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0 짜증나는(?) 감빵생활 #2
쿵!
내 멱살을 잡고 벽으로 밀어붙이는 교도관장.
그가 물었다.
“너 뭐냐?”
“뭐가요?”
“뭔데 수감 첫날부터 세 명을 죽이냐고.”
제이콥을 포함한 세 명은 내 손에 명을 달리했다.
제이콥을 죽인 직후 내가 도발성이 짙은 말을 했을 때, 이를 뿌드득 간 스킨헤드들이 단체로 날 공격해왔다.
나는 그중 두 명을 잔혹하게 죽였다.
잇몸을 아작 내고, 귀를 뜯어낸 다음 온몸의 뼈를 부러뜨렸다.
이후 스킨헤드들은 겁을 집어먹었는지 내게 접근하지 않았지만, 소란이 난 것을 확인한 교도관이 날 잡아왔다.
그래서 지금 내가 교도관장의 사무실에 있는 것이다.
“제 자신을 지키려 했을 뿐입니다.”
내 이 대답에, 교도관장의 뒤에 있던 교도관이 앞으로 나와 봉으로 내 얼굴을 후려쳤다.
뻐억!
얼얼한 느낌. 입 안이 터져나가며 비릿한 쇠 맛이 느껴졌다.
쓰레기 세 명을 죽인 것치고는, 누가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교도소치고는 격한 반응이었다.
주변에 있는 교도관의 눈빛도 흉흉했다.
당장 날 죽일 것 같은 눈빛.
이런 반응으로 보았을 때, 제이콥이 보호비를 받으면 이들에게 일정량을 떼어주는 모양이었다.
제이콥은 교도관들의 감시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고 말이다.
서로의 이해타산이 맞아서 짭짤하게 벌고 있었나본데, 그걸 내가 방해한 게 분명했다.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고, 맞은 부위가 순식간에 부어올랐다.
교도관장은 상당히 아플 텐데도 태연한 내 얼굴을 보더니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가 내게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로, 다른 교도관에게 물었다.
“이놈의 정보는?”
그러자 교도관 하나가 팔목에 찬 기계를 조작하더니, 내 얼굴을 스캔했다.
정보를 확인한 그가 대답했다.
“알렉스 송, 20세의 한국인으로 사흘 전 미시시피에서 잡혀 오늘 이곳에 수감됐습니다.”
“혐의는?”
“아직 없습니다. 재판 전이에요.”
“며칠 전에 잡히자마자 바로 여기 보내졌다? 재판도 없이?”
“예.”
“수상하기 짝이 없는 놈이로군. 테러혐의라도 있는가보지?”
그 물음에 대답한 사람은 나였다.
“테러혐의였다면 정치범 수용소 같은 곳으로 보내졌겠죠. 고작 사흘 만에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짜악!
홱 돌아가는 내 고개.
교도관장이 뺨을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누가 아가리를 열라고 했지?”
“전 억울하게 여기 왔습니다.”
“범죄자 새끼들은 하나같이 그 말을 하지. 세 명을 잔인하게 죽이고도 태연한 걸 보니 밖에서 꽤나 유명했던 놈이었던 것 같은데, 동양인 갱단의 보스라도 되나?”
“아닙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넌 찍힌 거야.”
“제가 하나 제안을 드리고자 하는데요.”
“웃기는 소리.”
“제이콥 패거리에게 상납금을 받고 계셨죠? 관장님은 물론 여기 계신 모든 분들도요. 교도소장님도 묵과하고 계시겠죠? 그 돈을 나누면 얼마 떨어지지도 않겠네요.”
내 이 말에 봉을 휘두르려던 교도관장이 멈칫했다.
그가 잠깐 심호흡을 하고는 팔을 내렸다.
“억측이 심하군.”
“그러지 않았다면 이번 사태의 원인제공자들을 빼고 저만 잡아오지는 않으셨겠죠. 게다가 저 분 표정을 보니 제대로 짚은 것 같은데요.”
말을 마친 내가 턱짓으로 가장 어려보이는 교도관을 가리켰다.
그 교도관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슬쩍 바라본 관장이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그러면 뭐가 달라지기라도 하나? 어디에 찌르기라도 하시게?”
“전혀요. 저는 여길 빨리 나갈 생각밖에는 없습니다. 그럴 힘도 충분하고요. 그때까지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데, 제 편의를 최대한 봐주신다면 만족하실 만큼의 돈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뇌물을 바치겠다는 소리에요.”
그에 관장을 비롯한 교도관들이 흠칫했다.
액수에 놀란 게 아니라, 언제든 나갈 수 있는 뉘앙스를 풍기니 놀란 것이다.
지금까지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를 보인 것도 컸다.
만약 소극적으로 나왔다면 내 이런 말을 들어주려 하지도 않은 채 무자비하게 구타했을 테지.
“넌 영치금도 없는 빈털터리잖나.”
“난 감옥에 처음, 그리고 갑작스럽게 오게 됐습니다. 영치금을 넣을 시간 따윈 없었다고요. 증거가 필요해요? 전화 한 통만 하게 해주면 지금 당장 돈을 넣어드리죠. 누구한테 보내드릴까? 관장님 와이프? 자식? 아니면 부모님?”
교도관장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포켓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내밀었다.
“해봐. 계좌번호도 불러주랴?”
“그딴 건 필요 없어요.”
휴대폰을 받아들고 히죽 웃은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교도관들을 둘러보며 마르셀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교도관장이 휴대폰을 빼앗아 스피커폰으로 돌려놓았다.
얼마 후,
-네, 사장님. 말씀하세요.
젊은 여자로 위장한 마르셀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지금 당장 플로리다 주립 교도소의 교도관장에게 20만 달러 보내.”
-알겠습니다.
대화는 그게 끝. 전화는 곧바로 끊겼다.
교도관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자신을 갖고 놀았다고 생각한 모양.
그가 팔을 들고 날 패려는 그때,
삐빅-!
관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설마 하는 표정으로 휴대폰을 바라본 그의 눈이 두 배는 더 커졌다.
액수를 살핀 그가 입을 살짝 벌리고는 내 멱살을 잡은 손을 풀었다.
“이 계좌는 어떻게 알았지?”
“몰래 만들어놓은 뒷계좌로 들어왔죠? 추적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장담할 테니 안심하세요. 액수가 마음에 들지 않다면 더 드릴 수도 있어요.”
“무슨...”
“그냥 제안을 받아들이세요. 여기 계신 모든 분들한테 어련히 알아서 잘 찔러드릴게요. 눈엣가시 같은 죄수들도 말만 하면 처리해주고요. 근데... 전 분명 교도관장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잖아요?”
“그래서?”
“전화를 받은 비서는 자연스럽게 절 사장님이라 칭했고요. 여기서 뭐 이상한 점 같은 건 못 느끼셨습니까?”
“.....”
분명히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일 텐데, 전화를 건 대상이 나인 줄 아는 듯 자연스러웠다.
그걸 눈치챈 교도관장이 당황해했다.
그 틈을 탄 내가 말했다.
“난 금방 나가요. 내가 나가기 전에 한 탕 크게 하면 좋잖아요. 쥐꼬리만한 상납금 받아서 뭐합니까? 그리고 그걸 많은 사람들과 나눠야 되잖아요. 안 그래도 박봉일 텐데 입에 풀칠도 못하겠네. 나이도 꽤 있으신 분 같은데 은퇴자금 모아야죠. 어떡할래요?”
교도관장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미심쩍은 눈빛은 그대로였다. 방금 보내진 돈이 받아도 탈이 없는 건지 확인하고 싶은 것 같았다.
지금은 의심하겠지만, 이들은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돈을 뿌리다시피하는 데다가, 내가 보여주고 있는 능력은 교도관장에게 불안감을 심어주었을 테니까.
몰래 만든 뒷계좌까지 알 정도로 뛰어난 정보력이라면, 자신의 모든 정보는 물론 가족들의 신상까지 탈탈 털렸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마르셀라는 진즉 플로리다 주립 교도소에 있는 모든 인원의 신상정보를 파악했을 터였으니.
“음...”
교도관장의 얼빵한 면상을 보니 지금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근데 뭐 어쩔 수 있나.
여기 재소자들 중에서는 갱단의 높은 위치에 올라간 놈들도 있을 텐데, 그런 놈들을 갈취하려는 마음을 먹었으면 해코지를 당할 각오도 했어야지.
잠깐 고민하던 관장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이게 안전한 건지 알아야겠어. 알아볼 때까지 대답은 보류다.”
“어떻게 알아보시려고? 그럴 능력이 있긴 합니까?”
“.....”
“뭐, 알아서 해보세요. 그리고 오늘은 좀 쉬고 싶은데...”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관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한층 유해진 말투로 말했다.
“제이콥 포프의 패거리들을 잡아가주면 되겠나? 아니면 살 만한 독방으로 잠깐 이감시켜주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라.”
말은 보류라고 했음에도 날 위해 스킨헤드들을 잡아간다는 건,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와도 상통했다.
“독방 갈게요. 이불이나 먹거리 같은 생필품들도 넣어줘요. 돈 많이 받았잖아.”
“그렇게 하지. 만약 네가 보낸 이 돈이 가짜라면...”
“절 죽이든 말든 알아서 하세요.”
“좋다.”
교도관장이 교도관 한 명에게 날 독방으로 이감시키라 명령했다.
내 면상을 봉으로 친 놈이었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날 무척 조심히 대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안내를 따라 독방으로 간 나는 제법 놀랐다.
독방은 수감동의 수감실보다 두 배는 더 넓었다.
매트리스는 두꺼웠고, 베개도 부드러워보였다.
심지어는 불을 켜고 끌 수 있는 스위치까지 방 안에 있었다.
살 만한 독방이라더니 그 이상이었다.
TV가 없는 게 아쉬울 정도. 날 거기 넣어두고 문을 닫은 교도관이 말했다.
“손 내밀어.”
나는 순순히 문 중앙의 큼지막한 식기 배출구에 손을 올려놓았고, 교도관이 수갑을 풀어주자 물었다.
“다른 독방도 이러지는 않겠죠?”
“당연히 아니지.”
돈이 많은 놈들이 왔을 때를 대비해 개조해둔 모양.
하긴, 모든 독방이 이러면 재소자들이 여기에 오려고 난리를 칠 테니까...
그나저나 내 상상이상으로 부패했구나. 안 그런 곳이 어디 있겠느냐만...
“네가 말한 물건들은 지금 가져오겠다.”
“예. 저녁은 언제 먹나요?”
“2시간 후인데... 필요하면 말해라.”
“지금 줘요. 읽을 만한 책도 주고.”
“알았다. 아, 그리고... 혹시...”
머뭇거리는 교도관.
내게 부탁을 하고 싶은 게 틀림없었다.
나는 그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말씀하세요.”
“와이프의 친척이 빚으로 허덕이고 있는데, 혹시 이것도 해결해줄 수 있나? 금액은 한 13만 달러쯤 된다.”
“휴대폰.”
그 말에 교도관이 주변 눈치를 보며 휴대폰을 배출구 안으로 넣었다.
“친척의 이름은...”
“필요 없어요. 교도관님 성만 알면 됩니다. 명찰에 쓰인 싱클레어... 맞죠?”
“그래.”
“교도관들 중에 중복된 성씨가 있나요?”
“없어.”
“알겠습니다.”
나는 마르셀라에게 전화를 걸어 싱클레어가 바라는 바를 말하고, 해결해주라 명한 뒤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퇴근하고 알아보던지, 전화로 알아보던지 하세요.”
“아, 알았다.”
반신반의하던 싱클레어는 설마라는 단어를 되뇌면서 복도를 벗어났다.
**
이틀 뒤까지, 교도관장이나 교도관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마 계속 돈이 안전한지 파악해보고 있는 모양인데... 확인만 되면 내가 뭘 하든 자유를 보장해줄 것이다.
그리고 외부에 내 행동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입단속을 하겠지.
교도관 모두가 합심하면 이유를 마음대로 갖다 붙일 수 있으니, 커버를 쳐주기도 쉬울 터였다.
퉁.
푹신한 베개에 뒤통수를 대고 누워있던 나는, 문에서 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식기 배출구가 열리더니 싱클레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뭡니까?”
“변호인 접견이다.”
드디어 박사가 날 찾았구나. 변호사로 위장한 모양이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식기 배출구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싱클레어가 수갑을 채우더니 독방 문을 열었다.
발목에까지 수갑을 채운 그가 날 접견실로 인도하며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빚은 해결됐겠죠?”
“그래. 그리고 얼굴을 때린 건... 미안하다. 여기 있다 보면 성격이 더러워지거든.”
이래서 사람은... 아니, 마왕은 힘이 있어야 해.
능력을 보여주니까 알아서 기잖아.
“그럴 만도 하죠. 이해합니다. 교도관장님은 아직도 확신이 없는 건가요?”
“아직 못 믿고 계시지. 솔직히 20만 달러라는 거액이 순식간에 들어왔는데... 신중한 것도 이해가 가지 않나?”
“그렇긴 합니다. 근데 교도관님은 절 믿으시는 것 같네요?”
“난 관장님보다 눈치가 빠르거든. 네 기록을 읽어봤다. 고작 사흘 만에, 뭘 해볼 틈도 없이 갇혀 있다가 여기로 보내졌지?”
“예.”
“저번 일도 그렇고, 국선이든 사선이든 선임할 시간도 없었는데 변호사가 찾아온 것을 보고 널 거물이라 확신했지. 네 정체가 궁금하지만 알고 싶지 않아. 네 말대로 나갈 때까지 최대한 편의를 봐줄 테니, 해코지하지만 말아줘라.”
“유도리가 있으시네요. 전 그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제 방어권은 보장되죠?”
접견실 안에서의 녹음, 녹화를 말함이었다.
싱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찍히지도 않고, 참관도 하지 않는다. 다만 접견실에 들어가면 손발을 고정해야 해. 이건 어쩔 수 없어. 들키면 모가지로는 끝나지 않거든.”
“그 정도는 상관없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접견실에 도착했다.
싱클레어가 문을 열기 전, 나는 최대한 힘든 표정을 연기했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싱클레어는 날 접견실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난 좁디좁은 접견실 안에서 일어나있는 박사를 볼 수 있었다.
조금 핼쑥해졌구나.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나보다.
오랜만에 보니까 정말 안고 싶다.
그녀는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내가 들어오니 반색했다.
하지만 내 부르터진 입술과 주먹의 너클 파트에 난 상처, 그리고 부어오른 얼굴을 보더니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싱클레어가 날 의자에 고정시켜둘 때까지, 그녀는 일어난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나만 바라보며 말이다.
흔들리는 동공, 그리고 지진이라도 난 듯 떨리는 몸을 보니 상당히 분노한 것 같았다.
박사는 싱클레어가 일을 처리하고 접견실을 나가자마자,
“흐윽...!”
울음을 터뜨렸다.
가까이 다가온 그녀는 일어나지도 못하는 날 꽉 안았고, 어깨에 얼굴을 묻고는 연신 사과를 했다.
“미안해...! 미안해 지혁아...!”
“괜찮아요. 난 잘 지내.”
미세하게 떨리는 내 목소리.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의연해하고 싶어 하지만, 교도소 생활이 너무나도 각박해 힘든 티가 나는 모습.
“흐아아앙...!”
내 이 연기에 홀라당 넘어간 박사가 대성통곡을 터뜨렸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