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3 무슨 짓이에요!? #2
아델은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으로 표정을 구기고 있었다.
제 딴에는 화를 내고 있는 것이겠지만, 내 눈엔 그저 귀여워보였다.
좋아, 태연한 모습을 보여줘야지.
아델에게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한 내가 말했다.
“그냥 휴지가 묻었길래 떼어주고 싶었어요.”
“마, 말로 해도 되지 않았나요!?”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그런 건데... 죄송합니다.”
“챙겨준다니요!? 전 어린아이가 아니라구요! 어, 어제 지혁 씨에게 했던 말 취소에요! 역시 지혁 씨도 절 아이로 취급하고 있었군요!”
“그건 오해입니다. 원래 저는 남들을 잘 챙기는 편이에요.”
다른 마음 같은 건 전혀 없다는 티를 팍팍 풍기니, 아델이 입을 앙다물었다.
나는 최대한 억울한 표정으로 아델이 말을 할 수 있도록 가만히 있었다.
얼마간 거칠어진 호흡을 내쉬던 아델은, 얌전한 날 보더니 약간이나마 누그러진 눈빛을 했다.
“저는 다 큰 숙녀에요. 그런 저의 손을 함부로 만지시다니요. 그러면 못써요. 다음부턴 주의해주세요.”
숙녀가 아니라 그냥 철부지 말괄량이지.
귀여운 훈계를 하는 아델에게, 내가 순순히 사과했다.
“방금 일은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해요.”
이후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근데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저번에 당신의 어깨를 두드려줬을 땐 아무런 말도 없었잖아요. 왜 지금은 화를 내시는 겁니까?”
“어, 어깨랑 손은 엄연히 다른 부위에요!”
“손이요? 놀이공원에서 후룸라이드를 구경할 때, 제가 아델의 손목을 잡아끌고 물을 막아줬었잖아요. 기억 안 나십니까?”
“.....”
“떡볶이를 먹을 때는 아델이 성경 이야기를 꺼내면서 먼저 제 손등을 툭툭 쳤고요. 이것도 기억 못하세요? 오늘 일인데...”
“흐아아...”
아델의 눈이 마치 빙그르르 도는 것 같다.
반응이 너무 솔직하고 찰져서 놀리는 맛이 있단 말이지.
“머리를 만져줬을 때도, 등을 두드려주었을 때도 가만히 있으시더니 오늘은 왜... 설마 이상한 생각이라도 하신 건 아니겠죠?”
“이, 이상한 생각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하아... 아닙니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아델이 자신의 자그마한 책가방을 뒤적거린다.
그리고 거기에서 민트향 사탕을 꺼냈다.
그걸 본 나는 아델의 앞에서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아예 만병통치제 같은 느낌으로 먹는 것 같아서 너무 웃겼기 때문.
그러자 아델이 볼을 부풀리며 버럭한다.
“왜요!”
“아뇨... 그냥 사탕인데 약처럼 드시는 것처럼 보여서... 거짓말을 했다며 저한테 죗값을 받으라고 하실 때는 언제고...”
그에 얼굴이 새빨개진 아델이 말을 더듬거린다.
“그, 그냥 맛있어서 먹는 거거든요!?”
“그런가요? 저도 하나만 주세요.”
“싫어요! 이건 제 거니까 직접 사드세요!”
“제가 드린 거잖아요.”
“주셨으니까 이제는 제 거죠! 오늘 수업은 끝이에요! 저를 집으로 데려가주신 뒤 돌아가 보도록 하세요! 다음 수업시간은 제가 정할 테니, 지혁 씨는 집에서 근신... 아니, 반성하시구요!”
나는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허헙...”
명령조로 집에 데려다 달라니... 보통 화를 내면 나 혼자 가겠다고 하지 않나?
웃음을 참을 수가 없잖아.
이런 내 반응에 발끈한 아델이 허리춤에 양손을 올렸다.
“지금 저한테 장난을 치시는 건가요!?”
“아니... 아닙니다... 흐흡...”
“이이...! 어서 성경을 챙기고 의자를 집어넣으세요! 돌아가야겠어요!”
화가 났음에도 내가 할 일을 하나하나 짚어주는 아델.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예 빵 터져버리고 말았다.
아델은 방 안이 떠나가라 대소를 터뜨리는 나를 씩씩대면서 노려보고 있었는데, 위협이 전혀 안 돼서 더욱 미칠 것 같았다.
“저 먼저 내려갈래요!”
아델은 빈정이 상한 듯, 일부러 쾅쾅거리는 소리를 내며 방에서 나갔다.
눈물까지 찔끔 나온 상태였던 나는, 눈가를 훔치고 방을 정리하면서도 끅끅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
별채로 돌아가는 차 안.
아델은 완전히 삐쳐선 창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터디카페에서의 일이 자꾸 생각난 나는 아델의 눈치를 보면서 피식피식 쪼갰다.
아델은 내가 그럴 때마다 책가방을 꽉 안으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고 말이다.
말로 하지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어서 저런 식으로 투정을 부리는 것이다.
“크흠.”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은 내가 사과했다.
“오늘 죄송한 일이 정말 많네요. 죄송합니다.”
진중한 말투로 하는 사과에 괜찮아진 것일까? 아델이 나를 돌아보았다.
룸미러로 슬쩍 그녀의 표정을 살피니 조금이나마 온화해져있었다.
내 옆모습을 바라보던 그녀가 말한다.
“제가 더 죄송해요... 너무 흥분해버리고 말았네요... 하지만 할 말이 있어요. 저는 주교 급 위치에 있는 성녀에요. 예비 신도이신 지혁 씨의 스승이기도 하니까 존경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전 언제나 아델을 존경합니다.”
“그런 분이 절 비웃으셨어요?”
“비웃은 게 아닙니다. 아델을 보고 마음이 맑아져서 웃음이 새어나온 거에요.”
“제가 화를 내서 마음이 맑아지셨다구요?”
“화를 낸 것뿐만이 아니라, 당신의 모든 행동들에서 깨끗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 같아요. 제게 좋은 쪽으로 아주 큰 영향을 줍니다.”
“.....”
아델이 침묵했다. 입가엔 희미한 미소를 띠운 채였다.
칭찬을 들으니 기뻐하는 것이다.
내가 말을 이었다.
“덕분에 힘이 나요. 정말 감사합니다.”
말을 끝마치자마자 타이밍 좋게 별채에 도착했다.
입구에 차를 세운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로 아델을 쳐다보았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 말에 아델이 머뭇거리더니, 사탕을 하나 꺼내 내게 내민다.
“오늘 수업 잘하셨으니까 드릴게요...”
“괜찮습니다.”
“먹고 싶어 하셨잖아요. 여기 놓고 갈 테니까 드세요!”
컵 홀더에 사탕을 둔 아델이 차에서 내리고는 고개를 꾸벅 숙인다.
“연락할게요! 운전 조심히 하세요.”
“들어가세요.”
“네!”
다시금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온 아델이 현관을 향해 후다닥 달려갔다.
나는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한 번 인사를 하자, 손을 흔들어주고 악셀을 밟았다.
오늘은 정말 재미있는 날이었다. 절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튀어나올 만큼.
@@
아델은 거실에서 고소한 향이 풍기자 코를 킁킁거렸다.
자신이 굉장히 좋아하는 베이컨 냄새였다.
“왔니? 손 씻어. 오랜만에 까르보나라 먹자. 내가 잘 만들어줄게.”
프라이팬을 휘적거리며 그리 말하는 실비아.
아델이 힘차게 대답했다.
“네, 언니!”
방에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고 화장실로 달려간 그녀는, 손에 비누칠을 하다가 멈칫했다.
오른쪽 손목을 잠시간 빤히 바라보던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
지혁이 손을 잡았을 땐 정말 깜짝 놀랐다.
평소엔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넘어갔을 일이었지만, 그가 아담한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한 직후 신경이 쓰여서... 그래서 버럭 화를 내버렸다.
솔직히 이런 과민반응은 할 필요가 없었다.
지혁은 아담한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지, 자신을 좋아한다고 하지는 않았다.
말을 멋대로 오해한 것 같기도 한데... 오해가 맞다면 이번 일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비누거품을 전부 씻어낸 아델은 자신의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아야...”
너무 강하게 때렸는지 옆통수가 찌릿찌릿했다.
하지만 금세 고통이 멎었다. 역시 자신의 몸은 튼튼하다.
로사리오 님의 축복을 받은 몸으로 마물들과 맞서 싸워 지구에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속으로 파이팅을 외친 아델은 화장실을 나오려다가 멈칫했다.
지혁과의 일이 생각났기 때문. 그녀는 우물쭈물하다가 수건에 손을 닦아냈다.
그 후 밖으로 나오자, 식탁에 그릇을 놓던 실비아가 아델을 바라보며 말한다.
“손 또 안 닦았... 응? 닦았네? 웬일이야?”
아델은 자신의 눈동자를 굴려 실비아의 시선을 피했다.
“이제부턴 닦으려고 해요...”
실비아는 자리에 앉아 포크를 드는 아델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 의미심장한 눈초리에 아델이 찔끔했다.
“왜, 왜요...?”
“아델. 너 뭐 숨기는 거 있지?”
“.....”
“우리 둘은 언제나 솔직하기로 지구에 도착하기 전부터 약속했잖아. 잊어버린 거야? 나 진짜 상처받으려고 해.”
실비아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포크로 까르보나라를 깨작깨작 건드렸다.
그 모습을 바라본 아델이 황급히 양팔을 뻗는다.
“어, 언니! 말하려고 했어요!”
“그래? 그럼 말해줘.”
금세 방긋 미소를 짓는 실비아를 바라보며, 아델이 콧바람을 얕게 내뱉고는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냐면요...”
아델은 지혁이 아담한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던 것부터, 오늘 일어났던 일을 모두 가감 없이 말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실비아가 장난스럽게 묻는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내가 지혁이를 좀 혼내줄까? 팔을 부러뜨려버려?”
무시무시한 소리에 아델이 기겁한다.
“으아아... 그러지 마세요!”
그러자 실비아가 깔깔거리며 식탁을 두어 번 두드리더니, 갑작스레 진지한 얼굴을 했다.
“농담이야. 이야기는 잘 들었고, 네 친구로서 조언을 해주고 싶은데...”
아델은 자신을 ‘친구’라고 지칭해주는 실비아가 너무 좋았다.
나이도 네 살이나 더 많은데도 동등하게 대우해주려고 하니까.
물론 가끔 심한 장난을 치긴 하지만, 그 또한 친구기에 하는 행동.
지구에서 가장 믿는 그녀가 하는 조언이었으니 잘 들어야지. 아델은 귀를 쫑긋했다.
“뭔데요?”
“일단 지혁이가 아담한 여자를 좋아한다고 한 거... 이건 널 특정한 게 아니라, 그냥 순전히 이상형을 말했을 수도 있어.”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어요.”
“하지만 내 마음을 좀 알아주라고 널 콕 집어서 말했을 수도 있지. 그리고 나는 후자 쪽으로 무게가 조금 쏠려.”
“후자...? 그럼 지혁 씨가 절...”
“응. 네게 관심이 있는 건 확실해보여. 그렇지 않고서야 지혁이가 네게 과도한 신체접촉을 할 리가 없잖아.”
아델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혁 씨는 주변사람들을 잘 챙기는 편이라고 하셨는데요? 과도한 신체접촉은 제가 먼저 해달라고 해서...”
“어제와 오늘 이야기를 말하는 거야. 지혁이가 어제 했던 말도 그렇고, 오늘 네 손에 묻은 휴지를 떼어준 것도 그렇고... 이건 관심을 드러내는 게 맞다고 봐.”
“그런가요...?”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니까 참고만 하고 맹신하지 마. 나는 남녀관계에 대해선 잘 몰라. 연애는커녕 달달한 무언가도 느껴본 적이 없어.”
“그건 저도 마찬가지인 걸요.”
실비아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히죽 웃는다.
“근데 화를 낼 정도로 지혁이가 신경 쓰였어?”
“다, 당시엔 너무 당황스러웠다구요...”
“지금도 그래 보여. 이제 먹을까? 스파게티 다 식겠다.”
“잠깐만요! 또 해주실 조언은 없나요? 앞으로 지혁 씨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같은...”
“그건 네가 결정하는 거지. 내 말을 따랐다가 네가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면 어쩌려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돼. 넌 어른이잖아.”
“그, 그렇죠... 전 어른이죠...”
아델이 포크로 까르보나라의 중앙을 푹 찍었다.
면을 마구 돌린 뒤 입을 크게 열어 집어삼킨 그녀는, 입 안에서 퍼지는 짭짤하고 고소한 맛에 무척 큰 행복감을 느꼈다.
“엄청 맛있다...!”
“다행이네. 그리고 입 주변에 크림 묻었어.”
“다 먹고 닦을래요. 또 묻을 테니까요.”
“그렇게 해.”
어깨를 으쓱한 실비아 또한 까르보나라를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델은 실비아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음식을 전부 해치웠고, 입가를 꼼꼼히 닦아낸 뒤 안방으로 들어가 털썩 누웠다.
뽈록해진 배를 두드리던 그녀는 게임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들려다가 멈칫했다.
아까 당황해했던 지혁이 눈에 밟혔기 때문.
실비아는 지혁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거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연애경험이 전무하니 맹신하지 말라고 했다.
아델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조언도 했고.
하지만 무서웠다. 직접 판단을 내리면 큰 결과를 초래할까봐.
‘어쩌지...’
오랜 시간 천장을 바라보며 깊은 고뇌를 하던 아델은, 결국 지혁과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확실하게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그녀가 곧바로 톡을 보냈다.
[지혁 씨! 내일 수업해요! ๑•‿•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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