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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24화 (124/471)

EP.124 막간 - 마르셀라 #2

변장한 마르셀라는 섹시한 모델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관능적이었다.

다만 행동이 너무 소녀 같아서 매치가 안 됐다.

수줍은 듯 다리를 오므리고 팔을 쭉 뻗은 마르셀라.

애꿎은 치마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민지야.”

민지는 마르셀라의 위장용 이름.

성은 김 씨고, 만들어놓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이름이기도 했다.

보통 그녀가 인간들의 사회에 섞일 땐 대부분 중년 남자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왜? 회사를 운영하려고.

지금은 마르셀라 특유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는, 몽마의 특징만 숨겨놓은 상태였다.

긴 손톱이나 송곳니, 꼬리, 붉은 머리카락 같은 것들 말이다.

“네...? 네?”

화들짝 놀라 날 바라보는 그녀는 무척 사랑스러웠다.

저도 모르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마르셀라에게, 내가 속삭였다.

“너 지금 나랑 동갑이잖아.”

“아... 맞아요... 아니, 응...”

반말이 도저히 입에 붙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중에 적응하겠지.

우린 지금 기차에 있었다.

포탈을 타고 해운대의 집으로 가도 되지만, 휴가 기분을 내기 위해서 일부러 기차를 골랐다.

그런데 마르셀라가 주변 풍경도 보지 못하고 쑥스러워 하고만 있으니... 괜한 짓을 한 건가 싶었다.

“옆에 앉아.”

내 말에 마르셀라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앞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왔다.

팔걸이를 위로 올리고 마르셀라의 허리에 손을 두르니, 그녀가 몸을 움찔 떨었다.

원래라면 조수를 줄줄 뿜어냈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손길로 느끼지는 않고 그냥 놀라기만 하는 것 같다.

“밖에 좀 봐봐. 예쁘지?”

“응...”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하면 어떡하냐?”

마르셀라가 더더욱 고개를 숙였다.

거의 가슴에 파묻혀버릴 정도로.

“민지야.”

“.....”

“민지야.”

“.... 흑!”

돌연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

피식 웃은 난 비치된 냅킨통에서 가운데 냅킨을 뽑았고, 그녀의 눈을 닦아주었다.

“왜 울고 그래?”

“흐윽...! 그냥... 너무 좋아서어...”

난 마르셀라의 어깨를 잡고 내 품으로 끌어왔다.

그러자 그녀의 어깨가 달싹거린다.

어떻게든 울음을 참고 싶은 모양이다.

이렇게 귀엽고 나만 바라보는 녀석을 껄끄러워 했었던 초창기의 내가 원망스럽다.

한참을 조용히 울어재끼던 마르셀라는, 내 흰색 티셔츠를 흠뻑 적셔놓고서야 눈물을 멈췄다.

정신을 차린 그녀가 얼른 내게 사과한다.

“미, 미안해...”

“괜찮아. 다 울었어?”

“.... 응...”

난 마르셀라의 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섬섬옥수 같은 그녀의 손.

투명하고 윤기가 흐르는 손톱이 참 예뻤다.

“아... 저...”

뭐라고 말을 하려는 마르셀라였지만, 내가 말없이 고개를 가로젓자 가만히 있는다.

내 부드러운 표정을 보고 용기를 얻었을까?

그녀가 조심스레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다.

그리고는 내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자 더 나아갔다.

몸을 움직여 내 곁에 찰싹 달라붙은 것이다.

예쁜 짓 좀 하네.

그렇게 난 마르셀라를 위해 미동도 없이 두어 시간을 버텼고, 부산에 도착했다.

내가 세화는 물론 마르셀라마저도 모르게 구해놓은 집은 비치 프론트 레지던스였다.

호텔 등을 겸업하는 돈지랄의 끝판왕급 아파트.

최상위 로얄 층에 있는 집으로 들어간 마르셀라는, 큰 창문에 펼쳐진 바다의 널따란 수평선을 보고 감탄을 터뜨렸다.

“와아...!”

저 소녀 같은 모습에 난 괜히 미안해졌다.

수개월 간 거의 쉬지도 못하고, 날 위해서 흉측한 마물들이 득시글거리는 기지에서 일만 해왔다.

며칠간 마음 편하게 휴가를 즐기게 해줘야지.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고있는 마르셀라에게 가까이 다가간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좋지?”

“응... 아니, 네! 엄청 좋아요...”

단둘이 있을 땐 존댓말을 하려는 모양이다.

그 모습도 귀여웠던 나는 그녀의 뺨에 냅다 입을 맞추었다.

“후약!?”

깜짝 놀란 마르셀라가 날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헤롱해롱하며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벌써부터 가려고 하네. 역시 아래는 삼류 중에서도 삼류다.

마르셀라를 번쩍 안아든 나는 침실로 들어가 그녀를 휙 던져놓았다.

그리고는 나 또한 그녀의 곁으로 가 누웠다.

난 마르셀라를 당겨와 내 어깨에 얼굴을 묻도록 했다.

그녀의 머리를 지그시 쓰다듬어주자 마음이 편해졌는지 금세 잠들려고 한다.

피곤하겠지. 기차에서부터 정신력 소모가 만만찮았는데.

난 마르셀라가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편하게 자라. 넌 그럴 자격 있어.

**

스흐읍...! 하며 자신이 흘린 침을 빨아들인 마르셀라가 고개를 들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는 이윽고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놀랐다.

“흐에?”

내가 그녀를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왕님... 지금... 몇 시에요...?”

또 존댓말을 한다.

이해해주자. 지금 비몽사몽 속을 헤매고 있을 테니까.

“저녁 11시.”

“네...? 11시요...?”

“응. 너 여덟 시간정도 잤어.”

그 말에 마르셀라가 화들짝 놀라 상체를 일으켰다.

그 정도로 잘 잤다니 믿어지지 않지? 나도 놀랐다.

“죄, 죄송합니다아... 제가...”

안절부절 못하는 그녀.

상체를 일으킨 난 저려오는 팔을 주물렀다.

“뭐가 죄송해. 잘 잤으면 된 거지.”

“아, 네...! 제가 주물러드릴까요?”

“됐어. 배고프지? 나가서 밥 먹자.”

“아, 알겠습니닷... 근데... 마왕님께서는 안 주무신 건가요...?”

“나도 잠들었다가 방금 깨어난 거야.”

“아...”

마르셀라가 안도했다.

사실 난 자지 않았다. 여덟 시간동안 그녀가 곤히 자는 모습을 바라만 봤었다.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이 어찌나 웃겼던지, 지금까지 미소를 참아내느라 광대뼈가 얼얼할 정도다.

“얼른 옷 갈아입어.”

“네!”

금세 활기차진 마르셀라가 캐리어를 열어 옷들을 꺼냈다.

치맛단이 하늘하늘한 원피스로 갈아입던 그녀는, 티셔츠를 벗는 날 흘긋거렸다.

왜? 침 흘려서 미안하냐? 벌 걸 다 신경 쓰네, 피곤하겠다.

옷을 다 갈아입은 우린 손을 꼭 잡고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마르셀라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그래도 아까 기차에서마냥 심하게 부끄러워하지는 않았다.

점점 적응을 해나가고 있구나. 좋다.

밖으로 나와 해변로를 따라 걸어가던 나는, 해수욕장 모래에 돗자리를 피고 앉은 커플들을 쳐다보았다.

“우리도 밖에서 먹을까? 밤바다 보면서.”

“네... 전 뭐든 좋아요...”

“반말.”

“전... 존댓말이 편한데에...”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오늘부터 며칠간은 널 위한 날이니까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나는 편의점에서 돗자리를 하나 샀다.

그리고는 인적이 드문 장소를 찾아 펴고, 배달 앱을 켜서 양식을 시켰다.

그때까지 마르셀라는 아무 말도 없이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제법 멀리 있는 가로등의 불빛이 비춰주는 그녀의 얼굴은 정말 아름다웠다.

낯엔 섹시했는데 밤엔 너무나도 청순해 보인다.

원래라면 반대가 정상 아닌가?

나 또한 마르셀라를 보고 있으니, 입을 오물거리던 그녀가 내게 속삭인다.

“저... 마왕님.”

“응?”

“제가 이래도 되는 걸까 싶어요...”

기지에서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런 편한 생활을 누리니 낯선 모양이다.

솔직히 안타까웠다.

나 같은 악덕업주를 만나 개고생을 하는 모습이.

일은 열심히 하는데 보상은 제대로 못 받고... 보통사람이라면 의욕이 나지 않을 만도 한데 일 능률은 떨어지지도 않는다.

불평 한 번 늘어놓지 않고 충심을 다하는 최고의 수하가 마르셀라였다.

“미안하다.”

갑작스런 내 사과에, 마르셀라가 고개를 갸웃한다.

“네...?”

“이렇게밖에 못해줘서 미안해.”

“아, 아니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놀라가지고는 손사래를 치는 마르셀라.

피식한 내가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저, 저도요...”

분위기가 어색해질 때쯤, 무인 드론으로 시킨 음식이 배달되었다.

그것들을 받은 난 마르셀라가 젓가락질을 못한다는 걸 상기해내고는 포크를 내밀었다.

수줍게 포크를 받은 마르셀라는 음식의 포장을 뜯으려다가 내 만류에 멈칫했다.

“내가 다 할게.”

“그... 네...”

마르셀라는 다시 울먹거리려고 했다.

실없는 농담이 생각난 내가 파스타를 내밀며 말했다.

“시도 때도 없이 위아래에서 전부 울어대면 수분이 남아나냐?”

그 농담에 마르셀라가 흐윽...! 하는 소리와 함께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웠다.

그렇게 우린 누그러진 분위기 속에서, 서로 깔깔대며 시킨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나도 마음이 편해지는구나. 휴가 오길 잘했어.

식사를 마친 우린 포장용기들을 한곳에 몰아놓고 돗자리에 냅다 누웠다.

마르셀라는 반짝이는 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자니 그녀가 이 지구에 굉장한 정을 붙였음을 알 수 있었다.

하는 짓이 완전히 인간이 따로 없는 수준이다. 그것도 감수성이 엄청나게 풍부한 인간.

“민지야.”

“네...?”

“고향이 그리워?”

그 말에 마르셀라가 내게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는 진심 어린 고백을 한다.

“전... 마왕님이 계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다 좋아요.”

진중한 이야기를 할 타이밍인가보다.

난 마르셀라의 검게 변한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나랑 영원히 같이 있을 거지?”

“물론이에요... 전 마왕님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걸요. 마왕님께서 지구를 정복하실 때도, 우주로 눈길을 돌리실 때도 함께할 거에요.”

“고맙다.”

“그리고... 주제넘지만 조언을 하고자 해요...”

“네 조언이라면 얼마든지 경청해야지. 해봐.”

“뒷구멍을 하나 파놓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뒷구멍? 무슨 뒷구멍. 애널이라도 따달라고?

고개를 갸웃하는 내게, 마르셀라가 말을 이었다.

“비스트 슬레이어 두 명이 없고, 아이테르가 세 개나 사라졌어요. 기다리는 방법밖엔 없다고는 하지만...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마왕님만 아시는 숨구멍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흐음...”

마르셀라는 두 비스트 슬레이어가 현재 변신이 가능한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갑작스레 기습이라도 받을까봐 걱정하는 건가?

아이테르 세 개와 두 사람이 없는 건 공교로워도 너무 공교로운 일이긴 했다.

마르셀라가 하는 말이니만큼 따라야겠지.

“너와 나만이 아는 뒷구멍 말이지? 세화나 유리아도 모르는?”

“마왕님 단 한 분만 아셔야 해요. 저는 알 필요가 없어요.”

너무 많이 불안해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일단은 알겠다고 하자.

“알았어. 고마워.”

“저야말로 감사해요... 정을 주셔서요.”

“앞으로도 하염없이 줄 예정인데.”

마르셀라의 얼굴이 붉게 물든 것이 보인다.

방긋 웃어준 나는 몸을 뒤척이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세화도 요즘 네 수고를 알아주는 것 같으니까, 너무 싫어하지는 마.”

“와, 왕비님을 싫어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오히려...”

“오히려?”

“이번 일을 들키면 왕비님께서 절 싫어하실까봐 걱정이에요...”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세화는 지금 내가 널 만나고 있다는 걸 알아.”

“네에...?”

“거짓말을 하려고 했는데 세화가 먼저 눈치를 채버렸어. 당황해하는 나한테 세화가 뭐라고 한 줄 알아?”

마르셀라가 침을 꼴깍 삼켰다.

두려움 가득한 표정. 돌아가면 세화에게 핍박을 받을까봐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널 잘 대해달래. 수고 많았다고. 며칠간 자기한테도 연락하지 말라고 하더라.”

“.....”

“세화도 많이 성장했지? 유리아가 이블 발키리가 된 이후로 마음가짐이 변한 것 같아. 여왕으로서의 자비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나봐.”

마르셀라의 큰 눈에 물기가 맺혔고, 곧 옆으로 떨어졌다.

제대로 감격했구나. 하긴, 마르셀라를 매몰차게 굴던 세화가 하는 말이라기엔 믿어지지 않겠지.

나도 저 말을 들었을 땐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다.

열 번 툴툴대다가 한 번 잘해주면 사람이 진국으로 보인다는 격언에 더없이 공감이 갔다.

“앞으로도... 흐으윽! 왕비님을... 잘 모시겠습니다...”

훌쩍이며 저리 말해오는 마르셀라.

난 말없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내고 내 입으로 가져갔다.

몽마의 눈물 맛도 인간과 다를 바 없네. 짜다.

“돌아가자.”

“흐으응...! 네에... 흐아아앙...!”

마르셀라는 엉엉 울면서 일어났다.

마치 싸워서 서러운 여자친구마냥 울어재끼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돗자리를 대충 정리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아무도 없자 주변의 감시카메라를 무력화시킨 뒤 포탈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마르셀라를 안아든 뒤 침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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