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13화 (113/471)

EP.113 누그러지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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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악!”

비명을 내지른 유리아가 상체를 일으켰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황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려보니 타이라트의 고성에 있는 자신의 방이었다.

“허억... 허억...!”

가쁜 숨을 내쉰 그녀가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 혹시나 싶어 머리카락을 당겨와 바라보니 연두색이었다.

변신은 풀리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다.

“으읏...!”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악몽을 꾼 기분. 얇은 이불을 옷 삼아 몸에 두른 그녀가 침대를 벗어났다.

슈트를 찾고 싶었지만 아예 없었다.

누군가가 가져간 것 같았다.

유리아는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문 옆에 있는, 원목으로 된 스탠드 옷걸이에 걸려있는 흑색 드레스를 발견했다.

딱 봐도 낯부끄러운 디자인.

이건 분명... 어머니가 입었던 드레스였다.

마가렛을 생각하는 순간, 유리아의 머리에서 벼락이 쳤다.

“으으... 아아아악!!”

심한 격통을 느낀 그녀가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지혁과 똑 닮은 타이라트의 물건, 온화하던 어머니의 마물화, 잉태, 그리고 눈앞에 나타났던 지혁.

무의식적으로 밀어냈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어마어마한 고통을 안겼다.

전신이 화형을 당하는 것처럼 뜨거웠다.

구해달라며 소리치고 싶은데 말이 나오질 않는다.

바닥에 쓰려져 새우처럼 몸을 말고 고통에 신음하던 유리아는, 방문이 벌컥 열리고 자그마한 발바닥이 자신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유리아 님!”

발바닥의 주인은 메릴이었다.

유리아에게 쪼르르 달려간 그녀가 소리친다.

“유리아 님! 괜찮으세요? 유리아 님! 왜 울어요! 울지마아아앙!”

울지 말라고 해놓고 엉엉 울어재끼는 메릴.

꼬마 마물의 순수한 진심이 느껴진 유리아의 고통이 서서히 멎어갔다.

얼마 뒤 고통이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낮아지자, 유리아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메릴...”

“흐어어어엉! 아프지마아아!”

자신의 목소리도 듣지 못한 채 제 할 말만 하는 메릴을 바라보며, 유리아가 아픈 와중에도 희미하게 웃었다.

터져버린 멘탈을 회복시켜주는 메릴이 정말 고마웠다.

유리아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뻗어 메릴의 조막만한 손을 꼭 잡았다.

그러자 대성통곡을 하던 메릴의 울음이 뚝 그쳤다.

“후엥...?”

큼지막한 귤색 눈동자를 끔벅이는 그녀.

자그마한 콧구멍에서 콧물이 삐져나온 모습이 귀여웠다.

이젠 많이 괜찮아진 유리아가 말했다.

“메릴... 고마워... 덕분에 괜찮아졌어.”

“크응!”

코를 먹은 메릴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 유리아는 발광을 하느라 떨어진 이불을 다시 몸에 두르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메릴이 폴짝 뛰어 천장까지 치솟더니 유리아의 옆에 툭 떨어졌다.

일곱 살 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점프력.

귀도 그렇고, 볼에 있는 여우수염 문양도 그렇고, 가공할 운동능력도 그렇고...

이런 걸 볼 때마다 마물은 마물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메릴을 향한 경계심 따윈 전혀 없었다.

사랑스러운 메릴은 지금 유리아에게 있어서 그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아이였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이런 감정이 들었다.

아무래도 자신은 마물들의 사회에 적응한 모양이었다.

“유리아 님. 아팠어요? 많이?”

순진무구한 눈망울을 한 채 저리 묻는 메릴.

유리아는 메릴의 눈가를 닦아주고는 힘없이 웃었다.

“조금... 아팠어.”

“왜요?”

“악몽을 꿨... 아니, 조금 보기 힘든 현실을 마주했었거든.”

“우웅? 어려워요... 쉽게 말씀해주셔요.”

“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런데 왜 알몸이었어요?”

“나... 도 모르겠어... 지금 몇 시야?”

그 말에 메릴이 창문을 열고 달의 위치를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아침이에요.”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 극야였다.

하지만 예전처럼 거북하지는 않았다.

유리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얼마 안 잤구나...”

“네? 유리아 님은 이틀 동안 잠만 잤는데요?”

“뭐...?”

이틀이라니. 그럼 그때 정신을 잃고 한 번도 깨어나지 않았던 건가?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그럴 만도 하긴 했다.

이렇게 담담한 것이 이상할 정도로.

어쩌면 자신은 메릴 덕분에 마물을 다시 보게 됐고, 그랬기에 어머니의 권속화를 보고도 정신이 무너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라는 지구의 격언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그랬구나...”

“배고프시죠? 과일 가지고 올까요?”

확실히 이틀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그런지 배가 고팠다.

목이 마르기도 하고.

“그래줄래? 물도 부탁할게.”

“네!”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린 메릴이 밖으로 나가려다가 아차 했다.

“아, 유리아 님!”

“응?”

“마왕님이 걱정했어요. 깨어나면 바로 오랬는데...”

“.....”

타이라트... 이젠 그가 마왕인지 지혁인지 헷갈릴 지경까지 왔다.

유리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고 있자, 메릴이 다시 다가와 묻는다.

“어떡해요? 비밀로 할까요?”

자신을 위해 마왕의 지고한 명령마저도 어기려고 하다니 너무나도 기특했다.

메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유리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침만 먹고 갈게. 마침 나도 물어볼 게 있었거든.”

“알았어요.”

메릴이 나간 문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있던 유리아는 드레스를 바라보았다.

여기 가져다놓은 것을 보면 입으라는 소리 같은데...

“하아...”

긴 한숨을 내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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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유리아는 드레스를 입었다.

이불보를 두른 채 마왕을 알현할 수는 없었기 때문.

어머니가 입었던 것과 똑같은 디자인이라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났다.

괜히 낯부끄러워진 유리아는 메릴의 칭찬에 질색하면서 과일을 먹었다.

이후 복도로 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

마물 시종들이 자신을 향해 공손한 예를 표했다.

메릴과 술래잡기를 했던 때와 같은 행동.

당시엔 불쾌했었으나, 지금은 달랐다.

아리송하다고 해야 하나... 기분이 묘했다.

‘정신 차려... 제발...’

고개를 털어낸 유리아는 시종들의 인사를 애써 무시한 채 알현실 앞에서 멈췄다.

자신이 박살낸 문은 고쳐진 상태.

혹시나 싶어 귀를 대보니 아주 조용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녀가 노크를 하려다가 멈칫했다.

그냥 들어가자. 그리 생각한 유리아가 문을 열었다.

알현실은 평소처럼 어두컴컴하지 않았다.

끝에 있는 거대한 벽난로가 따닥따닥소리를 내며 타오르고 있었고, 거기서 나오는 은은한 주황색 빛이 옥좌를 비춰주는 상태였다.

유리아는 침을 꼴깍 삼키며 옥좌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타이라트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지혁 씨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머리가 복잡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유리아가 가만히 서있는 상태로 우물쭈물하자, 타이라트가 책을 덮고는 말한다.

“그렇게 빤히 보지 말거라.”

어깨를 흠칫 떤 유리아.

그녀가 긴장한 투로 물었다.

“넌... 누구야?”

“앉아라.”

지혁이 손을 휘젓자 알현실 구석에 있던 화려한 의자가 두둥실 떠올라 옥좌 옆에 자리했다.

“마법... 인가...?”

“정확히 말하자면 마력을 이용한 염동력이지. 어서 앉으라고 했다.”

“.....”

본능적으로 그의 말을 따라야한다고 생각한 유리아가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었다.

부드러운 카펫을 지나 옥좌 근처까지 다가간 그녀는, 타이라트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계단을 올라 의자에 앉았다.

푹신한 감촉. 마치 침대에 앉은 것 같은 느낌이다.

신기해서 의자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데, 타이라트가 칭찬을 해왔다.

“드레스가 예쁘구나.”

“고마... 아니, 그...”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그녀.

타이라트가 피식했다.

“뭐가 궁금하지?”

숨을 훅 들이켠 유리아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방금 말했잖아. 넌 누구냐고.”

“타이라트다. 마계의 총수이자 마왕.”

“....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냐.”

“그렇다면 뭐지?”

짓궂은 미소로 유리아를 바라보는 타이라트였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잘근거리던 유리아가 말했다.

“넌... 내가 아는 누군가와 닮았어.”

“그렇군.”

“그렇게 간단히 얼버무릴 문제가 아니야. 제대로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유리아는 타이라트가 자신을 서서히 적응시키려고 하는 거라 생각했다.

자신은 현재 가설을 세우고 있는 상태였다.

지혁과 타이라트가 동일인물이 아닐까... 하는 가설을.

동시에 자신이 과거로 돌아온 것처럼, 그 또한 과거로 돌아왔을 거라고 예상하는 중이었다.

가설과 진실은 받아들이는 무게가 다르다.

만약 이게 정말이라면 아무리 예상하고 있었다 해도, 너무나도 충격적일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마가렛이 마물로 변했을 때보다 더.

그렇게 되면 자신은 다시 혼절할 테고, 타이라트는 그걸 원치 않아서 지금 저렇게 말하며 배려를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난 어떻게 해야 돼...?’

진실을 듣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는다.

타이라트의 말처럼 자연스레 알아차리길 기다려야 하는 건가?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 그녀는 결국 말을 돌리기로 했다.

“엄마는... 지금 어디 있지?”

“지하감옥에 있다. 참, 이제 네 동생을 임신했으니 감옥은 너무 심한가?”

그 말에 유리아가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성난 표정을 본 타이라트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슬픈 모양이지? 어미가 그리 된 것이.”

“입 닥쳐...!”

“다행스럽게도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네 어미를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유리아가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마가렛의 몸에 들어간 내 인자를 회수하면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게 되지.”

“지금 당장...!”

당장 어머니를 돌려놓으라고 말하려던 유리아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은 현재 타이라트를 이길 수 없었다.

한주먹거리. 그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힘으로 뭘 해결하려 하면 이도 저도 안 된다.

오히려 아첨을 떨어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유리아가 몸을 부르르 떨고만 있자, 타이라트가 비아냥거렸다.

“이번엔 주제파악이 빠르군. 덤비지 않으니 칭찬을 해줘야 하나...”

“이...!”

“내기를 하나 하자꾸나.”

“내기...?”

“마가렛을 설득해보아라. 그녀가 직접 내게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할 수 있도록 만든다면, 아무런 조건 없이 마기를 회수해주겠다.”

“정말이야...?”

“물론이다. 헌데... 과연 마가렛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려고 할까? 인간인 상태에서 같은 인간을 증오하게 된 녀석이다. 뇌리에 뿌리 깊게 각인된 불신이 있지. 심지어 내 아이까지 뱄다.”

유리아가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정말 좆같았지만 저 말은 사실이었다.

대체 무슨 방법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돌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자기가 원해서 마물이 되었다.

또 변한 이후 했던 말을 상기해보면 어머니는 스스로의 입장도 진심으로 이해한 것 같았다.

자신은 마물 집단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그런 입장을.

“또한 넌 인간보다 마물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상태일 테지. 그런 네가 설득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날 잘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마!”

버럭 소리친 유리아. 타이라트가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이틀의 말미를 주겠다. 그동안 감옥과 성을 드나들 수 있도록 허가하지.”

“지금 당장 어머니께 가겠어... 마물들이 날 막지 못하게 해줘.”

“이미 그렇게 처리해놓았다.”

여유로운 표정의 타이라트.

유리아는 보란 듯이 어머니를 설득해 저놈의 멋진... 아니, 높은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 주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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