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06화 (106/471)

EP.106 자각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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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무것도 안 보여...”

유리아는 왜 자신이 여기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지혁과 사랑을 나눈 다음 잠에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사방팔방이 빛 한 점 없는 어둠이었다.

당황해하던 그녀가 아무데나 발걸음을 내딛어보려고 하는 그 순간,

화아악!

하늘엔 보름달이 생겨 빛을 내리쬐고, 땅엔 초록색 풀이 우거진 풀밭이 나타났다.

놀란 유리아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여긴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였던, 왕궁에서 조금 떨어진 능선이었다.

천천히 밤 능선의 고요한 모습을 눈에 담던 유리아는, 멀찍이서 괴이한 소리가 들려오자 귀를 쫑긋 세웠다.

키에에에엑!

“이건...!”

그녀에게 있어선 절대 잊을 수 없는 괴성이었다.

바로 마물이 왕궁을 침략했을 때 들려왔었던 하급 마물의 소리.

기겁한 유리아가 본능적으로 팔을 만지작거렸다.

‘이... 있다!’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이테르가 자신의 팔에 장착되어있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이 순식간에 잦아들고,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전신에 퍼진다.

충전량을 확인해보니 100퍼센트였다.

지혁 덕분에 용량이 늘어나기도 했으니 한동안 싸울 수 있으리라.

하급 마물들은 그냥 육체의 힘으로만 처리해보고, 고위 마물을 상대할 땐 변신하자.

그리 생각한 그녀가 이를 악물고 능선을 내려갔다.

-오홋홋홋! 썩어버리렴!

앞쪽에서 희미하게 에란델 공용어가 들려왔다.

저 숙녀 같은 목소리는 분명... 부패의 마물 사브나크.

어마어마한 수의 백성들을 역병에 걸리게 하고 산채로 썩게 만든, 이블리언 게이지로 따지자면 A급의 고위 마물이었다.

‘저 나쁜 년...!’

이를 뿌드득 간 유리아가 디바이스를 두 번 터치했다.

그러자 화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비스트 슬레이어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등 뒤엔 믿음직한 활과 거의 무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오버 테크놀로지의 화살통이 메어져있는 상태.

사정없이 내뿜고 있는 빛줄기 덕에 어둠이 걷히고 주변 상황이 훤히 보였다.

“크아악!”

“살려... 끄아아아! 내 몸이...!”

여기저기서 백성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뿐이랴? 갑작스럽게 침공한 마물들에게 잡아먹히고 있거나, 사브나크에 의해 온몸이 썩고 있었다.

그런데도 유리아는 백성들 따윈 신경 쓰지 않은 채로 사브나크만을 바라보며 분노로 몸을 떨었다.

그녀가 등에서 활을 잡아 앞으로 빼고, 화살을 시위에 걸고 발사했다.

쐐애액!

무시무시한 파공성을 들은 사브나크의 시선이 유리아 쪽으로 향했다.

-허억!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화살을 바라보며 기겁한 사브나크가 양팔을 교차해 머리위로 들었다.

쩌어어엉!

엄청난 굉음과 함께 멀찍이 밀려난 사브나크.

유리아가 아쉬운 듯 혀로 입술을 적시고는 생각했다.

디바이스의 충전량이 제한되어있는 만큼 속전속결이 답.

그녀는 다시금 화살을 걸고 사브나크에게 조준하면서, 디바이스의 용량을 슬쩍 확인해보았다.

그런데...

‘어?’

디바이스의 퍼센테이지가 떨어지지 않았다.

원래라면 1퍼센트 이상 떨어졌을 텐데 100퍼센트 그대로.

그새 용량이 늘어난 건가? 일단 사브나크부터 처리하자.

그렇게 생각한 유리아가 두 발의 화살을 더 쏘았다.

쐐애애액!

-이이익! 이년!

이를 악 문 사브나크가 팔을 휘둘러 화살을 하나 쳐냈다.

하지만...

퍼어억!

허벅지를 노리고 날아간 화살은 막지 못했다.

-꺄아아아아악!

다리 한 짝이 날아간 사브나크가 마을 전체를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비명소리를 내뱉었다.

유리아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화살의 위력이 지구에서보다 훨씬 강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디바이스를 확인해보니 충전량은 100퍼센트 그대로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일이 틀림없다.

이번엔 세 발. 어디 한 번 막아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유리아가 화살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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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억... 허억... 살려...

콰직!

사브나크의 머리통을 박살낸 유리아가 쾌감에 몸을 떨었다.

지금의 자신은 무척이나 강했기 때문.

A급 마물인 사브나크는 변신한 상태에서도 상대하기가 힘겨운 고위 마물.

예전엔 속수무책으로 당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입장이 뒤바뀌었다.

자신에게 목숨을 구걸하기까지 해서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오랜 시간동안 사브나크를 능욕했음에도 퍼센테이지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압도적인 힘을 무한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증거.

이 힘이라면... 어쩌면 타이라트를 없앨 수 있을지도 몰라.

뭔지는 모르지만 나는 힘을 지닌 채로 과거로 돌아왔어.

신이 내게 복수의 기회를 주고 있는 거야!

그리 생각한 유리아의 마음속에 용기가 가득 찼다.

유리아는 화살을 날려 백성들을 잡아먹고 있는 마물들을 하나하나씩 죽여가기 시작했다.

백성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마물이 보기 싫어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이 깨끗하게 처리되고, 주민 몇이 다가와 유리아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놀란다.

“와, 왕녀님! 왕녀님이시다! 왕녀님께서 우릴 구원해주시기 위해 나타나셨다!”

와아아아!

찬양이 담긴 함성을 내뱉은 백성들이 유리아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마치 신에게 경배를 하는 듯 한 모습.

유리아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힘을 보여주니 하찮은 백성들이 절로 머리를 숙인다.

부모가 죽은 아들도, 남편이 죽은 과부도 지금만큼은 오로지 유리아 자신만을 바라보며 구원받은 표정을 짓고 있다.

기분이 좋다. 자신을 숭배하는 인간들은 ‘악’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유리아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면서도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가장 중요한 사람이 이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송지혁.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그분에게 이 강함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너무나도 슬펐다.

‘지혁 씨가 이 모습을 봤다면 기특해했을 텐데...’

시무룩해있던 유리아는 문득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지금은 마물들이 왕국을 막 침략했을 시점.

그렇다면 어머니인 마가렛은 아직 돌아가시지 않은 상태일 것이다.

유리아는 가빠져오는 호흡을 애써 가다듬고는 왕궁이 있는 방향을 향해 날아올랐다.

왕궁으로 가면서 여러 마을들이 습격을 당하는 장면을 보긴 봤다.

찢어지는 듯 한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주민들.

누가 봐도 동정심이 들 만한 장면이었고, 날아가면서 화살 몇 발을 쏘면 몇몇은 구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유리아는 왕궁이 불탈 때 제 살 길만 찾았던 쓰레기들을 구제해주기는 싫었다.

애초에 본성이 더러운 인간들이기도 하고, 지금은 어머니를 구해야 하는 게 급선무라 유리아는 그들을 깡그리 무시했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유리아는 시야에 왕궁이 보이자 표정이 밝아졌다.

아직 불타오르지 않았다. 어머니는 무사하다!

내가 지켜줄 수 있다!

계속 공중에서 발을 튕기던 유리아는 마탑을 지나쳤다.

거긴 서해에서 죽었던 아스타로트가 멀쩡한 상태로 접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스타로트는 꼭 죽여야 돼.’

왜냐? 마법사들이 살아있어야 포탈을 타고 지혁을 보러 지구로 갈 수 있으니까. 다른 이유는 없었다.

유리아는 허공에 우뚝 멈추고 화살을 걸었다.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해 화살에 힘을 집어넣은 그녀는, 아스타로트가 경계심을 보이려고 하자마자 시위를 놓았다.

철썩! 퍼억!

시위가 시원하게 튕기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터져나간 아스타로트의 머리.

유리아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예전엔 레오나와 함께 싸웠음에도 힘겹게 잡아냈었는데, 정신을 집중하니 단 한 방에 보내버렸다.

현 상태의 자신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다.

이 정도라면 타이라트의 직속호위이자 S급 마물인 4기사도 상대가 가능할 것이다.

쾅!

아스타로트를 식은 죽 먹듯 없앤 유리아는, 고급 자재로 만들어진 조각상들이 즐비한 왕궁의 정원 한가운데에 착지했다.

그녀는 궁이 생각 외로 고요하자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소란이 일어나고 있는데 조용하다니? 지금쯤 근위기사와 병사들이 집결해있어야 한다.

귀족들의 영지군도 여기저기서 보여야 했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공중에서 정찰을 해보려던 그녀는, 궁 내부에서 은은한 피 냄새가 나자 흠칫했다.

‘서... 설마...’

불안한 마음이 싹튼 유리아는 곧바로 궁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침을 꼴깍 삼켰다.

잔인하게 살해당한 병사들과 기사들의 시체가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늦은 건 아니겠지? 어머니가 발록에게 돌아가신 건 아니겠지?

내부에 즐비한 시체들을 지나치면서 침소로 향하던 유리아는...

쿵!

“악!”

“으억!”

코너를 돌아 나오던 기사 한 명과 부딪쳤다.

갑작스레 화가 치밀어 오른 그녀가 기사의 투구를 후려치려고 할 때,

“유리아...?”

투구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 멈칫했다.

저 특유의 고집스런 목소리는 분명히...

“아론...?”

자신과 백년해로를 약속한 왕궁의 젊은 기사단장 아론이었다.

기사가 투구를 벗자 유리아가 숨을 훅 들이켰다.

예상대로 아론이 맞아서였다.

오랜만에 보는 자신의 피앙세.

그는 자신을 향해 놀란 낯을 하고 있었다.

“유리아... 그 모습은 대체...”

비스트 슬레이어로 변신한 자신을 한 번에 알아본 건 칭찬해줄 만하다.

예전이었다면 저 널따란 가슴에 안겨 보고 싶었다고 엉엉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송지혁이라는 절대자를 알아버린 그녀에게 있어, 아론은 그저 C급 마물 하나에도 힘겨워하는 하찮은 인간일 뿐이었다.

아니, 하찮지는 않고 그냥저냥 강한 인간.

그래도 옛 연인을 만나서 반가웠기에, 유리아가 상기된 말투로 물었다.

“괜찮아요? 갑옷에 피가 묻어있는데... 마물과 싸우고 계셨던 건가요?”

유리아의 모습을 보고 혼란스러워하던 아론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맞아. 국왕님과 왕비님을 대피시키려 알현실로 갔는데... 마물밖에는 없었지. 그래서 몇 놈을 죽인 뒤 침소로 가던 중이었어.”

“같이 가요. 저도 어머니를 찾고 있었어요.”

“알았어. 그리고... 아몬이 정신력이 약한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었어. 서로 칼부리를 겨누는데 너도 조심해.”

“전...”

유리아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순간, 복도의 저편에서 이지를 잃은 것 같은 젊은 기사 한 명이 칼을 뽑은 채 달려왔다.

“젠장...”

침음을 삼킨 아론이 허리춤에 찬 검을 뽑으려고 했다.

하지만 유리아가 먼저 선수를 쳤다.

쐐액! 퍼석!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화살을 쏘아서 기사의 머리통을 박살내버린 그녀.

머리를 잃은 기사의 몸이 뒤로 쓰러지고, 아론이 허망한 표정을 짓다가 유리아에게 버럭 화를 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어머니를 찾는데 방해가 되는 사람은 설령 우리 편이라고 해도 용서하지 않을 거에요.”

냉랭한 유리아의 말투.

아론이 벙 쪘다.

“고작 저런 기사 한 명에게 시간을 낭비하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요? 차라리 빠르게 죽이는 편이 나아요.”

“유, 유리아... 네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제 말이 맞죠?”

아론이 침묵했다.

유리아의 의견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다.

화사한 미소를 지은 유리아가 말했다.

“당신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어요. 얼른 가요.”

“그, 그래...”

유리아는 침소로 향하며 생각했다.

마물과 인간은 악이다.

악에게 조종당하는 악이라니... 당연히 구충해야하지 않겠는가?

인간을 죽인 건 처음이었다.

어머니가 잘못될까봐 본능대로 행동했고, 그 결과가 첫 살인.

기사가 허수아비마냥 쓰러지듯 죽었을 때 기분이 더러울 줄 알았지만...

‘나쁘지... 않아...’

아니,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많이 좋았다.

지혁이 말했던 대로 여름에 왱왱거리는 모기를 죽인 것처럼 시원했다.

그래도 찝찝하긴 했다.

허나 쾌감이 생각 외로 높았고, 어머니에 대한 걱정 때문에 유리아는 금세 그 찝찝함을 털어내 버렸다.

‘엄마... 꼭...’

꼭 멀쩡히, 무사히 있어주세요. 제가 모실게요.

의지를 다잡은 유리아가 속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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