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58화 (158/471)

EP.158 밑바닥 인생 #2

“어딜 가자고요?”

호텔에서 짐을 싸고 있던 나의 황당한 물음.

박사가 다시 말한다.

“미시시피. 거기서 관광하자.”

“미시시피? 거긴 도박밖에는 할 게 없는데? 누나 도박하고 싶어요? 카지노에 가보기는 했어?”

“젊었을 때 몇 번 가봤어.”

나는 눈을 지그시 뜬 채로 박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박사가 시선을 슬쩍 피하더니 고개를 살짝 숙였다.

찔리는 게 있다는 티를 팍팍 내는구나.

실소를 터뜨린 내가 물었다.

“다른 이유가 있죠?”

“.....”

“괜찮으니까 말해봐요.”

“그... 사실은... 거기서 미래과학기술이 유출됐다는 정보를 얻었어. 어쩌면 우리 연구실 기술일지도 몰라... 그럴 가능성이 높아.”

미끼를 물었구나.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 척을 했다.

“무슨 말이에요? 연구실 기술이 왜 미시시피에서 유출됐는데?”

“하아...”

긴 한숨을 내쉰 박사가 순순히 실토했다.

“어떻게 된 거냐면...”

세계연합이 미시시피의 빌럭시에서 수상한 정황을 포착했다.

미국의 정보단체가 주시하고 있는 범죄조직에서 집속탄으로 보이는 무기가 발견된 것이다.

은밀하게 조사를 해보니 일본에서 건너온 물건이었고, 세계연합은 미국과 연대해 현장요원들을 파견할 준비를 하고 있다.

라는 거짓정보를 내게 모두 말했다.

내 얼굴이 시시각각 바뀌는 것을 찔끔한 채로 바라보던 박사가 말을 이었다.

“내가 예상하기로는... 후지산에서 나타났던 호랑이 마물 있지? 레오나가 그 마물의 새끼들을 처리하려다가 집속탄을 많이 썼잖아. 거기서 불발탄이 하나 나왔나봐. 그걸 야쿠자가 얻었고, 지금은 미시시피의 한 범죄조직이 분석하고 있다는 소문이...”

예상이 빗나가질 않는 수준이네. 잘했다, 마르셀라야.

나는 검지를 들어 올려 박사의 말을 끊었다.

“나 몰래 알아봤다는 거죠?”

“그, 그게...”

“똑바로 대답해요. 언제부터 그런 소식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우물쭈물하던 박사가 결국 실토한다.

“매일 아침 세계연합의 자료들을 찾아봤어...”

“왜요? 우린 마물만 신경 쓰면 되고, 지금은 마물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인데... 누나가 걔네 일을 신경 쓸 필요가 있나?”

“요새 가만히 있는 게 너무 미안해서, 이런 식으로라도 지구에 도움을 주고 싶어서... 지혁아, 화내지 마...”

“화가 안 나게 생겼어요? 나한테 말해주려고 하지도 않았으면서? 설마 혼자 나서서 확인해보려는 생각은 아니었겠지?”

“아냐! 확인은 해야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너한테 숨길 생각은 없었어.”

“그럼 왜 미시시피로 관광가자고 했는데? 나한테 숨기려는 마음을 먹었으니까 그렇게 말한 거잖아요. 숨길 생각이 없었다면 먼저 솔직하게, 같이 알아보자고 말했겠죠.”

박사가 고개를 푹 숙였다.

할 말이 없는 모양. 솔직히 그녀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나는 지금처럼 정보 하나에 의지해 시리아에 잠입했고, 인체실험을 하는 인간들을 다 죽여 마음의 상처가 생겼음을 연기했었다.

박사는 내 트라우마가 다시 도질까 두려워해서 이걸 숨기려고 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천천히 박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녀를 꽉 안았다.

“고마워, 누나.”

혼날 것 같은 상황이었는데 뜬금없는 감사가 튀어나오자, 박사가 무척 당황해한다.

“뭐가...? 뭐가 고마운데...?”

“날 생각해서 말하지 않은 거잖아요. 내가 시리아 때처럼 상처받을까봐.”

“.....”

“근데 이젠 괜찮아요. 누나 덕분에 다 잊었어.”

그 말에 박사가 내 허리에 팔을 둘렀고,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숨소리에 기쁨이 가득하다. 감동 한 번 제대로 먹었군.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던 내가 말했다.

“이제부턴 뭐든 같이 하는 거에요. 이번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응... 미안해...”

이번 사건은 네가 자초한 일이다.

가만히 있으면서 세계연합에 맡겨도 됐을 텐데, 네가 괜한 오지랖을 부려서 내가 잡혀가는 거야.

그냥 잡혀가지 말고, 높으신 분들을 조금 엮어놓아야겠다.

부패한 선역 권력자도 박사의 멘탈을 뒤흔드는데 충분한 효과를 발휘할 테니까.

‘마르셀라한테 말해놔야지.’

@@

미시시피의 해안도시 빌럭시, 그곳에 있는 최고급 리조트의 스위트룸.

“으음...”

방 안에서 눈을 뜬 박사는 사방이 어두컴컴하자 손을 더듬거렸다.

지혁을 찾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었지만, 옆엔 푹신한 침대의 감촉만 느껴졌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찾아온 박사는 헤드보드로 손을 뻗어 침실 스위치를 켰다.

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침실이 환해지고, 잠시 눈살을 찌푸리며 지혁을 찾던 박사는 그가 어디에도 없자 눈을 데굴 굴렸다.

‘거실에 있나...?’

그러한 생각을 한 박사가 침대에서 나왔다.

거실 불을 켠 그녀는, 큼지막한 소파 테이블 위가 깔끔하자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이틀 전부터 범죄조직을 정찰하기 위한 다회용 정찰기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게 사라져있었다.

의아한 표정을 짓던 박사는, 테이블 위에 흰색 종이가 접혀져 있자 그걸 집고 펼쳐보았다.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며 편지를 읽던 그녀의 손이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누나. 누나가 너무 걱정돼서 혼자 알아보려고 해요.

내가 살펴보고 올 테니까, 혹시라도 깨면 날 찾지 말고 그냥 쉬어요.

사랑해.]

“이...!”

박사가 처음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었다.

미시시피로 오기 전에 샌프란시스코의 호텔에서, 지혁이 분명 그랬었다.

앞으로 뭐든 같이 하자고.

말이라도 못하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 않았을 텐데, 같이 할 것처럼 굴다가 정작 중요한 일은 혼자서 해결하려 하다니... 이러는데 성질이 뻗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가 다음으로 느낀 감정은 걱정이었다.

혹시...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범죄조직에 잡혀서 고문이라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워졌다.

시리아에서 잡힌 전적이 있었으니 더 불안했다.

잠이 확 깬 박사는 침실로 돌아가 휴대폰을 들었다.

위치추적기를 켠 그녀는, 지혁의 위치를 나타내는 빨간 점이 치안이 좋지 않은 지역에 있자 휴대폰을 부숴버릴 듯 꽉 쥐었다.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면 내 손으로 직접 저승으로 보내주리라.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뻐버버벙!

꽤나 큰 폭발음이 들려왔다.

자신이 있는 최고층 호텔이 크게 진동할 정도.

창문으로 달려가 커튼을 확 젖힌 그녀는, 멀리 보이는 섬에서 화염과 함께 뭉게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저 정도의 폭발범위와 아까의 폭음이라면...

‘연구실의 집속탄...’

레오나가 사용했던, 자신이 개발한 집속탄이 맞았다.

근데 연구실 집속탄이 왜, 어떻게 저기서 터졌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던 박사는, 일단 지혁과 연락을 하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하고는 전화를 걸려고 했다.

하지만 지혁이 지금 범죄조직에 잠입한 상태라면 방해하는 꼴이 될까 무서웠다.

결국 박사는 손가락을 물어뜯으면서, 휴대폰에 뜬 지혁의 위치를 주시만 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간 뚫어지게 휴대폰을 바라보던 박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

지혁의 빨간 점이 리조트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를 탔는지 속도가 무척 빨랐다.

거기서 폭발음을 듣고 돌아오는 모양.

어쩌면 저 폭발은 지혁이 해결한 것일 지도 모른다.

아니,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속으로 지혁을 대견하다고 칭찬한 박사는, 마중을 나가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자신은 지금 머리끝까지 화가 난 상태였다.

풀릴 때까지 지혁과 말도 섞지 않을 것이다.

라고 다짐한 박사는 소란스러워진 야간의 해안을 살폈다.

가까운 곳에서 터진 폭발이 아니었기에 도망가는 사람은 아예 없다시피 했다.

관광객들은 섬이 불타오르는 장면을 찍느라 정신이 팔린 상태.

이 정도면 큰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 박사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오기만 해... 진짜...’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자신만 빼놓고 쏙 가버리다니.

일이 잘 풀려서 망정이었지, 잘 풀리지 않았다면...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온갖 생각을 하며 지혁을 갈굴 생각을 하던 박사는, 방문에서 카드키 소리가 들리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덜컥!

문을 열고 들어온 지혁.

그의 얼굴을 본 박사가 소리쳤다.

“야! 송지혁! 너 나랑 같이 움직이자고 해놓고 지금... 헉!”

지혁을 마구 쏘아붙이려던 박사는 깜짝 놀라 입에 손을 가져갔다.

지혁의 옷이 무척이나 더러워져있었기 때문.

또한 땀으로 완전히 젖어있었다.

그뿐이랴? 숨소리도 거칠었고 표정도 좋지 않았다.

무언가 일이 생긴 모양. 박사가 말투를 바꿔 물었다.

“지혁아...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누나,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간단하게 설명할게. 잘 들어요.”

지혁은 무척이나 다급해보였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침을 꼴깍 삼킨 박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알았어.”

“폭발음 들었죠? 그건 우리 집속탄이었어요. 누나의 예상이 맞았다는 거지. 직접 내 눈으로 확인했고, 정찰기를 사용해서 인적이 없는 섬으로 가지고 간 다음 터뜨렸어요. 근데...”

“근데...?”

“누군가가 날 역추적해서 발견했어요. 그리고 범죄조직만 우리 기술을 연구하려던 게 아니었어요. 다른 세력도 있었죠.”

“다른 세력?”

“미시시피 주도 관계가 있어요. 이뿐만이 아니라 다섯 개 주의 주지사가 이 일에 끼어들었어. 아니, 더 있을지도 몰라요. 미국이 위험해.”

지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박사가 빠르게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정신이 멍해진 박사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지혁은 그런 박사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의 양팔을 꽉 붙잡았다.

“정신 똑바로 차려요.”

“아, 응...!”

“난 지금 주 경찰들에게 쫓기고 있어요. 그쪽 무전을 엿들어보니까 내게 누명을 씌웠더라고. 내가 지금 나가서 시선을 돌려놓을 테니까 누나도 당장 여기서 떠나. 안전한 곳으로 가서 오늘 일어났던 사건을 자세히 조사해요.”

그 말에 박사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호들갑을 떨었다.

“쫓기고 있다고...? 그럼 큰일이잖아! 이, 일단 같이 빠져나가자. 내가 세계연합에 연락해서 잘 설명할게. 아니면 세화나 유리아를 불러서 도와달라고 할까?”

“우린 지금 비공식적으로 온 거에요. 세계연합은 그게 우리의 집속탄인지 모르고 있었고, 앞으로도 몰라야 돼요. 그래서 내가 무리해서 집속탄을 터뜨린 거야. 이번 일은 연구실과 관련이 없어야 되니까. 그리고 세화나 유리아를 부르는 것도 안 돼요.”

“하, 하지만 네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잖아. 난 그걸 두고 볼 수가...”

지혁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똑바로 생각해봐요! 세계연합엔 우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런 상황에서 비스트 슬레이어가 나타나서 쫓기고 있는 날 구한다고 생각해봐. 그럼 망하는 거에요. 집속탄에 대한 것도 전부 뒤집어씌울 테고, 우리가 미국을 무너뜨리려 했다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거라고!”

“지혁아...! 내가 어떻게 할까? 말해줘...!”

“누나가 최대한 빨리 내 누명을 벗겨줘요. 할 수 있죠?”

박사의 숨이 가빠져왔다.

제대로 된 호흡을 할 수가 없을 정도.

지혁이 간절한 눈빛으로 재차 묻는다.

“할 수 있죠?”

그에 정신을 차린 박사가 허겁지겁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알았어!”

“경찰이 조사하러 오면 호텔이 봉쇄될 거에요. 그러니까 그 전에 나가. 나도 지금 나갈 테니까. 사랑해, 누나. 난 누나만 믿을게요.”

말을 마친 지혁은, 박사가 무어라고 하기도 전에 그녀의 입술에 진한 키스를 하더니 문을 박차고 나섰다.

박사는 지금 상황이 무척이나 무서우면서도,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이면서도 한 가지 생각만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냥... 지혁이가 가자는 곳으로 갈 걸...’

괜히 까불어서 그가 도망자 신세가 되도록 만들어버렸다.

잠깐 멍하니 있던 박사는, 지혁이 했던 말을 상기하고는 재빨리 움직였다.

지금은 후회할 겨를 따윈 없다.

도망쳐서 안전한 곳으로 간 뒤, 사건을 조사해 지혁의 누명을 벗기는 게 먼저다.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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