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6 땄다, 땄어 #2
아파하던 비명소리는 이내 쾌락이 섞인 교성으로 바뀌었다.
“흐으읍...♡ 히읍...!”
입을 막았던 손은 푼지 오래.
하지만 유리아가 직접 자신의 손을 입으로 가져가 막았다.
이것만 보면 세화랑 비슷하네. 세화는 베개를 얼굴로 가져갔지 아마?
찌걱! 찌걱!
상냥하게, 천천히 피스톤질을 하니 유리아가 허벅지를 바르르 떨었다.
기역자로 굽어있던 다리가 서서히 펴지면서 내 어깨까지 올라왔다.
그래, 넌 절정에 다다르면 다리를 곧추세우고는 했지.
그 올라간 다리로 남자의 목을 꽉 조이는 걸 좋아하고. 근데 나한텐 그러면 안 돼. 알지?
난 유리아의 다리를 내 양 어깨에 걸쳤다.
찌봅! 찌봅!
“읍! 으으읍!”
손가락 사이로 신음이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다.
난 그녀의 브라를 확 잡아 내렸다.
어깨끈이 없는 건 이래서 좋단 말이지. 쉽게 내려간다.
가슴을 움켜쥐고, 빳빳해진 핑크빛 유두를 툭툭 건드리니 유리아가 경련한다.
“히끅!”
딸꾹질을 해대다니. 귀엽다.
“좋아?”
내 물음에 고개만 두어 번 끄덕이는 그녀.
눈은 질끈 감은 채였다.
오랜 시간 정상위를 하니 유리아의 눈에 흰자위가 많아지기 시작한다.
“히흐으... 흐에에에...”
기이한 소리를 내며 내 움직임을 따라 몸을 들썩인다.
힘에 겨운 것이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첫 섹스다.
매 초, 매 분이 긴장의 연속이었을 텐데, 흥분감이 잦아들고 긴장이 풀려오면서 실신하기 직전까지 온 것 같다.
아까부터 사정감이 찾아오고 있던 나는 이제 슬슬 쌀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안에 쌀까? 아니면 밖에?
처음이니까 부드럽게 해줄까?
세화는 첫 사정 때 밖에다 쌌는데... 얘도 그래야겠다.
가 아니지.
유리아는 지금까지 그랬듯 초장에 휘어잡아야 한다.
안심할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절대 기세를 내어줘선 안 된다.
찌걱찌걱찌걱찌걱!
나는 막판 스퍼트를 올려 자지에 몰린 간질간질한 느낌을 모으고 또 모았다.
그리고,
꿀럭-!
유리아의 안에 모아둔 정액을 쏟아 부었다.
“후으에에...”
입을 벌린 채 힘없는 신음만 내뱉으며 내 정액을 받아내는 유리아를 보자니, 엄청난 고양감으로 뇌가 타버릴 것 같다.
날 증오하는 여자의 안을 정복한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
압도적인 승리감이다. 이 기분은 그 어떤 누구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정액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짜낸 나는 자지를 빼냈다.
찌으윽...
“흐아아아... 지혁 씨이이... 지혁... 흐우으...♡”
내 이름을 몇 번이나 되뇌고 있는 유리아의 보지에서 찐덕한 정액이 주르륵 흘러나와 침대보를 적셨다.
바들바들 다리를 떨던 그녀는 곧 눈을 감고 수마에 빠졌다.
한동안 일어나지 않겠지.
기지개를 켠 나는 룸 거실에 비치된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기분도, 알싸한 맥주의 목넘김도 시원하다.
@@
“으응...”
커튼의 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일어난 그녀는 이내 얼굴을 찡그렸다.
아랫배에서 거슬리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
하복부를 만지작거리던 그녀의 부스스한 눈이 무척 커졌다.
모든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자신이 어제 무슨 일을 했는지 생각났다.
‘나...!’
해버렸다.
지금껏 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첫 섹스를 지혁과 했다.
“허억!”
비명을 지르며 상체를 일으킨 그녀.
큼지막한 퀸 사이즈 침대엔 자신 혼자뿐이었다.
브라와 팬티는 어디로 갔는지 없는 상태. 자신의 몸엔 목욕가운이 입혀져 있었다.
다급하게 일어나 불을 켜고 이불을 들추니, 침대 구석자리에 빨간 얼룩이 져있다.
처녀혈의 흔적. 그걸 본 유리아의 몸이 휘청거렸다.
“아...!”
머리가 어지러웠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건이었다.
뜬금없이, 자신의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강제로 했다!
빠드득!
“이...!”
이를 부서져라 문 유리아는 침실에서 나와 지혁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없었다.
화장실에도, 거실에도.
씩씩대며 침대 옆 협탁 위에 있는 휴대폰을 집은 그녀는, 곧바로 지혁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멈칫했다.
‘화... 내는 건 아니겠지...?’
문득 그러한 걱정이 들었다.
동시에 가랑이 사이에서 느껴진 묵직한 느낌이 아랫배까지 확 올라올 때의 감각이 생각났다.
아팠다. 너무 아파서 정신을 놓아버릴 뻔했다.
하지만... 아픔은 잠깐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가셨고, 지혁이 자신을 침대에 눕히고 사랑한다고 해줬을 땐, 두려운 마음도 사라지면서 쾌락만이 남았다.
“흐아...♡”
달콤한 목소리로 세화보다 더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던 그.
이후엔 너무 기분이 좋아서 정신을 놓아버렸다.
지혁에게 있어서 유리아 자신은 피식자다.
그것도 아주 약한.
포식자는 당연히 피식자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입을 벌린다.
하지만 지혁은 자비를 베풀어주려는 듯, 자신에게 결정권을 줬다.
네가 싫다면 빼준다고, 하지만 계속 하게 둔다면 최고로 기분 좋게 해준다고 했다.
거기에 넘어가 승낙을 한 건 자신이었다.
그 이후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한 황홀한 기분을 느꼈고.
유리아는 침대에 걸터앉아 자신의 하복부에 양손을 지그시 올리고 눌렀다.
그러면서 어제의 느낌을 되살려보았다.
지혁의 물건이 들어오고 있다는 걸 자각했을 때, 무서웠지만 무척 설렜다.
가끔 자위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른 강렬한 쾌감.
준비된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승낙한 순간부터 정신을 잃기 전까지 극도의 흥분을 맛봤다.
수치심과 두려움도 있었지만 쾌락에 덮어졌다.
지혁이 사랑을 고백해온 순간, 그의 감정이 오롯이 느껴져 만족감도 느꼈던 것 같다.
지고지순한 행위인줄 알았던 성관계.
하지만 막상 해보니 별 것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더 하고 싶은 마음마저 든 것 같다.
아니, 든 것 같다가 아니라 더 하고 싶다.
여태껏 꽁꽁 숨겨놓았던 성욕이 일시에 터져나가는 기분이다.
문제는 죄책감.
아론을 두고 지혁에게 사랑한다고 말했고, 처녀까지 잃었다.
엄청난 배덕감과 죄악감이 느껴진다.
“하아...”
한숨을 푹 내쉬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삐빅! 하는 카드키 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유리아는 재빨리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얼마 뒤, 저벅저벅하는 발걸음소리가 가까워지다가 자신의 지척에서 멈췄다.
그리고 유리아는 자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지혁의 손길을 느꼈다.
“후... 으음...”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려던 유리아가 뒤척이는 척을 했다.
그러자 피식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머리의 이불이 조금 내려가더니 이마에 따스하고 촉촉한 감촉이 느껴졌다.
지혁이 키스를 해준 것이다.
‘흐응...’
입 밖으로 나오려던 흥얼거림을 간신히 참아낸 유리아의 심리 속엔 기쁨만이 가득했다.
방금 느꼈던 죄책감, 배덕감을 저 편으로 날려버린 그녀는, 지혁이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기 물을 틀자 눈을 번쩍 떴다.
‘어, 얼굴을 못 보겠어...’
일어나긴 해야 할 텐데... 지혁의 얼굴을 보기가 부끄러워 미치겠다.
유리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20분이라는 시간을 보낸 사이, 샤워를 마친 지혁이 화장실에서 나와 말한다.
“일어나있잖아. 다 알아.”
“.....”
유리아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며 낭패한 얼굴을 했다.
“아침 안 먹을 거야?”
“.....”
“나 혼자 내려간다?”
오늘의 지혁은 첫 관계 이후라 그런지 뭔가 담백했다.
그런 친절함에 홀라당 넘어간 유리아가 상체를 일으켰다.
“엄마야!”
그리고는 깜짝 놀라 양손바닥을 얼굴로 가져가 가렸다.
지혁이 팬티만 입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엄마야?”
장난기가 가득한 지혁의 목소리.
유리아는 그네를 타는 것 마냥 상체를 앞뒤로 흔들었다.
“그게 아니라... 지혁 씨... 옷 좀 입어주시면 안 돼요...?”
“뭐 어때. 어제 너 샤워도 시켜준 게 난데.”
“네에!? 샤워요?”
“그럼 그 목욕가운은 누가 입혀줬을 거라고 생각해?”
“....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제 의사도 물어보시지 않고...”
샤워만을 말하는 것 같지만, 강제로 물건을 넣었던 일도 같이 따지고 있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상의 한 번 없이 해서 조금 삐쳤다.
물론 지혁은 상의 ‘따윈’ 할 필요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일까?
지혁이 다가오더니 침대에 걸터앉아 말한다.
“평생 책임질게.”
두근!
그 말을 듣는 순간, 유리아의 심장이 기분 좋은 떨림을 발했다.
절로 얼굴이 붉어지면서 숨이 뜨거워진다.
그녀가 안절부절 못하며 묻는다.
“세화보다... 더 사랑한다고 했던 말... 진심이었어요...?”
“진심이야.”
“그, 그럼... 헤어지실 거에요?”
“아니.”
“왜요...?”
“난 너도 사랑하고, 세화도 사랑하거든. 그래서 둘 다 놓칠 수가 없네.”
둘 다 만나면서 평생을 책임지겠다는 말인가? 궤변이다.
하지만 자신도 거짓말을 하면서 승현을 만나려 하는 중인데, 저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아냐, 그냥 만나지 말까...?’
굳이 아론에게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유리아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지혁의 얼굴을 보니 사랑이라는 감정이 새록새록 싹트면서 뿌리를 내린다.
아니, 뿌리는 이미 내린지 오래.
사랑이라는 이름의 물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고 해야 옳았다.
처녀를 바친 상대였기에 더 그런지도 모른다.
“내가 세화랑 헤어졌으면 좋겠어?”
지혁의 잘생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유리아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잘 말해야 된다. 사랑하는 저분이 실망하실 지도 모른다.
이러한 감정이 유리아의 마음속에 콕콕 박혔다.
“지혁 씨... 마음대로 하셔도... 돼요... 그냥 해본 말이었어요...”
그 말에 지혁이 씨익 웃었다.
“착하네?”
“가, 감사합니다아...”
“옷 입어. 아침 먹으러 내려가게.”
“지혁 씨는... 먼저 아침 드신 거 아니었어요?”
“운동하고 온 거야.”
“그, 금방 갈아입을게요!”
말을 더듬으며 대답한 유리아가 다급히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여분 팬티와 브라가 없었던 것이다.
어제 속옷이 젖어버렸다는 건 유리아도 기억하고 있었다.
‘어, 어쩌지...?’
노팬티, 노브라로 나가야 되나? 싶었던 그녀는, 이어지는 지혁의 말에 반색했다.
“협탁 서랍 열어봐. 어제 새벽에 속옷 사왔으니까.”
“아...♡”
저도 모르게 콧소리를 낸 유리아는 서랍을 열었다.
과연 지혁의 말대로 검은색 기본 속옷이 있었다.
오늘따라 배려심이 넘치는 그.
아마 세화에게 자주 보여주는 모습일 터였다.
가끔 이런 모습을 자신에게 보여주는 것도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 유리아는 속옷을 입기 시작했다.
지혁이 보는 것도 개의치 않아했다.
조금은 창피하지만 어차피 자신의 처녀를 가져갔고, 샤워까지 시켜준 사람이다.
게다가 미적대면 혼이 날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한 유리아는 빠르게 옷을 입었다.
“다 입었어요...”
지혁은 어느새 트레이닝 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상태였다.
저 모습을 보니, 유리아는 그가 계획적이었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어제 자신의 처녀를 가져가기 위해, 하룻밤 잘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에 여분의 옷을 가지고 왔다. 그것도 자신 몰래.
원래라면 거북해했을 테지만, 이젠 상관없어졌다.
오히려 좋았다. 지혁 같은 사람과 첫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아니, 지혁 같은 사람에게 처음을 ‘바칠’ 수 있어서.
“가자.”
손을 내민 지혁의 말.
유리아는 그 손을 맞잡고 지혁을 바라보았다.
“지혁 씨.”
“왜.”
“사랑해요.”
가식이 한 스푼도 섞이지 않은 진심.
유리아의 흔들리지 않는 눈을 바라보던 지혁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비릿한 미소. 하지만 유리아는 저 미소가 세상 그 어떤 누구보다도 멋져 보였다.
“나도 사랑해.”
“아아...♡”
금세 얼굴이 녹아내린 그녀.
지혁이 묻는다.
“앞으로도 말 잘 들을 거지?”
유리아가 허겁지겁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지금 지혁은 자신을 세화보다 더 사랑하고 있다.
그렇기에 계속 말을 잘 듣고 사랑을 키워간다면, 지혁은 세화를 떠나고 자신만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유리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혁에게 완전히 놀아나고 있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그녀는 애정이 가득 담긴 눈을 하며 그의 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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