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02화 (102/471)

EP.102 진해져라, 진해져

송지혁으로 돌아와 의정부의 주택으로 포탈을 탄 나는 냉랭한 얼굴로 목을 살폈다.

괜찮군. 세게 잡히긴 했지만 의료기기에 들어갈 필요도 없겠다.

아비의 목을 조를 정도로 떨어졌다면 이제 슬슬 마지막 공정을 시작할 때가 됐는데...

세화처럼 인간들이 어디까지 사악하게 변할 수 있는지 보여줄까?

‘아니다. 이건 안 돼.’

유리아는 이미 인간들을 악으로 단정 지었다.

악한 놈들이 무슨 개짓거리를 하든 그럴 만하다고 판단할 터.

세화와 같은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아까 유리아는 김태곤의 목을 조르면서 흥분을 했다.

내 패도와 동화된 유리아를 타락시키려면... 폭력성을 분출시키는 게 답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인간들을 도륙하도록 시키면 본능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냥 피에 미친 살인귀가 될 수도 있고.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유리아는 제 이성을 유지한 채로 내게 충성을 바쳐야 해.

한 단계만 더 음문을 진하게 만들어놓은 다음 공정을 시작하자.

여유로운 표정으로 소파에서 얼마간 있으니,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아가 들어왔다.

“아... 지혁 씨...”

띵띵 부어있는 눈을 보니 오면서 많이 울었나보다.

하긴, 아비한테 폭력을 써서 슬프겠지. 그 마음 이해한다.

나도 많이 아프더라.

“너 울었어? 무슨 일이야?”

“지혁 씨이... 저... 흐으윽!”

다시금 눈물을 흘리려는 그녀에게, 나는 양팔을 벌렸다.

그러자 유리아가 달려와 내 품에 안겨왔다.

진정하라는 뜻에서 그녀의 목 뒤를 쓰다듬어주던 내가 말했다.

“김태곤과 싸웠구나.”

“네... 맞아요... 흐아아앙!”

유리아가 대성통곡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내 티셔츠를 순식간에 적셔나갔다.

미안한데 같이 눈물을 흘리지는 못하겠다.

난 지금 기분이 굉장히 좋거든.

나는 말없이 유리아를 안아들고 침실로 가서 눕혔다.

그리고는 이불을 끌어올려 한참동안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해가 질 때까지 구슬피 운 유리아는, 진정이 되자마자 김태곤과 있었던 일을 모조리, 가감 없이 설명했다.

“너무 힘들어요... 히잉... 지혁 씨... 제가 잘못한 거에요...?”

묵묵히 그녀의 사정을 들어주던 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넌 잘못하지 않았어.”

“흐윽...! 아빠가 너무 미워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절 속였어요...”

“그딴 놈과 지금까지 함께 살아왔다니 끔찍하네.”

훌쩍이며 눈가를 훔친 유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너무 싫어... 끔찍해요... 그리고 요즘 너무 이상해요. 점점 바보 같아지더니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할 정도까지 왔어요.”

왜 그렇겠냐? 나 때문이지.

“아니지. 원래 본성이 이제 나타나기 시작한 거지.”

“그런... 건가요?”

“맞아. 본성은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거든. 지금까진 왕국의 뛰어난 귀족들을 벤치마킹해서 따라했겠지만... 지금은 달라. 눈치 볼 사람이 없으니까 제 세상이다 생각해서 본성이 나타난 거야. 그런 놈이랑 붙어있는 건 위험해. 오늘부터 집에 들어가지 말고 여기 있어. 나도 너와 함께할 테니까.”

“정말요? 그래주실 거에요...?”

“물론이지.”

“세화는...”

“너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을게. 세화는 잠시 잊자.”

유리아가 무척 기뻐했다.

세화보다 중요시 여겨지는 것에 감격한 것이 틀림없다.

헤벌쭉해진 상태로 내게 아양을 떨던 유리아가 돌연 정색을 했다.

“아빠가 지혁 씨를 고소한대요... 어떡하죠?”

“고소 정도는 내 임의대로 취하가 가능해. 김태곤이 난리를 칠 경우 그냥 잡아놓으면 그만이고.”

“네... 그러면 다행이에요. 그리고 죄송해요...”

“뭐가?”

“아빠가 지혁 씨를 기분 나쁘게 했잖아요... 거슬리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도 받아냈는데...”

연구실의 기술을 사적으로 쓰겠다는데도, 여차하면 아비에게 폭력을 행사하겠다는데도 유리아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오히려 내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할 뿐.

“괜찮아. 오히려 내가 네게 사과해야할 것 같은데?”

“왜요?”

“내가 김태곤을 때렸잖아.”

“아, 거기에 대해서도 감사인사를 하고 싶어요. 아빠를 봐주셔서 고마워요...”

아직 완전히 정을 떼어낸 건 아니군.

못난 아비지만 그래도 혈육이라 이건가?

“김태곤이 소중해?”

“네... 솔직히 그래요. 아버지잖아요...”

“그런 아버지의 목을 조르고 기절시킬 뻔했단 말이야?”

그 말에 유리아가 흠칫했다.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민 그녀가 핑계를 댄다.

“지혁 씨... 그건 제가 홧김에... 갑자기 이성을 잃어서...”

“과연 그럴까?”

“네...?”

히죽 웃은 나는 유리아의 바지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유리아가 앗! 하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내 손이 팬티 안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하니 이내 눈이 풀렸다.

“후으으...”

잠깐 그녀의 가랑이를 애무하던 나는, 손을 빼고 유리아의 눈앞에 가져다댔다.

“이거 봐.”

내 손에 묻은 찐덕하고 투명한 점액을 바라보던 유리아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건... 지혁 씨가 만져줘서...”

“그 전부터 그랬을 걸? 김태곤의 목을 조르면서 흥분한 거야.”

“마, 말도 안 돼요...”

“왜 말이 안 돼? 네가 아까 그랬잖아. 김태곤이 겁을 집어먹었을 때 짜릿했다고.”

“.....”

입을 앙 다문 그녀.

내 말이 틀렸다고는 생각지 못하겠지.

부정하지 마. 그냥 순응해. 그러면 더 기분이 좋아질 걸?

공감을 좀 유도해주면 나아지려나 싶다.

“나 같아도 때리면서 쾌감을 느꼈을 거야.”

“저, 정말요...?”

“물론이지. 약자 중에서도 쥐새끼 같은 놈들이 있어. 김태곤이 바로 그런 부류고. 그런 놈을 잡아 족치는 건 언제나 짜릿하거든.”

“아빠는...”

“우매한 판단으로 왕국을 멸망시키도록 해놓고 타이라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잖아. 그게 쥐새끼가 아니면 뭐야? 나였다면 아예 입도 뻥긋하지 못하도록 아가리를 꿰매버렸을 거야. 사람들을 선동하지 못하도록 말이야.”

유리아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잔뜩 치켜 올라간 눈매.

유리아가 내 의견에 공감하면서, 그녀의 푸른 홍채 가운데서부터 보랏빛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와 눈 색을 바꿔나갔다가, 이내 다시 사라졌다.

이 정도까지 떨어졌는데... 아직 남아있는 도덕성이 문제였다.

김태곤의 목을 조르다가 아차 한 이유도 마지막 남은 도덕성이 발현됐기에 일어난 일.

무척이나 유리한 상황에서 유리아 공략을 시작했는데도, 그녀는 제법 저력이 있었다.

이래야 비스트 슬레이어 답긴 하지.

그만큼 떨어뜨렸을 때의 쾌감이 클 테고.

어쨌든 여기서 갑작스럽게 선을 넘는 일을 시킨다면, 그 도덕심이 튀어나와 유리아를 제지할 것이다.

그걸 우려해서 음문을 한 단계 더 진하게 만들려는 거고.

마지막 공정을 위한 준비는 이미 마르셀라가 끝내놓았으니... 집중하자.

“간만에 나갈까? 머리 좀 식힐래?”

“전... 좋아요.”

“그래. 옷 갈아입어.”

“자, 잠깐만요... 샤워부터 한 다음에... 더 있다가 나가면 안 돼요?”

“왜?”

“얼굴이 부어서... 창피해요...”

자신의 손으로 양 눈을 슬쩍 가리는 유리아였다.

귀엽다. 당장 따먹고 싶어지잖아.

낮게 웃어재낀 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해.”

**

우린 플라잉 택시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늦은 밤임에도 거리가 활발했고, 여러 술집들이 성황을 누리고 있었다.

나는 유리아를 데리고 당구장에 들어가 포켓볼을 알려주거나, 인형뽑기를 하거나 하며 보통의 커플들과 다를 바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오늘만큼은 유리아의 어리광을 모두 받아주기로 했다.

특별히 해주는 거다. 패륜을 저질러 내 기분을 상당히 좋게 했으니까.

“지혁 씨! 저건 뭐에요?”

한 노점상을 가리킨 유리아의 물음.

거기 있는 음식을 본 내가 픽 웃었다.

“번데기. 이걸 여기서 보네.”

“버... 번데기? 제가 생각하는 그 번데기요?”

“맞아.”

“으...”

내 팔에 딱 달라붙어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리는 그녀.

가슴에 얼굴을 묻기까지 한다.

오늘따라 애교가 폭발하네.

“먹어볼래?”

“.....”

유리아가 깊은 고민에 빠지면서 날 슬쩍 바라보았다.

자신이 저걸 먹는 모습을 내가 보고 싶어 하는지 아닌지 살피려는 행동이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 오늘은 하고 싶은 건 전부 하라고 했잖아.”

“으움... 안 먹을래요. 사실 엄청 먹기 싫어요.”

“그래.”

내 간결한 대답에 밝아진 유리아는, 저 멀리서 소란이 일고 있자 내 손을 잡아끌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소란이 더욱 심해졌다.

인파 뒤에서 까치발을 들어보니, 혈기왕성한 젊은 놈들이 술에 거하게 취해선 싸우고 있었다.

유리아 또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주먹을 치고받는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잠시 싸움을 지켜보던 그녀가 묻는다.

“왜 저러는 거에요?”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었거나, 여자에게 들이댔는데 남자친구가 있던 사람이었다거나... 이 외에도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 더 볼래?”

“네. 더 보고 싶어요.”

나는 원형 콜로세움이 만들어진 인파를 뚫고 맨 첫줄로 왔다.

체크남방을 입은 남자가 티셔츠를 입은 남자를 파운딩한 채 마구 때리고 있었는데, 이미 승기를 잡은 상태라 시시할 것 같았다.

예상대로 싸움은 체크남방의 승리로 금방 끝났다.

그가 기절한 남자의 머리를 발로 차고는 침을 뱉을 때,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서 경찰차가 다가왔다.

“괜히 휘말리면 귀찮아지니까 가자.”

“네.”

흥미로운 눈으로 싸움을 지켜보던 유리아는 내 손을 잡았고, 우린 해산하는 인파에 섞여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내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거리를 걷던 유리아가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지혁 씨, 저 사람들이 치안을 어지럽히는 이유는... 지도자가 무능해서죠?”

“그렇게 생각해?”

“네. 힘으로 다스리면 사고를 칠 생각도 못할 테니까요.”

“정답이야. 이젠 알아서 답도 내리고... 기특하네?”

유리아의 양 볼이 빨갛게 변하고, 내 손을 잡은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뒤바뀐 가치관이 증명되는 모습에 나 또한 기분이 좋았다.

“조금 걷자.”

“네.”

거리를 계속 거닐던 우린 다양한 사람들을 보았다.

야바위꾼은 물론 조선시대에서나 볼 법한 약팔이, 말다툼을 하면서 으르렁대다가 찢어지는 놈들, 싸우는 커플, 노상방뇨를 하는 중년인...

이 외에도 여러 인간군상이 있었지만, 눈에 띄는 대부분은 유리아가 부정적으로 볼 법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던 유리아가 의견을 피력한다.

“사람들이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어요. 경찰들은 인력에 한계가 있는지 저런 것들을 잡아가려고 하지도 않고요. 제가 살던 왕국보다 더 심해요.”

“그랬구나.”

“그리고 생각하면 할수록 아빠가 한심해져요. 전제군주는 모든 통치권을 지녔잖아요? 그럼에도 사고가 일어나고, 오랜 시간 자리를 잡고 있었던 왕국이 멸망했다는 건...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에요.”

“맞아. 태도만 봐도 얼마나 무능한지 답이 나와.”

“아빠만 아니었다면 엄마도 돌아가시지 않았을 텐데...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해요... 만약... 지혁 씨가 왕국을 통치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거에요.”

속내를 내비치는 유리아.

이건 그녀의 굳건한 마음이었다.

그녀가 스스로, 멀쩡한 상태에서 고민하고 답을 내린 마음.

여태 나나 유리아가 계속 해왔던 말이었지만 오늘은 완전한 진실성이 보였다.

나는 방긋 웃었다.

“확신해?”

“네. 확신해요.”

나도 확신이 선다.

조만간 마지막 계획을 실행하고 그게 끝나는 순간, 유리아가 완전하게 넘어올 거라는 확신이.

휘익-!

골목길의 상권을 지나쳐가고 있던 우린, 관광객으로 보이는 외국인이 유리아를 향해 캣콜링을 하자 멈칫했다.

마침 잘 만났네. 유리아의 음문도 진하게 만들면서, 그녀가 얼마나 폭력적으로 변했는지 볼 수 있는 기회다.

주변을 둘러보니 골목이라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뭐, 많다 해도 수습할 수 있지만.

입꼬리를 슬쩍 올린 내가 유리아에게 물었다.

“기분 나빠?”

“네.”

“왜?”

“하찮은 것들이 주제도 모르고 기어올라서요.”

아주 만족스런 대답이었다.

나는 고개를 한 차례 끄덕여주었다.

뒷일은 걱정하지 말고 마음 가는대로 해보라는 의미.

내 제스처를 철석같이 알아들은 유리아가 숙제 발표를 앞두고 긴장한 어린아이마냥 몸을 바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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