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62화 (162/471)

EP.162 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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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발이 부들부들 떨린다.

설마... 설마 지혁이 마약을 했다는 말인가?

믿고 싶지 않지만 지혁의 행동은 딱 마약에 취한 사람의 그것이었다.

종류는 지속시간을 어마어마하게 늘린 대신, 몸 내부도 급속도로 망가뜨리는 개량한 코카인이 분명했다.

해본 적은 없지만 뉴스에 많이 나와서 알고 있었다.

박사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간신히 억누른 채로 지혁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해맑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았고, 콧구멍을 비롯한 인중을 자세히 살폈다.

“뭐해?”

지혁의 천진난만한 물음.

박사가 가라앉은 투로 말했다.

“가만히 있어.”

“알았어요.”

지혁은 곧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입술을 잘근 깨물고 그의 눈꺼풀을 위아래로 들춰본 박사는, 어린아이를 추궁하듯 지혁에게 물었다.

“지혁아, 너 혹시 코로 흰 가루 빨아들였니?”

“응. 기분 좋아졌어요.”

“언제부터?”

“이틀 전부터... 누나가 가고 나서 했어요. 근데 나 춥다... 히터 틀어달라고 하면 안 돼?”

후덥지근한 플로리다에서 춥다니...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구나.

하지만 텐션이 약간만 높아진 상태에다 얌전한 것으로 보았을 때, 약을 한지 꽤나 오래됐음을 알 수 있었다.

박사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틀 전에 시작했다면 남용을 했을 뿐이지, 의존까지 가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마약은 한 번 빠지면 중독에서 벗어나기가 극히 힘들다.

그러나 연구실의 의료기기가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지혁을 의료기기에 들여보내 뇌의 도파민을 정상화시키면 된다.

문제는 쾌락을 이미 느껴버렸다는 건데... 지혁의 의지라면 옆에서 케어만 해줄 경우 금방 벗어날 수 있을 것이었다.

“지혁아.”

“응?”

“그거 누가 줬어? 설마 그 친구가 줬니?”

“맞아요. 진짜 좋은 사람이야.”

박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범죄자 새끼한테 고맙다고 생각했었는데, 취소다.

“그 친구가 또 준 거 있어?”

“음...”

머뭇거리는 지혁.

그가 무언가를 더 숨기고 있다고 확신한 박사가 최대한 인자한 투로 말했다.

“괜찮아. 화 안 낼게.”

“약속해요?”

“약속해. 절대 화 안 내.”

“주사... 맞으면 기분 좋대서 맞았는데...”

“주, 주사!?”

정신이 번쩍 든 박사가 지혁의 죄수복 소매를 확 걷었다.

오른쪽 팔오금 부위에 보이는 세 개의 검갈색 점.

그걸 본 박사는 갑작스레 머리가 띵해져와 이마를 짚었다.

정맥에 직접적으로 주사하는 마약은 비강으로 흡입하는 것보다 효과가 훨씬 세다.

중독성도 비할 바 없을 정도로 높고.

괜히 한 번 바늘을 꼽으면 골로 간다는 음지의 격언이 있는 게 아니다.

“아...”

휘청거리는 박사를 본 지혁이 걱정스런 말투로 묻는다.

“누나, 괜찮아요?”

꼭지가 돌아버릴 것 같지만 참아야 한다.

지혁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을 뿐이다. 그에게 잘못은 없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박사가 심호흡을 했다.

“괜찮아... 난 괜찮아...”

“어디 아파요? 병원 보내달라고 할까? 여기 의무실 의사가 명의래요.”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을 보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끓어오르는 화를 어떻게든 억누른 박사가 질문했다.

“지혁아, 혹시 교도관이 이걸 알아? 주사기는 누가 줬어?”

“교도관한테 받아온 거래요. 비싸게 샀대. 그 비싼 걸 나한테 주다니... 진짜 좋은 친구죠?”

“.....”

온몸을 부들부들 떨던 박사는, 자신을 헤롱거리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지혁의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그리고 분노했다. 지혁을 저렇게 만든 재소자, 그리고 교도관에게.

전부 한통속이었다. 아니, 교도관이 범죄자보다 더했다.

주립 교도소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다니. 대체 얼마나 부패했다는 말인가?

권력을 이용해 남들을 갈취하려는,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쓰레기들.

그들과 같은 공기를 마신다고 생각하니 시리아의 그 인체실험을 하던 놈들을 생각했을 때처럼 구역질이 올라왔다.

“지혁아...”

“왜요?”

“내가 곧 여기서 나가게 해줄 테니까, 그때까지 절대, 다시는 그거 하면 안 돼. 알았지?”

“그거?”

“흰 가루든 주사기든 다시는 하지 말라는 소리야.”

“으음...”

“약속한 거다?”

“.....”

시선을 피하는 지혁.

딱 봐도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았다.

발을 동동 구른 박사가 재촉했다.

“약속해. 얼른.”

“네... 약속했어요.”

“꼭 지켜야 돼. 난 널 믿어.”

“알았어...”

확신이 없는 대답을 들은 박사는 불안했지만 믿음을 가졌다.

지혁의 머리를 꽉 끌어안은 그녀가 생각했다.

교도관에게 당장 그 재소자를 처리하라 말하고 싶은데, 여긴 믿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너무나도 열이 받지만 괜한 말을 했다간 지혁이 보복당할 수도 있고, 지금은 그를 빼내는데 집중해야 하니까 일단은 참아야 한다.

안일했다. 지혁은 이 쓰레기장에 있어선 안 되는 사람인데...

‘개자식들...’

**

“알렉스! 이봐!”

내 눈앞에서 핑거스냅을 하는 흑인 재소자.

그의 주변으로 패거리들이 주르륵 늘어섰다.

날 공격하려고 온 게 아니라, 마약을 받으려고 온 것이다.

나는 지금 섹션 A의 마약왕이었다.

섹션 H에서 이감된 순간부터 약을 뿌려대서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올랐다.

허울뿐인 자리였지만 말이다.

근데 누가 이따구로 날 부르랬지? 어이가 없네.

간식거리를 먹고 있던 나는 식탁에서 스르륵 일어났다.

“뭐가 필요한데?”

흑인 재소자가 자신의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코카인.”

이 누런 거 봐라. 재수가 없다.

현재 날 건드리는 놈은 아무도 없었다.

본보기로 몇 사람을 죽여서? 아니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보여줘서? 그것도 아니다.

내가 교도관들에게 마약을 받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날 죽이면 더 이상의 마약은 유통되지 않으니 가만 놔두는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진즉 여기서 싸움판을 벌였을 것이다.

난 죄수복 안에서 흰 가루가 든 자그마한 비닐봉지를 들어 흑인 재소자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이거?”

“그래, 어서 내놔.”

슬랭을 섞어가며 예의 없이 구는 재소자.

난 그의 뒤에 있는 재소자들을 향해 새하얀 이를 드러내보였다.

“니들, 내 앞에 있는 이 새끼 한 번 죽여 볼래? 그럼 오늘 하루 종일 약에 취할 수 있게 해준다. 코카인, 메스, 헤로인부터 시작해서 필요한 건 뭐든 구해다주지.”

그 말에 내게 핑거스냅을 했던 흑인 재소자가 당황해했다.

“무, 뭐...?”

하지만 이미 늦었다.

사회에서 했던 뽕맛을 오랜만에 느낀 재소자들은, 하루 종일 취할 수 있다는 말에 눈깔이 돌아갔다.

그 흑인 재소자를 넘어뜨린 한 재소자의 주먹질을 시작으로, 다른 재소자들이 발길질을 시작했다.

인파 한가운데에서 새어나오는 끔찍한 비명소리를 노래삼은 나는, 식탁 위에 올라가 품 안에 있던 모든 마약을 공중에 뿌렸다.

그러자 섹션 A의 재소자들 전체가 달려와 마약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서열경쟁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다.

투쟁을 통해 높은 자리를 쟁취하려고 하고, 우두머리가 없어지면 다른 녀석이 그 자리에 오르려고 한다.

지금은 저 흑인이 뒈졌으니 얼마 뒤면 새로운 놈이 패거리의 리더로 등극하겠지.

하지만 그 안에 나는 없을 것이다.

내가 10년을 여기서 썩는다고 해도, 이 패거리들의 진정한 리더는 되지 못한다.

인종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꿀벌의 여왕벌이 죽었다고 해서 호박벌의 여왕벌을 추대하던가?

아니다. 자신들의 벌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새로운 여왕벌을 추대하거나, 동족인 다른 꿀벌들의 벌집에 병합된다.

지금은 내가 어마어마하게 달콤한 꿀을 가지고 와주니까 얌전히 있는 거지, 꿀이 없다면 호박벌인 나를 가만 놔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왕으로 등극해 동족이 아닌 것들은 쳐내고 권력을 휘두르려 할 테지.

인간들이 이토록 한심하다.

다양한 종족들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오로지 힘으로 모든 서열이 결정되는 마계에 비해, 마왕이라는 이름만 있다면 돈, 권력 같은 매개가 없어도 충성을 바치는 마계에 비해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꼭 보답이 있어야 뭘 하려는 부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들을 보니 하루 빨리 지구를 마계처럼 만들어야겠다는 내 신념이 더더욱 확고해지는 기분이다.

미쳐 날뛰기 시작하는 그들의 뒤로 내려온 나는, 섹션의 입구 쪽 철창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교도관들에게로 다가갔다.

“싱클레어는?”

“다른 섹션에 있어. 그나저나 이런 짓은 조금 자제하지 그래? 이러다 매스컴이라도 타면...”

“매스컴이 사회의 쓰레기들에게 신경이나 쓰나? 여긴 누가 죽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 곳이잖아. 니들도 여태까지 그러려니 하면서 월급만 받아먹었을 텐데, 이제 와서 걱정하는 건가?”

“네게 뭐라고 하는 건 절대 아냐. 그냥 우리한테 피해만 안 가게 해달라는 거지.”

알랑방귀를 끼는 꼬라지하고는... 쯧.

이 교도관들도 마찬가지다.

말단부터 시작해서 소장까지 똑같이 하등한 생명체다.

고작 이틀. 이틀 만에 이들에게 신임을 얻었다.

다만 유효기간이 있는, 돈으로 만든 관계다.

내게 돈이라는 힘이 없었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났을까?

어떠한 방식으로든 날 괴롭히려 안간힘을 썼겠지.

“그걸 말이라고. 문이나 열어.”

“어디 가시려고?”

“독방. 여긴 시끄러워서 잠을 못자겠단 말이지.”

피식 웃은 교도관 한 명이 내게 수갑도 채우지 않은 채 문을 살짝 열었다.

여기서 왕처럼 군림하는 생활은 썩 나쁘지 않았다.

박사의 오늘 반응으로 보았을 때, 난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 나가게 될 것이다.

여긴 그녀의 생각을 돌려놓기 위한 매개였지만...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

**

다음 날 아침.

쿵!

봉으로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싱클레어가 방글방글 웃고 있자 직감했다.

박사가 권력을 사용해 날 석방시켰다고 말이다.

식기배출구 앞으로 다가간 내가 물었다.

“출소지?”

“그래. 명령이 떨어졌어. 언제고 나갈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빨리 출소할 줄은 몰랐다.”

“힘이 있으면 뭐든 되거든. 누가 출소시킨 거야?”

“그야... 네 지인이 힘을 썼겠지.”

“출소 명령은 누가 내렸냐고.”

“난 몰라. 그냥 까라니까 까는 거야. 문 열어줄 테니까 나간다고 해코지하지는 마라.”

아직도 내 면상을 봉으로 후려친 것을 마음에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은 내가 말했다.

“그럴 일 없어.”

“고맙다.”

나는 싱클레어와 함께 교도관장의 사무실로 움직였다.

원래는 곧바로 출소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나머지 돈을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한 관장이 날 불러오라 시킨 모양이었다.

관장은 잔뜩 화가 나있는 얼굴로 날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오자마자 봉으로 책상을 쳤다.

쾅!

“이야기가 다르잖나.”

교도관장의 서슬 퍼런 말.

예상이 맞았구나. 돈을 받지 못할까봐 불안해하고 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딱 그짝이었다.

“누가 안 주겠대요? 휴대폰이나 내놔봐요.”

그 말에 관장이 냅다 휴대폰을 넘겼다.

마르셀라에게 전화한 나는, 관장을 비롯한 교도관들에게 50만 달러를 추가로 약속해줬다.

그제야 표정을 푼 관장이 희희낙락해했다.

“고맙군. 날짜와 장소는 그때처럼 정하면 되나?”

“예. 그러시면 됩니다. 이야기 끝났죠?”

“그래, 즐거웠다. 말년에 복덩이가 굴러 들어와서 기분이 좋군.”

“은퇴하시려고?”

“당연하지. 어디 해외로 여행이나 갈 생각이야.”

관장이 책상에서 서류를 꺼내 싱클레어에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잘 가라.”

그래, 너도 잘 가라.

출소절차를 마친 나는 똥색 죄수복을 벗고 사회의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미시시피에서 사고가 났을 때 입었던 옷. 핏자국이 묻은 셔츠를 본 싱클레어가 묻는다.

“네 피야?”

“알 거 없어.”

“그래. 심심해서 물어봤다.”

옷을 다 갈아입고 마지막 절차를 마친 나는, 싱클레어의 안내에 따라 교도소 입구에 섰다.

맞은편 도로의 갓길을 보니 차가 한 대 서있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날 기다리고 있는 박사가 보인다.

그녀를 향해 손을 크게 흔들어준 나는, 입구를 열고 있는 싱클레어를 불렀다.

“싱클레어.”

“엉?”

“너는 그 자리에 오지 마라.”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돈 받는 자리에 오지 말라고.”

처음엔 내가 장난을 치는 줄 알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려던 그는, 내 진중한 얼굴을 보고 완전히 굳어버렸다.

나는 입을 뻐끔거리고만 있는 그에게 경고했다.

“뒷계좌로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을 만큼 돈도 넣어줄 테니까, 입 싹 닫고 조용히 살아.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

“대답은?”

“아, 알았어.”

“마지막으로... 여긴 그만두는 게 좋겠다.”

싱클레어의 숨이 거칠어졌다.

그의 모자 아래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려 턱 끝을 적신다.

그래, 두려워해야지. 그래야 하고말고.

만족스레 웃은 나는 목석마냥 서있는 싱클레어의 팔을 툭툭 쳤다.

“간다, 재밌었어.”

만약 싱클레어가 누구에게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지껄일 경우, 그는 다른 교도관들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것이다.

그러나 입단속을 잘 한다면? 그는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을 만큼의 돈을 손에 쥔 채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꾸준히 말동무를 해준 일에 대한 자비는 이게 끝이다. 선택은 오로지 그의 몫이었다.

교도소를 나온 나는 쨍쨍한 햇빛이 내리쬐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영화에서 보면 눈살을 찌푸리던데, 다 뻥이었구나.

기분이 나쁘기만 하다. 비는 안 오려나...

맞은편으로 건너간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있는 박사를 향해 양팔을 벌렸다.

그러자 박사가 어흑! 하며 서러운 울음을 터뜨리더니, 내게 달려와 안겼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서 이번 일로 박사가 가지게 된 적개심을 키워놓자.

몰래 마약을 하는 걸 일부러 들켜서 속을 벅벅 긁어놔야지.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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