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2 세뇌
유리아가 의정부의 주택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인사였다.
주인의 허락을 받고 외출을 다녀온 하녀처럼, 두 손을 모은 공손한 자태로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지혁 씨, 다녀왔습니다.”
나는 유리아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에서 익숙한 기운. 악의가 느껴졌다.
고개를 갸웃하며 유리아의 핫팬츠를 잡고 확 내렸다.
“히약?”
깜짝 놀라 부끄러워하는 그녀.
아랫배를 살핀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음문이 생성되기 직전이로군. 보이진 않지만 느껴진다.
혹시라도 내가 없을 때 생성된다면 곤란하니 눈치채지 못하도록 감춰놓자.
유리아의 하복부에 손바닥을 가져다댄 나는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흐읍...!”
눈을 부릅떴지만 이내 감고 콧소리를 내뱉는 유리아.
난 그녀의 입 안을 탐하면서 하복부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그녀가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아주 천천히.
오랜 시간동안 일을 진행한 나는 유리아의 입술에서 얼굴을 떼어냈다.
“후에에...”
풀린 눈으로 혀를 내미는 그녀의 얼굴은 아직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혀에 엄지를 대고 살살 문질러주던 내가 명령했다.
“샤워하고 와.”
“네에...”
순종적으로 대답한 유리아가 옷을 벗어던지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토실토실한 엉덩이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는 모습을 보자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틀간의 조교 끝에 마인드가 상당히 오픈되어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소파에 앉아 세화와 사랑이 가득 담긴 문자를 나누던 나는, 유리아가 샤워를 마치고 돌아오자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속옷만 입은 채 젖은 머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온 유리아는, 내 발등에 키스를 했다.
이어서 무릎, 허벅지, 가슴, 목에다가 입술을 부딪쳤다.
그 모습이 마치 내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 같았기에 금세 자지가 부풀어 올랐다.
유리아는 내 고간을 탐스럽게 바라보았다.
허락이 떨어지면 곧바로 삼키고 싶은 듯했다.
“어디 갔다 왔어?”
“아, 저... 한대거리에 잠깐...”
“한대거리는 왜?”
“시노페 앞에 있는 카페에 다녀왔어요. 거기 당근 케이크가 맛있어서...”
“고작 당근 케이크를 먹으려고 한대거리에 다녀왔다고?”
“네. 안 되나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태연하게 반문하는 유리아였다.
속으로 피식 웃은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상관없어.”
“저... 목줄 차고 올까요?”
“아니. 잠옷 입고 이리와.”
“아, 네!”
유리아가 밝은 얼굴로 침실에 들어갔다.
안이 다 비치는 긴 흰색 슬립을 입고 나온 그녀가 내 옆에 조심스레 누웠다.
은은한 복숭아 향 샴푸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던 내가 입술을 톡톡 두드리니, 유리아가 냅다 얼굴을 들이대며 쪽 소리가 나도록 뽀뽀를 했다.
씨익 웃은 나는 유리아의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유승현에게 PTSD라도 일으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놈은 꽤 괜찮았다.
실연을 겪어 성장해서인지, 아니면 유리아 같은 여자와 같이 있어 머리 회전이 빨라진 건지는 몰라도 점수를 크게 땄다.
일단 성장한 건 확실하다. 남자답게도 변했고.
하지만 매번 한 발 늦으니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건 나 때문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놈의 정신을 좀 뭉개놓자.
오늘부터 유리아의 마음을 세뇌할 예정인데, 유승현이 뭔 이상한 말을 지껄여서 유리아의 타락이 늦춰진다면 곤란하다.
만약 그러한 일이 생긴다면 그냥 없애버려야지.
갖고 놀기 위해 살려놓은 장난감이 각성하면 곤란하니까.
“내일 네일샵에 다녀와. 연한 빨간색으로 손톱 칠해.”
“내일이요...?”
왜? 유승현 만나야 돼서 곤란하냐?
걱정하지 마. 점심에 하면 되잖아.
“오후에 칠하고 나한테 확인해.”
“알겠어요.”
연한 빨강은 세화가 초창기에 날 위해 물들인 손톱 색이었다.
당시 유승현이 그녀와 만났을 때 신경을 썼었으니, 이번에도 그러겠지.
나는 의문도 표하지 않고 냅다 승낙한 유리아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녀는 우람한 내 팔을 보며 눈을 빛냈고, 혀로 팔을 살짝 핥으면서 내 눈치를 보았다.
반응을 보려는 것이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내 손을 아예 입으로 가져가더니 손가락을 정성스레 빨기 시작했다.
“후움... 쮸읍...”
아이가 젖꼭지를 빨듯 손가락을 쪽쪽 빨아대는 그녀.
입이 오므려지는 모습이 꽤나 볼만하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유리아가 서운한 표정으로 입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하지만 내가 웃통을 벗고 가슴을 슬쩍 가리키니 헤헤 웃으며 혀를 내밀었다.
가슴을 간지럽히는 유리아의 뜨거운 콧바람과 함께, 내 젖꼭지 끄트머리가 유리아의 혀에 의해 툭툭 튕기는 느낌이 났다.
거기에서부터 시작된 쾌감이 전신으로 퍼지며 자지가 더욱 솟아오른다.
“그만.”
“후응...?”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 유리아가 시무룩해지더니 사과한다.
“죄송해요오...”
한창 열심히 애무를 하면서 자지라는 포상을 받고 싶어 했는데, 그러지 못하니 자기 자신에게 실망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실망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으면 좋았지.
내가 그녀를 멈춘 이유는, 곧 연락이 오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
삐빅-! 삐빅!
바로 박사에게.
“이... 이건...!”
유리아의 풀려가던 초점이 대번에 바로잡혔다.
그녀가 날 바라보며 묻는다.
“지혁 씨... 가도 돼요?”
타이라트의 마물들이 나올 상황임에도 나한테 허락을 구한다?
타락이 어지간히 진행됐구나. 유승현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어.
“포탈타고 먼저 가. 뒤따라갈 테니까.”
“네!”
유리아는 곧장 디바이스를 조작했다.
그러자 위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이 번쩍 하고 사라졌다.
얼마 후 어마어마한 수의 마물들이 나타날 텐데, 유리아의 궁술 실력을 확인해볼 때다.
**
늦은 밤, 중국의 화베이 평원.
쾅! 콰아앙! 쾅!
잘 터진다, 잘 터져.
전투기에서 미래무기를 수십 개 투하한 나는, 사랑스러운 D급 마물들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지는 광경을 목도하며 피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어차피 D급 마물은 아주 많다.
여기서 얼마 뒤져 없어진다고 해봐야 총 전력에선 티도 나지 않는 수준이다.
내가 화베이 평원을 선택한 이유는 한국과 아주 가까우면서도 시차도 별로 없고 넓었기 때문이다.
많은 물량을 쏟아내기 적합한 장소. 딱히 유감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마물들은 중국군의 탱크를 씹어 먹거나 부서뜨리고, 안에서 자폭을 하며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었다.
아니 씨발, D급은 미래무기 이상으로만 상대해야 한다니까? 나랑 박사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나?
피해를 자초한 건 니들이니까 불만 갖지 마라.
그래도 탱크로 몸빵은 할 수 있어서 좋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쏟아낸 마물은 대공화력이 전혀 없었다.
덕분에 수많은 전투기들이 하늘에서 온갖 미사일을 발사해 마물들을 착실히 쓰러뜨려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레오나는...
서걱!
착실히 C급 마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네 부하들을 죽이려니까 가슴이 아프지? 그 마음 다 안다.
-아이 씨... 더러워...
통신기에서 들려오는 레오나의 목소리.
가슴이 아픈 게 아니라 더러운 게 싫은 거였구나. 무안하네.
미적대는 레오나의 뒤로 C급 짐승형 마물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쐐애애액! 퍼어억!
하늘에서 엄청난 크기의 화살이 날아와 마물의 대가리를 뚫어버렸다.
이후로도 D급 마물 몇을 관통한 화살은 순식간에 가루로 화해 공중에 있는 유리아의 화살통으로 들어갔고, 다시 화살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입자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나와 박사의 역작, 나노튜브 화살이었다.
-와아... 이거 진짜 대단해요!
통신기에서 유리아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활과 화살의 성능이 워낙 좋으니 감탄을 하는 것이다.
활을 만드느라 고생한 박사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네 디바이스는 용량이 모자라. 그러니까 잡담은 그만하고 최대한의 화력을 뽑아줬으면 좋겠어.”
-네!
유리아는 능숙하게 등에 진 화살통에서 화살을 뽑아 시위에 걸었다.
그리고는 C등급 마물을 찾아 머리에 화살을 날렸다.
쐐애액!
시위를 떠난 화살은 순식간에 날아가며 크기를 불렸고, 마물의 대가리를 정확히 뚫었다.
유리아는 빠른 속도로 다른 화살들을 날렸다.
한 발 쏠 때마다 새로이 복구되는 화살.
화살통엔 서른 발이 있었지만 사실상 삼천 발 정도로 생각하면 됐다.
퍼어억! 퍼억!
유리아의 화려한 외모와 신기에 가까운 궁술에 중국군 태반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처음으로 유리아를 선보이는 순간이다.
아스타로트 땐 서해 한가운데에서 싸웠기에 사람들이 유리아의 존재를 몰랐는데, 이젠 알게 되겠지.
“뭐해요? 당장 모든 화력을 퍼부어요!”
성난 박사의 말투에 공군 조종사들이 빠르게 미사일을 다시 갈겨대기 시작했다.
내보낸 백 마리의 C등급 마물은 레오나와 유리아 덕에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죽어나가고 있었고, 나머지 D등급 마물들은 빠르게 소멸되어갔다.
인명피해는 내보낸 마물들의 수에 비해 별로 없었다.
다만 화베이 평원이 아예 초토화되었을 뿐.
혼자서 C등급 마물의 7할 가까이 처리한 유리아는 디바이스 에너지가 완전히 소모되기 직전에 포탈을 통해 전투기 안으로 들어왔다.
상기된 얼굴로 변신을 푼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앗!”
의정부 주택에서 입었던 슬립 잠옷과 검은색 시스루 속옷이 그대로였기 때문.
박사가 킥킥 웃으며 전투기 구석에 있는 기다란 가디건을 내어주었다.
“연구실에선 냉담하더니, 왜 이제 와서 그래?”
“그... 그게... 그땐 빨리 마물들을 처리해야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어서... 감사합니다...”
유리아가 황급히 가디건을 입고 쑥스러워했다.
마지막 C등급 마물이 레오나의 검에 의해 동강이 났을 때, 나는 그녀에게 통신을 보냈다.
“돌아와.”
-응.
레오나가 전투기의 포탈에서 모습을 드러내 변신을 풀자, 나는 박사에게 철수하자고 권했다.
“이만 돌아가죠, 박사님. 나머지는 저쪽과 세계연합 지원군이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전황은 이미 인간 측이 우세했다.
대공화력이 없는 마물들이라서 그렇다.
박사가 동의했다.
“그래, 돌아가자. 근데...”
박사는 세화와 유리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 요상한 눈싸움을 하고 있었기 때문.
세화는 유리아에게 방긋 웃어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싸늘한 분위기를 풍겼고, 유리아는 그런 세화의 표정에 당황해하면서도 그녀를 마치 연적 보듯 했다.
둘의 첨예한 대립구도를 본 박사가 헛웃음을 켜고 묻는다.
“너희들 뭐해? 누가 더 많이 잡는지 내기라도 했던 거야?”
그 말에 세화와 유리아가 동시에 대답했다.
“아닌데요?”
“아니에요.”
박사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전투기를 돌리라는 의미.
난 속으로 킥킥 쪼개면서 조종간을 조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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