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53화 (153/471)

EP.153 사랑을 고백하세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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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미어지는 느낌. 자신의 심장에 손을 올린 박사는 커튼 사이로 야외주차장을 나가는 지혁의 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차가 보이지 않게 될 때쯤, 그녀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입가에 손을 올린 그녀가 흐느꼈다.

“흑...!”

다용도실에 숨어있는 에드워드의 유품 때문에 일어난 일.

언급조차 하지 않았으니 지혁이 충분히 오해할만했다.

사실 오해도 아니었다.

지혁의 말은 틀린 점이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못 잊었으니까, 자신이 괜히 켕기니까, 지혁이 볼까봐 두려우니까 숨겨놓은 게 맞았다.

=차라리 미리 말이라도 해주던가. 그랬다면 내가 더 노력했을 텐데...=

=우리 시간을 가져요. 내가 나중에 연락할게.=

머릿속에서 지혁이 했던 말이 되뇌어졌다.

맞다. 미리 말을 했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혁의 성격 상 자신에게 더 잘 대해주었을 텐데.

너무나도 미안했다.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그에게 큰 실망을 줬다.

“허억...”

아프다. 심장이 꽉꽉 조여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미치겠다. 이런 기분은 처음 느껴본다.

에드워드와 만날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아픔이었다.

한동안 숨을 몰아쉬던 박사는 좀비처럼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그리고는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머리에 찡하는 느낌이 났다.

목 아래로 타고 흐르는 차가운 물줄기가 가슴에 닿자 정신이 차려지는 것도 같다.

당장 지혁에게 전화를 하고 싶지만 그러면 정나미를 더 떨어뜨릴 것 같았다.

먼저 연락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건 무척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자신은 벌을 받아야 했다.

그래, 이건 벌이다.

잘못하면 벌을 받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

최대한 반성하고 있다가, 지혁의 연락이 왔을 때 달려 나갈 준비를 하자.

그리 생각한 박사가 안방으로 가서 침대에 털썩 누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혁과 사랑을 속삭였던 장소였는데... 너무나도 고요하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외롭다. 미칠 것만 같다.

예전엔 익숙했는데 지금은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

“이익...!”

이를 악 문 박사는 다시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으니 또 지혁이 생각났지만, 애써 머리를 털어내고 TV를 켰다.

지혁과 보려고 했던 예능이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다.

코미디언이 웃긴 표정을 지으며 연예인의 성대모사를 하고 있다.

지금 자신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인데 저렇게 실실 쪼개고 있다니.

“아아악!”

순간 일어난 분노를 참지 못한 박사는 소리를 지르면서 리모컨을 TV에 던졌다.

콰직!

TV 하단에 균열이 가고 세로줄이 생겨났다.

원래라면 하지 않았을 폭력적인 행동.

그만큼 현재 자신의 정신은 불안정했다.

“후으... 후우...”

그래도 진정이 되는 기분이다.

왜 기물을 부수는 스트레스 해소방이 인기를 끄는지 알 것만 같았다.

박사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이 왜 이렇게 흥분했더라?

아마도...

=나는 누나를 진짜 사랑하는데, 누나는 날 그냥 장난감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

지혁이 이 말을 하고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아니야!”

아니다, 절대 아니다.

자신이 왜 지혁을 장난감으로 생각하겠는가? 정말 소중한 사람인데.

처절한 듯 부정해보지만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왱왱거리는 메아리가 기분만 나쁘게 했다.

뭐라도 박살내고 싶은 마음이다. 이렇게까지 흥분한 적은 처음이었다.

“흐으윽...!”

변한 자신에게서 낯선 느낌을 받은 박사가 다시금 눈물을 터뜨렸다.

그녀는 안방으로 들어가 옷장을 열었다.

이후 지혁의 옷가지를 한 움큼 가져왔고, 침대에 누워 냄새를 맡았다.

전부 빨아서 새 것임에도 지혁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건장한 지혁의 몸이 자신을 보듬어주는 걸 상상한 박사는, 자신조차 모르게 아래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중지를 냅다 찔러 넣었다.

찌곡...

“하윽... 우윽...”

애써 흥분해보려고 하지만 전혀 되질 않았다.

손가락을 두 개, 세 개 넣어 봐도 안 된다.

그나마 지혁을 생각하니 조금 젖어오는 정도, 딱 그게 끝이었다.

이따위 손가락으로는 전혀 갈 수가 없었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 마치 변태처럼 행동하는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다.

=머리 아프면 일해요. 디바이스라도 만들어요. 누나 일하는 거 좋아하잖아.=

그렇다. 일이라도 해서 머리를 비우자.

실비아와 아델, 그리고 또 한 명의 영웅을 위해 디바이스를 만들어야 한다.

일에 집중하고 바삐 움직이면 그나마 나아질 거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박사는,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고 현관으로 갔다.

그리고는 신발장 위 고리에 걸린 자신의 차키를 홱 낚아챘다.

덜컥! 쏴아아아-!

현관문을 여니 비가 무지막지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이놈의 비... 정말 짜증난다.

형체가 있다면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까드득!

이빨을 부서져라 악 문 박사는 비에 맞는 것도 개의치 않아 하며 차에 탔다.

시동 버튼을 누르니 삑삑거리는 소리와 함께 계기판을 비롯한 것들이 작동된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린 박사는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부우웅-! 덜컹!

“꺄악!”

악셀을 너무 심하게 밟았던 탓에 주차장 울타리를 받아버리고 말았다.

차체에 일어난 충격에 의해 몸을 한 차례 꿀렁인 박사가 핸들을 쾅 내리쳤다.

빠앙!

클락션이 짧게 울리고, 그 소리에 놀란 박사가 얼굴을 부들부들 떨더니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아악!!!”

이 상태로 연구실에 제대로 갈 수나 있을까?

큰 사고가 날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하지만 어쩌랴? 뭐라도 해야겠는데.

박사는 빠르게 심호흡을 하며 차를 뒤로 빼고, 다시 악셀을 밟았다.

우우웅...

이번엔 천천히, 주차장을 무사히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침착하자, 침착해. 노래라도 듣자.

차를 몰던 박사가 말했다.

“클래식.”

그러자 자동차에 내장된 인공지능 시스템이 음악을 재생했다.

곡은 비발디의 사계, 여름 3악장.

긴장감을 조성하는 빠른 템포에 욱한 박사가 소리쳤다.

“닥쳐!”

뚝 끊긴 음악.

박사는 운전을 하면서 수동으로 곡을 변경했다.

쇼팽의 녹턴 2번. 잔잔한 피아노소리가 들려오며 박사의 귀를 간지럽혔으나 진정이 전혀 되질 않았다.

오히려 슬픈 마음만 더해졌다.

자신의 오판이었다. 기분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음악이 클래식이거늘...

결국 박사는 음악을 껐다.

바로 그때,

삐익-! 삐익-!

차 안에서 경고음이 울리더니, 자동으로 차선을 변경했다.

“헉!”

충돌감지 시스템으로 인한 결과.

이게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앞차를 들이받을 뻔했다.

큰일이 날 뻔한 박사의 가슴이 차갑게 식어갔다.

“한심해...”

정말 한심했다.

차라리 자율주행으로 둘 걸...

게다가 이런 것도 생각하지 못할 만큼 흥분한 상태에서 디바이스를 만들려고 하다니.

과학자로서의 자세가 하나도 안 되어 있었다.

이대로 연구실에 가면 아까운 폴리머스만 버리게 된다.

결국 그녀는 집으로 목적지를 설정해놓고 자율주행모드를 켰다.

이후 휴대폰을 꺼내 위치추적기를 켠 박사는, 지혁이 한대거리의 어느 술집에 있자 코가 시큰해졌다.

집에 돌아가지 않고 술집에 들렀다는 건, 그 또한 자신처럼 힘들어하고 있다는 뜻.

그를 볼 면목이 없을 정도로 미안했다.

지혁의 위치가 표시된 붉은색 점을 조심스레 쓰다듬던 박사는, 차가 집에 도착하자 문을 열고 내렸다.

비를 맞으며 앞범퍼를 확인해보니 완전히 찌그러져있었다.

마치 자신의 마음처럼.

“흐흑...”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가 현관문 앞에서 멈춘 박사는, 들어가면 지혁이 자신을 반겨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럴 리가 없음을 아주 잘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삐빅-! 덜컥.

고요한 집 안으로 들어오니 다시금 자신에게 성질이 났다.

거실에 가만히 서서 씩씩대던 박사는 다용도실로 향했다.

남편의 유품을 보면 진정이 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오히려 화만 더 돋아났다.

저 액자... 앨범... 골프채...

남편의 유품만 아니었어도, 저것만 갖다 버렸었어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학!”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던 박사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손을 보니 어느 샌가부터 액자가 들려져 있었다.

가슴속에 묵직한 무언가가 쿵! 하고 떨어져 내리는 느낌이 났다.

지금 자신이 이걸 바닥에 던지려고 한 건가?

고작 몇 달 만난 남자에게, 깊은 관계가 된 건 보름 정도밖에 되지 않은 남자에게 빠져서 남편을 내팽개치려고 한 거야?

‘이대로는 안 돼... 자야 돼...’

자신은 지금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태.

얌전히 잠이라도 자야 한다.

하지만 잠이 안 오는데... 그래, 수면유도제 성분이 있는 약이라도 먹자.

결론을 도출해낸 박사는, 망가진 TV가 있는 선반의 약품 보관함을 열어 약을 뒤져보았다.

다행히도 예전 불면증에 시달릴 때 처방받아 복용했던,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수면제가 있었다.

적정복용량은 1회 2알.

박사는 그 두 배인 4알을 꺼내 물과 함께 먹었다.

그리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마치 앞으로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비를 쫄딱 맞아 침대가 젖어왔지만 그딴 사소한 건 신경조차 쓰기 싫었다.

‘보고 싶어...’

지혁이 정말 보고 싶었다.

현재 자신은 미쳐가고 있었다.

급격한 감정변화에 정신이 나가버리는 기분... 너무나 무서웠다.

진정시켜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 사람은 지혁인데 여기 없으니까 가슴이 먹먹하다.

눈꺼풀이 무거워져온다.

역시 효과가 좋다. 진작 먹을 걸...

아까 일어났던 일이 꿈이었다면 좋겠다.

이대로 자고 일어나면 옆에 지혁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 생각한 박사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

“허어...”

추적용 마물을 통해 박사를 살펴보던 나는 혀를 찼다.

격한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예상했으나, 저 정도로 중증일 줄은 몰랐다.

수면제까지 과다복용을 할 줄이야... 저건 자신이 보인 폭력성에 놀라서 튀어나온 박사의 방어기제였다.

낯선 자신의 모습에 두려운 마음이 들어 잠이라도 자서 잊으려한 것이다.

박사는 나 때문에 저렇게 된 거고, 그녀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저 상태라면 노선은 확실히 정했겠군.’

박사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나는 박사의 집으로 가 완전히 수마에 빠진 그녀의 상태를 확인해보았다.

그녀의 발바닥엔 피가 조금 맺혀있었다.

수면제를 찾다가 깨진 리모컨과 TV 부품을 살짝 밟은 모양.

일단 호흡은 규칙적인 상태고, 동공도 정상이다.

하지만 불안하니까 연구실 치료기기에 넣어놔야지.

박사를 앞으로 안아든 나는 밖으로 나와 차에 그녀를 실었다.

이후 연구실에 들러 치료기기에 눕혀놓고 모니터를 주시했다.

모두 정상, 치료할 필요가 전혀 없다.

발바닥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심한 게 전혀 아니다.

게다가 치료하면 수면제 성분이 날아갈 수가 있으니까 그만두자.

집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박사의 옷을 벗기고, 화장실로 데려가 간단하게 씻겼다.

그 다음 소파에 눕혀놓은 뒤, 발을 자세히 살피고 박힌 조각을 빼냈다.

이후 정성을 들여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거실을 보니 난장판까진 아니더라도 더러웠다.

망가진 TV, 현관에서 안방까지 이어져있는 빗물...

‘청소해야겠다.’

팔자에도 없는 대청소를 하게 됐지만 뭐... 악의로 타락시키는 게 아닌 만큼, 조교가 완료될 때까지 이 정도 고생은 감수해주지.

나는 가장 먼저 안방의 침대 시트와 이불을 모두 갈았다.

이후 박사를 옮겨놓은 뒤, 본격적으로 거실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다 끝내놓고 죽까지 만들어주마.

그러니까 일어나면 꼭 감동해서 나한테 달려들어라.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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