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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50화 (150/471)

EP.150 절여졌으면 다음 단계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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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캐시 박사님! 안녕하세요!”

쾌활하게 인사하는 아델.

그녀의 행동이 귀여웠던 박사가 방긋 웃었다.

“반가워, 아델.”

“와아! 웃으니까 엄청 예뻐요!”

박사는 내심 기뻐했다.

자신이 예쁜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아델도 그렇고, 실비아도 그렇고... 세화나 유리아까지.

주변에 미인들이 즐비해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는데, 거짓말을 할 것 같지 않은 아델이 예쁘다고 말해주니 기분이 업 됐다.

“고마워. 한국어가 많이 늘었네?”

“네!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런데 지혁 씨는 어디 있어요?”

아델의 입에서 돌연 지혁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박사의 미간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지혁이? 지혁이는 왜...?”

“보고 싶으니까! 엄청 착한 동료, 지혁 씨!”

동료라... 아델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은 좋으면 좋다고 달려들겠지.

지혁의 연락처를 알고 있음에도 박사 자신에게 그가 어디 있는지 물어본다는 건, 개인적인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와 상통했다.

그렇다면 남자로서 호감을 가진 것은 아닌 듯싶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박사가 대답했다.

“지혁이는 지금 잠깐 집에 갔어.”

“집에? 왜요?”

“일이 있어서... 이거 네가 좋아하는 스파게티 맞지?”

화제를 돌린 박사가 봉투를 내밀자, 아델이 그 안을 빤히 바라보더니 꺄르르 웃었다.

“와아! 스파게티! 좋아요!”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아델.

보기가 좋지만 너무 철이 없는 것 같긴 했다.

이런 아이가 그렇게나 강하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집으로 들어간 박사는 실비아와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그녀가 건네준 통역기를 켰다.

“오늘은 왜 혼자 오셨어요?”

실비아의 공손한 물음.

예의가 참 발랐다.

항상 침착한 느낌을 풍기는 친구라 지혁의 말처럼 아델과 좋은 콤비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자꾸 이들이 지혁만 찾는 기분이 들까? 신경이 조금 쓰인다.

“지혁이는 조금 바빠서 내가 왔어.”

“그렇구나... 디바이스 제작은 잘 되어가고 있나요?”

박사는 찔끔할 수밖에 없었다.

나흘간 아무것도 만들지 못했기 때문.

아예 연구실에 가지도 않았다.

티 나지 않게 침을 삼킨 박사가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응. 순조로워. 하지만 아직 멀었어. 제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거든.”

“언제까지라도 기다릴게요. 고맙습니다, 박사님.”

미안했다... 너무나도 미안했다.

오늘 늦게라도 지혁과 함께 연구실에 가서 제작을 시작하리라.

그리 다짐한 박사가 생긋 웃었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네. 이만 가볼게.”

“벌써요? 아쉽다...”

“바빠서 말이야. 오늘은 음식만 전달해주러 왔어. 다음에 얘기하자.”

“네, 방해 안 할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실비아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

박사 자신이 디바이스를 만들러 가는 줄 아는 것이다.

지혁을 위한 음식 재료를 살 거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 경멸하려나 싶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도 오늘부터 잠을 줄여가며 제작에 착수하면 되겠지.

괜히 찔려하지 말자. 그러면 의심을 살 테니까.

“고마워,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해.”

“네, 박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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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찌개.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비주얼에 불안한 눈을 한 박사가 수저로 찌개를 살짝 떠서 맛을 한 번 보았다.

그리고는 혀를 빼며 미간을 구겼다.

“미치겠네...”

간이 전혀 맞질 않았다.

서양식은 기본 이상으로 만들 수 있겠는데, 동양식은 자신과 맞지 않는 듯했다.

지혁이 먹는다면 토를 할지도 몰랐다.

여태 미국식 음식만 먹여서 물릴까봐 걱정했는데... 이걸 주느니 차라리 하던 대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물론 지혁은 요리를 잘 했다. 저번에 그의 오피스텔에서 맛본 콩나물국은 정말 담백했고, 반찬도 입맛에 딱 맞았다.

물리면 알아서 만들어 먹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손으로 해주고 싶었다.

인덕션을 끈 박사는 찌개를 전부 버렸다. 지혁이 눈치채지 못하게끔 찌꺼기를 싹 다 갈아버리고 하수구로 흘려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삐-! 삐-! 삐-!

싱크대에 엉덩이를 기대고 침울해있던 박사는, 세탁기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정신을 차렸다.

세탁기에서 수십 장의 수건과 속옷을 꺼낸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흘 만에 이렇게 써버렸다.

옷을 입고 있든 말든 눈을 마주칠 때마다 관계를 가졌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샤워를 했으니 세탁물이 많을 수밖에.

세탁기가 대형이라 다행이었다.

밖을 바라보니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뉴스를 보니 가을의 마라톤 장마라고 하던데... 며칠간은 더 내릴 것 같았다.

박사는 비오는 날이 정말 싫었다.

음습한 분위기 때문에 마음이 절로 우울해져왔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지혁이 집에 없는 지금은 예전보다 더 외로웠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박사는 건조기에 빨래를 느릿느릿 집어넣었다.

오피스텔에 들렀다 오겠다고 한 지혁이 왜 이렇게 늦을까?

먼 거리는 아닌데... 설마 세화랑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빨래거리를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헉!”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깨달은 박사가 숨을 삼켰다.

질투를 해버렸다. 지혁의 연인인 세화에게.

인류를 구원할 영웅에게 순간 나쁜 마음을 먹었었다.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킨 박사는, 남편의 남색 티셔츠가 보이지 않자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 간 거지? 분명히 이틀 전에 한 번 손빨래를 했었고, 다시 빨기 위해 세탁바구니에 넣어놨었는데...

한참 티셔츠를 찾던 박사는 그냥 포기했다.

발이 달려 도망가지도 않았을 테니 어딘가에 있겠지.

지혁이 돌아오면 한 번 물어봐야겠다.

그리 생각한 박사는 건조기를 돌려놓고 다용도실에 들어가 구석에서 액자를 찾아 꺼냈다.

“.....”

나흘 만에 꺼낸 결혼사진.

아련한 눈으로 그걸 빤히 바라보던 박사는, 액자를 다시 구석에 넣어놓았다.

이번엔 아예 앞으로 덮어놓았다.

하늘에 있는 남편이 갑작스레 사진에 들어와 자신과 지혁의 정사를 지켜볼까봐 불안해서였다.

말도 되지 않는 생각.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찔렸다.

-그렇게 찔리면 하지 마! 하지 않으면 되잖아!-

마음속 어딘가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하지 말라고? 그럴 수 없었다.

지혁의 다정한 목소리와 잘생긴 얼굴, 완벽한 몸과 우람한 물건에 이미 중독되어버렸다.

그를 향한 마음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상태.

지혁과 함께 있다 보면 공허했던 마음이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예전의 달콤한 부부생활이 생각나 너무나도 좋았다.

-제니... 이러지 마.-

또 들려온다.

이러지 말라고? 당신이야말로 날 버려두고 떠났잖아!

10년간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데... 이런 내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지 말라니.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나도 이제 행복해지고 싶어!

입 밖으로 이런 말을 내뱉으려던 박사가 화들짝 놀랐다.

잠깐 남편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자신이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방금 세화에게 했던 질투고 그렇고, 여태까지 너무나 외로워서 보상심리가 생겨버린 것 같다.

황급히 다용도실을 나온 박사가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하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우웅-!

조용한 거실에서 들려오는 건조기 소리.

외로움이 또 사무쳐오는 것 같다.

혼자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밀려들었다.

세화의 얼굴을 보기가 무섭다.

유리아에게도, 실비아와 아델에게도 미안하다.

본부의 책임자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러는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하지만 어찌하는가? 지혁이 너무나 좋은데.

보고 싶다. 나긋한 말투로 자신을 보듬어주는 그가 보고 싶어 미치겠다.

정말 많이 몸을 섞었음에도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젠 그가 만져준다는 생각만 해도 아래가 축축하게 젖어오는 기분.

마치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 것 같았다.

삐빅-!

현관문에서 카드키 소리가 들렸다.

지혁이 왔구나.

반색한 박사가 소파에서 일어나 달려갔다.

덜컥!

문이 열리고, 한쪽 어깨가 젖은 상태의 지혁이 큼지막한 쇼핑백을 든 채로 박사를 향해 묻는다.

“왜 그러고 있었어요?”

따스한 목소리.

마음이 녹아내린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낀 박사는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지금 당장 남편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 저 널따란 품에 안기고 싶은데, 나잇값 못한다고 타박을 들을까 두렵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때, 지혁이 환하게 웃더니 양팔을 벌렸다.

“아...!”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렸구나.

역시 지혁이다. 그래, 나이 따윈 아무런 걸림돌이 안 된다.

자신의 이런 모습을 좋아해주는 지혁이 있는데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짧은 생각을 마친 박사는 지혁의 품으로 다가가 안겼다.

그러자 지혁이 박사의 목 뒤를 만지며 다정하게 말한다.

“우리 누나, 많이 외로웠나보네?”

박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온몸으로 밀고 있는데도 꿈쩍하지 않는 지혁의 단단한 몸에 감탄하는 중이었다.

매번 느끼는 감촉이지만 대단하다. 다소 왜소했던 남편과는 다른 느낌.

에드와 성격이 닮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취소다.

지혁은 그만의 매력이 있었다.

제대로 만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푹 빠질 만큼.

“올라타요. 들어가게.”

그리 말한 지혁이 박사의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박사는 지혁의 목에 팔을 두르고 점프했고,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았다.

박사를 앞으로 안아든 채 집 안으로 들어온 지혁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쇼핑백을 옆에 내려놓은 그가 묻는다.

“빨래하고 있었어요?”

“응. 옷은?”

“가져왔어요. 여기.”

쇼핑백 안을 보니 옷이 한가득이었다.

원래 이틀만 있겠다고 했는데... 가져온 옷들을 보면 여기서 눌러 살 것만 같았다.

박사는 찝찝해하면서도 내심 기뻐했다.

지혁이 이렇게나 많은 옷가지를 가져왔다는 건, 자신에게 빠져있다는 증거였으니까.

옷가지 몇 개를 주섬주섬 꺼내 코에 가져다 대보니 향기롭지만 낯선 냄새가 났다.

세화와 함께 쓰는 섬유유연제 같았다.

블랙체리 향도 은은하게 난다.

저번에 지혁의 오피스텔에서 일어났을 때 맡았던 냄새와 같았다.

또 세화를 향한 질투가 솟아난다.

“이거 다시 빨자. 냄새나.”

“냄새?”

지혁이 옷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안 나는데?”

“아냐. 약간 퀴퀴한 냄새가 나는데... 며칠 비가 와서 네 옷장에 습기가 찼나봐. 아니면 젖은 상태로 방치해놨거나...”

“그런가? 누나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 그렇게 해요.”

“와이셔츠랑 정장은 왜 가지고 왔어? 회사에 일 생길까봐?”

“응. 혹시나 급한 일 생기면 바로 출발하려고요.”

“수트케이스는 없었어? 다 구겨졌잖아. 이건 세탁소에 맡기자.”

“그러다 일 생기면 어쩌려고? 그냥 놔둬요.”

“아냐. 당일 세탁 되니까 지금 다녀오면 돼. 금방 갔다 올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럴 거면 같이 가.”

듣고 싶었던 대답에 얼굴이 환해진 박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지혁이 킥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왜 웃어?”

“아니, 그냥... 누나가 좋아서.”

박사는 새어나오는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이런 생활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사소한 애정표현에 기분이 좋아지는 자신, 뭐든 챙겨주고 싶은 애인.

마치 풋풋한 연애를 하는 것 같다.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도 젊어지는 기분이었다.

지혁에게 안긴 채 천천히 그네를 타던 박사가 말했다.

“아, 지혁아.”

“왜?”

“혹시 남색 티셔츠 봤어? 세탁기에 넣어놓은 줄 알았는데 없더라.”

“그 티셔츠? 못 봤는데... 잃어버렸어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분명히 집에 있을 텐데...”

“같이 한 번 찾아볼까?”

고개를 끄덕이려던 박사는 왠지 지혁이 자신을 테스트한다고 느꼈다.

지혁은 그 티셔츠를 싫어했다.

저번에 자신에게서 티셔츠를 받아 아무렇게나 휙 던져버린 것을 상기해보면 확실했다.

그건 소중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지혁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싶은 지금, 여기서 ‘지금 찾아보자.’ 라고 말을 하거나 티셔츠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지혁이 실망할 것 같았다.

그래, 지금까지 남편의 물건을 부여잡고 질질 짰던 것도 이상하잖아.

남편 유품이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지혁이 일 때문에 나가게 되면 찾아보자.

여러 생각을 하던 박사의 말문이 열렸다.

“아냐, 괜찮아. 어딘가에 있겠지.”

그 대답에 지혁이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지혁의 표정을 본 박사는, 자신이 정답을 말했구나 싶었다.

남편에 대한 미안함이 약간 생겼지만 금세 사라졌다.

‘버린 것도 아니니까... 괜찮을 거야.’

스스로를 합리화한 박사는, 지혁이 자신을 부서져라 안아주자 황홀한 기분을 느꼈다.

저렇게 대답하길 잘했다. 아직 자신의 연애세포는 죽지 않은 것 같다.

라고 생각한 박사는, 지혁의 가슴팍에서 낑낑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물었다.

“밥은 먹었어?”

“안 먹었어요. 배고프다.”

“금방 차려줄게. 잠깐만 기다려봐.”

“아뇨. 그냥 세탁소에 가는 김에 외식하고 와요.”

“그럴까? 뭐 먹을래?”

“음... 근처에 감바스 가게 있던데, 거기 한 번 가볼까요?”

“난 아무데나 좋아.”

“근데 이러고 있으니까 움직이기 싫어진다. 이대로 조금만 있을까?”

박사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이 하고픈 말이었다.

조금만이 아니라 오래... 아니, 아예 매일 붙어있고 싶다.

‘연구실 가자고 해야 되는데...’

그래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박사는 지혁의 등을 감은 팔에 힘을 주었다.

지금은 행복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자신은 이 남자가 자리한 늪에 완전히 몸을 담근 것 같다.

에드워드를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잘못된 판단이었다.

젊었을 때 지혁을 만났다면 좋았을 걸...

그랬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이 박사의 뇌리를 아주 잠깐 스쳐지나갔다가 사라졌다.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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