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70화 (170/471)

EP.170 미쳤구나

[지혁 씨! 오늘 머리핀 샀는데 어때요? ξ(✿❛‿❛)ξ]

이런 톡과 함께, 실비아가 찍어준 것 같은 아델의 사진이 왔다.

옆통수에 꽃 모양 머리핀을 달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

이제까진 잘 몰랐는데, 옆모습을 보니 볼살이 조금 오동통하게 오른 모습이 보였다.

귀엽네.

[예쁘네요.]

[(๑ŏ_ŏ๑)]

뭐지? 화가 난 건가?

그냥 심심한 감상평을 말해서 삐친 건가?

뭔가 싶어 가만히 있으니, 다시금 톡이 왔다.

[(๑ò︵ò๑)]

삐쳤던 게 맞았나보다.

[잘 어울려요. 어디서 샀어요?]

[편의점에서요! 아, 저 오늘 점심에 실비아 언니랑 놀러 갔다 와도 돼요? 주변 산책하고 싶어요.]

[주변에 가는 정도면 연락할 필요 없이 다녀와도 됩니다. 근데... 지금 새벽 두 시에요.]

[알아요! 오늘 하루도 파이팅! ٩(๑• ₃ -๑)۶]

뭐지? 날 꼽주는 건가? 저번에 놀이공원에서 서운한 일이 있었나?

침대에 누워 화면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던 나는, 휴대폰을 협탁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하지만 이런 내 정성은 박사가 잠에서 깨어 수포로 돌아갔다.

“.... 누구야...?”

“일어났어? 아델이 오늘 실비아 씨와 산책 다녀오겠대.”

“지금...?”

“아니, 이따 점심에.”

“근데 왜 지금 톡을 보내...? 시간개념이 없지도 않을 텐데...”

“누나도 알잖아. 얘 약간 어린애 같은 거.”

고개를 돌려 하품을 한 박사가 다시 날 바라보았다.

“그렇긴 해... 순수하다고 해야 되나? 조금 걱정돼.”

“실비아 씨가 옆에 붙어서 케어해주잖아. 다행이지 뭐.”

“우리도 많이 도와주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박사의 배를 쓰다듬은 나는, 일어나려는 박사를 만류했다.

“더 자.”

“물 마시고 싶어서...”

“내 침 먹어.”

“미쳤나봐...”

어이가 없는 듯 실소를 터뜨린 박사가 내 입술에 애정 어린 키스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정신과에 들렀던 날 이후 많이 괜찮아졌다.

사흘이 지난 지금까지 이상 없이 나와 잘 만나고 있었다.

도파민을 괜히 정상화시켰나 싶을 정도로 정상. 이제 슬슬 디바이스를 만들자는 얘기를 할 것 같았다.

팔로 이마를 가린 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박사가 컵에 물을 떠오더니 협탁에 둔다.

그리고는 침대에 걸터앉아 내 뺨을 만지작거린다.

“왜 그래? 머리아파?”

“아니. 생각 좀 하느라고.”

“물 마셔. 떠왔어.”

“난 됐어.”

“그래도 마셔. 너 잘 때 입 살짝 벌어지잖아. 안이 텁텁할 거야.”

상체를 일으킨 나는 박사를 향해 히죽 웃었다.

“그런 건 또 언제 봤대?”

“마음이 복잡하거나 잠이 안 올 땐, 널 보면 안심돼.”

“복잡한 일이 뭐가 있는데?”

“그냥 그렇다고... 얼른 마셔.”

잡기 편하게 컵 몸통을 잡고 손잡이 부분을 내게 내미는 박사.

내가 그녀를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사소한 일에도 꼼꼼한 것 말이다.

나와 관련된 일엔 빠르게 무너지지만 사리분별을 잘 하는 면도 장점.

간단히 말해 든든했다.

시중을 받듯 물을 한 모금 크게 들이켜자, 박사가 컵을 다시 내려놓고는 묻는다.

“잠은 다 깼지?”

“깼어. 누나는?”

“나도.”

“영화라도 볼까?”

“난 좋아. 그럼 보면서 뭐라도 먹을래?”

“아무거나 간단한 걸로 해줘.”

환한 미소를 지은 박사가 알겠다며 대답하고는 거실로 나가자,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아델에게서부터 톡이 하나 더 와있었기 때문이다.

[지혁 씨, 저 부탁이 있어요.]

이모티콘을 붙이지 않는 걸 보면 뭔가 진지한 부탁을 하려는 모양인데... 새벽 두 시에 부탁이라니 뭘 말할지 두렵다.

[뭔데요?]

[무인택시 타는 법 알려주세요.]

큰 부탁이 아니네... 허탈해진다.

[무인택시...? 그건 그냥 목적지를 입력한 다음, 도착하고 카드만 찍으면 되는데요?]

[어려워요. 한 번 보면 잘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알려드릴게요. 그리고 아델, 새벽 두 시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잠을 자는 시간이에요.]

[죄송해요. 답장이 와서 안 주무시는 줄 알고... (Ó╭╮Ò)]

정확히 말하자면 깬 거고, 두 시에 문자를 보내는 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됐다. 말씨름을 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봐준다.

네가 나중에 몸으로 갚아야할 텐데, 업보 스택 쌓아놓으면 나야 좋지.

[괜찮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요.]

[네!]

“꺄아아아악!”

내가 아델과 문자를 마친 순간, 거실에서 박사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쨍그랑! 하는 소리도 같이 들렸다. 접시를 떨어뜨린 것이 분명했다.

침실을 달려 거실로 나온 나는, 부엌 창문을 바라보며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박사를 발견했다.

조현병이 도진 건가? 일단 유리부터 치워야겠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발에 유리조각 박히면 안 되니까.”

말을 마친 나는 빗자루를 가지고 와 깨진 파편을 한데 모았다.

“지, 지혁아...!”

공포에 잔뜩 질린 목소리.

파편을 박사에게서 전부 치운 나는, 그녀의 발을 조심스럽게 들어 유리가 남아있나 확인해보았다.

“육안으로는 안 보이는데, 그래도 모르니까 화장실 가서 발 씻자.”

그리 말한 나는 박사의 오금에 팔을 넣어 앞으로 안아들었다.

그러자 박사가 내 목에 팔을 감더니 힘을 꽉 준다.

귀신이라도 본 건가? 왜 이러지?

박사의 거칠어진 호흡은 점점 평온해졌다.

내 품 안에서 안정을 느낀 모양. 나는 박사를 최대한 진정시키기로 했다.

**

박사의 발을 꼼꼼히 씻겨준 나는,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식은땀으로 젖은 박사의 윗머리를 정리해주고 있자, 그녀가 아까의 일을 말한다.

“저, 전남편을 봤어. 에드워드...”

“에드워드 파슨스?”

“맞아... 날 바라보고 지나갔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마치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걸어 다니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어...”

다시금 불규칙적으로 변하는 박사의 호흡.

그렁그렁해진 눈을 보니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

헌데 환각을 봤다고? 조현병이 다시 도졌나보다.

괜히 호들갑을 떤다면 더욱 불안해할 수 있으니 침착하자.

“목소리 같은 건 안 들렸고?”

“응...”

“약 먹을래? 아니면 연구실로 가서 의료기기에 들어갈래?”

“지, 지금은 아무데도 가기 싫어...”

“그럼 약 가져올게.”

“가지마!”

버럭 소리치는 박사.

내 손목을 강하게 붙잡기까지 한다.

묵묵히 알겠다고 대답한 나는 박사의 옆에 누워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아직 전부 정리하지 못했구나.”

그녀가 순순히 인정했다.

“그런 것 같아... 무의식 속에 자리한 전남편의 존재감이 큰가봐... 너무 정리하고 싶은데,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데... 미안해...”

“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해. 엄청 많이 사랑했고, 엄청 오래 그리워했잖아.”

“난 전남편을 좋게 보내고 싶은데... 어떠한 형태로든 나타나니까 원망스러워. 너랑 행복해지고 싶은데 방해하는 것 같아...”

박사의 눈빛이 표독스러워졌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돼. 나는 물론이고 너까지 힘들어져...”

상체를 벌떡 일으킨 박사가 내게 따라오라고 한 뒤, 성큼성큼 다용도실로 향했다.

그녀는 에드워드 파슨스의 유품이었던 골프가방을 거실 밖으로 패대기쳤고, 앨범을 비롯한 액자까지 가지고 나왔다.

그러더니 날 올려다보며 말한다.

“이거 때문이야. 이거 때문에 남편의 영혼이 나한테 붙어있는 거야.”

미친 소리를 하는구나.

그래도 추진력 하나만큼은 좋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선반을 뒤져 박사에게 처방된 약을 꺼냈다.

“연구실 안 갈 거면 지금 이거 먹어. 망상까지 도진 것 같으니까.”

“망상...? 내가 지금 망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영혼이 붙어있다고 하는데, 이게 망상이 아니고 뭐야?”

“이상한 능력을 사용하는 마물까지 나타나는 마당인데 못할 말은 아니잖아... 안 먹어. 난 지금 지극히 정상이야.”

“환각까지 본 사람이 정상이라는 말을 해?”

“.....”

입을 앙 다문 박사가 내게 원망 어린 시선을 보냈다.

왜 자신을 말리냐는 듯 말이다.

사실 말릴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내가 이러는 건 박사의 폭력성을 끌어내면서, 그녀가 그 감정을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잠시간 그녀와 눈을 마주치던 내가 물었다.

“후회 안 해? 골프가방이나 액자는 몰라도 앨범은... 누나랑 남편의 수많은 추억이 깃들어있는 물건이잖아.”

“이젠 추억이 아니라 쓸모없는 물건이야.”

“왜?”

“난 너만 바라보고 있잖아. 전남편과의 모든 기억을 잊고 너와 행복하게 살고 싶어.”

“지금 누나는 상당히 화가 나있어. 홧김에 이러는 것뿐이야.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너는 지금 내 편이야!? 아니면 그 새끼 편이야!?”

박사가 내 말을 끊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새끼라니... 갈 때까지 갔구나. 몸이 달아오른다.

나는 침착하게 박사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난 누나 편이야.”

그 말에 박사가 앨범을 집어던졌다.

앨범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고...

내게 성큼 다가온 박사가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쿡쿡 찔렀다.

“내 편이라는 사람이! 왜! 이딴 걸 버리지도 못하게 하는 건데!? 너도 싫잖아! 이거 엄청 싫어했잖아!”

“누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그럼 네 손으로 직접 버려. 그게 날 위한 일이야.”

“약부터 먹어. 그 다음 생각해보자.”

“안 먹는다고 했어! 난 정상이야! 그리고 생각할 것도 없어!”

거실이 떠나가라 소리치는 박사.

내가 가만히 있자, 박사가 날 죽일 듯 노려보며 씩씩댔다.

그러더니 돌연 골프가방을 집어 들어 거실 창문으로 갔다.

창문을 벌컥 연 박사는 낑낑거리면서 가방을 들어 밖으로 버리려 했다.

힘이 모자라 한꺼번에 버리지 못하자, 박사는 골프채를 하나하나 들어 창문 밖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러는 동안, 난 소파에 앉아 바닥에 떨어진 앨범을 집어 펼쳤다.

그 뒤 한쪽 다리를 꼬고 박사와 에드워드 파슨스의 사진을 태연하게 감상했다.

그러자 골프채를 전부 버린 박사가 내게 다가오더니 앨범을 빼앗았다.

“이딴 거 보지 마. 볼 가치도 없는 것들이니까.”

어깨를 으쓱인 내가 답했다.

“예전에 내가 남편의 옷을 입었다고 엉엉 울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네. 낯설어.”

“가식 떨지 마. 인간은 원래 폭력적이라고 누가 그랬는데? 네가 그랬어.”

얕게 한숨을 내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아, 그랬지. 버리니까 후련해졌어?”

“아니.”

“그럼 뭐 어쩔 건데? 사진을 전부 불태우면 되겠어?”

“.... 그거 좋은 방법이네.”

박사는 연신 ‘좋은 방법이야.’ 라는 말을 되뇌면서 앨범에 있는 사진들을 죄다 꺼냈다.

이후 그것들을 한데 모으고는 내게 물었다.

“너도 내가 이러는 게 좋지? 이딴 지긋지긋한 건 버려야 맞잖아. 그치?”

“내 대답을 듣고 기분이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잠시뿐일 거야. 누나가 마음가는대로 하는 게 옳다고 봐.”

스스로 선택하고, 그에 뒤따른 결과를 받아들이라는 의미였다.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박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진들을 바닥에 던져버린 그녀가 돌연 티셔츠를 훌러덩 벗어던졌다.

그리고는 말한다.

“넌 전남편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좋은 사람이야. 난 지금 죽었는데도 내게 미련이 남아 집착하는 그놈을 잊고 싶어.”

“그래서?”

“지금 그놈은 어딘가에서 우릴 보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넣어줘. 그럼 그놈이 미련을 접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아.”

중증이구나, 중증이야. 완전히 미쳤구나.

그래도 원하시는 대로 해드려야지.

고개를 끄덕인 나는 말없이 박사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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