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8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 #3
3일, 유승현이 결국 유리아에게 연락처를 준 시간이었다.
세화와의 관계가 파탄이 난지 일주일 가까이밖에 안 지났을 뿐인데 유리아에게 번호를 준 건 참... 병신 같았다.
하지만 이해는 했다.
유승현의 기질도 기질이거니와, 누구라도 유리아 같은 미녀가 번호를 달라 그러면 거절할 수 없을 테니까.
이젠 유리아에게 유승현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를 깔보도록 만들어야 한다.
타락하기 전의 세화가 그랬던 것처럼 똑같은 방법을 쓰겠다는 건 아니다.
유승현이 세화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유리아에게 의지하는 쪽으로 가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일단 두 사람의 관계가 많이 발전하면 작전을 시작해야지.
그 전엔 나도 유리아와 관계를 쌓아갈 거다.
유승현보다 더욱 더 발전된 관계를.
‘나와의 관계는 유승현과 정반대, 유리아가 내게 의존해야 한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의욕이 나지 않게 만들어야 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유리아가 팝콘과 콜라를 들고 내 앞으로 왔다.
“지혁 씨, 무슨 생각하세요?”
우린 지금 영화관에 있었다.
3일 전 키스사건 이후, 나는 유리아를 만나지 않고 거의 매일 문자와 전화를 하며 관계를 쌓아나갔다.
김태곤의 경우도 마찬가지, 덤벙대는 모습을 보여주며 유리아의 경계를 허물어뜨렸고, 그 결과 그녀는 김태곤을 아빠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가끔 애정 어린 짜증을 내기도 했고.
그녀의 품에서 큼지막한 팝콘 바구니를 든 내가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화 생각하셨죠?”
얘는 세화와는 다르게 이런 민감한 주제를 꺼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아뇨. 세화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있었는데요? 유리아 씨는 세화에게 미안해요?”
“네. 엄청 미안해요. 화해도 했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이래선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방어기재다.
그리고 내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럼 영화보자고 했을 때 거절하지 그러셨어요.”
“.....”
입을 꾹 다무는 유리아.
만족스런 대답을 듣지 못한 듯 표정이 심란해진다.
누가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던? 그냥 곱게 영화나 보자.
“들어갈까요?”
“네...”
난 직원에게 티켓을 보여주었고, 유리아와 함께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가장 구석자리, 개봉한지 꽤 된 영화라 사람도 별로 없어 야릇한 짓을 하기엔 좋다.
구석엔 나와 유리아밖에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상영관의 불이 꺼지자마자 그녀에게 이상한 짓을 해선 안 된다.
멀끔한 정신상태에서 만지작거릴 경우, 유리아가 단호하게 거절할 우려가 있었으니까.
얼핏얼핏 아론의 모습을 보여주며 경계심과 판단력을 허물어뜨린 뒤에 스킨십을 시도하는 게 맞았다.
‘기회가 적은 만큼 한 번 시도할 땐 과감하게 진도를 빼야 해.’
세화를 공략할 땐 작은 붓으로 그녀의 전신을 일일이 내 색으로 물들였다면, 유리아는 기회가 났을 때 페인트를 들이부어야 한다.
팔걸이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며 화면의 광고를 바라보던 나는 우수에 찬 눈빛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리아의 시선이 느껴졌다.
지금 그녀는 날 빤히 바라보고 있다.
가끔 아론이 하늘의 별을 볼 때 이러한 표정을 짓고는 했겠지.
쿠웅!
스펙타클한 광고가 큼지막한 폭발음을 내며 끝났다.
그 후 곧바로 상영관 불이 꺼지면서 어두워지고, 영화가 상영되었다.
유리아는 내가 청각을 집중하지 않으면 듣지 못할 정도로 얕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래서야 제대로 볼 수 있겠어?
영화는 코미디 장르였다.
웃긴 장면이 나올 때마다 실소를 터뜨리던 난, 영화의 초중반부가 지나갔을 때쯤 고개를 슬쩍 돌려 속삭였다.
“그렇게 만지고 있으면 콜라가 미지근해져요.”
“네...? 아...”
유리아는 황급히 팔걸이의 홀더에 콜라를 넣었다.
그 모습을 보던 내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자,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어요...?”
“앉았을 때부터 계속요.”
“말도 안 돼... 화면만 봤잖아요. 웃기도 했고...”
“시선은 영화에 가있긴 했죠. 멀리 있는 사람이 웃으니까 저도 그냥 웃은 거고요. 근데 제가 화면만 보고 있던 건 어떻게 알았어요?”
“.... 그건...”
우물쭈물해하는 그녀.
나는 팝콘 하나를 들어 유리아의 입 근처에 가져다 댔다.
그녀는 손으로 그것을 집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팔을 강하게 흔드니, 이내 포기하고는 내 손가락에 있는 팝콘을 입으로 먹었다.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유리아의 마른 입술 감촉이 따뜻하다.
몇 번 더 시도하니 순순히 팝콘을 입으로 받는다.
됐다고 확신한 나는 나와 유리아의 가운데에 있는 팔걸이를 올리고, 그녀의 팔과 내 팔이 닿을 정도까지 엉덩이를 움직였다.
유리아는 이런 내 행동에 깜짝 놀랐지만, 딱히 돌발행동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난 대놓고 유리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캬라멜 팝콘이 맛있어요? 아니면 그냥 팝콘이 맛있어요?”
“모, 몰라요... 왜요?”
고개를 푹 숙인 그녀.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얼굴이 새빨개졌다는 데에 내 마왕 자리를 건다.
“먹여주려고요.”
“.... 모... 른다니까요... 지혁 씨, 전 어린애가...”
위아래 입술이 붙는 타이밍에 맞춰 팝콘을 들이대자 유리아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그걸 받아먹는다.
난 익살스런 미소를 지은 채, 내가 마시던 콜라를 유리아의 입 근처에 댔다.
“.....”
망설이면서 나와 콜라를 번갈아 바라보던 그녀는, 결국 빨대를 다소곳하게 물고 콜라를 빨아먹었다.
팔을 슬쩍 떼어내니 콜라 방울이 유리아의 턱에 묻었다.
난 손가락으로 그걸 닦아내 내 입으로 가져갔다.
그 장면을 봤음에도, 그녀는 내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끄러워하기만 할뿐.
교육이 착실하게 진행되어가고 있구나.
이미 영화는 안중에도 없는 상태까지 왔겠다, 난 아예 팔을 뻗어 유리아의 허리를 잡아 당겨왔다.
“핫!”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삼키는 그녀.
가운데 좌석에 앉아있던 사람이 뒤를 돌아본다.
상영관을 두리번거리던 유리아가 내게 속삭인다.
“지혁 씨... 우리 영화만... 보면 안돼요...?”
영화만 보고 싶으면 힘으로 날 밀어내.
너 힘 좋잖아.
초반부터 갑을관계를 형성해놨기에 그럴 생각은 없으려나?
나는 말을 돌렸다.
“영화보고 바로 돌아갈 거에요?”
“갑자기 그게 무슨...”
“술 한 잔 할 거죠?”
“.... 아니요. 집에 돌아갈래요.”
“할 거잖아요.”
“싫어요... 흐응...!”
옆구리 살을 지그시 누르니 돌연 얕은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이때를 틈타 그녀의 입술에 뽀뽀를 한 내가 말했다.
“술 마셔요.”
자신의 입으로 손을 가져가 입술을 만지작거리던 유리아.
그녀가 작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대답해야죠.”
“.... 네... 마셔요... 술 마실게요...”
그 대답에 만족스레 웃은 난, 유리아의 허리에서 손을 빼고 그녀의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그리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유리아가 손가락에 힘을 줘서 꽤나 아팠기 때문이다.
묘한 감정 때문에 절로 힘이 들어간 모양인데, 참자.
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주종관계가 뒤집어질 우려가 있다.
난 깍지 낀 손을 유리아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아론이 죽은 이후 남자 따윈 만날 생각도 없었겠지.
하지만 외로웠을 거다.
어떻게든 홀로 외로움을 삼켰을 테지만, 김태곤의 등장과 동시에 환생한 아론과 송지혁이 나타나 다시금 연애를 하고 싶다는 감정을 느꼈을 터.
그 연애감정을 나한테 채워라.
“좋아해요.”
뜬금없는 내 고백에 유리아가 목을 아예 아래로 내려버렸다.
손가락에 힘이 풀리는 게 느껴진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난 깍지 낀 손의 검지를 풀고 그녀의 손가락 안쪽을 살살 긁어댔다.
“지혁 씨... 하지 마세요...”
“더 해달라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
부정하지 않는구나. 여기서 끝낼 생각은 없다.
아까 생각했듯, 기회가 왔을 때 몰아쳐야 한다.
다만 선은 지켜야겠지.
공원에서 키스했을 때보다 살짝 수위를 높게 가져가자.
팝콘통을 내려놓은 난 손을 풀었다.
의아한 표정의 유리아가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난 그녀를 확 잡아끌었다.
“흡!”
소리를 지르려다 상영관 사람들에게 들릴까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그녀.
덕분에 난 무사히 내 허벅지 위에 유리아의 엉덩이를 안착시킬 수 있었다.
팔로 유리아의 허리를 감은 나는 그녀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당황한 유리아가 몸을 버둥거려보았지만, 내가 등에 입을 대고 뜨거운 바람을 뿜으니 이내 힘을 쭉 뺀다.
이 틈을 탄 나는 유리아의 검은 티셔츠 속으로 손을 넣고 그녀의 허리를 살살 만졌다.
“후아아...”
나른한 신음소리를 내뱉는 그녀.
저번에 가슴까지 허용해줘서인지 반발심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나는 계속 허리를 만지면서 성감대를 건드렸다.
“후웃...”
거칠어진 숨소리.
또 맛을 봤다. 내가 주는 이 쾌락을.
이 이상 가도 상관없다고 확신한 나는 난 과감하게 손을 올려 유리아의 브라 밑부분에 손가락을 넣고 강하게 눌렀다.
“응핫...♡”
이번엔 몸을 뒤틀었다. 소리도 좀 컸고.
더 할까? 그러자.
양손을 가슴으로 가져가 주무르니 유리아가 날 쳐다보려 한다.
내 얼굴을 보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겠지.
“지혁 씨... 그만해주세요... 더 이상은 힘들어...”
“직접 내려오면 되잖아요.”
“그게 안돼요...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신고... 신고할 거에요...♡”
야릇한 목소리를 내뱉는 주제에 신고라니.
“좋아한다고 말해주면 그만해줄게요.”
“.....”
대답이 없는 그녀.
난 아예 유리아의 브라 속으로 손을 넣으려고 했다.
그때, 유리아가 황급히 말한다.
“좋아해... 좋아해요.”
“누굴?”
“지혁 씨요...”
“알겠습니다.”
난 유리아의 옷에서 손을 뺐다.
그러자 유리아가 황급히 내 허벅지에서 엉덩이를 떼어내더니, 옆에 앉고 옷매무새를 고친다.
내가 장난스런 말투로 물었다.
“신고할 거에요?”
“.... 아니요...”
고개를 가로저은 유리아가 디바이스를 바라보았다.
왜? 100퍼센트를 초과할 정도로 흥분해서 기분이 야릇해?
넌 배덕감이라는 늪에 발을 깊숙이 담근 상태다.
돌이킬 수 없을 거야.
내가 빤히 바라보고 있는 걸 눈치챘는지, 유리아가 팔을 옆으로 빼 디바이스를 숨긴다.
콜라를 입으로 가져가 빨대를 쭉쭉 빨아대는 그녀.
방금 애무가 상당히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영화는 마저 볼 거에요? 아니면... 나갈래요?”
“영화... 봐요...”
“내용도 모를 텐데?”
“하아... 놀리지 마세요. 진짜 화낼 거에요.”
“술 마신다고 약속했습니다?”
“네... 알았다니까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화면으로 눈을 돌리고 다시금 유리아의 손을 잡았다.
움찔하다가 이내 내 손을 붙잡는 그녀.
이번엔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다정한 커플처럼 영화를 보던 내가 생각했다.
‘지금 난 세화가 있음에도 유리아를 만나고 있다.’
유리아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아는 상태.
그러니 그녀는 자신 또한 유승현을 만나도 괜찮을 거라고 합리화를 할 것이다.
유승현을 만나면서 내게 푹 빠져 몸도 마음도 다 바치려고 하겠지.
세화가 타락할 때와 다른 방법을 쓰고 싶은데... 방법이야 많다.
그물에 걸려버린 유리아가 번뇌하는 날이 기대된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