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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81화 (181/471)

EP.181 성녀에게 뻗치는 마수 #4

덜컥!

조수석 문이 열리고, 박시한 연보라색 맨투맨과 밑단이 조금 넓고 색이 밝은 청바지, 흰색 운동화를 신은 아델이 차에 탔다.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모자를 살짝 옆으로 써서 포인트를 주기까지 했다.

상당히 어울렸다. 활발한 아델의 이미지에 딱 맞는 코디.

활동적인 느낌을 팍팍 풍겼고, 특히 오버핏 맨투맨의 소매가 손바닥 밑을 살짝 가리는 게 귀여웠다.

나는 안전벨트를 매고 있는 아델의 손톱이 흰색으로 칠해져있자 물었다.

“네일 하셨어요?”

“네! 어때요?”

고양이마냥 손가락을 구부리고는 내게 보여주는 그녀.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모양이 너무나도 예쁘다.

아아... 따먹고 싶으면 정상인가? 정상이겠지?

“예쁘네요. 실비아 씨는요? 집에 계신가?”

“샵 갔어요. 제 손톱을 보더니 자기도 하고 싶다고 하는 거 있죠? 참 주책이에요.”

“그렇군요.”

“근데 새벽도 괜찮냐고 물어보셨잖아요. 지금은 오후 다섯 시인데요?”

새벽에 부를 것 같더니 왜 지금 왔냐는 의미였다.

어깨를 으쓱인 내가 대답했다.

“머리가 아파서요.”

“그때는 기도를 드리면 된답니다!”

싫어. 기도하면 없던 두통이 생길 것 같거든.

“물론 기도도 드렸죠. 그러니까 조금 괜찮아지더라고요.”

“역시 신도의 자세가 되어있으세요! 잘하셨어요!”

“감사합니다. 갈까요?”

“네!”

흐뭇하게 웃는 나는 차를 출발시켰다.

아델은 여전히 주변 경치를 구경하다가, 차가 낯선 길로 들어서자 고개를 갸웃했다.

“어? 지혁 씨! 길 잘못 들었어요!”

“맞는 길입니다.”

“네? 스터디카페는 여기가 아니잖아요.”

“오늘은 스터디카페에 안 가요.”

“그럼 어디로 가요?”

“연구실이요.”

그 말에 아델의 눈이 커졌다.

“연구실...?”

“정확히 말하자면 본부죠. 비스트 슬레이어 본부.”

짝!

뜬금없이 들려오는 찰진 효과음.

놀란 내가 슬쩍 옆을 바라보니, 아델이 자신의 양 뺨에 손을 붙인 채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우와아아...!”

표정은 경악 그 자체. 딱 보니 너무나도 기뻐서 자신의 뺨을 때린 것 같았다.

“좋으세요?”

“네! 엄청 좋아요! 드디어... 드디어 불가침영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군요!”

불가침영역이라니... 방금 한 행동도 그렇고, 쟤는 진짜 알면 알수록 약간 또라이 기질이 있단 말이야.

그래서 더 좋다.

“그렇게 큰 기대를 하면 실망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진정해요.”

“진정이 안 돼요...! 지혁 씨, 저 그 사탕 주세요! 긴장 풀어주는 민트사탕!”

호들갑을 떠는 아델을 바라보며 피식한 나는, 콘솔박스를 열어 사탕통을 보여주었다.

아델이 희희낙락해하며 사탕통을 집어 열고, 입 안에 하나를 집어넣더니 묻는다.

“지혁 씨도 먹을래요?”

“전 됐습니다.”

“그러지 말고 먹어요. 같이 시원해져요!”

사탕을 내밀며 그리 말하는 아델.

나는 손으로 사탕을 집으려고 움찔하다가, 그냥 입을 살짝 벌렸다.

그러자 아델이 내 입 안으로 사탕을 집어넣어주었다.

자연스러운 행동. 나는 룸미러로 아델을 바라보았다.

이런 사소한 상황에서도 남녀관계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아델은 워낙 친절, 쾌활하고, 4차원적인 성격인 만큼 알아내기가 힘들었다.

지금 저 배시시 웃는 얼굴도 원래 아델이 자주 짓는 표정.

만약 아주 잠깐이라도 망설이거나 무슨 이야기라도 했다면 마음을 읽어내기 쉬웠을 텐데... 아쉬웠다.

‘계속 이대로만 가면 되겠지.’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나에 대한 호감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것.

이거면 충분하지.

**

[생체인증이 완료되었습니다.]

푸쉬익-!

거대한 문이 좌우로 열리면서, 은평구 지하에 있는 연구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짝 긴장하고 있던 아델은 연구실 홀을 보자마자 입을 떡 벌렸다.

“우와아...!”

“들어가세요.”

“네, 넷...!”

아델이 머뭇머뭇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양손을 꼭 모은 상태로 연구실 전체를 둘러보았다.

입구 근처의 패널을 조작하던 나는, 아델이 이곳저곳을 들쑤시는 것을 바라보다 그녀를 불렀다.

“아델.”

“네엣!?”

귀신이라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라는 그녀.

헛웃음을 켠 나는 그녀를 향해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아델이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붉은 빛이 희미하게 감도는, 크기가 꽤나 큰 스캐너를 가리켰다.

“이 빛 앞으로 가세요.”

“왜요?”

“제가 연구실에 들어올 때 어떻게 하던가요?”

“음... 고개를 위로 들었어요. 그러니까 문이 열렸고요. 엄청 신기했는데...”

“생체정보를 스캔한 거에요. 기계가 등록된 제 정보를 읽고 연구실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가해준 거죠. 아델도 저처럼 언제든 여기 들어올 수 있게 하려는 겁니다.”

아델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저, 정말요!?”

“네. 당연히 이렇게 해드려야죠. 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 말고 서세요.”

허겁지겁 고개를 주억거린 아델이 침을 삼키고는 스캐너 앞에 섰다.

그리고는 묻는다.

“움직여도 돼요?”

“아뇨.”

“알겠습니다!”

차렷 자세로 미동도 없어진 그녀를 보며 실소를 터뜨린 나는 스캐너를 조작했다.

위이잉-! 거리는 소리와 함께 붉은 빛이 아델의 전신을 읽어내고 얼마 뒤,

삐빅-!

연구실 홀에 짧고 경쾌한 알림소리가 울려 퍼졌다.

패널을 다시 조작해 닫은 내가 말했다.

“이제 됐어요.”

“어... 끝이에요?”

“네. 나갔다가 들어와 보세요.”

“다, 다시 못 들어오면 어떡해요?”

“그럴 일 없어요. 만약 그런다 해도 제가 안에서 열어주면 되잖아요.”

“같이 가주세요! 복도가 어두워서 무서워요!”

그 황금빛 신성력으로 밝히던가.

알겠다고 대답한 나는 아델을 데리고 연구실을 나왔다.

이후 그녀를 앞에 세워 천장에 있는 스캐너를 향해 고개를 들도록 했다.

그러자,

[생체인증이 완료되었습니다.]

무감정한 기계음이 들려오더니 문이 열렸다.

“와아아!!”

연구실에 공식적으로 등록이 되어서일까?

만세를 부르며 기뻐하던 그녀는, 이내 날 돌아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맙습니다, 지혁 씨! 저도 이제 어엿한 용사네요!”

“.....”

“왜요?”

“아니, 아닙니다. 공부할까요?”

“소개먼저 시켜주세요! 이 본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요.”

그래, 필요한 일이긴 했다.

호기심이 왕성한 아델은 만져선 안 되는 것들도 건드려보려 할 테니까.

다 익히도록 한 다음, 실비아를 연구실로 데려올 때 아델에게 안내하라고 해야겠다.

나는 꽤나 오랜 시간동안 아델에게 연구실 구석구석을 소개해주었고, 디바이스가 만들어지고 있는 제작대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아델은 제작되고 있는 디바이스에 엄청난 흥미를 보였다.

무릎에 손을 대고 상체를 굽힌 채 완성된 디바이스의 뼈대를 바라보던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호기심으로 물든,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얼굴. 당장 저 도톰한 볼살을 잡아당기고 싶다.

“지혁 씨, 이게 저희가 사용하게 될...”

“맞아요. 디바이스죠.”

“건들면 안 되겠죠?”

“지금은 안 됩니다.”

단호한 내 대답에 아델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다가 질문이 생겼는지 손뼉을 치고는 묻는다.

“지혁 씨! 저 궁금한 거 있어요.”

“말씀하세요.”

“디바이스 충전방식! 이제 알려주세요!”

싫은데. 지금의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야.

최소한 날 이성으로 생각하게 될 때쯤 말해줄 거란다.

난 곧장 화제를 돌렸다.

“다 완성하면 그때 알려드릴게요.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남는데, 이제 공부할까요?”

“하, 한 시간? 그거밖에 안 돼요?”

“왜요? 모자라신가?”

“시간이 중요한 건 아니에요. 믿음만 있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조금 아쉬워요...”

“왜 아쉬운데요?”

“그냥요...”

연구실 바닥을 주시하며 발을 툭툭 차는 아델.

하는 짓이 너무 귀엽다.

얕고 긴 한숨을 내쉰 내가 아쉬워하고 있는 아델에게 물었다.

“회사 일을 미뤄볼까요?”

그 말에 아델이 고개를 확 들었다가, 금세 다시 시무룩해졌다.

그리고는 은근슬쩍 날 나무란다.

“아니에요... 중요한 일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냥 새벽에 부르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땐 졸려서 집중이 안 되는 시간이잖아요.”

“그렇긴 해도... 아휴...”

귀여운 한숨을 내뱉은 아델이 축 쳐진 목소리로 말했다.

“휴게실에 가있을게요... 성경 가지고 오세요...”

“알겠습니다.”

**

수업이 끝나고 의정부로 돌아가는 길.

아델은 차 안에서라도 공부를 해야 한다며 내가 배워야할 부분을 예습시키려고 했지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만두었다.

“제 열정이 너무 과했나 봐요... 죄송해요.”

다리 사이에 손을 우겨넣고 사과하는 아델.

난 방긋 웃어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 이런 반응에 다시금 활기차진 그녀가 묻는다.

“내일도 공부하실 거죠? 제가 연구실로 갈까요?”

“아뇨. 제가 저녁에 댁으로 갈게요. 내일은 스터디카페에서 해요.”

“전 아무래도 좋아요. 아, 그리고 오늘 박사님이 안 보이시던데... 어디 가신 건가요?”

빨리도 물어본다.

“몸이 좋지 않으셔서요. 댁에서 쉰다고 하셨습니다.”

“아하... 감기라도 걸리셨나요?”

아니. 가랑이가 아파서 그래.

오늘도 그럴 예정이지.

“글쎄요. 거기까진 잘 모르겠네요.”

“연락하면 화내실까요?”

“절대 그러시진 않을 겁니다. 다만 푹 쉴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아 보여요.”

“옳은 말씀이에요. 그렇게 할게요. 참, 지혁 씨.”

“예.”

“지혁 씨는 무슨 음식을 제일 싫어해요?”

“음식이요? 딱히 가리는 건 없는데... 아델은요?”

“저는 가지! 엄청 싫어요!”

“먹어보셨어요?”

“아뇨.”

아델과 대화를 하다보면 갑자기 힘이 쭉 빠질 때가 있다.

지금이 그때다. 이런 어이없는 대답을 하니 절로 몸이 늘어진다.

아냐, 생김새가 싫은 거일 수도 있잖아.

고개를 빠르게 흔들어 정신을 차린 내가 말했다.

“먹어보지도 않았는데 싫다고요?”

“네! 제가 어렸을 때 먹었던 맛없는 야채와 비슷하게 생겨서 싫어요.”

그렇지.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해.

그래도 가지한테 너무하네. 자지처럼 생겨서 난 좋은데.

“편식하지 마세요. 키 안 큽니다.”

아델이 발끈했다.

양 주먹을 꽉 쥐고 내게 들어 보인 그녀가 빼액 소리친다.

“뭐라구요!? 저 평균키거든요? 163!”

“네, 그러시겠죠.”

약간 비웃음이 섞인 내 반응에, 아델이 사탕상자를 뒤적거리더니 사탕을 세 개나 입 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콧바람을 훅훅 내뿜으며 이빨을 부딪쳐 씹는다.

콤플렉스를 건드렸나보다. 나는 순순히 사과했다.

“기분이 나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해요.”

그에 아델의 눈빛이 상당히 누그러졌다.

“괜찮아요. 저는 키가 작아서 사람들이 어린아이처럼 취급했거든요? 그래서 조금 민감해요. 다음부터 조심해주세요.”

글쎄... 키가 작아서 그런 취급을 했던 게 아닐 텐데...

“알겠습니다. 명심할게요.”

“그래서 실비아 언니와 지혁 씨에게 정말 고마워요. 절 한 사람의 성인으로 봐주고 계셔서요. 아, 물론 박사님과 세화도 좋아요. 유리아 씨도 얼른 만나고 싶은데...”

“유리아 씨가 요즘 바빠서... 그래도 조만간 꼭 만나게 해드릴게요.”

“알겠어요. 고맙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차가 의정부에 도착했다.

별채 앞에 조심스레 차를 세우자, 아델이 안전벨트를 풀더니 말한다.

“내일 뵈어요.”

“키 이야기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제가 아담한 여자를 좋아해서 말해봤어요.”

“주의하겠다고 말씀하셨으니까 잊어버릴게요! 히히... 안녕히 가세요!”

“예, 들어가세요.”

작별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린 아델이 총총걸음으로 현관을 향해 갔다.

악셀을 밟은 나는 별채에서 멀어지며 룸미러로 아델의 반응을 살폈다.

지금까지 계속, 은근슬쩍 관심을 드러냈고, 지금은 대놓고 표현했는데 과연 눈치를 챌까?

천천히 아델과 멀어지던 나는, 비밀번호를 치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번쩍 들고 차의 꽁무니를 바라보자 씨익 웃었다.

‘눈치챘다.’

그녀는 입으로 손을 가져간 상태였다.

눈은 거리가 멀어져서 보이지 않았지만, 저건 분명 내가 했던 말을 곱씹다가 놀란 반응이었다.

괜찮은 리액션이다. 내일부터 재미있어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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