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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61화 (161/471)

EP.161 마약 절임

한참동안 울어댄 박사는, 띵띵 부은 눈을 훔치고는 말했다.

“이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절차고, 네가 나오면 따질 생각이야...”

“따지다니? 어떻게 따지려고?”

“그야... 제니퍼 캐시 박사의 이름으로...”

날 위해 본부에서 사용하는 총책의 이름을 쓰겠다는 소리였다.

“안 돼요. 그러면 나와 본부가 연관이 있다는 걸 들키게 되잖아. 그냥 빼내주기만 해요.”

까드득!

분노한 박사의 입에서부터 이빨이 갈아지는 소리가 났다.

더 화를 내라. 날 이렇게 만든 인간에게 적개심을 가져.

그리고 그 적개심을 모든 인류에게 향하는 거야.

“무조건 따져야겠어. 본부와 네가 연관이 없도록 할게.”

“그러려면 입막음이 필요할 텐데? 내 얼굴을 본 인간들을 죄다 죽일 거에요?”

“.... 어쨌든 조금만 참아... 지금 범죄조직과 연관된 주지사들을 다 찾았어. 미시시피 주지사가 일반인인 네게 누명을 씌운 정황도 포착했고.”

“신중하게 움직여야 돼. 급하게 생각하지 마요.”

“지금 네 상태가 이런데 어떻게 신중하게 움직일 수 있어!?”

버럭 소리를 지르는 박사.

그녀가 자신의 행동에 화들짝 놀라더니 사과한다.

“미, 미안해... 네가 가장 힘든데...”

“괜찮아요. 정말 잘 지내고 있다니까?”

“그게 잘 지내는 얼굴이야?”

“이 정도면 양호한 거에요. 나랑 같이 들어온 동기는 첫날에 강간당했어.”

“.....”

무시무시한 말에 몸을 떠는 박사였다.

근데 강간당한 거 맞나? 아님 말고.

그녀를 향해 방긋 웃어준 내가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요. 내 한 몸 정도는 건사할 수 있어요.”

“너무 걱정돼... 하루하루가 지옥 같아... 네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불안하단 말이야...”

다시금 눈물을 흘리려는 그녀.

철컹!

그녀의 손을 잡아주려던 나는, 책상에 고정되어있는 수갑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박사가 황급히 내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난 그런 그녀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진짜 불편하다. 그치?”

다시금 울먹거리려는 박사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의 손가락을 천천히 쓰다듬던 내가 물었다.

“세화나 유리아 씨는 어때요? 내 소식을 알아요?”

“아직 몰라. 연락도 안 왔어. 미국으로 관광오기 전에 했던 거짓말이 잘 통하고 있나봐. 하지만 들키는 건 시간문제야. 만약 그렇게 되면 유리아는 몰라도 세화는... 엄청 화낼 거야. 그러니까 그 전에 널 빼내야 해...”

“명심해요. 절대 본부의 이름을 사용해선 안 돼.”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누나.”

나무라는 듯한 말투.

원래 박사는 내가 이러면 알겠다고 져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알아서 하겠다고 했잖아... 내 말 들어. 네 모습을 보니 정말 마음이 아파. 접견권은 다섯 장이 있으니까, 앞으로 이틀에 한 번씩 찾아와서 너와 세 시간씩 있을 거야. 물론 석방에도 차질이 없도록 할 거고.”

수감동에 있으면 내가 범죄자들에게 폭행을 당할까봐 두려워서 이러는 것이었다.

내가 독방에 있다는 걸 몰라서 하는 소리.

물론 일반 수감동으로 갈 생각이긴 하지만, 이제 매수될 교도관들에게 입단속을 시켜놔야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복잡한 심경을 표현했다.

“그래요...”

“다시는... 다시는 오지랖 부리지 않을게. 정말 미안해...”

“오지랖은 무슨... 내 독단이었잖아. 근데 누나가 해주는 라자냐 먹고 싶다.”

그 말에 박사가 울다가 픽 하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정신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얼마든지 해줄게... 여기서 나가면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자... 사랑해, 지혁아.”

“나도 사랑해요. 잘 버티고 있을게.”

**

싱클레어는 박사와 헤어진 날 교도관장의 사무실로 데려갔다.

그는 약간 인자한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 흉측한 면상 안에 담긴 속뜻을 읽어낸 나는 킥킥 웃었다.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셨군요.”

“이걸 안 먹으면 손해라는 결론에 도달했지. 다만... 현찰로도 줄 수 있나?”

돈의 출처를 밝히지 못했구나. 현찰로 받으면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긴, 너희들이 마르셀라의 안배를 찾아낼 수나 있겠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도직입적이시네?”

“그건 피차 마찬가지인 것 같군.”

“그렇게 하죠. 원하는 장소에서 수령하셔도 되고, 댁으로 직접 보내드릴 수도 있고.”

“좋아.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뭔가? 독방에서 쭉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주기적으로 여자 재소자들도 보내주지.”

그거 혹하는데?

폭력적인 여자 재소자의 팔에 수갑을 채워놓고... 허어, 상상만 해도 꼴린다.

근데 난 아무거나 주워 먹는 길고양이가 아니야.

“조건은 딱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오늘 찾아온 변호사가 또 찾아올 텐데, 그녀한테 나에 관한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 것. 두 번째, 절 일반 수감동에 보내주는 겁니다.”

“마지막은?”

“마지막 세 번째는... 마약 밀수품 압수한 거 있죠? 제가 필요하다고 말할 때마다 주세요.”

약물도 절어줘야 진짜 피폐라고 할 수 있지.

교도관장이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나가기 전에 약이라도 빠시려고? 중독자로 보이지는 않는다만?”

“대답은요?”

“첫 번째와 세 번째는 가능하고도 남지만 두 번째 조건은 안 되겠군. 네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우리가 곤란해져. 돈이 나올 구석이 없어지잖나.”

그리 말하고는 손가락 세 개를 빠르게 비비는 관장이었다.

돈 한 번 존나게 밝혀요.

“제가 그런 곳에서 죽을 사람 같습니까?”

“너처럼 여유로워하다가 큰 코 다친 놈들도 여럿이지.”

“그래서, 싫으시다?”

내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자, 교도관장이 시선을 슬쩍 피했다.

열 받게 해봐야 좋은 건 하나도 없잖아.

그러니까 승낙해. 돈은 많이 찔러준다니까?

내가 나가면 뒈져서 다 쓰지도 못하겠지만.

“정말 원한다면 수감동을 바꿔주마. 섹션 A,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동이지. 거기에 교도관을 더 배치하겠다.”

다른 재소자들이 날 공격할까봐 우려해서 한 말이었다.

난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뭘 하든 막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럴 생각 따윈 전혀 없어. 이 정도면 만족하나?”

“좋습니다. 다른 교도관님들과 상의해서 날짜와 장소를 정하고, 절 부르세요.”

“우리 모두에게 동시에 주려고?”

“예. 제 비서는 바쁘거든요.”

“만족할 만큼 주겠다고 했겠다?”

“아무렴요. 접때 드린 20만 달러는... 서비스라고 생각하십쇼. 범죄자들의 교화를 위해 힘써주시는 교도관장님에 대한.”

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탐욕스런 미소를 보여주는 교도관장.

금니가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욕망에 찌든 금두꺼비 같았다.

“그렇게 하지. 영치금은 들어왔나?”

“그걸 깜박했네요. 근데 딱히 필요 없어요. 조만간 나갈 거니까요. 생필품 몇 개만 넣어주시죠.”

“알았다. 헌데 조만간 나간다니 아쉽군.”

“출소하기 전에도 넉넉하게 넣어드릴 테니까 걱정 마세요.”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관장이 내게로 손을 내밀었다.

개새끼가 코딱지 파놓고 그 손으로 악수를 하자고 하네.

난 수갑이 채워진 두 손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보시다시피 손이 이래서.”

@@

이틀 뒤, 교도소 근처 호텔.

“하아...”

교도소 해킹을 시도하던 박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혁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카메라를 해킹해서 보고 싶었는데, 자신의 실력으로도 뚫을 수가 없었다.

물론 자신은 전문 해커가 아니지만... 타 정부의 핵심기관도 뚫은 전적이 있어서 교도소 정도는 가능할 줄 알았는데 무리였다.

노트북 하나만으로 뚫기엔 보안이 너무 강하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한 가지 있었다.

지혁을 제법 빨리 빼낼 수 있겠다는 것.

제니퍼 캐시의 이름을 이용해서, 미국의 핵심기관에 부패한 주지사들의 정보를 보내놓았다.

그 중간에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알렉스 송을 빨리 석방하라고도 했다.

세계의 경찰 역할을 자처하려면 내부의 썩은 뿌리를 뽑으라는 말까지 해놓았다.

세계연합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고, 비스트 슬레이어 본부와도 사이가 좋은 미국이니 들어주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오히려 이 정보를 준 자신에게 감사하겠지.

노트북을 덮은 박사는 정장을 챙겨 입고 호텔을 나섰다.

제발 지혁에게 아무 일이 없었길 바라며, 그녀는 위조한 신분증을 이용해 교도소로 들어섰다.

만들어둔 명찰을 창구에 내민 박사가 말했다.

“접견이요. 섹션 H, 알렉스 송.”

“알겠습니다.”

접견소 인포 직원이 컴퓨터를 따닥거리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알렉스 송은 섹션 A로 이감됐네요. 그 이름은 여기에 딱 한 명뿐이니까... 일단 접견준비를 하라고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근데 언제 이감됐죠?”

“이틀 전입니다.”

“사유는요?”

“재소자와의 트러블로 인해서입니다.”

박사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트러블이라니... 설마 자신과 만난 이후 또 싸우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녀가 다급하게 물었다.

“상태는요? 지... 아니, 알렉스 송은 괜찮나요?”

“의무실에 간 기록은 없네요.”

“아...”

그렇다면 간단한 주먹다짐 정도인 것 같았다.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수십 번 내쉬면서, 교도관의 안내에 따라 서류를 제외한 소지품을 맡긴 뒤 개인 접견실로 이동했다.

좁은 복도를 따라 걷던 박사가 시선을 땅바닥에 둔 채로 교도관에게 질문했다.

“오늘도 알렉스 송에게 수갑을 채우는 건가요?”

“.... 이 교도소의 모든 재소자들에겐 필수적인 절차입니다. 양해해주시길.”

“네...”

지혁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주변 상황을 살필 겨를이 없었던 그녀는, 교도관이 약간 어색한 말투를 하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접견실에 들어간 박사가 자리에 앉자, 교도관이 말했다.

“15분 정도 걸립니다.”

“알겠어요.”

교도관이 나가고, 박사는 초조한 마음을 애써 숨기면서 15분을 기다렸다.

지혁과 함께 있을 때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던 시간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영겁과도 같이 길게 느껴졌다.

손톱을 깨물며 가만히 앉아있던 그녀는, 문이 열리고 지혁이 접때 봤던 교도관과 함께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고 싶어 마지않던 그의 얼굴을 살핀 박사가 생각했다.

‘다행이야...’

지혁의 얼굴은 저번의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는 것만 보이고, 다른 상처는 새로 생기지 않았다.

얼굴색도 괜찮았고, 어디 아픈 곳도 없는 것 같았다.

몸을 달싹거리던 그녀는, 교도관이 지혁의 손발을 고정하고 방을 나가자 벌떡 일어나 그에게 달려들었다.

“지혁아...!”

“잘 지냈어? 누나?”

지혁의 목소리는 밝았다.

약간 흥분한 느낌. 아마 자신이 와서 그런가보다 싶었다.

박사는 지혁을 꽉 안고 훌쩍였다.

울고 싶지 않은데 점점 핼쑥해져가는 그를 보니 자연스레 눈물이 나온다.

한참동안 사랑하는 애인의 살결을 느끼던 박사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지혁은 박사를 빤히 바라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풀린 동공을 보니 자다 깬지 얼마 안 되어보였다.

“자고 있었어? 미안해...”

“아니에요. 그냥 감방 안에서 쉬고 있었어. 친구도 생겼어요. 나한테 잘 대해주는 친구. 걔 덕분에 편하게 생활하고 있어요.”

범죄자 친구 덕분에 감방 생활이 편해졌다라...

기분이 제법 묘했다.

그 범죄자가 고맙기도 하고, 믿음이 안 가기도 하고...

그래도 지혁을 편하게 해주었으니, 나중에 그 범죄자의 가족에게 사례라도 해야겠다.

그리 생각한 박사가 입술을 열었다.

“이번 일에 가담한 주지사 목록을 정부 부처에 보내놨어. 조만간 답변이 올 거야. 긍정적일 거라고 확신해. 본부의 이름을 사용했거든.”

“잘했어요.”

“조만간 나가서 곧바로 비행기...”

말을 하던 박사가 멈칫했다.

지혁은 본부의 이름을 사용해서 일을 해결하길 꺼려했다.

그런데 지금은 잘했단다.

교도소 생활이 너무나도 힘겨운 탓일까? 그래서 어떻게든 빼내달라고 하는 건가?

라고 생각하던 그녀는, 지혁이 웃는 상태로 계속 코를 찡그리자 의아해했다.

‘뭐지?’

자신이 아는 지혁은 저런 버릇이 없었다.

“왜 그래요?”

말을 마치고 코로 짧은 숨을 들이켠 지혁.

그의 손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만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박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몽롱한 눈, 기분 좋은 듯 웃고 있는 얼굴,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찡그리고 들숨을 마시는 코.

지금 보니 눈 밑까지 퀭하고, 대화에 집중을 못하고 있는 것도 같다.

모든 것을 종합해본 박사의 입술이 파리하게 떨렸다.

‘서,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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