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3 1박 2일
다음 날, 시간에 맞춰 유리아의 아파트 근처에 차를 댄 나는, 밖으로 나온 그녀를 발견하고 감탄했다.
그녀가 입고 나온 옷은 흰색 롱 원피스였다.
검은색 도트패턴이 박혀있는.
허리끈을 위로 묶어 안 그래도 긴 다리가 더더욱 길어보였고, 브이넥 라인이 가로부분으로 넓어 쇄골이 드러나면서, 동시에 가슴골도 아주 살짝 보였다.
발목에 스트랩을 두른, 굽이 꽤나 높은 검은색 글래디에이터 샌들과 드롭 귀걸이로 패션을 완성했다.
마지막으로 눈가를 살짝 가리는 레이어드 펌까지... 청순하면서도 도도함과 섹시함이 공존하는... 그런 완벽한 코디였다.
근데 머리는 대체 언제 한 거야? 어제 돌아가면서 했나?
내가 빵! 하고 클락션을 울리자, 유리아가 총총걸음으로 달려와 조수석 문을 열었다.
“지혁 씨!”
밝은 얼굴이다.
마치 나 어때? 하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
난 아주 희미한 미소로 만족을 표시해주었다.
“타세요.”
“네.”
조수석에 탄 유리아는 안전벨트를 매면서 내 모습을 살폈다.
그러다 마음에 든 듯 환하게 웃었다.
누가 마음대로 내 코디를 살피고 평가를 내리라고 했지?
난 되는데 넌 안 돼. 아무래도 교육이 필요할 듯하네.
오늘 자지로 혼내주지.
“어디 가실 거에요?”
“가평.”
“가평? 거긴 왜요?”
“글램핑 갈 겁니다.”
“네에? 글램핑이요!?”
까무러치는 그녀.
악셀을 밟으며 차를 출발시킨 내가 전방을 주시하며 물었다.
“왜요?”
“그... 글램핑이라면...”
“하루 자고 돌아오려고요.”
“아, 안돼요...!”
“왜죠?”
“무슨... 당연한 일이잖아요! 결혼도 하지 않은 남녀가 밀폐된 공간에서 1박 2일이라니...”
“보수적이시네요? 굳이 결혼을 해야 1박 2일 여행을 갈 수 있는 건가? 글램핑장엔 부부들만 있는 건가요?”
“보수적인 게 아니라... 제가 말을 잘못했어요. 저흰 아직...”
“사귀지도 않는다고?”
“.... 네... 이건 잘못된 거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핸들을 확 틀고 인도 옆에 급정거를 했다.
“꺄악!”
끼이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유리아의 고개가 앞으로 튕겨나갔다가 돌아온다.
“지혁 씨! 지금...”
화를 내려던 유리아의 눈이 커졌다.
정색한 날 본 직후였다.
내가 말했다.
“그럼 내려요.”
“뭐라구요...?”
“내리라고요. 가기 싫으면.”
“가기 싫은 게 아니라... 늦게까지는 놀아도 되는데... 1박 2일은 조금...”
“의견이 안 맞네요. 난 1박 2일 동안 있고 싶은데, 유리아 씨는 당일치기를 원하니까... 그러니까 내리세요.”
“지혁 씨... 진짜 이럴 거에요? 그냥 조율하면 되잖아요!”
“그럴 생각 없어요.”
기가 찬 듯 하! 소리를 낸 유리아가 조수석 문 버튼에 손을 가져다 댔다.
“저 진짜 내려요?”
“네.”
“진짜 내릴 거에요.”
“그러라니까요?”
“진짜로... 진짜로 내린다구요!”
“내가 열어줘요?”
“.....”
침묵하는 유리아.
어깨를 으쓱인 나는 윈도우 스위치 옆에 있는 버튼을 눌러 조수석 문을 열었다.
위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조용히 열리는 조수석 문.
유리아가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면서 날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은 어느 샌가 안전벨트에 가있었는데, 두 손으로 꽉 잡은 모습이 안 내리려고 발악을 하려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내가 헛웃음을 켰다.
“어이가 없네.”
“.....”
“왜 보면 볼수록 어린애 같다고 느껴질까요? 장난감을 사주지 않아서 펑펑 우는, 말 안 듣는 애 같네요.”
“지혁 씨... 전 그저...”
“나랑 밀당하자는 거에요?”
“아, 아니거든요...?”
“내가 유리아 씨한테 끌렸던 건 어른스러운 면이 가장 컸는데, 이러면 세화와 다를 바가 없네.”
유리아가 발끈했다.
하지만 어제 일을 생각해서였는지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근데 왜 발끈하냐? 세화가 쪽팔려?
아, 너도 세화가 약간 철이 없다는 걸 알고 있구나.
다 일러야지.
“다시 말할까요? 조율할 생각 없으니까 1박 2일로 가는 게 싫으면 내려요.”
“가, 가기 싫은 건 아니고요... 아버지가... 걱정해요...”
“김태곤 씨 출장 가셨죠? 그거 제 직원이랑 간 겁니다. 대전에 있는 김태곤 씨 회사에 대한 인수 건으로요.”
벙 찐 유리아를 보니 웃고 싶어진다.
하지만 참자. 또 교육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니까.
“거짓말을 했네요?”
“.....”
“거짓말했잖아.”
조곤조곤하지만 화가 난 듯 한 목소리에, 유리아가 망연자실해하며 고개를 떨궜다.
“네... 거짓말했어요.”
“나랑 있는 게 싫어요?”
“아니에요!”
빼액 소리치는 그녀.
인도를 걷던 사람들의 시선이 열린 조수석으로 쏠렸다.
대부분은 날 향한 질시의 시선이었다.
유리아 같은 여자가 집착하는 게 부러우면 마왕하든가. 이래서 인간놈들은 안 돼.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린 유리아가 황급히 조수석 문을 닫았다.
“왜 닫아요?”
“내, 내리기 싫어서요...”
“그럼 왜 내린다고 했는데?”
“.....”
“또 거짓말했네요?”
“말도 안 돼...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그럼 투정인가? 어린애 같다는 걸 인정하는 거죠?”
“그건... 핫!”
유리아가 숨을 삼켰다.
내 손이 그녀의 허벅지에 올라갔기 때문.
훤칠하고 얇은 다리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하니, 입을 앙 다문 유리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손이 허벅지 안쪽으로 향했을 땐 몸을 움찔 떨기까지 했다.
“인정하는 거죠?”
“하으... 지혁 씨이... 갑자기 왜...”
“싫어?”
“.... 아니이... 싫은 건 아닌데에... 흐응...!”
“그럼 말 잘 들을 거지?”
은근슬쩍 반말을 섞어가며 팬티 바로 밑 허벅지 부분을 눌러주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끔 키스를 했다.
유리아의 입 안을 무섭게 헤집어놓는 내 혀.
그러면서도 성감대를 찾아 만지자, 몇 분 뒤 유리아가 큰 신음소리를 낸다.
“흐으웁♡ 츄읍...! 후아...”
입술을 떼어낸 내가 다시 물었다.
“너 애잖아. 어른 말 들어야지?”
“하아... 하아...”
풀린 눈으로 날 바라보던 유리아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아래로 축 늘어진다.
“글램핑은... 안돼요...”
힘겹게 말문을 여는 그녀.
난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호텔로 갈게. 됐지?”
“호텔...?”
“글램핑장은 벌레들이 많잖아. 편하게 호텔로 가자. 거기서 수영도 하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밥도 먹고. 어때?”
난 말을 멈추지 않으면서 유리아의 원피스 아래로 손을 넣어 그녀의 허리를 만졌다.
팬티 윗부분을 당겼다가 놓으면서 툭툭 소리를 내는 위험한 장난까지 했다.
반응을 보니 싫어하지는 않는다.
현재 허용수위는 이 이상인가?
좋아, 어디 한 번 팬티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보자.
“저는... 흐아앗!”
생선마냥 몸을 팔딱대며 격한 반응을 보이는 유리아.
그녀가 허겁지겁 고개를 주억거린다.
“호텔... 호텔로 가요...! 그러니까 그만해줘...!”
거부감을 보인다. 애무를 좀 더 했어야 했나?
아쉬운 듯 입술에 침을 묻힌 내가 손을 빼고 운전대를 잡았다.
“출발할게요.”
“.... 네...”
**
나는 목적지를 인천으로 변경했다.
경기도엔 그렇다할 특급 호텔이 없어서였다.
호텔에 도착한 우린 곧바로 방을 잡았다.
휴가기간이긴 하지만 비싼 룸은 아직 남아있었기에, 다행히 스위트룸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유리아는 방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안절부절 못했다.
내가 방을 하나만 끊어놨기 때문.
벨보이의 안내에 따라 스위트룸에 도착한 나는, 태연하게 창문으로 걸어가 눈앞에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유리아가 천천히 다가와 내 옷자락을 잡는다.
“지혁 씨... 방 하나만... 하나만 더 잡아요... 저 너무 불안해요...”
큰일이 있을 예정이니 불안해하는 것도 당연하지.
오늘 예전의 세화처럼 네게 끊어지지 않는 실을 만들어놓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잘 해줄게.
“우리가 싸웠나요? 커플인데 다른 방을 쓰게?”
“그건 아니지만... 네? 커플이요?”
놀라 얼어버린 유리아의 모습.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내 시선을 피하면서 얼굴에 홍조가 나타났다.
커플이라는 단어에 좋아라하는 게 분명하다.
“아침 안 먹었죠?”
“네? 네...”
“배고프겠네?”
“그게... 조금...”
말끝을 흐리면서 내 왼손 약지를 곁눈질한다.
세화와의 커플링이 신경 쓰이는 거다.
나와의 갑을관계 때문에 빼라고는 못하겠지? 그렇다고 이 상태로 밖으로 나가자니 다른 사람들이 네 손에 반지가 끼어있지 않아서 남사스럽게 볼까봐 불안하지?
감정이 다 보인다.
아무도 우리 손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을 텐데... 걱정도 많구나.
“왜요? 뭐 할 말이라도 있어?”
“저... 지혁 씨... 그...”
나와 반지를 번갈아 쳐다보는 그녀.
눈치 좀 채라고? 알았어. 그래줄게.
“반지 뺐으면 좋겠어요?”
“.....”
작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녀였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내가 물었다.
“세화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
“미안해요... 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정한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 좋은 자세다.
우물쭈물하는 그녀에게, 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핑계거리 생각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야지?”
“사람들이 저희가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할까봐...”
“바람피우는 거 맞잖아요. 유승현 씨와도 만나겠다면서요.”
말문이 턱 막힌 유리아가 다소 큰 콧바람을 내뱉는다.
질투하는구나. 대상은 다름 아닌 세화다.
뺏고 싶지? 이기적인 넌 나를 독점하고, 소유하고 싶잖아.
“저... 랑만 만났으면 좋겠어요...”
“왜요? 그럴 이유가 없는데?”
“승현 씨랑... 만나지 않겠다고 하면 저랑 있는 동안만큼은 반지를 빼줄 거에요?”
저건 거짓말이다.
유리아는 절대 아론의 환생인 유승현을 포기하지 못한다.
적어도 지금은.
하지만 날 혼자만 갖고 싶다는 독점욕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
유승현은 내게 들키지 않으면서 만나려고 하는 거다.
놀랍다. 이쯤 되면 좋아하는 수준은 한참 넘어섰는데?
“유승현 씨는 아론의 환생이잖아요. 그렇게 쉽게 환생한 사람을 포기해도 돼요?”
“그분은 절 기억하지 못해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요.”
“지혁 씨가 더 좋아요.”
너 이거 걸리면 나한테 완전히 약점 잡히는 건데 괜찮겠어?
끔찍하다는 말도 모자랄 정도로 최악의 자충수인데... 내 입장에선 좋지만.
“음...”
고심하는 척하던 나는 유리아의 지척까지 다가가 그녀의 주위를 천천히 돌았다.
“내가 유리아 씨의 말을 어떻게 믿죠? 지금까지 거짓말만 계속 했잖아요.”
“.... 제가 어떻게 하면 믿어줄 거에... 햣!”
유리아가 소스라치듯 놀라 몸이 굳었다.
유리아의 뒤에 있던 내가 팔을 둘러와 그녀를 안고, 가슴을 꽉 잡았기 때문.
난 그녀의 목에 입술을 대고 강하게 빨아들였다.
얼마 뒤 입술을 떼어내자, 유리아의 목에 진한 키스마크가 남겨졌다.
벌레에 물렸다고 핑계를 대기도 불가능할 정도로 크게.
그 뒤 백허그한 상태 그대로 거울에 가서 유리아에게 그 마크를 보여줬다.
“지혁 씨... 이건...”
곤란한 듯 말을 더듬는 그녀.
내가 말했다.
“이대로 밥 먹으러 가면 믿어줄게요.”
“.....”
내 소유물이라는 도장을 꽉 찍은 상태로 사람들 앞에서 돌아다닌다?
쪽팔림도 무릅쓸 정도의 담력이 있다면 그래줄 만하다.
“어때요?”
고심하던 그녀가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요...”
나는 유리아의 원피스 허리끈을 손가락으로 집어 잡아당겼다.
그러자 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끈이 풀리며, 원피스가 좌우로 갈라진다.
“지... 지혁 씨! 잠깐만...!”
놀라 날 말리려는 그녀였지만, 걱정 말라는 말에 힘을 뺀다.
난 유리아의 원피스를 반만 열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밝은 곳에서 보는 그녀의 몸매는 환상적이었다.
팬티 위로 완만하게 둔덕진 치구부터 시작해서 굴곡이 진 아치형의 배.
골반을 더욱 섹시하게 만들어주는 툭 튀어나온 양쪽 엉덩뼈.
그 위로 자리한, 희미하게 보이는 11자 근육까지.
내가 입맛을 슬쩍 다시자, 유리아가 수치심에 몸을 부들부들 떤다.
이 정도까지 허용해줬으면 뭐, 오늘 밤은 끝난 거지.
“내려갈까?”
“네...? 네...”
비스트 슬레이어들 중에서 가장 고고하다는 평을 받는 유리아가 뱀 앞의 개구리마냥 가녀린 모습을 보이다니.
말세다, 말세야. 지구는 누가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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