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9 짜증나는(?) 감빵생활
마르셀라는 고위관계자들을 아주 잘 엮었다.
어떻게 아냐고? 지금 내 뒤를 쫓는 무장경찰차 수십 대를 보면 답이 나오잖아.
박사는 피신하고도 남았겠지? 이제 슬슬 잡혀주자.
풀악셀을 밟으며 도주하던 나는 일부러 속도를 줄였다.
그러자 내 차 옆으로 무장경찰차 한 대가 오더니,
쾅!
차 옆면을 무자비하게 쳐버렸다.
충격에 의해 창문이 깨지면서 파편이 얼굴로 튄다.
목이 옆으로 확 꺾이고, 어마어마한 충격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그래도 튕겨나가지는 않았다. 역시 사람은 안전벨트를 잘 매어야 해.
자동차는 도로 옆 풀밭에 두세 번을 구르다 전복되었다.
운전석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 피를 줄줄 흘리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들이 달려와 문을 강제로 뜯어내자 전의를 상실한 도주자를 연기했다.
경찰 두 명에게 강제로 끌어내려진 나는 풀밭에 얼굴이 처박힌 채 수갑이 채워졌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의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열심히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경찰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제 난 부조리한 일을 많이 겪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재판도 하지 않았는데 교도소로 가게 된다던가, 혐의가 매우 부풀려진다던가 하는.
부패한 고위급 정치인은 날 눈엣가시로 생각할 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 죽이려고 하지는 못한다.
마르셀라가 막아줄 테니까.
그녀는 내가 무사히 사람들과 부대낄 수 있는 일반 교도소에 수감될 수 있도록 조작할 것이다.
“흐으...!”
입 안에 터져나갔는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몸도 상당히 뻐근했다.
충격 때문에 뼈가 몇 군데 부러졌던 모양. 다만 마왕의 몸인 만큼 금방 회복되었다.
나는 곧 강제로 일으켜 세워져 경찰차에 탔다.
땀으로 젖은 머리를 창문에 기댄 나는, 과연 며칠 만에 교도소로 들어갈까 궁금해졌다.
시간이 지나보면 알겠지 뭐.
그리 생각한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눈을 감았다.
**
나에 관한 행정절차는 굼뜬 미국답지 않게 무척 빨랐다.
덕분에 나는 고작 이틀 만에 중범죄자 교도소로 들어가게 됐다.
누가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 절차였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다섯 개 주에서는 날 최대한 빨리 보내버리고 싶었을 테니까.
물론 마르셀라의 조작이 컸겠지.
날 심문하러 온 정보단체 요원의 말로는 거기서 재판을 기다리게 될 거라는데, 난 당연히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난 딱히 따지고 들려고 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이 이런 처우를 받는다면 무척이나 억울해했겠지만, 내게는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왜냐?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받을수록 박사는 분노할 테니까.
덜컹!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호송버스가 충격으로 인해 들썩이자 얼굴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계속 이 지랄이네. 운전 한 번 더럽게 못해요.
오랜 시간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있게 될 플로리다의 주립 교도소가 보였다.
성벽이라고 해도 될 만큼 높은 벽 위엔 총구가 달린 드론이 사방을 배회하고 있었다.
수많은 감시탑엔 경비들이 한가득. 보안등급이 높은 시설다웠다.
“으흐흐... 씨발...! 씨발...!”
내 옆에 앉은 재소자가 교도소의 전경을 보더니 억울한 듯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얼굴이 새까맣게 굳었다.
뭔 억울한 척을 하고 난리인지... 죄다 중범죄자들이면서.
오기 싫었으면 죄를 짓지 말았어야지.
몇몇은 익숙한 듯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었다.
개중에선 기대감에 한껏 부푼 놈들도 있었고.
얼마 후 호송버스가 교도소 입구에 서고, 앞쪽 문이 열리며 좌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교도관이 철창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무감정한 말투로 말한다.
“허튼 짓하면 벌집이 될 거다. 일어나서 내려.”
그 말에 죄수들이 밍기적거리며 일어났다.
흐느끼기 시작하는 놈들이 태반. 피도 눈물도 없는 중범죄자임에도 이럴 반응이 나올 정도면, 여기가 악명 높긴 한가보다.
‘박사는 얼마 만에 올까?’
날 생각한다면 최대한 빨리 면회를 오려 할 테고, 이곳에서 빼내기 위해 노력하겠지.
그때까지 점점 피폐해져가는 남자를 연기해야겠다.
**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신체검사 이후, 난 똥색 죄수복으로 갈아입었다.
내 죄수번호는 7777. 아주 좆같은 번호가 아닐 수 없었다.
4444였으면 했는데... 아니면 서양식으로 1313을 받거나.
역시 교도소는 올 곳이 못 된다니까.
“다음! 죄수번호 7777!”
낙후된 시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둘러보던 나는, 보급품을 나누어주는 교도관의 호명에 정신을 차렸다.
내가 받은 보급품은 휴지 두 개가 끝이었다.
황당한 표정을 지은 내가 말했다.
“이게 끝인가요? 앞 사람은 이불을 가져가던데?”
교도관은 이러한 질문이 익숙한 듯, 날 쳐다보지도 않고 다음 휴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영치금으로 사겠다고 해서 준 거다. 7777 네놈은 영치금이 하나도 없으니 뭘 살 여력이 없잖나. 노역해서 돈을 번 다음 물건을 구매하거나, 면회 때 면회자에게 돈을 넣어달라고 해라. 앞으로는 휴지조각조차도 주지 않으니까.”
“칫솔, 치약도 안 줍니까?”
카앙!
경관봉으로 철창을 두드리며 꺼지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교도관.
물품을 받을 때 앞이 소란스러워서 의아했는데, 몇몇 죄수들이 이런 취급을 받아서 빡이 쳤던 모양이었다.
여긴 뭐든 매점에서 사야 하는 것 같았다.
돈이 없다면 바닥에서 자거나, 이빨도 못 닦고 말이다.
시스템 한 번 괜찮은데? 그래, 범죄자들한테 뭘 공짜로 주는 건 세금 낭비긴 하지.
얕은 한숨을 내쉰 나는 교도관의 안내에 따라 수감동을 배정받았다.
H 섹션. 동기 한 명과 함께 이곳의 입구에 선 나는, 삐이이익!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수감동을 살펴보았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에서나 보던 3층짜리 수감동.
한 방향으로 길게 뻗어있는데다 맞은편 수감실과 대화조차 나눌 수 없도록 만들어놓았다.
주위에서 날 샅샅이 살피는 듯한 눈빛이 느껴졌다.
분위기 한 번 살벌하구만. 섹션의 인원은 200명쯤 되어 보이는 것 같다.
뒤에서 꿀꺽하는,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기가 겁을 집어먹은 모양.
얘는 얼마 못 버티겠네. 알아서 잘 살아남자고.
교도관이 들어가라는 듯 내 등을 봉으로 지그시 눌러 밀자, 나는 섹션 H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휘이익!
그러자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
뭔가 싶어 소리가 난 쪽으로 눈길을 돌려보니, 1층 끝자락 방에 있는 덩치 큰 히스패닉 한 놈이 날 향해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똥꼬라도 따시게? 찢어지기 싫으면 건드리지 마라.
내 방은 2층의 복도 끝이었다.
방 번호는 77. 죄수번호도 그렇고, 방 번호도 그렇고... 오늘 재수 한 번 더럽게 없다.
“잘 버텨보라고.”
뒤에 있던 교도관의 비아냥이었다.
고개를 슬쩍 돌린 내가 물었다.
“규칙 같은 건 없나요?”
“알아서 배워.”
불친절하군. 그럴 만도 하지.
교도관이 상황실을 향해 77번 수감실을 열라고 소리쳤다.
삐익-!
아까보다 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봉으로 날 민 교도관이 씨익 웃더니 창살을 닫았다.
내가 못 버티리라고 생각한 표정인데, 인간의 몸이었다면 그랬겠지.
하지만 마왕의 몸인 지금은 아니다.
아주 재미있는 교도소 생활이 될 것 같단 말이야.
방은 2층짜리 침대 하나, 세면대, 그리고 변기가 끝이었다.
퀴퀴한 냄새가 흘러드는 이곳엔 룸메이트가 있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던 20대 후반의 백인.
눈빛이 음흉한 것이 내게 관심이 있어 보였다.
근육질인 나보다 더 큰 몸을 가지고 있던 그는, 수감실 문이 닫히고 교도관이 떠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제이콥이라고 한다. 제이콥 포프.”
그 손을 맞잡은 내가 말했다.
“알렉스 송.”
“동양인?”
“맞아.”
제이콥이 씨익 웃었다.
미국 교도소에 동양인은 흔한 조합이 아니다.
편 가르기를 할 때 어디에도 붙지 못하고 내쳐지는 인종.
무시를 기본 베이스로 깔고 들어가며, 동성애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최우선으로 노려진다.
하지만 제 한 몸 건사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잘생겼네.”
제이콥은 날 먹잇감으로 선정한 모양이었다.
음흉한 눈빛을 보니 틀림없었다.
나는 눈동자를 굴려 방 안을 살펴보았다.
감시카메라는... 없군. 중범죄자 교도소라 하여 인권 따윈 하나도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과실치사로 온 거야? 아니면 사기?”
제이콥의 물음.
죄목을 읊는 것만 봐도 나에 대한 무시가 느껴졌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질문을 얼버무렸다.
“글쎄.”
“감옥은 처음이겠지?”
“맞아.”
“형량은?”
“재판을 받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그 말에 제이콥이 코웃음을 쳤다.
“재판도 받지 않았는데 여기 왔다고? 구치소가 아니라?”
“나도 이해가 안 가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고 말고.”
내가 거짓말을 하는 중이라고 확신하고 있구나.
보통 아동성폭행 같은, 교도소 안에서도 최악의 범죄로 통하는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죄목을 말하기 싫어한다고 들었다.
제이콥은 날 그런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종일관 여유로워하던 제이콥이 말을 이었다.
“난 여기 9년 있었지.”
“오래 있었네.”
“여긴 지옥 같은 곳이야. 교도관들은 뒷돈밖에 생각 안 해. 돈을 많이 낸다면 최소한의 보호는 해주지만, 만약 없다면...”
“내가 뭔 일을 당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맞아?”
“이해력이 좋군.”
그리 말한 제이콥이 독사 같은 눈으로 날 살폈다.
보급품이라고는 달랑 휴지가 끝이었으니, 돈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최대한 웃는 낯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땡전 한 푼 없는 내가 누굴 해코지한다면 어떻게 되는데?”
“만약 네가 해코지한 사람이 교도관이나 재소자 세력에게 보호비를 내고 있었다면 보복대상이 되지.”
“아, 그래? 넌 지금 보호비를 내고 있어?”
“난 보호비를 받는 입장이야.”
“아하...”
재소자들 중에서도 상당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 놈이구나.
내가 다시 물었다.
“보호비는 어떤 방법으로 내면 돼?”
“뭐... 다른 세력들은 물물교환을 할 수 있는 물건들로 받지만, 난 조금 달라. 물건도 받지만, 접대도 받지.”
“접대?”
“왜 그런 거 있잖아. 성적인 봉사 같은 거. 보아하니 넌 마음이 상당히 여려 보이는 것 같은데, 나한테 잘 보이면 여기서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편안한 생활을 누리게 해줄게.”
“아... 그러니까 나더러 네 애완견이 돼라?”
제이콥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실소를 터뜨렸다.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면 쑥스럽잖아.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자면... 맞아. 내 애완견이 되어줄래?”
이런 개 씨발.
죄수번호는 7777, 방 번호도 77, 거기에 룸메이트는 날 음흉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중성적인 말투의 게이라...
진짜 재수가 없는 날이구나. 판결은 사형이다.
목을 좌우로 꺾은 나는 순식간에 제이콥에게 달려들어 그를 넘어뜨렸다.
“억!”
파운딩을 당한 그가 주머니로 손을 가져갔다.
무기가 그쪽에 있는 모양이지? 난 무릎으로 놈의 손목을 찍었다.
빠각!
“끄아아악!!”
시끌벅적한 섹션 H의 분위기를 가라앉힐 만큼 큰 비명소리.
수감동에 잠깐 침묵이 찾아왔다가 다시 분주해졌다.
익숙한 일이니만큼 적응한 것이다.
다만 이 소리가 제이콥의 수감실에서 난 걸 알아차린 죄수들은 무척이나 당황해했다.
당장 옆 수감실도 그랬다.
제이콥에게 무슨 일이냐며, 괜찮냐며 물어보고 있었다.
나는 있는 힘껏 몸을 뒤틀려고 하는 제이콥의 목을 한손으로 졸랐다.
“커컥! 컥...”
꽉 막힌 숨소리를 내뱉는 그.
히죽 웃은 나는 그의 눈으로 손을 가져갔다.
엄지, 검지, 그리고 중지에서 큼지막하고 둥그런 안구의 감촉이 느껴진다.
제이콥의 눈빛이 공포심으로 젖어 들어가는 것을 본 내가 말했다.
“눈은 달고 있어서 뭐하냐? 안목도 없는 주제에... 그치?”
“컥! 커커컥!”
제이콥은 힘겨워하면서도 생존본능이 살아났는지, 부러지지 않은 손으로 내 몸을 마구 때렸다.
뿅망치 같군. 마왕의 몸이 좋긴 좋아.
죽이고 뽑아줄까? 아니면 뽑아주고 죽일까?
후자로 하자. 생각을 마친 나는 놈의 눈알을 단숨에 뽑아냈다.
푸화악!
“커어어! 커어어어어!”
놈의 오른쪽 안구에서부터 튀어나오기 시작하는 시뻘건 피, 그리고 고통에 찬 신음.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안구를 이리저리 둘러본 나는, 수감실의 창살 사이로 그걸 던졌다.
툭! 하는 미세한 소리가 들려오고 얼마 뒤, 누군가가 ‘눈이다!’ 라고 외친 이후 섹션 H가 개미새끼 한 마리조차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사람 눈알을 뽑은 건 흔히 있는 일이 아닌가? 악명이 높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네.
우득!
나는 고통에 혼절하려고 하는 제이콥의 목을 부러뜨리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최대한 약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얻어맞고, 박사가 찾아오면 힘들어하는 모습을 연기하려고 했으나, 하필 룸메이트가 이래서 죽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박사의 분노와 동정심을 유발하겠답시고 내 똥꼬가 따일 수는 없잖은가.
이왕 이렇게 됐으니까 어쩔 수 없지.
박사가 날 찾아왔을 땐... 창살에 대가리를 박아서 자해하거나, 누구 한 명한테 때려달라고 부탁하면 되겠지.
이놈 침구는 내가 쓸까? 아니, 불결해서 그러기 싫다.
나는 제이콥의 이불 가장자리로 손을 닦아냈다.
삐이이익!
그때, 기계음이 들리더니 수감실 창살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교도관이 오는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죄수들이 나와서 수근덕대는 것으로 보아 자유시간인 모양.
잠시 후 내 수감실 앞으로 스킨헤드를 한 백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제이콥의 동료들인 것 같았다.
그들은 목이 기괴하게 꺾여 죽어있는 외눈박이의 제이콥과, 여유로운 모습으로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날 번갈아 바라보며 얼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침 잘됐다.’
박사가 면회를 올 때까지 쓸 생필품이 필요했는데, 이놈들한테 빼앗아야지.
느릿느릿 일어난 내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는 말했다.
“침구류랑 치약, 칫솔... 이거 주는 놈은 내가 보호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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