자기 이런 말을 한다고? 지금 상황에서?

아쉬운데...

“무슨 항의?”

“이스라엘에 나타난 마물들은 빨리 처리했으면서, 왜 우리는 늦게 왔냐고.”

“거지같은 것들이네. 무상으로 도와주고 있는데도 따지다니.”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입장표명을 했으면 좋겠어.”

입장표명이라? 나는 눈동자를 내리고 박사를 주시했다.

“입장표명이라면 어떤?”

“우리 본부는 세계연합과 협업관계지, 그쪽에 소속되어있는 국가적인 시설이 아니야. 철저히 개인적으로, 좋은 뜻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말해야 된다고 생각해. 너와 비스트 슬레이어들의 멘탈도 케어할 겸.”

주제도 모르고 항의를 하는 국가에게 본부의 무상봉사를 상기시켜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자꾸 이런 식으로 비스트 슬레이어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경우, 도와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도 섞으려는 것 같은데... 아주 만족스런 의견이었다.

박사의 마음이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방증. 거절할 이유는 당연히 없다.

“그럼 그렇게 해.”

“알겠어요.”

생긋 웃어 보인 박사는 다시 내 고간으로 입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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