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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54화 (154/471)

EP.154 사랑을 고백하세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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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응...”

박사는 힘겹게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가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졌다.

그녀가 가장 먼저 본 건, 천장에 달린 불이 꺼진 원형전등이었다.

여긴 자신의 안방이었다. 문틈 사이로 밝은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

그러고 보니 분명 앞으로 쓰러져 잤을 텐데, 왜 천장이 보이는 걸까?

이불도 꽃무늬 극세사에서 민무늬에 제법 두꺼운 것으로 바뀌었다.

머리도 묶은 상태였는데 풀어져있다.

오른쪽 발바닥에 감아진 붕대는 또 뭐란 말인가?

정신이 번쩍 든 박사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러다가 두통이 일어나 미간을 구겼다.

“아...”

이마에 손바닥을 대고 잠시 있으니, 거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박사가 설마 하는 눈빛으로 문을 주시했다.

얼마 뒤, 지혁이 문틈으로 박사를 살피더니 들어왔다.

걱정이 가득 담긴 눈빛을 한 그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사를 보며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일어났어요?”

박사는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보고 싶어 마지않던 지혁이 왜 여기 온 걸까? 너무나도 좋긴 하지만 이상하다.

그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떠났는데... 진짜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녀는, 지혁이 자신의 상체를 눕히자 몸에 힘을 뺐다.

누운 채로 눈동자를 데굴 굴리는 박사.

지혁이 긴 콧바람을 내뱉더니 그런 그녀를 나무란다.

“누나 바보에요? 수면제를 왜 4알이나 먹어요?”

“.....”

역시 꿈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먹은 수면제 개수를 지혁이 어찌 안단 말인가?

괜히 서글퍼져오는 와중, 지혁이 놀라운 말을 했다.

“저번에 비타민 챙겨먹으려다가 수면제가 있는 걸 봤었어요. 열두 개가 남아있었던 것도 알고 있었고요.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서 혹시나 싶어 확인해봤는데... 어휴...”

“어떻게...”

“생각이 있는 거에요, 없는 거에요? 이런 건 함부로 과다복용하면 안 된다는 건 누나도 알고 있잖아요. 여덟 개가 남아있는 걸 보고 놀랐어요. 진짜 걱정했잖아.”

“.... 흐윽...!”

꿈이 아닌 것을 확신한 박사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지혁이 그녀를 끌어안더니, 등을 툭툭 두드려주며 말한다.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요.”

아아... 저 넓은 마음씨를 보라.

잘못은 자신이 저질렀는데 도리어 위로를 해주다니.

울지 말아야 되는데... 기쁜 마음에 눈물이 나온다.

“흐어어엉...!”

박사는 그렇게 한동안, 지혁의 품에서 엉엉 울었다.

30분 가까이 질질 짜던 박사는,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질 않자 코를 훌쩍였다.

그제야 포옹을 푼 지혁이 말한다.

“누나 거의 30시간 정도 잔 거 알아요?”

“3, 30시간...? 정말...?”

놀란 낯으로 눈을 크게 뜬 박사.

지혁이 혀를 차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정확하게는 28시간. 사람이 왜 이렇게 멍청하냐... 자동차도 망가져있고... 쫄딱 젖어서는 침대에 쓰러져있고...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요?”

“.....”

“TV는 왜 또 깨뜨리고 난리야? 철없는 애도 아니면서.”

박사가 입을 오므렸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지혁은 그런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눈을 감고 그의 손길을 느끼던 박사는 문득 의문이 생겼다.

“언제... 왔어...?”

“24시간 전에.”

박사가 숨을 삼켰다.

그렇다면 어제 자정 즈음에 도착했다는 뜻인데... 술집에 있다가 바로 돌아온 건가?

다신 보지 않을 것처럼 떠났으면서 왜 그렇게 빨리?

그에 대한 궁금증은 지혁이 직접 해결해주었다.

머리를 벅벅 긁은 그가 설명한다.

“그냥... 누나한테 심한 말을 한 것 같아서... 그리고 보고 싶어서 왔어요.”

대답을 들은 박사가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지혁은 이토록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는데, 애매한 태도나 취하고 앉아있었다니...

그가 없는 몇 시간동안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고, 그동안 자신이 가진 마음을 확실하게 알아차렸다.

결의로 가득 찬 눈빛을 한 박사가 지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사랑해.”

처음엔 지혁에게 너무나도 빨리 빠져서, 에드워드와 만났던 때보다 사랑에 빠진 기간이 훨씬 짧아서 애써 부정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자신은 그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었다.

이젠 이 마음을 부정할 생각 따윈 없었다.

박사의 사랑고백을 들은 지혁의 양쪽 입꼬리가 쭉 올라갔다.

그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도 사랑해요.”

방금까지 눈물을 죄다 쥐어짜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울고 싶다.

행복한 감정이 온몸에 가득 차오른다.

저 멋진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니까 마음이 녹아내린다.

진작 말할 걸... 이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 단어라고 아껴뒀었는지, 자신은 정말 멍청한 년이었다.

“이불... 네가 간 거야?”

손바닥으로 눈을 훔치며 질문을 하니, 지혁이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청소도 다 해놨어요. TV도 새로 주문해서 설치했고.”

“T, TV도...?”

“그럼 망가졌는데 새로 사야지, 그냥 놔둬?”

“.....”

할 말이 없어져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는 박사에게, 지혁이 정색을 하며 경고한다.

“의료기기에 누나를 넣어놓고 상태를 체크해봤어요. 이상이 없어서 천만다행이지만... 다시는 수면제 같은 거 먹을 생각하지 마요. 큰일이라도 생겼으면 어쩌려고 했어?”

“의료기기...?”

“누나가 자는 동안 연구실에 들렀다 왔어요.”

박사가 입을 쩍 벌렸다.

설마 연구실까지 들렸을 줄이야... 심지어 지혁이 그럴 동안 자신은 일어나지도 못했다는 말인가?

박사는 지혁에게 고마운 마음이 넘실넘실 솟아났다.

감사를 해야 할 텐데... 일단 사과부터 하자.

“미안해... 미안해 지혁아...”

“나도 미안해요.”

“아냐. 넌 사과할 필요 없어... 이기적인 년이라서 정말 미안해...”

“괜찮아요. 서로 사랑하다보면 싸우기도 하는 거지.”

박사의 얼굴이 황홀함으로 젖어갔다.

그렇다. 서로 사랑하다보면 싸우기도 하는 거다.

심지어 이러고 나니 지혁에게로 향하는 사랑이 더욱 커져가는 느낌이었다.

박사의 뺨을 만지작거리던 지혁이 말을 잇는다.

“대답이나 해요. 다시는 안 먹을 거죠?”

“아, 안 먹을게... 잘못했어...”

“기분은? 이제 후련해요?”

아직 응어리가 조금 남아있긴 했지만, 지혁의 말처럼 후련하긴 했다.

에드워드와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분. 먹구름이 걷힌 느낌이었다.

그와 있을 때는 이토록 애절한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이 정도로 심한 상황까지 간 적도 없었다.

미래과학에 대한 토론을 할 때 아주 조금 다툰 적은 있었지만 말이다.

“응... 후련해...”

다소곳한 말투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지혁이 히죽 웃더니 말한다.

“여기 누워있어요.”

그 말에 불안감이 생긴 박사가 지혁의 손을 꽉 잡았다.

본능적인 행동. 그녀가 다급히 묻는다.

“어, 어디 가려고...?”

“어디 안 가. 죽만 가지고 올게요.”

“아...”

일어났을 때 맡았던 맛있는 냄새가 죽이었던 모양.

안도의 한숨을 내쉰 박사는 지혁의 손을 놔주었다.

헤드보드에 등을 기댄 그녀는, 지혁이 주방으로 가자 무릎을 모아 그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는 지혁에게 사랑고백을 하면서 질투심도 받아들인 상태.

그로 인해 지혁을 세화에게서 떨어뜨리고 싶은 마음을 강하게 느끼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더러운 치정싸움을 할 생각 따윈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지혁이 쟁반을 가지고 들어왔다.

침대에 앉은 그가 그릇을 들더니, 수저로 죽을 퍼서 후후 불었다.

그리고는 박사에게 내밀었다.

“먹어요.”

“내, 내가 먹을게...”

“줄 때 먹어요.”

“.....”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좋긴 했다.

언제 지혁의 이런 시중을 받아보겠는가?

창피함만 조금 무릅쓰면 적응되겠지.

박사는 입을 앙 벌려 수저를 물었다.

죽을 한 입 베어 물자 몸에서 따스한 느낌이 일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맛. 먹기 좋게 따뜻한데다 간도 완벽하다.

역시 지혁은 요리를 잘한다.

“맛있죠?”

박사가 입을 우물거리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 먹지도 않았는데 다음 수저를 내미는 지혁.

앙탈을 부리듯 고개를 뒤로 빼자, 지혁이 보기 좋게 웃는다.

“재촉하는 거 아니니까 천천히 먹어요. 그냥 준비 되면 먹으라고 내민 거였어.”

그에 괜히 요상한 반항심이 든 박사는,

“.... 아앙...”

아직 죽을 다 삼키지도 않은 상태에서 입을 벌리고 수저를 덥석 물었다.

이빨로 술잎을 잡고 놓아주지 않자, 지혁이 헛웃음을 켰다.

“어이가 없다 진짜...”

박사는 백번 공감했다.

자신도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다. 어이가 없다.

하지만 절로 미소가 지어졌고, 그건 지혁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킥킥거렸다.

오랜 시간 지혁의 시중을 받아 적당히 배를 채운 박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됐어, 고마워.”

“더 먹지? 반 이상 남았는데.”

“네가 너무 많이 가지고 와서 그래. 나 지금 배불러.”

“그럼 한 입만 더 먹어요.”

“안 먹을래.”

“그래요? 알았어. 이거 놔두고 올게요.”

자리에서 일어난 지혁이 부엌으로 향했다.

조금 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릇을 정리하고 있는 모양.

침대에서 나와 바닥에 발을 디딘 박사는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

“아...!”

오른발이 조금 따가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절룩거릴 정도는 아니었기에, 박사는 거실로 나와 지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 그.

꿈틀대는 등 근육이 티셔츠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절로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빨리 저 우람한 몸으로 자신을 안아주었으면 한다.

지혁이 자신만 바라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예뻐지자. 그가 일을 나가면 미뤄두었던 메이크업 샵에 가봐야겠다.

성형수술도 해볼까? 아니다. 지혁은 지금의 자신을 좋아해주고 있으니까... 얼굴에 칼을 대지는 말자.

그리고 살을 빼야 한다. 최근 살이 빠지긴 빠졌지만 이걸로는 모자라다.

삐쩍 마른 몸이 아니라, 건강미를 풍기는 몸으로 만들어서 지혁이 자신에게 더 반하도록 해야지.

연구실은 안 가도 된다.

지금은 마물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실비아와 아델이 가지고 있는 아이테르도 에너지가 줄지 않을 것이다.

지구는 현재 평화롭다. 만약 마물이 나타난다면 지혁이 먼저 연구실에 가자고 할 것이 분명하니, 괜한 강박관념은 버리자.

거기다가 세화와 유리아도 있으니까 나온다 해도 금방 처리될 거다.

여러 생각을 마친 박사는, 설거지를 끝낸 지혁이 몸을 돌리자 그에게 달려들었다.

힘차게 점프한 그가 지혁의 목을 붙잡고,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쌌다.

“뭐하는 거에요?”

따스한 말투로 물어오며 박사의 엉덩이를 두드리는 지혁.

그의 손길에 기뻐하던 박사가 말했다.

“지금 하자. 나 하고 싶어.”

그 말에 지혁이 박사의 반바지를 슬쩍 내렸다.

그리고는 묻는다.

“그렇게 하고 싶어요?”

“응.”

“쉬어야 될 텐데?”

“안 쉬어도 돼. 나 멀쩡해.”

“알았어요.”

한쪽 입꼬리를 올린 지혁은, 박사를 안은 상태로 다용도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박사는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다용도실에서 섹스를 할 모양인데... 거긴 에드워드의 유품이 있는 장소.

지혁은 지금 일부러 이러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박사는 지혁을 제지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자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에게 확실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

사랑한다고 말한 걸로는 모자라다.

지혁의 입장에서, 박사 자신은 거짓말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떨어진 신용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말로만 지껄이지 말고 증거를 보여줘야 한다.

‘에드... 미안해...’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너는 나만 생각하는 착한 남자였으니까 그래줄 거라고 생각해.

너도 내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잖아.

그러니까 더 이상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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