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93화 (93/471)

EP.93 세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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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입니다. 중국 화베이에서 나타난 일만 가량의 괴물들이 모두 격퇴되었고, 세계연합에서 소멸시켰습니다. 이토록 많은 숫자가 한 국가에 나타난 사건은 처음이며, ‘대 괴물 전담’ 전문가들은……]

[새로운 비스트 슬레이어의 등장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합니다. 세계연합에선 입장발표를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연두색 땋은 머리를 휘날리며 활을 쏘는 영웅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사진 한 장만으로 벌써부터 팬 카페가 만들어질 조짐이 보이고 있으며……]

연구실에서 뉴스를 보던 유리아는, 사람들이 마물이 나타난 일보다 자신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갖자 눈살을 찌푸렸다.

1만 마리의 마물들이 대거로 쏟아져 나왔는데 태평하게 팬 카페? 어이가 없었다.

유리아는 연구실을 둘러보았다.

박사는 세계연합과의 회의 때문에 유럽으로 날아갔고, 세화는 다른 방에서 지혁에게 꾸지람을 듣고 있었다.

마물과 싸울 때 더럽다느니 뭐니 했던 말 때문이었다.

유리아는 마음속으로 두 사람이 대판 싸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된다면 지혁의 마음이 세화보단 자신 쪽으로 쏠리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TV를 끄자 연구실이 무척 고요해졌다.

그녀는 이 정도로 조용하다면 혹시나... 혹시나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살금살금 방으로 걸어가 문에 귀를 대보았다.

-.... 어.

‘드, 들리네?’

은밀하게 침을 꼴깍 삼킨 유리아가 문에 착 달라붙었다.

관음하는 자신이 창피하긴 하지만...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기에 그냥 감수하기로 했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정신을 집중하니 대화소리가 제법 선명하게 들렸다.

-점점 회의감이 들어.

세화의 목소리. 회의감이라니 어떤 걸 말하는 걸까?

혹시 지혁과의 관계가 나빠졌나? 그렇다고 하기엔 세화의 말투는 서럽다거나, 화가 나지 않은 상태였다.

잠자코 있으니 지혁의 대답이 들려온다.

-내가 인터넷 보지 말랬잖아.

-이런 시대에서 인터넷을 안 볼 수가 있어? 말도 안 되잖아. 마물들에게 집을 잃은 인간들이 우릴 욕해. 더 이상 인간들을 지키는 게 맞는 일인지 모르겠어.

‘뭐...?’

유리아가 숨을 삼켰다.

세화가 저런 말을 할 줄은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

저번에 지혁이 그랬다.

세화가 인터넷에서의 비난과 희롱 때문에 힘들어하니, 너도 웬만하면 뉴스를 보지 말라고.

아무래도 이런 이유 때문인 모양이었다.

어떤 부분에선 이해할 만도 했다.

세화는 ‘하찮은’ 일반인인 상태에서 비스트 슬레이어가 되었다.

변신을 유지중일 땐 뭐든 해쳐나갈 수 있을 것 같지만, 변신이 풀리면 다시 그런 인간으로 돌아와 급격하게 무기력해진다.

압도적인 힘과 정신력이 일시에 사라지는 기분은 그야말로 허무 그 자체.

이는 유리아 또한 변신을 해제한 직후 느꼈던 바였다.

‘하지만...’

하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영웅의 숙명을 가지고 있는데도 저런 마음을 갖는 건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타이라트를 없애고 평화를 지켜야 하는데... 벌써부터 흔들리면 안 된다.

유리아는 나중에, 세화만 괜찮다면 따로 만나 그녀를 위로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소중한 동료이자 동생이었으니까.

-나도 공감해. 어디 가서 이런 얘기는 하면 안 돼. 알지?

두근!

유리아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지혁마저도 세화의 말에 공감하다니.

그러면 인간들은 정말 지킬 가치가 없는 것일까?

아니다. 생명은 그 가치만으로도 소중한 존재.

지혁은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여러 매스컴을 접하면서 정신이 피폐해져가고 있는 거다.

마음을 다잡아줘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감히’ 까마득히 높은 지혁에게 그럴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던 유리아는 순간 인간들이 미워졌다.

왜 사랑하는 지혁을 저리 아프게 하는지.

박사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세계연합에 말하면 전 세계의 언론을 비롯한 모든 매체를 통제할 수 있을 텐데.

지혁의 저런 모습을 보자니 자신도 세화처럼 회의감이 든다.

인간들을 지켜줄 필요가 있을까?

‘아냐... 이러면 안 돼. 인간들은 지켜줘야 해. 평화도 마찬가지야. 아이테르가 내게 귀속된 이유도 이런 마음이 커서였어. 내 마음이 굳건했기 때문이었다고.’

간신히 마음을 다잡은 유리아는 두 사람의 대화를 계속 엿들었다.

-알아... 그냥 힘들다고 푸념하는 거야...

-안아줄까?

-응... 안아줘.

-이리와.

다정한 지혁의 말투.

질투심이 솟구친 유리아가 손톱을 깨작깨작 씹으면서 방 안의 소리에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포옹이 끝난 모양.

세화가 말한다.

-나 먼저 가볼게... 빨리 돌아가서 자고 싶어.

-알았어.

유리아가 후다닥 자리로 복귀함과 동시에 덜컥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방문이 열리며 힘겨운 표정의 세화가 나왔다.

그녀가 유리아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언니, 저 먼저 가볼게요.”

“무슨 일 있어?”

태연한 유리아의 표정.

세화가 복잡한 듯 유리아를 바라보더니 답한다.

“기분이 조금 그래서요. 나중에 같이 밥 먹어요.”

“물론이야. 한 번 안아보자.”

“갑자기요...?”

당황해하는 세화에게, 유리아가 방긋 웃으면서 손을 뻗고 그녀를 안았다.

“다 잘 될 거야.”

“....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그냥... 다 잘 될 거라고 믿어.”

세화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준 유리아.

세화는 곧 울먹이면서 유리아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동안 포옹을 했고, 세화는 물기가 가득한 눈을 훔치면서 포탈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연구실엔 두 사람만이 남게 된 상황.

여태 잠자코 있던 지혁이 유리아를 비웃었다.

“다 잘 될 거라고? 뜬금없이?”

“.....”

“너 우리 대화 엿들었지?”

“아, 아니에요...”

유리아는 아까 세화에게 보여주었던 의연한 태도와는 전혀 다른,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만큼 지혁에게 압도되었다는 뜻.

지혁이 말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세화의 마음을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를 해? 똑바로 대답해. 거짓말할 생각은 말고.”

“그...”

우물쭈물해하던 유리아가 결국 실토했다.

“네... 엿들었어요...”

“어디부터 어디까지?”

“세화가... 회의감이 든다고... 인간은 지키는 게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고... 거기서부터 다 들었어요...”

“그래? 넌 어떻게 생각해?”

지혁은 딱히 엿들었던 일을 책망하지 않는 눈치였다.

유리아가 냅다 답했다.

“전... 지혁 씨가 세화에게 동의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왜지?”

“생명은 그 가치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해요. 고귀하다고요. 지키는 게 맞아요.”

피식한 지혁이 유리아에게 성큼 다가왔다.

침을 꼴깍 삼킨 그녀는 지혁에게 턱을 잡히고 눈을 끔벅끔벅 움직였다.

잠시 유리아를 바라보던 지혁이 말문을 연다.

“궤변이네.”

“.... 네?”

“생명은 그 가치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그럼 마물들은? 그놈들도 생명 아니던가?”

“그, 그건... 제가 말을 잘못했어요. 인간들... 인간들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뜻이었어요...”

“그래? 그럼 인간들 외의 다른 생명체는 죽어도 상관없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들은...”

“입 다물어.”

“.....”

입을 앙다문 유리아.

그녀는 무척 억울했지만, 지혁의 심기를 거스르게 하기는 싫어 가만히 있었다.

지혁은 유리아를 데리고 연구실을 나섰다.

조수석에 그녀를 태운 지혁이 차를 출발시키면서 말했다.

“세상은 힘이 곧 법이야. 생명체들도 마찬가지지. 약육강식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줄 알아? 강자만이 살아남는 거야.”

유리아는 저 말에 공감했다.

지혁과 만나기 전에도 주정뱅이 한 명을 때려눕히려고 했으니까.

약자는 강자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해야 한다.

“네... 알아요...”

“알아? 그럼 마물이 인간들의 터전을 파괴하고, 지배하려는 건 잘못된 게 아니네. 마물은 인간보다 훨씬 강하니까.”

“.....”

“그리고 우린 그런 마물보다 강한 사람들이지. 그런 우리인데도 약자를 아무런 대가 없이 도와주고 있어. 자비를 베풀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인간들은 경배하며 모셔야할 우리를 조종하기 위해 열을 쏟고 있지. 이건 어떻게 생각해?”

유리아는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본능적인 거부감이 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하지만 지혁의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마음이 그 거부감을 다시 내리눌렀다.

“하, 하지만 평화를 지켜야...”

“평화가 오려면 강자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해. 힘으로 눌러서 찍 소리도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지금 이 지구를 봐. 세계연합이라는 단체를 만들긴 했지만, 뒤에선 강대국들끼리 냉전을 하고 있잖아. 이건 수백 년 전은 물론 수천 년 전부터 계속 진행되어왔어.”

맞는 말이었다.

유리아 자신의 왕국은 ‘왕’이라는 강자가 있었다.

왕명 하나면 모든 백성들이 따랐다.

귀족들 또한 왕의 측근들로서 제 역할을 다했고, ‘아랫것’들을 굽어 살폈다.

물론 문제가 있긴 했지만 지구처럼 시시때때로 사건이 터지지는 않았고, 오랜 시간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

마물들을 이끄는 절대강자인 타이라트로 인해 무너지긴 했지만 말이다.

헌데... 지금 생각해보니 타이라트가 왠지 이해됐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

타이라트는 약자들의 집합체인 왕국을 다스리기 위해...

‘아, 안 돼...! 정신 차려!’

유리아는 자신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자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어 자아를 붙잡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지혁의 말로 인해 간신히 고정시켜둔 정신이 다시금 혼란스러워졌다.

“지구엔 새로운 왕이 필요해. 압도적인 힘으로 남들을 무릎 꿇릴 수 있는... 진정한 평화를 추구할 수 있는 왕이.”

“지혁 씨... 이러지 마세요...”

“너도 공감하고 있잖아.”

“.....”

공감하지만 인정하기는 싫다.

하지만 지혁의 말은 절대적.

자신의 의견 따윈 지혁의 복음 앞에선 한낱 종이쪼가리만도 못했다.

유리아가 거친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고, 공감해요...”

반박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만큼 유리아는 지혁을 높은 존재로 인식시키고 있었다.

“존경은 두려움에서부터 나오는 거야.”

“읏...!”

유리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아가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안 된다. 저 말을 인정해선 안 돼.

입 밖으로 인정한다고 말을 꺼내는 순간, 타이라트가 왕국을 침략한 명분도 인정해버리는 꼴이 돼.

그리 생각하던 유리아의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호흡이 가빠져왔다.

“후우... 후으으...!”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던 유리아는 일순 승현을 떠올렸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냥 떠올랐다.

어쩌면 아론의 환생이라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안정되어갔다.

하지만 그뿐. 유리아의 마음속에 있는 지혁의 무게감은 승현 ‘따위’ 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힘들다. 지친다.

이 불편한 주제에서 벗어나고 싶다.

다른 말을 하고 싶지만 지혁이 허가하지 않을 것 같다.

유리아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김태곤 씨에게 한 번 물어봐.”

지혁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일국의 왕이셨던 아버지는 답을 알고 계실 것이다.

요새 조금 한심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이런 쪽으론 정확한 답을 내놓으실 거다.

유리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자 꽉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며 전신에 시원한 느낌이 파고들었다.

“오늘은 집에 돌아가. 힘들어 보인다.”

“아...! 네...!”

“숙제를 하나 내줄게.”

“수, 숙제요...?”

“네가 믿는 사람들에게 이 주제에 대해서 물어보고, 의견을 들어봐. 기한은 사흘. 그 안에 정리해서 나한테 보고해. 난 당장 대답을 듣고 싶지만, 네가 힘들어하니까 시간을 주는 거야.”

유리아의 얼굴이 몽롱해졌다.

자신이라는 ‘백성’이 힘들어하자 보살펴주려는 ‘왕’의 자비로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유리아는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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