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29화 (129/471)

EP.129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인간은 그냥 죽은 것도 아니고, 알로켄처럼 먼지화가 된 것도 아니고... 원상태로 돌아왔다.

이런 개사기 같은 능력은 듣도 보도 못했다.

애초에 씨발 5탄 히로인인 아델라인은 셀린으로 변신해서 전투망치를 휘둘러대는 힘캐라고!

저런 신성력 같은 좆같은 기술은 사용하지 않았단 말이야!

난 셀린의 망치에 대가리를 쳐맞고 뒈졌다니까!

“머리가 아프군.”

정말 머리가 아팠다.

저 두 사람이 세화와 유리아를 만난다면... 정화될 수도 있다.

정화되고 살아있으면 다행이지, 세화와 유리아는 자신의 의지로 마족이 됐으니까 알로켄처럼 먼지가 되어 죽을지도 모른다.

마르셀라가 발을 동동 굴렀다.

나처럼 걱정이 산더미인 모양이다.

“어... 어쩌죠...?”

“모르겠구나.”

그 말대로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변신도 하지 않았는데 알로켄을 쉽게 상대한 실비아,

거지같은 힘을 써서 알로켄을 소멸시키고, 악에 물든 인간을 정화한 아델라인.

모두 내 예상범위 밖이어서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정화된 인간은 실비아와 아델라인이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자 고개를 갸웃했다.

“저... 괜찮으십니까?”

너야말로 괜찮냐? 어디 막 몸이 쑤시진 않아?

머릿속이 흐리멍덩하지는 않고?

그런데 넌 흉악한 범죄자잖아. 그런 놈이 순진무구한 눈망울을 하다니.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냐?

알았다. 가증스런 아델라인에게 당해 사도에 빠져버린 게로군.

내 친히 구원을 내려주지.

“터뜨려.”

“네, 마왕님.”

마르셀라가 꼬리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러자,

“지금 대체 무슨 일이익...!?”

부우욱!

인간의 몸이 탱탱볼마냥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고,

퍼억!

잔인한 소리와 함께 터졌다.

실비아와 아델라인에게 피해는 없었다.

당연했다. 인간의 몸이 부어오르는 순간, 실비아가 아델라인을 안고 뒤로 쭉 빠졌기 때문이었다.

“@#*!*[email protected]!”

“@*#*#((%#*”

핏물이 낭자한 그 장소에서 벗어난 두 사람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무어라고 소리쳤다.

둘은 동요하고 있었다. 특히 아델라인은 분노에 몸을 떨었다.

뭐 이년아. 몸속에 부착한 나노폭탄은 정화가 안 되냐?

내 선물이 마음에 드나보지?

“다음 놈은 은밀하게 접근시켜라.”

“네.”

얼마 뒤, 격앙된 말투로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의 위에서 인간이 흐물흐물 기어 나왔다.

이번 인간은 악의를 최소치로 주입한 놈.

아델라인은 지척에 올 때까지 마기를 감지하지 못했다.

대충 사이즈가 나오는구나.

니들이 강한 건 인정한다. 진짜 존나 세다.

하지만 약한 마기는 가까워져야만 감지할 수 있다는 약점을 지녔다.

이걸 안 것만으로도 큰 수확. 고개를 주억거린 내가 말했다.

“테스트는 종료하도록 하지. 저 놈 외에 남은 한 놈은 그냥 버려라.”

“알겠습니다.”

마르셀라는 다시 키보드를 조작했다.

**

분노에 휩싸인 채 움직이던 실비아와 아델라인은 그랜드캐니언을 순찰하는 미군 소속 공중 경비대에게 발각되었다.

실비아는 처음엔 그들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아델라인이 만류해서 그냥 얌전히 있었고, 그렇게 두 사람은 헬기에 타고 어디론가 날아갔다.

대가리에 상식은 박혀있구나. 그래, 니들이 마기가 없는 인간들을 공격할 수는 없었겠지.

이제 실비아와 아델라인은 세 명의 폭발한 인간 때문에 용의자로 의심받아 미국의 중앙정보국으로 가게 될 텐데, 시간은 조금 벌었다.

하지만 저 상황은 내게도 손해였다.

여러 실험을 더 하고 싶었는데, 둘이 스스로 잡혀감으로서 그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군.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낮게 한숨을 내쉰 나는 마르셀라를 돌아보았다.

“추적용 마물은 감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들키지 않도록 붙여놓아라.”

“알겠어요.”

“당분간 휴업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휴업이라 하심은...”

“지구에 있는 마물들 중에서 힘이 강한 녀석들은 아델라인에게 감지될 수도 있다. 모두 마계로 돌려보내야겠어.”

우린 지금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최소한 실비아와 아델라인이 왜 왔는지, 아이테르도 없이 어떻게 저런 힘을 가지게 됐는지, 정화의 약점은 뭔지 알아낼 때까진 숨을 죽이고 있는 게 나았다.

“하지만 마왕님께서 공격받을 위기에 처하면요? 마계에서 지구로 차원포탈을 열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요. 마물들이 마왕님을 도와주기 힘들게 되어요.”

“악의를 최소한으로 주입한 인간놈은 아델라인의 지척까지 왔을 때 겨우 감지 당했다. 인간의 몸일 때의 나는 마기가 봉인되어있으니... 악의만 일부러 생성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안전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마왕님의 예측일 뿐이에요. 확실해질 때까지는 남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제게 생각이 있사와요.”

“말해보아라.”

“실험체 하나를 잡아 마왕님의 인간 상태와 같게 만들어두겠습니다. 그 뒤 이지를 제거해서 아델라인에게 접근시켜 확인을 해보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지가 없는 놈들은 좀비 같은 모습을 보인다. 저 둘은 당한 바가 있으니 극도로 경계하겠지.”

“그럼 아몬에게 시켜서...”

“아몬의 최면술은 강렬한 마기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기술이잖느냐. 아델라인이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다.”

마르셀라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모양.

나 또한 착잡함에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확실히 실험을 더 해보긴 해야 할 텐데...

조용한 기지 안에서 깊은 고민을 하던 난,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최아람...”

“네?”

“최아람을 이용하겠다.”

“최아람은 아직 세뇌가 끝나지 않았는데요...”

“알고 있다. 하지만 악의에도 물들지 않았고, 내가 뭘 하든 의심하지 않을 정도는 되지. 그렇지 않느냐?”

“그렇긴 합니다.”

아람은 정화를 당한다 해도 죽지 않고, 날 신봉하는 마음도 변하지 않는다.

악의로 세뇌시킨 게 아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지금 상황에서의 안전자산이었다.

“그녀를 내 인간 상태와 비슷하게 만들려면 뭐가 필요하느냐?”

마르셀라 또한 지금 시간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 상태다.

그녀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피만 조금 채혈하게 해주세요.”

고개를 끄덕인 나는 소매를 걷었다.

“시작해라.”

**

-사진 봤어. 진짜 아쉽다...

“며칠 뒤에 돌아오면 꼭 보자. 제일 먼저 너 보러 달려갈게.”

-진짜지? 약속했다?

“그래.”

-알았어. 조심히 다녀와.

연수와의 전화를 끊은 나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갑작스럽게 생긴 출장이라는 명목으로 연수에게 전화를 했고, 그녀는 내 말의 진의를 의심하다가 실시간으로 보내준 무인 전용기의 인증샷을 보고 나서야 믿었다.

실비아와 아델라인이 등장한 이후 안전가옥 설치의 필요성이 더 커졌기에 연수를 버리지 않고 붙잡아둬야 했다.

나는 전용기 맞은편 좌석에 앉은 아람을 바라보았다.

“아람아.”

“네, 사장님.”

하계 정장과 큼지막한 얇은 테 안경을 낀 채로 다소곳이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지적인 비서처럼 보였다.

그녀의 전신을 훑어보던 나는 품에서 자그마한 캡슐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내밀었다.

“이거 먹어. 씹지 말고 그냥 삼키기만 해.”

“아, 네... 감사합니다.”

뭔지도 모르는 물건일 텐데도 감사인사를 하며 두 손으로 캡슐을 받은 아람.

그녀가 순순히 약을 삼켰다.

얇은 그녀의 목이 꿀렁이는 것을 지켜본 나는 만족스런 얼굴을 했다.

여러 공정을 거친 저 캡슐 안엔 피와 섞여 고체화된 내 악의가 있다.

아람은 이제 딱 내가 인간 몸일 때와 같은 상태가 됐다.

마기가 꽁꽁 숨겨진 상태. 만약 아델라인이 아람에게서 이질적인 느낌을 받는다면...

‘생각만 해도 짜증나는군.’

그렇게 된다면 접근방식도 다르게 해야 할 텐데... 머리가 아팠다.

난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아람아.”

“네?”

“대본은 외워뒀지?”

“네, 전 변호사고... 미국 중앙정보국으로 은밀하게 인도된 인물과 대화를 나누면 됩니다. 만나게 되면 몇 차례 대화를 시도해보다가 나오고요.”

“정확해.”

“하지만... 사장님, 제 정체가 탄로 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데요... 중앙정보국에서 제 신분을 확인할 텐데...”

“그건 걱정하지 마. 다 처리해놨어.”

누가? 바로 마르셀라가.

아람은 스무스하게 중앙정보국 내부로 입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무인 전용기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곧 미국 버지니아에 도착했다.

기술이 발전된 세계라 3시간 밖에는 걸리지 않았지만 불만족스럽다.

예전이었다면 아람을 재우고 포탈을 태우면 끝이었을 텐데, 혹시라도 몸에 마기가 묻지 않을까 우려해 이런 방법까지 써야 한다니...

짜증이 나지만 참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다짐했잖아.

전용기에서 내린 우린 개인 수속대로 가서 빠르게 수속을 마쳤다.

“미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바짝 긴장한 말투의 수속 카운터 직원.

마르셀라가 세계연합소속 고위직 신분으로 위장시킨 게 주효했구나.

직원은 나와 아람이 입국했다고 세계연합에 알리겠지만, 그것도 마르셀라가 처리해줄 테지.

난 웃는 낯으로 그에게 수고한다고 말해준 뒤 공항을 나섰고, 아람과 함께 플라잉 택시를 타고 중앙정보국 본부를 향해 움직였다.

아람은 의외로 긴장하지 않았다.

타고난 배우의 자질이 보이는군. 얘도 소속사에 넣어버릴까?

아람과 함께 WW엔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길 얼마 후, 택시가 중앙정보국 본부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린 나는 아람의 정장을 가벼운 손길로 털어주면서 말했다.

“나는 옆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일처리 끝내놓고 와. 네가 만날 사람은 알지?”

“네, 연한 빨간색 머리카락, 그리고 백금발 수준으로 샛노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에요.”

“최대한 두 사람과 같이 만나려고 해보되, 여의치 않으면 백금발 머리카락만 만나면 돼.”

“알겠습니다.”

아람이 핸드백에서 조작된 신분증을 목에 걸었다.

나는 그녀에게 잘 하라고 오란 뜻에서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고, 헤어진 뒤 카페에서 커피를 시켰다.

묵묵히 아람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났다.

아직 확실한 건 없음에도 걱정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15분... 30분... 1시간... 2시간...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목이 탔고 초조해졌다.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냥 얼굴만 맞대고 대화 몇 마디 나누는 게 그리 어렵나?

위조 신분증 때문에 잡힌 건 아니다.

마르셀라의 기술력은 그만큼 하찮지 않았으니까.

속이 타는 마음을 네 잔째의 커피로 달래던 나는, 어떤 사람과 함께 아람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본부 직원인 듯 보였는데, 그와 웃는 낯으로 헤어진 아람은 연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가 있는 카페로 왔다.

일단 소란이 없는 걸 보면 악의를 감지하지는 못한 모양인데...

내 마음속에 희망의 불씨가 피어났다.

아람은 긴장이 풀렸는지 느릿한 속도로 카페에 왔고, 내 맞은편에 앉았다.

목에 건 신분증을 집어넣은 그녀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만났어요...”

“둘 다? 아니면 백금발만?”

“둘 다에요. 사장님 말씀처럼 아무런 의심 없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연한 빨간색 머리카락 여자분이 너무 무서워서 긴장했어요... 백금발 여자분은 엄청 착했고... 두 분과 30분간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는데, 이상한 언어를 사용해서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다만 답답한 표정을 짓고 계셨죠. 마치 저기에서 나오고 싶은 것 같았어요.”

아델라인이 다소 호전적인 실비아를 컨트롤하고 있구나.

그녀 특유의 유한 성격이 내게 큰 도움이 되고 있어.

“백금발 여자가 너한테 이상한 짓 같은 건 안 했어?”

“이상한 짓이라뇨?”

“예를 들자면 네게 경계하는 눈초리를 보낸다거나...”

“연한 빨간 머리의 여자분은 그랬는데... 백금발 여자분은 그러지 않았어요. 친근한 표정으로 가만히 계시던데요?”

“좋아. 돌아가자.”

“네, 사장님.”

우린 택시를 탄 뒤 공항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몰래 아람의 몸을 살펴보니 내 악의가 그대로 있었다.

‘됐다.’

난 속으로 쾌재의 쾌재를 불렀다.

아람이 괜찮다는 건, 나 또한 괜찮다는 얘기.

내가 마기를 봉인한 인간 상태라면 아델라인은 눈치채지 못한다.

세화와 유리아도 마기만 숨겨놓는다면 접촉이 가능할 것이다.

똥줄이 타던 마음이 싹 사라지면서 자신감이 생긴다.

맺혀있던 응어리가 씻겨나감과 동시에 머릿속에 낀 자욱한 안개가 걷히면서 창창해졌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아직 더 캐내봐야 하겠지만 최소한 이 상태에선 안전하다는 걸 확인했으니... 이번엔 내가 접근할 차례.

실비아, 그리고 아델라인이여. 이틀, 사흘 정도만 더 있어라.

판만 새로 짜고 빼내줄 테니까.

철저하게 연기를 하면서 모든 정보를 빼내고 내 수족으로 타락시켜주지.

줄타기를 해야 할 생각을 하니 심장이 쫄깃해진다.

조금만 빨리 왔다면 날 물리칠 가능성이 높았을 텐데 아쉽게 됐구나.

원래 악당들이 뒷북을 치긴 하지만, 니들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아, 맞다. 악당은 나였지.

어쨌든 너흰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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