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84화 (184/471)

EP.184 심경의 변화

은평구의 연구실.

휴게실 탁상에 앉아서 성경을 읽고 있던 나는, 맞은편에서 후룹 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작게 웃었다.

그러자 귀엽게 우동을 먹고 있던 아델이 의아한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면발을 꼭꼭 씹어 삼킨 그녀가 묻는다.

“왜요? 궁금한 부분이 생겼나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집중하세요.”

네가 몇 번이나 쭙쭙거리는데 집중이 되겠냐고.

“예.”

순순히 대답하고는 시선을 성경으로 내리깔자, 아델이 조심스레 제의한다.

“쉬는 시간을 가질까요?”

내가 쉬고 싶어 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아니요.”

“아, 네...”

단호한 거절에 무안해졌을까? 아델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소리 나지 않게 무어라 웅얼거리던 그녀는, 이내 다시 우동을 먹기 시작했다.

다시 들려오는 후루룹 소리. 이번엔 국물을 아주 시원하게 잡수셨다.

“후아...!”

감탄사를 터뜨리며 의자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앞으로 빼면서 늘어지는 아델.

그녀가 신은 실내화가 내 정강이에 닿는 느낌이 났다.

화들짝 놀란 아델이 정자세로 앉고는 사과한다.

“죄,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고개를 들지도 않고 무뚝뚝한 말투로 답한 나는, 5분가량 성경을 보다 페이지를 넘기려고 했다.

그때, 아델이 헛기침을 하더니 말한다.

“.... 흐흠! 퀴즈를 내야겠어요.”

“지금이요? 읽은 지 20분도 채 안 됐는데?”

“그, 그런가요...?”

“저한테 뭐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그 말에 아델이 흠칫했다.

누가 봐도 무언가 말하고 싶은 표정이지만,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은 달랐다.

“아닌데요...?”

어제와 그제의 일을 물어보려는 것 같은데... 두려워하는구나.

혹시라도 사이가 틀어질까봐.

저런 우유부단함은 도움이 하나도 안 될 텐데... 물론 나한텐 아주 좋지만.

나는 탁상에다 팔꿈치를 괴고, 팔짱을 낀 상태에서 상체를 앞으로 빼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아델.”

“네?”

“바람이라도 쐬러 나갈까요? 제가 지금 좀 답답하네요.”

“그래요? 좋아요!”

아델은 내 배려를 눈치채지 못했다.

순수하게 내가 답답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티를 내고 있는데... 저것도 능력이다.

턱짓으로 우동을 가리킨 내가 물었다.

“저건 다 드셨어요? 조금 남았는데 배부르신가?”

“아, 잠깐만요...”

아델은 우동에 얼굴을 처박고 면을 한입에 다 먹었다.

그리고는 입을 우물거리면서 날 향해 엄지를 치켜세운다.

헛웃음을 켠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띤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주 일어난 아델. 그녀의 입가엔 우동국물이 한 방울 튀어있었다.

티슈를 한 장 뽑은 내가 그걸 내밀며 말했다.

“입 주변에 국물 튀었어요. 오른쪽 밑이요.”

“아, 네...”

두 손으로 공손히 티슈를 받은 아델은, 자신의 입가를 닦아내면서 내 눈치를 보았다.

걱정스런 눈빛. 티슈를 쓰레기통에 집어넣은 그녀가 묻는다.

“저희 오늘은 수업하지 말까요?”

“왜요?”

“매일 공부하느라 힘드실 것 같아서요. 휴식해요, 휴식.”

“그럼 집으로 데려다드릴까요?”

“지혁 씨는 정말 눈치가 없으시네요! 제가 기가 막힌 제안을 할 테니 잘 들어요.”

“제안이요...?”

어안이 벙벙해진 내게, 아델이 콧대를 세운다.

“제가 지혁 씨에게 좋은 기운을 준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같이 놀러가요! 놀이공원 어때요?”

“좋은 기운은 지금도 받고 있는데요? 혹시 놀이공원에 가고 싶으신 건가요?”

“제가 가고 싶은 게 아니라, 지혁 씨가 답답해하시니까 뻥 뚫린 데다 재미있는 장소로 가자는 거에요! 스트레스도 해소할 겸!”

“그냥 가고 싶다고 말씀을 하시지...”

“아 진짜! 이런 식으로 스승의 말을 듣지 않으면 징계를 내릴 수도 있어요!”

오호라, 권위를 내세우시겠다?

전혀 무섭지 않는데 어떡하지? 벌벌 떠는 척이라도 해줘야 하나?

어깨를 으쓱인 내가 말했다.

“방금은 제안이라고 하셨잖습니까.”

찔끔하는 아델. 그녀가 황급히 했던 말을 정정한다.

“명령이에요!”

“그러시면 뭐...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겉옷을 챙겨 입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아델의 얼굴은 회한이 가득했는데, 강압적으로 나와 미안해하는 것이 분명했다.

원래는 조곤조곤, 차분하게 말할 생각이었겠지만 세상만사가 생각대로 안 되지?

인생은 다 그런 법이란다.

외투를 걸치고 신발 끈을 동여맨 나는, 아델의 흰색 운동화를 가지고 와 그녀의 앞에 놓아두었다.

“준비 되시면 말씀해주세요.”

“.... 네에...”

**

쏴아아아-!

무시무시한 기세로 바닥을 향해 내리꽂혀지는 빗줄기.

아델은 지상으로 통하는 입구에 멍하니 서서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언제 비가 오고 있었던 걸까? 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

아델의 옆에 선 나는, 그녀에게 빗방울이 튀지 않도록 외투를 벗어 앞을 막았다.

“비가 오네요.”

“어, 언제부터... 오고 있었던 걸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연구실에서 날씨를 확인해봤어야 했던 건데... 제 실책이에요. 소나기 같으니까 복도에서 잠깐만 기다려보죠.”

나는 아델의 어깨를 건드려 반대쪽으로 돌리려다가 움찔했다.

어제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듯한 행동. 내 어색한 몸짓을 체크한 아델이 날 올려다본다.

복잡한 눈빛으로 날 응시하던 그녀의 도톰한 입술이 열린다.

“오늘 지혁 씨는 저와 거리감이 있어 보여요.”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어제 했던 말을 계속 의식하시고 계시잖아요.”

“저는 아델이 원하는 대로 조심하는 것뿐인데요.”

“.... 말투도 냉랭해졌어요. 제가 괜히 화를 냈나 봐요...”

아델이 복도 벽에 등을 기대고 그대로 무너졌다.

쪼그려 앉은 상태로 무릎에 양손을 얹은 그녀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무릎을 굽혀 그런 아델과 눈을 맞춘 나는, 포근한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

“제가 잘못했어요. 앞서 말한 답답한 마음 때문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낮아졌네요.”

“그런 거에요...?”

“그럼요. 제가 어제 꾸지람을 들었다고 해도, 왜 옆에만 있어도 큰 힘이 되어주시는 아델한테 냉랭한 말투를 하겠습니까.”

“.... 정말이죠?”

“물론입니다. 다만 한 가지 조언하고자 하는 게 있습니다. 제자의 조언이지만... 들어주실래요?”

아델의 자조적이었던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녀가 냅다 대답한다.

“네! 저는 스승이긴 하지만 모자라요! 제자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요!”

아아... 저 동글동글한 얼굴을 가슴께에 꼭 안고 자고 싶다.

유혹을 간신히 참아낸 내가 생각해두었던 말을 꺼냈다.

“알겠습니다. 아델은 남들에게 너무 휘둘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을 낮추는 한이 있더라도,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하죠. 맞나요?”

“마,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알 수밖에 없죠. 표정과 행동에 다 드러나는데.”

“그렇군요...”

“당신은 착해요. 게다가 솔직하기도 하죠. 착하고 솔직한 건 이 지구를 살아가는데 있어 큰 약점이 됩니다. 사람들이 이용하기 편해요.”

아델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 첨언에 다시금 희망차게 변했다.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 안목... 아니, 인품이 있다면 큰 장점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델은 그런 인품이 있다고 생각해요.”

“인품이요?”

“네. 아델의 주변엔 좋은 사람들밖에는 없습니다. 첫 번째로, 아델이 살던 행성의 신도들은 로사리오 님을 믿는 만큼 분명히 착한 분들이실 테죠.”

“맞아요! 모두 정말 온화하신 분들이세요!”

“그럴 것 같았습니다. 이 외에도 타 행성에서 찾아온 실비아 씨, 지구에서 만난 세화, 박사님... 그리고 유리아 씨까지... 물론 유리아 씨는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아이테르의 적합자인 만큼 아델과 무척 잘 지낼 거에요.”

이야기를 경청하던 아델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혁 씨는 왜 빼요? 지혁 씨도 엄청 좋은 사람이시잖아요.”

아니, 네가 만나본 사람들 중에서 최고로 나쁜 놈일 걸?

“제 입으로 절 끼워 넣으면 부끄럽잖아요.”

장난스런 말투에 아델이 까르르 웃었다.

순진하고 예쁜 미소. 실비아가 아델을 소중히 생각하는 데엔 저 미소도 큰 부분을 차지하겠지.

잠깐 그녀에게 정신이 팔려버렸던 나는, 머리를 두어 차례 털어내고 말을 이었다.

“어쨌든... 아델의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아델이 어떠한 말을 하던지 간에 악의 없이 받아들이는 분들이에요. 예를 들자면 아델이 실비아 씨에게 ‘언니는 나쁜 사람이에요!’라고 말을 해도, 실비아 씨는 반성을 하면 했지 적의를 품지는 않을 테죠.”

“아하...”

“아델의 주변에 있는 분들도 마찬가집니다. 저도 똑같아요.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싫어하지 않으니, 소신껏 행동하세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하시고요.”

아델은 한동안 말없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날 빤히 주시했다.

나는 아델이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맞은편 벽으로 가서 그녀와 똑같은 자세로 앉았다.

그렇게 밖을 바라보며 비가 잦아들길 기다리고 있는데, 아델이 스르륵 일어났다.

그리고는 슬금슬금 내 옆으로 와 쪼그려 앉았다.

“하고 싶은 말... 이 아니라 여쭤보고 싶은 질문이 있었는데, 하지 않을래요.”

여쭤보고 싶은 질문이라? 분명 날 좋아하냐고 물으려 했겠지.

내가 해준 조언도 잘 들었고,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는 것 같았는데도 질문을 묻어두겠다?

이건 아델에게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는 증거.

그리고 그 변화는 나에게 좋은 방향임이 확실했다.

“알겠습니다.”

“왜냐고 안 물어보세요?”

“재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편하실 때 말씀해주세요.”

“네... 고맙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아델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비가 안 그치는 것 같은데, 들어가서 다시 성경공부 할까요? 아니면 실내 놀이공원이라도 가실래요?”

“답답하지 않으셔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눈 데다, 빗소리까지 듣다 보니 사라졌습니다.”

“비오는 날을 좋아하시나 봐요?”

“빗소리는 마음을 안정시켜주거든요.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저는 그래요.”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거리던 아델. 그녀가 날 향해 한손을 뻗었다.

“일으켜주실래요?”

자연스러운 행동. 이는 어제 일을 질문과 함께 묻어두겠다는 뜻과도 상통했다.

평소처럼 대해달라는 의도도 섞여있었다.

나는 아델의 자그마한 손을 잡고 힘을 주어 그녀를 일으켜 세웠고, 등을 툭툭 털어주었다.

그러다 그녀의 뒤통수에 집힌 머리집게가 조금 삐뚤어져있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딱히 만져줄 생각은 없었던 난, 그냥 아델에게 언급만 해주었다.

“머리집게 방향이 조금 엇나갔어요.”

“다시 해주세요. 혼자 예쁘게 만들기는 어려워서요.”

“직접 해보세요. 제가 봐드릴 테니까.”

“.... 알겠어요.”

약간 서운한 듯 힘없이 손을 올린 아델은 머리집게를 풀었다.

찰랑거리며 내려오는, 백금발에 가까운 금발머리.

샴푸냄새는... 저번에 사주었던 베이비파우더 향인가? 어울리긴 하네.

양손으로 자신의 뒷머리를 한데 모은 아델은, 머리를 몇 번 돌리고 위로 틀어 올렸다.

“어때요?”

“조금만 더 돌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네, 그렇게요.”

“다 됐어요?”

“됐습니다. 이제 거길...”

삐빅-! 삐빅-!

난 휴대폰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크고 빠르게 반복되는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화들짝 놀란 아델이 뒤를 돌아보며 묻는다.

“뭐, 뭐에요?”

침착한 표정으로 휴대폰과 연동된 상황판을 바라보던 내가 답했다.

“마물이네요. 위치는 이스라엘. 등급은 B급이긴 하지만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두 마리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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