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81화 (81/471)

EP.81 위기를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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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저녁, 유리아는 복잡한 심정으로 시노페를 향해 가고 있었다.

평상복 차림이었음에도 미모가 워낙 뛰어난 탓인지 이목이 강하게 쏠렸는데, 평소의 그녀라면 기분 나빠하며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쏘아봤을 터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지혁, 그리고 승현에 대한 생각 때문에 마음이 싱숭생숭했고, 그 때문에 주변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

멍하니 사람이 많은 골목길을 걷던 유리아의 한숨이었다.

유승현과 송지혁, 두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는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먼저 유승현.

얼굴은 평범한 일반인, 성격도 소심한 것 같다.

원래라면 쳐다보지도 않을 상대. 하지만 아버지가 아론의 환생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왔으며 백년해로를 약속한 왕국의 기사단장이었기에 포기하기가 불가능한 상대였다.

그리고 송지혁.

평소 습관들이 아론의 습관과 닮아있었으며, 오히려 이 사람이 유승현보다 더 아론 같을 정도였다.

만약 송지혁이 진짜 아론의 환생이었다면 세화의 눈치를 보지 않고 빼앗으려 했을 터였다.

며칠 만에 자신의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매력적인, 무척이나 끌리는 사람.

대놓고 자신에게 호감을 표시한 사람이기도 하다.

‘미치겠네.’

유리아의 선택은... 두 사람 모두와 관계를 쌓는 것.

이렇게 양다리를 걸치는 건 잘못됐다.

자신도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혁도 세화와 잘 사귀는 도중 자신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해왔다.

그렇다면... 자신이 승현을 만나는 것도 이해해주리라.

그렇게 합리화를 한 유리아는,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리는 휴대폰을 들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승현 씨. 지금 거의 다 왔어요. 카페? 아뇨. 커피는 됐어요. 입구에서 기다려요.”

전화를 끊은 유리아가 걸음을 빨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노페가 나오고, 나름 단정한 옷차림을 갖춰 입은 승현이 보였다.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그.

밝은 얼굴이 제법 매력적이다.

하지만...

‘아론 같지 않아.’

아론은 저렇게 손을 번쩍 들고 흔들어대지 않았다.

지혁처럼 팔꿈치를 갈비뼈에 대고 각도를 조금 튼 뒤 간단하게만 흔든다.

지금까진 지혁에게 관심이 별로 없어 잘 살피지 못했는데... 그러고 보면 그와 아론의 제스처는 상당히 희귀한 편이었다.

사람들이 잘 하지 않는.

혹시 아버지가 착각한 게 아닐까?

시노페 앞 카페는 지혁이 자주 다니는 장소 같은데, 거기 남아있는 아론의 향기를 승현이 다 가져가버려서 헷갈린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아냐... 아버지가 그런 걸 착각할 리는 없어.’

“유리아 씨, 잘 지내셨어요?”

가까이 다가온 승현의 안부에, 상념에서 벗어난 유리아가 환하게 웃었다.

“네. 승현 씨는요?”

“저야 뭐... 잘 지냈죠.”

머리를 긁적이는 승현.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여자친구랑 헤어졌다던데, 그게 너무 슬픈 모양이다.

잠깐 침울한 표정을 짓던 승현이 물었다.

“식사는 어디서 하실래요? 죄송합니다, 미리 정해놨어야 하는 건데 갑작스럽게 만나자고 하셔서...”

굳이 변명할 필요까진 없는데... 그래도 배려심이 보여서 마음에 든다.

“전 아무데나 좋아요.”

“그럼 막걸리라도 한 잔 하실래요? 아, 외국분이셔서 입맛에 맞지 않으시겠죠?”

첫 식사자리에서 막걸리라니... 웬 아저씨 취향인지.

더군다나 편견까지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승현은 마음에 드는 부분보다, 들지 않는 부분이 더 많았다.

참아보자... 아론의 환생이잖아.

“아뇨. 술은 좀 그래요.”

“그럼 무난하게 파스타로 드실까요?”

이건 꽤나 괜찮다.

유리아가 곧바로 승낙했다.

“네, 파스타 좋아요.”

“그럼 제가 잘 아는 맛집으로 가시죠.”

자신 있게 엄지손가락을 어깨 뒤로 넘기는 승현.

하지만 이내 다시 어깨가 축 늘어진다.

그 모습을 보던 유리아가 생각했다.

‘여자친구랑 많이 갔던 곳인가 보다.’

그녀는 절대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승현의 옆으로 가 보폭을 맞췄다.

승현이 데리고 간 곳은 인테리어가 제법 괜찮은 파스타집이었다.

거기서 간단한 크림 파스타와 볼로냐식 파스타를 시킨 두 사람은,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담소를 나누었다.

주된 내용은 승현이 이쪽 일을 하게 된 계기였다.

그리고 유리아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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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침음을 삼킨 내가 발걸음을 옮겼다.

유리아와 유승현의 식사는 마물을 통해 다 보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열이 받는 이유는, 유승현이 과거사를 전부 오픈했다는 점에서 기인했다.

교통사고 보험사기를 당한 일부터, 내가 그를 도와줬다는 것까지도.

내 실명까지 언급해가면서 모두 깠다.

송지혁이라는 사람 덕분에 살 수 있었다고, 하지만 일을 하느라 여자친구와의 사이가 멀어진 게 너무 아쉽다고.

저 대화 덕분에 유리아는 유승현을 도와준 사람이 나라는 것도, 놈의 여자친구였던 사람이 세화라는 것도 알게 됐다.

‘제법이구나, 승현아.’

물론 유승현은 나에 대한 고마움에 그런 것이겠지만... 의도하지 않은 일이 내게는 큰 악재가 됐다.

솔직히 첫 식사자리에서 과거를 오픈할 줄은 몰랐는데 제대로 한 방 먹은 셈이었다.

지금 나는 유리아의 전화를 받고 예의 그 공원으로 가는 중이었다.

전화할 때 그녀의 목소리가 어찌나 냉랭하던지... 참... 좆같았다.

악재에 악재가 겹치는구나.

하지만 괜찮다. 끌려다니지만 않으면 돼.

제대로 상황만 타개한다면 주종관계는 그대로... 아니, 오히려 차이를 더 벌릴 수 있을 거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면 된다.

공원에 도착한 나는, 유리아가 화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난 아무것도 모르는 척 밝은 미소를 보여주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왜 여기서 보자고 했어요?”

유리아가 입술을 잘근 깨문다.

지금 쟤는 날 뭐라고 생각하는 중일까?

천하에 둘도 없는 쓰레기? 아니면 바람둥이?

“지혁 씨.”

말투가 에베레스트 꼭대기에 온 것 만큼 춥다.

“예?”

“정말 실망했어요. 당신이 그런 사람일 줄은 전혀 몰랐는데...”

“다짜고짜 무슨 말씀이에요?”

“오늘 유승현이라는 사람과 함께 식사를 했어요.”

“유승현? 유리아 씨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죠?”

“하!”

놀란 내 말투에 유리아가 헛웃음을 켰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승현 씨가 그러더군요. 교통사고 때문에 보험사에서 사기를 당했는데, 송지혁이라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큰일이 날 뻔했다고.”

“도와주긴 했죠. 사정이 안타까워서. 그게 왜요?”

“그게 왜냐니요... 세화를 승현 씨에게서 빼앗아간 사람이 당신이잖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태연한 내 반박에 유리아가 더욱 화를 냈다.

“지금 다른 남자의 여자를 빼앗아놓고 그렇게 당당한 거에요?”

이런 썅년이... 너도 씨발 유승현이랑 나한테 양다리를 걸치려고 했잖아.

어디서 내숭이야?

물론 내가 그렇게 만든 거지만... 기분이 좀 그러네?

“유승현 씨가 뭐라고 하던가요?”

“지혁 씨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어요! 큰돈을 갚아야 했었는데 당신의 도움으로 이천만 원만 갚게 됐다고!”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그분은 세화가 당신과 사귀는 줄도 모르고 있었어요! 완전히 눈 뜨고...”

유리아가 말을 삼키고는 눈알을 데굴 굴렸다.

속담 뒷부분을 생각하는 모습이 웃기다.

“코 베였다?”

“네! 그거요! 아예 말해버릴까 했는데 지혁 씨를 생각해서 가만히 있었죠. 당신이란 사람은 양심도 없어요?”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린 내가 반문했다.

“유리아 씨가 화난 이유는 뭔가요?”

“세화를 빼앗아갔잖아요! 남자친구가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심지어 승현 씨가 세화랑 헤어진 건 며칠 전이었어요. 그럼 지혁 씨가 세화랑 바람을 피우는 동안 승현 씨는 멍청하게 당하고 있었다는 뜻이 돼요! 내 말이 틀렸나요?”

씩씩대는 유리아.

그녀의 거칠어진 숨소리가 안정이 될 때쯤, 내가 말문을 열었다.

“이제 진정이 되신 것 같으니까 설명해도 될까요?”

“어디 해보세요.”

“가장 먼저, 저도 유리아씨께 실망했습니다.”

“뭐라구요?”

“왜 제가 세화를 빼앗아갔다고 단정 짓는 거죠?”

“그야...”

말문이 턱 막힌 그녀.

‘당신이 제게 하는 행동을 보세요! 의심하지 않게 생겼나!’ 라고 말하는 게 껄끄럽나보다.

“유승현 씨를 도와준 건 제가 맞습니다. 대학 때 세화가 사정을 말하길래 순수한 선의로 전문 변호사를 소개해줬죠. 그 이후에 세화와의 관계가 크게 발전했는데, 그건 세화가 먼저 제게 접근했기 때문이에요.”

“그,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세화는 그런 사람이...”

“직접 물어보세요. 지금 전화해 봐도 좋아요.”

“.....”

“그리고 전 세화가 불편하지 않게끔 선택권을 줬습니다. 네 마음이 확실해지면 나나 유승현 씨, 둘 중 한 명을 선택하라고. 며칠 전에 세화는 마음을 완전히 다잡았고요. 실망을 해야 한다면 그 대상은 제가 아니라 세화여야죠.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절 꼬시려 들었으니까.”

유리아가 주먹을 꽉 쥐었다.

왜? 같은 비스트 슬레이어 동료에게 실망하긴 싫냐?

내가 말을 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제가 홀라당 넘어간 건 잘못됐긴 했지만요. 근데 웃기네요. 유리아 씨도 유승현 씨와 비슷한 상황 아닙니까? 저한테 세화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저랑 만나려고 하잖아요.”

“그, 그건...”

말을 더듬는 유리아.

이 틈을 탄 내가 그녀를 향해 성큼 다가갔다.

그러자 유리아가 반 발자국 정도 뒷걸음질을 쳤다.

내가 의도적으로 유승현에게 사고를 일으켰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니 다행이다.

“얘기 다 끝났습니까?”

“.... 저한테 일부러 접근한 거죠! 남의 사람을 뺏는 짓을 좋아하는 거죠!?”

응. 존나 좋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유리아 씨는 남자친구가 없잖아요. 왜 있는 것처럼 말하십니까?”

유리아가 아차 한다.

송지혁은 유승현이 아론의 환생이라는 걸 모르는 상태.

무심코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니 당황스러운 것이다.

“그건 맞지만...”

“혹시 유승현 씨와 그렇고 그런 관계였어요? 그럼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이해할게요. 좋아하는 사람이 세화에게 뒤통수를 맞은 거니까.”

“아, 아니거든요!”

“그럼 전혀 이해를 못하겠는데? 유리아 씨도 나랑 비슷한 입장이잖아. 내가 하면 로맨스, 남들이 하면 불륜... 뭐 이런 건가요?”

“.....”

“지금 나랑 장난해요?”

유리아의 코앞에까지 얼굴을 들이댄 내가 그리 말하니, 기세가 팍 죽은 그녀가 시선을 피한다.

“장난 하냐고 묻잖아요.”

낮게 깔리는 내 목소리에 유리아가 흠칫했다.

“지혁 씨... 당신... 앗!”

유리아가 화들짝 놀랐다.

내가 한손으로 그녀의 양 볼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미간을 잔뜩 구기고는 유리아를 몰아붙였다.

“야.”

“.... 지금 뭐라고... 방금 절 야라고 부른 거에요?”

“너 유승현이랑 무슨 관계냐?”

이글이글 타오르는 내 눈.

유리아가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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