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9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 #4
내가 술집으로 정한 곳은 호텔이었다.
음흉한 속셈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장소 선정.
유리아는 날 한 차례 쏘아보았다.
“여기서... 마시자고요?”
“네, 왜요?”
태연한 내 반문에, 유리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실망했어요. 지혁 씨한테.”
공원, 그리고 영화관에서 몸을 허락해준 네 스스로에게 실망해야하는 거 아닐까?
“어디 이유 한 번 들어보죠. 왜 실망했나요?”
“방 안에서 술을 마시고, 그... 짓을 하려는 거잖아요.”
“그 짓?”
“여, 영화관에서... 그리고 저번에 공원에서 했던 짓이요...”
“뭔가 오해하시는 것 같네요.”
내 말에 유리아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오해...?”
“호텔 상층에 분위기가 좋은 와인 바가 있어요. 거기 들르자는 뜻으로 왔는데?”
“.....”
얼빵해진 표정이 볼만하다.
“방에서 마실 생각이었다면 여기 오면서 술을 사왔겠죠. 이상한 생각을 하고 계시네요?”
“드, 들어가요!”
버럭 소리친 유리아가 내 팔을 잡아끌고 호텔로 들어갔다.
아쉽다, 딱히 빼려는 눈치가 아니었다면 오늘 저 보지 안에 내 두툼한 육봉을 꽂아 넣었을 텐데.
뭐... 기회야 차고 넘치니까 오늘은 봐주지.
꼭대기 층 와인 바는 내 말대로 정말 분위기가 좋았다.
엄숙하고,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개별 칸막이도 있고.
일자 테이블도 물론 있었지만 그곳엔 손님이 별로 없었다.
우린 구석자리에 앉았고, 오랜 시간 동안 담소를 나누었다.
대화 도중 은근슬쩍 아론의 습관 같은 것들을 섞어 넣으니 유리아의 반응이 무척 볼만했다.
볼이 상기되거나, 몸을 앞으로 기울이거나, 자신의 입가를 매만지거나 하며 안달이 난 행동을 보였다.
취기가 슬슬 올라올 때쯤, 난 유리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자 유리아가 내 시선을 피하면서 묻는다.
“세, 세화는... 연락 없어요?”
“씹고 있는데요.”
“왜요...?”
“지금은 유리아 씨랑 단둘이 있는 게 더 좋아서요.”
“그, 그건 잘못된 거에요...”
그걸 알면서도 나랑 만난단 말이야?
좀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유리아 씨는 어때요?”
“.....”
침을 꼴깍 삼키고 테이블 아래를 쳐다보는 그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질끈 감으며 내게 고백한다.
“저도... 좋아요...”
“옆에 앉아요.”
“네...?”
“내 옆에 앉으라고요.”
강압적으로 변한 내 말투.
유리아가 침을 꼴깍 삼킨다.
눈빛을 보니 선망의 감정이 조금 담겨 있다.
내재되어 있던 돔 성향이 튀어나오려고 하는 것이다.
어때? 해보고 싶지? 나한테 배우고 딴 놈한테 갖다 풀어라.
유리아는 푹신하고 짧은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고 내 옆에 조심스레 앉았다.
“앉았어요...”
뭐 어쩌라고. 칭찬이라도 해주랴?
“만나는 사람 있어요?”
“어, 없어요...”
없어? 유승현이랑 만날 거잖아.
아, 지금은 아니니까 없는 게 맞구나.
“그럼 나랑 만나요. 세화 몰래.”
유리아의 입이 떡 벌어졌다.
대놓고 양다리를 걸치자고 하니 믿어지지 않는 표정을 짓는다.
지도 좋으면서 내숭을 떠는 모습이 볼만하다.
“저, 절대 안돼요.”
“디바이스도 충전해야 하잖아요. 보니까 오늘 다 찬 것 같던데.”
“.....”
“만나는 사람 없다면서.”
“그게...”
손에 땀이 차는지 자신의 바지에 손바닥을 닦아내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꽤 예쁘다.
“그럴 거죠?”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저리 물으니, 유리아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문다.
“지혁 씨... 평소랑 너무 달... 흣!”
깜짝 놀라 숨을 훅 들이켜는 그녀.
내 손이 그녀의 오른쪽 윗가슴을 눌렀기 때문이었다.
부드럽고 말캉말캉한 부위를 꾹꾹 누르던 내가 다시 물었다.
“만날 거죠?”
“하지만 지혁 씨한테는 세화가...”
도덕적인 척 하지 마.
넌 이미 배덕감에 양쪽 다리를 담군 것도 모자라 허리까지 빠졌으니까.
게다가 유승현을 꼬시는데 시간이 걸릴 텐데, 그 사이에 마물이 나타나면 싸워야 되잖아.
디바이스는 어떻게 충전할 거야? 이 기회를 잡아야지.
물론 나 외에 충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도록 만들 테지만.
나는 유리아의 귀에다 입술을 대고 달싹였다.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만날 거죠?”
‘마지막’ 이라는 단어는 상대방의 빠져나갈 구멍을 막는 훌륭한 단어다.
유리아의 입술이 파리하게 떨린다.
날 만나면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흥분을 하고, 마음이 말랑해지잖아.
불편한 마음도 묘한 쾌감으로 덧칠할 정도까진 왔잖아. 그러니까 거절할 수 없을 걸?
무릎에 다소곳하게 손을 올려놓은 유리아가 결국 승낙했다.
“마, 만날게요...”
씨익 웃은 난 유리아의 금발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사흘 뒤에 세화가 친구들이랑 제주도에 놀러 가는데, 그날 시간 비워놔요. 약속 있으면 취소하고.”
말투만 부드럽다뿐이지 아예 명령이었다.
유리아가 당혹스러워했다.
“하, 하지만 디바이스는 이미 백 퍼센트...”
“누가 디바이스 때문에 만나자고 했어요? 단둘이 오붓하게 있자고요.”
“.... 네... 알겠어요...”
“예쁘게 입고 나오세요. 오늘처럼 대충 입지 말고.”
“네에...”
“돌아갈래요? 아니면 더 마실래요?”
“지금 정신이 아예 없어서... 돌아가고 싶어요...”
정신이 아예 없긴.
네 눈이 반짝이는 거 다 보인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모든 언동은 유리아가 착실히 흡수해 호구에게 써먹을 것이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게 되면 나에게도 하려고 하겠지만... 그 전에 그녀와 나 사이에 이미 생성된 주종관계를 확실하게 정립해놓으면 된다.
“돌아가면 똑바로 문자 남겨놔요. 저번처럼 ‘지혁 씨’라고만 보내지 말고.”
“아, 알겠어요...”
순종적인 대답에 만족한 난, 유리아의 티셔츠를 슬쩍 들췄다.
놀라긴 했지만 영화관에서 심하게 들이댔기 때문이었는지 격한 반응은 보여주지 않는 그녀.
난 마치 배 아픈 어린아이에게 부모님이 약손을 시전하는 것 마냥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유리아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러면서도 조금씩 성감대를 자극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흐응...♡”
축 늘어져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는 모습을 보니 내 손길에 푹 빠졌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구나.
난 한참동안 유리아에게 자극을 주면서 몸을 달궈놓았다.
집에 가면 그녀가 자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
“꺄아아앗...♡”
날 끌어안은 세화의 열 손톱이 내 등을 뚫는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새어나오지만, 세화는 내 허리를 다리로 감싼 채 정액을 받는 데에만 집중했다.
오랜만에 안아주는 거니까 넘어가주지.
긴 사정시간동안 숨도 쉬지 않은 채 자궁에 정액을 받아내던 세화가 한숨을 내쉰다.
“후에에... 흐아아...”
그녀의 보지에서 자지를 빼낸 나는 침대 헤드보드에 몸을 기댔다.
“좋았어?”
“네헤...♡”
풀린 눈으로 숨을 쌕쌕대던 세화는 자신의 손가락에 묻은 내 피를 빨아먹기 시작했다.
이후 내 곁으로 다가와 자지에 묻은 정액을 핥아먹는다.
“흐에... 하웁...!”
난 그녀의 봉사를 받으면서 휴대폰을 들었다.
다섯 통이나 와있는 유리아의 톡.
내용은 이랬다.
[지혁 씨, 저 도착했는데 샤워하고 다시 보내도 돼요?]
[오늘 재미있었어요.]
[지혁 씨... 대답해주세요.]
[저 샤워하고 올게요?]
마지막은 화내는 이모티콘이었다.
피식한 나는 그녀에게 톡을 보냈다.
[샤워하고 와도 돼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는 숫자.
읽었다는 표시였다.
[이미 했어요. 자려고 누웠는데...]
[사진 보내 봐요.]
[제 사진이요?]
[네.]
[잠시만요.]
“쮸읍... 후에엥... 주인님... 뭐해요...?”
자지를 깨끗하게 청소하던 세화의 질문이었다.
“유리아랑 톡해.”
그 말에 세화의 얼굴이 곧바로 구겨졌다.
부릅뜬 검갈색 눈이 순식간에 보라색으로 바뀌면서 ‘원래’ 세화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러다 거시기 잘리는 거 아냐? 불안한데...
“주인님... 저랑 있는데 왜...”
“약속했잖아. 참아주기로.”
“그래도...”
난 말없이 침대에 돌아누웠다.
피가 철철 나고 있는 등을 본 세화가 화들짝 놀라 사과한다.
“죄, 죄송해요... 상처가 이렇게 깊을 줄은 몰랐어요...”
마력을 사용해 구급상자를 갖고 온 세화는, 내 등에 올라타 상처에 소독약을 발라주기 시작했다.
“기지 의료기기에 들어갔다 나오면 그만인데 뭐 하러 치료해?”
“주인님한테 마음을 전하는 거에요. 제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보여주려고...”
“이미 다 알아.”
“주인님, 유리아를 떨어뜨려도 제가 먼저죠? 그렇죠?”
“그렇다고 했잖아.”
“다시 약속해주세요.”
“비스트 슬레이어 네 명을 전부 이블 발키리로 만든 이후에도, 난 오로지 너만 사랑해.”
허리춤에서 세화의 허벅지가 떨리는 느낌이 난다.
제대로 감동했구나.
“이제 됐어?”
“네... 됐어요... 안심이 돼요...”
“다행이네. 그리고 마르셀라한테 잘해줘. 요즘 너한테 밉보인 것 같다고 슬퍼하더라.”
“생각해보구요.”
“트윙클은 폭파해서 아쉽겠네?”
“별로요. 어차피 이젠 쓸모가 없어졌잖아요.”
“그래도 가끔은 그리울 걸? 생각 있으면 말해. 또 만들자.”
“네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유리아가 보낸 사진이 도착했다.
베개에 옆으로 얼굴을 묻고 이불을 턱까지 올린 사진이었는데, 난 그걸 보자마자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핑크핑크한 자신의 방에서 찍은 게 아니라, 모던한 내 방에서 찍은 사진이었기 때문.
그 방은 죽어도 보여주기 싫은 모양이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끔찍하긴 했어.
[예쁘네요. 졸려요?]
[조금요...]
[김태곤 씨는 뭐해요?]
[방에서 주무시고 계세요.]
난 지금 오피스텔에서 세화랑 같이 있는데?
입만 열면 거짓말이로군.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약속 잊지 마요.]
[몇 시에 만날 건데요?]
[아직 안 정했어요.]
[네... ㅠㅠ]
이어서 슬퍼하는 이모티콘이 왔다.
톡 하나만큼은 세화보다 귀엽다.
낄낄대고 있으니, 세화가 몸을 낮춰 내 얼굴 옆으로 자신의 머리를 들이댄다.
“주인님, 재밌어요?”
“너보다 애교가 많네. 이거 봐.”
휴대폰을 들어 세화에게 보여주자, 그녀가 금세 씩씩댄다.
“여우같은 년...”
“나중에 만나면 날 언급하면서 어떤 반응을 보여주는지 한 번 떠봐.”
그 말에 세화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상상만 해도 즐거울 것 같은 모양이다.
“알겠어요.”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하니, 나와 함께 유리아를 농락하는 데에서 흥분까지 한 것 같다.
못 말리겠다 진짜.
킥킥 웃은 나는 톡을 대충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기지로 향하는 포탈을 열었다.
“들어가.”
“돌아가시게요? 전 여기서 자는 게 좋은데...”
“아니, 기지에 들렀다가 갈 데가 있어.”
“어딘데요?”
“멕시코.”
“멕시코?”
고개를 갸웃하는 세화.
나는 그녀의 오똑한 코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로제의 아이테르가 멕시코에 있거든. 이제 슬슬 회수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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