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7 놀이공원 가고 싶어요 #2
“우와아아...!”
차에서 내린 아델은 감탄의 감탄을 거듭했다.
주차장에 좌르륵 늘어선 승용차, 그리고 어마어마한 인파.
사람이 많은 곳은 처음 와봐서였을까? 그녀는 신기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방긋 웃는 낯으로 아델에게 가까이 다가간 내가 물었다.
“어때요?”
“사람들이 많아요... 엄청 많아요...! 지혁 씨를 잃어버리면 어떡하죠?”
벌써부터 미아 걱정이라니 어이가 없네.
“휴대폰으로 전화하면 되잖아요. 그리고 북적거리긴 하지만 인파에 휩쓸릴 정도로 많지는 않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넷...!”
“들어가요.”
아델을 향해 이리 오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그녀가 총총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내 옆에 차렷 자세로 선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켠 나는 아델의 뒤로 돌아갔다.
그리곤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긴장한 거 다 보여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재미있게 놀다 오면 되는 거니까.”
“아... 네...!”
안마를 해주니 아델이 절로 흐아아... 하며 늘어지는 소리를 냈다.
딱히 거부감을 표출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스킨십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아니면 거리낌이 없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아델의 어깨를 느릿하게 주물러준 내가 물었다.
“이제 괜찮아요?”
“네! 엄청 시원했어요. 고맙습니다, 지혁 씨.”
“제가 차에서 뭐라고 당부했죠?”
“절대 능력을 사용하지 말 것, 수상한 기운이 느껴진다면 먼저 지혁 씨에게 말할 것!”
자신감 있게 말하는 아델.
목소리가 조금 커서인지 사람들이 우릴 흘끗 바라보면서 지나갔다.
주위를 둘러본 나는 검지를 피면서 아델에게 경고했다.
“이 세상은 사람들이 아주 평범해요. 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땐 절대 목소리를 높이지 마세요.”
“아, 죄송해요...”
“나무라는 게 아니니까 시무룩해지지는 말고요. 잠깐만...”
나는 차문을 열고 글러브박스와 컵 홀더를 뒤적거렸고, 검은색 머리끈과 머리핀 몇 개를 찾아냈다.
박사가 사용하던 것이었다.
난 이걸 가지고 멀뚱멀뚱한 눈빛을 한 채 가만히 있던 아델에게 다가갔다.
“뒤로 돌아볼래요?”
“네? 왜요?”
“놀이기구를 타려면 머리집게로는 모자랄 것 같아서요. 풀리면 거슬릴 테니까 아예 새로 묶어줄게요.”
“정말요?”
눈을 초롱초롱 빛낸 아델이 황급히 뒤로 돌았다.
새로운 헤어스타일이 기대됐나보다.
나는 아델이 착용한 머리집게를 빼냈다.
어깨 아래로 사르르 쓰러지는 그녀의 찰랑거리는 밝은 금발머리.
그 부드러운 머릿결을 한꺼번에 모아 잡은 나는, 열심히, 공을 들여 아델의 머리를 똥머리로 만들었다.
“다시 뒤로 돌아보세요.”
“네!”
폴짝 뛰어 180도로 점프해 날 마주보는 그녀.
그런 귀여운 행동에 피식한 나는, 새끼손가락으로 아델의 고정된 윗머리를 살살 긁어내며 잔머리를 만들어주었다.
아델은 자신의 에메랄드 색 눈으로 머리를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는 날 올려다보았다.
호의적인 눈빛이 가득하다. 마치 주인을 바라보는 새끼강아지 같은 표정.
“다 됐어요.”
말을 마친 나는, 조심스런 손길로 자신의 뒤통수에 달린 둥그런 머리카락을 툭툭 건드리고 있는 아델을 향해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옆으로 돌아보세요. 사진 찍어줄 테니까.”
아델이 순순히 몸을 옆으로 돌리더니 허리를 곧추세웠다.
봉긋하게 튀어나온 가슴, 그리고 흰색 무지티셔츠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브라끈이 내 욕정을 자극한다.
당장 저 순진한 얼굴을 눈물범벅으로 만들어주고 싶지만 참자.
그나저나 똥머리 한 번 기가 막히게 만들었다. 아주 완벽해.
찰칵!
사진을 찍은 나는 아델을 불러 바뀐 헤어스타일을 보여주었다.
“어때요?”
“우와아...! 엄청 예뻐요...!”
리액션이 찰져서 그런가 괜히 뿌듯해지네.
“오늘 돌아가면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드릴게요.”
“진짜요? 감사합니다!”
기뻐서 방방 뛰는 아델.
텐션이 너무 높아서 껄끄럽긴 하지만... 가식하나 없는 진심이니만큼, 그리고 귀여운 만큼 봐준다.
“이제 들어갈까요?”
“네!”
**
“우아아아아악!”
내 옆자리에 앉아 비명을 내지르는 아델.
현재 우린 이 놀이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수직낙하가 여러 지점에 걸친 롤러코스터를 탄 상태였다.
아델은 롤러코스터가 쭉 내려갈 때마다 엄청난 소리를 질러댔는데, 거의 엉엉 울 정도라 앞, 윗좌석에 탄 사람들이 실실 쪼갤 정도였다.
“@#(*#&&!!”
자신이 살던 행성의 언어로 무어라 소리치기까지 했다.
우여곡절 끝에 몇 분간의 짧은 어트랙션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녹초가 되기 직전인 아델을 부축해 출구로 끌고 나왔다.
소지품 보관함에 넣어둔 휴대폰을 그녀의 주머니에 넣어준 내가 물었다.
“괜찮아요?”
“.....”
입을 살짝 벌리고 풀린 눈으로 날 바라보는 아델.
호기롭게 달려들 때는 언제고, 지금 거의 죽으려는 모습을 보니 무척 웃겼다.
나는 힘을 내라는 뜻에서 그녀의 등을 툭 쳐주었다.
“TV에서 본 것보다 무섭죠? 그러니까 제가 약한 어트랙션부터 타자고 했잖아요.”
“지, 지혁 씨... 저 심장이 엄청 두근거려요...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그리 말한 아델이 내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 윗부분에 붙였다.
꼬리를 치는 게 아니라, 진짜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 때문에, 그리고 현재 경황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었다.
뭐 이런 순진한 년이 다 있냐? 나는 침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박동이 빨라요. 이제 손 좀 놔주실래요?”
“아...! 죄송합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린 건지,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진 아델이 황급히 내 손을 놓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제 다른 거 타러 갈까요?”
“네...”
“휴대폰 집어넣어요. 떨어지겠네.”
그 말에 아델이 핫팬츠 앞주머니에 휴대폰을 꾸겨 넣다시피 했다.
그리고는 해맑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처음부터 강한 롤러코스터를 타서 방전되었던 아델은 금방 회복됐고, 산책을 처음 나온 리트리버마냥 놀이공원 안을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그 어떤 놀이기구도 무섭든 말든 죄다 타보려고 했으며, 심지어는 사진을 찍는 장소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음식도 복스럽게 먹어서 보기가 좋았다.
“이거 진짜 맛있어요! 지혁 씨도 먹어보실래요?”
자신이 한 입 크게 베어 문 떡꼬치를 내미는 아델.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괜찮으니까 많이 먹어요.”
“네! 헤헤...”
다시금 떡꼬치를 가져가 우물우물 씹고 삼킨 아델이 말한다.
“지혁 씨는 정말 좋은 사람 같아요.”
“제가요?”
“실비아 언니도 그랬어요. 지혁 씨는 연구실에 갈 필요가 없는 사람인데도 박사님을 도와주는 걸 보면, 정말 정의로운 사람이라구요.”
“그런 말을 했어요? 실비아 씨가?”
“네! 처음엔 의심을 했대요. 뭔가 목적이 있지는 않을까 하고요.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대요. 진심으로 저희들을 위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하셨어요.”
당연히 너흴 아껴야지. 타락시킨 다음 나와 전 우주를 정복해야 하는데.
“칭찬해주셔서 고맙네요.”
“철이 없는 제 부탁을 들어주신 것도 감사하고...”
“철이 없다니요. 낯선 행성에 호기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저도 아델이 사는 행성에 떨어졌으면 구경시켜달라고 졸랐을 거에요.”
“진짜에요?”
“네.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말고 뭐든 부탁해도 돼요. 심심하면 제 눈치 보지 말고 밖에 나가서 놀아도 되고요. 대신... 어디 나갈 땐 아까 차에서 말씀드렸던 대로 저한테 말해줘요. 문자 한 통만이라도 좋으니까.”
“네, 지혁 씨!”
“그리고 이거 사고 싶어 했죠?”
나는 주머니에서 귀여운 북극여우 장식이 있는 머리핀을 꺼내 내밀었다.
그러자 아델의 눈이 커졌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어트랙션 줄을 서면서 계속 이것만 쳐다보고 있었잖아요. 아까 음식 시키기 전에 사왔어요.”
“가, 감사합니다아...”
아델이 나를 흘긋거리면서 떡꼬치를 베어 물었다.
그녀의 반응만 봐도 점수를 딴 것이 느껴진다.
게임 현질은 미친 듯이 하더니 이런 거 하나 사달라고는 못 하냐?
이런 여우같은 계집.
아델은 자그마한 자신의 손으로 머리핀을 가져가 주머니에 조심스레 넣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생긋 웃어 보인 나는, 티슈를 뽑아 아델에게 주었다.
“그리고 뺨에 소스 묻었어요.”
“앗...!”
방금과는 다르게 조신한 몸짓으로 티슈를 받은 아델이 자신의 양 뺨을 닦아냈다.
기르고는 두 개 정도 남은 떡꼬치를 내려놓으며 말한다.
“저 다 먹었어요. 다시 놀이기구 타러 가도 돼요?”
“물론이죠.”
“사진도 찍어주세요. 아까 예쁜 장소를 봤어요.”
“그럴게요.”
“지혁 씨랑 같이 찍어도 돼요? 저 혼자만 찍으려니까 죄송해서...”
“하고 싶은 건 다 하세요. 여태까지 집에만 있느라 지루했을 테니까.”
아델이 날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주변이 환해지는 듯한 아름다운 미소.
순간 정신이 아찔해진 나는 머리를 털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날까요?”
“네!”
**
[지혁 씨,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 롤러코스터 진짜 무서웠어요.╭(°ロ°”)╯]
[그래도 재미있었죠?]
[네! 엄청요! 다음에도 또 놀아주실 거죠? (˵⚈ε⚈˵)]
이런 이모티콘은 어디서 가져오는 거야?
세대적응 한 번 빨리하네.
아델은 그냥 아무데나 떨궈놔도 혼자 잘 살아갈 애인 것 같다.
아니지, 사기를 잘 당할 성격이라 금방 패가망신하겠구나.
[그래요. 다음에 또 놀아요.]
[약속했어요? ✪‿✪]
[네.]
[(◞♥ꈍ∇ꈍ)◞♥]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에 앉아 아델이 보낸 문자를 보며 피식피식 웃던 나는, 휴대폰을 집어넣고 고개를 뒤로 쭉 뻗었다.
그러자 내 머리를 말려주던 박사의 오똑한 코끝이 내 턱에 닿았고, 입술에 말랑한 촉감이 느껴졌다.
거꾸로 하는 키스여서 그런지 색다른 느낌이 나는구나.
눈을 게슴츠레 뜬 박사가 입술을 떼어난 다음, 내 턱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묻는다.
“오늘 재미있게 놀다 왔어?”
“그냥저냥.”
“그냥저냥? 지금도 즐거워하는 것 같은데?”
“그래 보여요?”
“게다가 돌아오기 전까지 연락도 없었다는 건... 재미있었다는 뜻 아니야?”
“그냥 애완견 산책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너무 활기차더라고.”
그 말에 박사가 손날로 내 목을 약하게 쳤다.
“너는 왜 그런 말을 하니? 사람한테...”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고 한 거에요. 근데 누나.”
“응?”
“표정이 왜 그래요? 뭐 안 좋은 일 있었어요?”
“아냐. 혼자 있으려니까 외로워서... 놀이공원은 어디로 다녀왔어? 양주에 새로 생긴 곳?”
박사야... 그 많은 놀이공원 중에서 거길 콕 집으면 어떡하냐.
물론 양주는 실비아와 아델이 사는 의정부랑 가깝지만 속이 너무 보이는 거 아니야?
날 테스트하려는 건 좋은데, 최소한 선택지를 늘여놓고 선택하게 했었어야지.
내가 의심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응.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거기 갈 것 같더라. 의정부랑 가깝잖아. 사람 많았어?”
“바글바글하더라고요.”
“아델은 어때? 재미있었대?”
아델을 의식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라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한다.
“그렇대요. 누나는 놀이공원 가본 적 있어요?”
“젊었을 땐 많이 갔지.”
“지금도 가고 싶어요?”
“난... 그냥...”
말을 흐리는 박사.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몸을 돌려 박사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그녀의 엉덩이를 지그시 감싸 쥐었다.
부드러운 레이스 팬티 안에 있는 도톰한 엉덩이 살을 느끼던 나는, 박사를 향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누나 나한테 서운한 거 있지?”
“.....”
박사가 내 시선을 피하더니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녀의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겨준 내가 부드러운 투로 말했다.
“괜찮으니까 말해봐요.”
그에 박사가 입을 우물거리더니, 긴 속눈썹을 내리깔며 묻는다.
“그... 오전에 왜 나한테 싸늘하게 말했어?”
“내가 언제?”
“그랬잖아. 네, 박사님... 이렇게...”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싸늘한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거 때문에 토라져있던 거에요?”
“토라진 게 아니라... 서운해서... 물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공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해야 하지만... 일단 이거부터 놔줄래?”
박사는 내게 반항이라도 하려는 듯 엉덩이를 잡은 손을 치우려고 했지만, 내 눈치를 보더니 이내 그만두고는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난 박사의 심란한 표정을 빤히 쳐다보다가, 최대한 인자한 말투로 그녀를 불렀다.
“누나.”
“왜.”
“누나는 나 사랑하지?”
“당연한 소리를 해...”
“남편보다 더?”
“응... 그렇다고 했잖아.”
“그럼 누나, 오늘부터 피임약 먹지 말아볼래요?”
그에 박사가 화들짝 놀라더니 고개를 들었다.
“무, 뭐...?”
“남편보다 날 더 사랑하면 먹을 이유가 없잖아요. 가뜩이나 난임이면서... 오늘부터 먹지 마요.”
내 말뜻을 이해한 박사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떨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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