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30화 (130/471)

EP.130 밝혀지는 진실

“중앙정보국에 수상한 인물 두 사람이 갇혀있다고?”

심각한 표정으로 되묻는 박사.

내가 대답했다.

“네. 그랜드캐니언에서 사고가 있었대요. 거기 전체가 울릴 정도의 큰 진동이 일어나서 공군이 출격했는데,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조각조각난 사람의 시체와 피웅덩이가 발견됐어요. 시체 근처에서 현대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이 두 명 있었고, 현재 중앙정보국에서 취조를 받고 있는 상태라네요.”

“큰 진동이라면... 마물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블리언 탐색기도 작동되지 않았고, 마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요. 하지만 그랜드캐니언이 울릴 정도라면 심각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정체는 중앙정보국도 모른대요.”

“중앙정보국에서도 신분을 모른다?”

“네.”

“그러면 큰 사안이긴 한데... 넌 이걸 어떻게 알았어?”

“일하면서 틈틈이 전 세계의 정보를 긁어모으고 있었거든요. 제가 한 번 자세히 알아볼게요.”

내 태연한 거짓말에 박사가 얕은 한숨을 내쉬며 묻는다.

“괜찮겠어? 일 바쁘다고 휴가 달라며?”

“사업차 미국에 갈 일이 있어요. 미팅을 앞당기고 그 후에 조사해보면 됩니다. 겸사겸사 하는 거죠.”

“미안해.”

뜬금없는 사과.

자신이 모르는 정보를 가지고 온데다가 일이 바쁨에도 발 벗고 나서려 하는 내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저희가 남입니까? 조수 뒀다 뭐해요. 이럴 때 굴려야지.”

그 말에 박사가 픽 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조수가 아니라 파트너라니까?”

아니지. 넌 내 파트너가 아니라 마리오네트랑 비슷한 존재란다.

내가 조종할 수 있는 인형이라고.

박사에게 이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 빼내올 수 있긴 했다.

하지만 나는 공식적인 방문으로 빼내오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실비아와 아델라인이 박사를 만나게 되는 건 필수불가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중앙정보국은 세계연합과도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고, 세계연합의 모든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박사는 빠른 시일 내에 둘의 존재를 알게 될 터였다.

정보의 통제를 하려면 할 수 있으나 둘을 본 요원들이 많으니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통제는 불가능하다.

모든 게 미궁 속으로 빠진 이 때, 정부 요원을 건드리면 안 그래도 귀찮은 일이 더욱 귀찮아진다.

그냥 내가 가서 둘을 빼내고 컨트롤하는 것이 뒤탈도 없고 낫다.

“그렇다고 칩시다. 어쨌든 중앙정보국에 들어가야 하니까... 박사님의 이름을 빌려야겠어요. 세계연합에 얘기를 좀 해주세요.”

“정보국 안으로 들어가서 정보를 얻어올 수 있게 해 달라?”

“네. 거미인간 코스튬을 입은 사람에게 모든 결정권을 줬다고 해주시면 됩니다. 물론 신분증도 필요하긴 하겠죠.”

그 말에 박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거미... 인간...?”

“제 얼굴을 깔 수는 없잖아요.”

“그렇긴 한데... 너 이상한 생각하고 있지?”

“이 기회에 서민들의 영웅이 되어보려고요.”

박사가 헛웃음을 켰다.

미국인인 그녀는 거미인간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상태.

날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그녀가 말했다.

“알았어. 진짜 보면 볼수록 우리 남편이랑 판박이라니까...”

“영광이네요.”

“전혀 영광 아니거든? 이거 욕하는 거야.”

“그래요...? 무안하네...”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듯 쪼개자, 박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언제 갈 건데?”

“내일 미국에 날아가서 모레 사업 이야기를 하고, 다음 날에 찾아가볼까 해요.”

“사흘 후라는 소리네. 미리 처리해둘게. 대신...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빠져나와.”

박사의 진심어린 걱정.

기쁘다 기뻐. 날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구나.

“누가 절 건드린다고요? 무려 박사님이 보증해주시는 사람인데.”

“정보국 요원들을 말하는 게 아니야. 그 미지의 두 사람을 말하는 거야.”

“알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올게요. 이만 갑니다.”

손을 흔들며 농담을 멈추지 않는 나.

정색을 하며 주의를 주던 박사가 실소를 터뜨렸다.

“알았어. 조심히 다녀와.”

**

나는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하는 미국 중앙정보국에 와있었다.

가면을 쓴 상태로 말이다.

눈, 코, 입이 뻥 뚫린 가면이 아니라, 거미줄을 쏘는 슈퍼히어로처럼 아예 다 가렸다.

복면이라고 해야 정확하겠지.

심지어는 지문 같은 것도 남지 않도록 전신에도 코스튬을 입은 상태였다.

어쨌든 내 이 기행에 중앙정보국 요원들이 너무나도 황당해했다.

원래라면 당장 체포해도 모자랄 정도의 상황.

그러나 내 입에서 제니퍼 캐시 박사의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그리고 그녀가 내 존재를 인증해줬을 때부터 정보국은 날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었다.

박사는 비스트 슬레이어 레오나가 나타난 이후부터, 세계연합에 얼굴만 제외하고 자신의 존재를 알린 상태.

현재 비스트 슬레이어와 우리 본부는 그 위상이 대단했다.

마물들이 나타났을 때마다 국가와 협력해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고 처리한 뒤 조용히 사라진다.

인류의 수호신쯤으로 취급받고 있었고, 대중들의 지지도 엄청나다.

그렇기에 본부의 총책인 박사의 파급력은 그야말로 최고수준.

그런 박사의 조수인 난, 박사의 보증과 덕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정보국 요원에게 실비아와 아델라인에 대한 정보를 넘겨받았고, 지금은 두 사람을 만나러 가고 있는 상태였다.

“고작 몇 마디밖에는 배우지 못해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있을 겁니다. 감안하셔야 해요.”

요원의 설명.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겠습니다.”

“이틀 전에 세계연합소속의 변호사가 한 번 방문했었는데... 그쪽과도 관계가 있으신 겁니까?”

아람을 말하는군.

“예. 자세한 사항은 기밀입니다.”

“물론 그러시겠죠.”

요원은 약간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날 무시했다.

아니, 무시한 게 아니라 화가 난 거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랜드 캐니언의 조각난 시체의 사건 용의자를 아무런 설명도 없이 취조하려고 하니까.

근데 니들이 뭐 어쩔 건데? 중앙정보국이 언제 적 중앙정보국이야.

지금은 세계연합이 위고, 그 위가 비스트 슬레이어 본부인데. 까라면 까.

이야기를 나누면서 본부 지하층으로 가니 여러 요원들이 취조실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로비 사람들과 같은 표정으로 복면을 쓴 나를 바라보는 그들에게, 다소 경박한 제스처로 경례를 한 나는 자신 있게 문을 열었다.

덜컥!

책상에 나란히 앉아있는 실비아와 아델라인이 보인다.

깜짝 놀란 표정의 그녀들.

코스플레이어 처음 보지?

그나저나 실제로 보니 정말 아름답구나. 당장 쓰러뜨리고 가랑이 사이에 쑤셔 박고 싶다.

내 악의를 가득 주입해 배를 불룩...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안녕하세요? 외계인 여러분?”

활기찬 말투로 실비아에게 손을 내민 나는 아차 하며 머리를 두드렸다.

“아, 지구의 언어를 모르시지.”

지금 내 이 모습은 중앙정보국에 보여주기 위한 연기였다.

눈앞의 두 사람이 경계심을 풀도록 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약간 모자라고 발랄한 구석이 있는 4차원 조수.

다행히 잘 통한 것 같았는지, 아델라인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두근!

심장이 긴장으로 빠르게 뛴다.

지금 나는 인간 상태이고 이 상태는 안전함을 확인했지만, 행여나 아델라인이 마기를 감지할까 두렵다.

지금은 괜찮은 것 같은데... 일단 계속 해보자.

“어? 이쪽 분이 책임자이신가보네? 안녕하세요?”

두 사람이 당연히 알아들을 리가 없는 영어를 씨부리며 아델라인에게 손을 내미니, 그녀가 다소곳한 몸짓으로 내민 손을 맞잡았다.

아델라인이 내게 어눌한 말투로 말한다.

“마, 만나서 방갓습미다. 내 이름... 아델라인.”

그래도 열심히 배웠네. 발음은 구리지만 귀에 쏙쏙 들어오긴 한다.

“아델라인?”

내가 고개를 가까이 들이밀고 되묻자, 아델라인이 크게 기뻐하며 방방 뛰었다.

“네! 아델라인!”

심장이 아프다. 귀여워서 아파.

며칠간 씻지도 못했을 텐데 냄새도 안 나잖아. 헤으응...

그리고 정말 안심이다. 내 마기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난 아델라인과 두어 번 악수를 하고는 실비아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실비아는 차가운 얼굴을 했지만, 그래도 악수는 해주면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실비아.”

허, 아델라인과는 전혀 다른 온도차군.

“실비아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네 이름은?”

발음은 아델라인보다 훨씬 좋네.

나는 실비아에게 취조실 구석에 있는 감시카메라를 가리켰고, 양 다리를 쫙 벌리고 두 팔을 교차해 큰 X자를 만들었다.

이름을 밝히면 안 된다는 바디 랭귀지.

그러자 실비아가 불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이름은 밝혔는데 내 이름은 밝히지 않으니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모양.

하지만 이내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는 사정을 대충이나마 눈치챘구나.

좋아, 일단 경계심은 상당히 많이 풀린 것 같다.

경박한 모습이 제대로 주효한 모양.

두 사람의 맞은편에 앉은 나는, 장난감을 본 아이마냥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는 아델라인과, 시크하게 앉아있지만 제법 흥미로운 눈빛을 한 실비아를 향해 태블릿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는 그녀들의 어깨 너머에 있는 큼지막한 원웨이 미러를 향해 소리쳤다.

“잠깐 주변 기계들을 좀 제어할게요! 유리도 가릴 테니까 당황해하지 마시고, 절대 들어오지 마세요!”

말을 마친 나는 태블릿을 조작해 취조실 전체의 기계를 무력화시켰다.

푸쉬이...

힘없이 고개를 떨구는 카메라. 천장에 붙어있던 스피커까지 모두 무력화되었다.

난 곧이어 유리창을 향해 손바닥을 쫙 폈고, 검지와 중지를 구부리고 거미인간 특유의 손동작을 취했다.

이후 손목 안쪽에 미리 설치해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손목에서부터 푸화악!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슬라임 같은 것이 튀어나가더니 유리 전체를 가렸다.

“와아아!”

감탄을 터뜨리며 물개박수를 치는 아델라인.

실비아 또한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재미있지? 내가 니들 즐겁게 해주려고 동물원 원숭이를 자처했단다.

취조실 전체가 가려지고, 나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정보국 요원들이 들어오나 오지 않나 확인해보기 위함.

시간이 지나도 취조실이 조용하자, 나는 태블릿을 조작해 두 사람에게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세화와 유리아가 디바이스를 조작해 변신하는 영상이었다.

그걸 본 실비아와 아델라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런 반응은 예상했다.

디바이스는 생소할 테니까.

난 이번엔 레오나와 유리아가 마물들을 도륙하는 영상을 틀었다.

그러자 두 사람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

“@***#!&@#.”

아이테르를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레오나와 유리아에게 놀란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마물들을 보고 반응하는 건가?

나는 태블릿을 터치하면서 이렇게 하면 정지할 수 있다고 두 사람을 학습시킨 뒤, 영상을 되감기하고 넘겼다.

그리고는 양손을 어깨 위로 들고 놀란 행동을 취했다.

어느 부분에서 놀랐는지 찍어보라는 의미.

내 바디 랭귀지를 찰떡같이 알아들은 실비아가 영상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어느 한 부분에서 정지한 뒤 태블릿을 탁상에 내려놓았다.

“이거.”

간단한 단어를 말하며 손가락으로 세화의 검과 유리아의 활을 가리키는 그녀.

그걸 본 나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폴리머스로 만든 무기인데... 이걸 왜 가리킨 거지?

탁상에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괸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런 내 얼굴을 바라보던 아델라인이 돌연 허공에 펜질을 해댔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뜻.

나는 노트와 펜을 꺼내 사람의 얼굴을 대충 그린 다음 아델라인에게 주었다.

자신의 바디 랭귀지가 통해서 기뻤을까?

아델라인이 날 향해 환하게 웃었다.

퀴퀴한 취조실이 밝아지는 기분이다. 너무 예쁘잖아.

그녀는 펜을 신기한 듯 바라보더니 이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얼마간 열심히 집중하며 그림을 그린 아델라인이 내게 노트를 넘기고 밝게 소리쳤다.

“이거! 칭구!”

노트를 본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엔 다섯 가지의 무기가 그려져 있었다.

검, 활, 채찍, 쌍검, 그리고 전투망치.

‘이, 이건...’

각각 레오나, 유리아, 로제, 캐롤라인, 그리고 셀린을 상징하는 무기였다.

대체 왜 이 상황에서 뜬금없이 무기를 그린 거지?

게다가 면식이 하나도 없을 텐데 로제의 무기는 어떻게 알아낸 거야?

다른 건 몰라도 채찍을 그린 건 그냥 넘어가기가 불가능했다.

아델라인은 무기들을 가리켜 친구라고 말했다.

무슨 친구를 말하는 걸까?

대가리가 깨질 것 같다. 좋아, 아이테르를 보여줘 보자.

난 태블릿을 조작해 고비 사막에서 발견했던 무지개색의 멀쩡한 아이테르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드르륵!

“@*#* 에테르 (!*@!”

“#@&!*&!(@&! 에테르!”

실비아와 아델라인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지금까지 보여줬던 반응 중에서 가장 큰 반응을 보여주었다.

말 속에서 에테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들렸다.

에테르라... 저건 아이테르를 말하는 것 같은데.

궁금해서 미칠 것 같다.

‘일단 빼내자.’

빼내서 천천히 알아보는 거다.

나는 진정하라는 뜻에서 양손을 들었다 내렸다 했다.

이 모습을 본 두 사람이 심호흡을 하자, 난 검지를 쫙 펴고 그녀들을 차례대로 찍은 뒤, 이어서 문을 가리켰다.

지금부터 너희들을 빼내어주겠다는 의미.

내 제스처에 두 사람의 안색이 무척 밝아졌다.

답답했지? 하지만 약속을 받아야겠어.

“나가면! 사고치지! 마세요!”

알아들을 리가 없는데도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허공에다 허접한 쉐도우 복싱을 하고, 반대로 가서 주먹에 맞는 사람을 연기했다.

그리곤 아까처럼 큰 X자를 그렸다.

“도망! 가지도! 마세요!”

이번엔 런닝머신을 뛰는 것처럼 팔다리를 움직이고, 다시 X자를 그렸다.

실비아와 아델라인은 처음엔 이 바디 랭귀지를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두 번 더 반복하자 뜻을 이해했는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날! 따라와! 알았어!?”

난 이후로도 두 사람이 나갔을 때 얌전히 있을 수 있도록 열심히 손짓발짓을 해댔다.

힘들다 힘들어... 나중에 다 보상받을 줄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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