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73화 (73/471)

EP.73 아빠는 슬프다 #2

“다녀왔... 아, 아버지?”

현관문을 연 유리아가 화들짝 놀란다.

거실 전체에 감도는 술 냄새, 그리고 바닥에 깔려있는 수많은 술병 때문에 놀란 거다.

항상 근엄하던 아버지가 술독에 빠져 자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그녀는 후다닥 다가와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아버지! 일어나보세요!”

“끄으응...”

“대체 왜 이러시는 건데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사업이 잘 안 돼?”

암, 생겼지.

눈을 찡그린 내가 한 여자의 이름을 들먹였다.

“마... 가렛...”

“....!”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너도 보고 싶지? 네 어머니를.

“마가렛... 당신...”

계속되는 내 잠꼬대.

괴로운 듯 몸을 흔들어대기까지 하니, 유리아가 날 들춰 업는다.

확실히 힘 하나는 세단 말이지.

그녀는 날 안방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한여름인데 웬 이불? 더워 죽겠네.

나는 눈을 절반만 뜬 채로 날 지켜보고 있는 유리아를 시야에 담았다.

“아버지, 정신이 들어요? 눈 충혈된 것 좀 봐... 너무 많이 드신 거 아녜요? 물이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고개를 가로저은 난 유리아의 자그마한 얼굴, 그 뺨에 한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억지로 눈물을 쥐어짜냈다.

“아아... 마가렛...”

“아, 아버지... 전...”

당황해하는 그녀.

손을 치울 수 있음에도 그럴 생각이 없는 듯 보인다.

유리아는 자신이 마가렛의 젊었을 적 모습과 아주 닮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가만히 있는 거다. 아비인 내가 유리아를 보고 마가렛을 떠올려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마가렛... 보고 싶었소...”

습기가 가득 찬 눈으로 그녀를 향해 울먹이는 목소리를 내뱉는 나.

유리아의 눈에서도 물기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녀 또한 어미를 그리워하고 있다.

“.....”

그녀는 내 손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위로를 해주려는 행동.

난 다른 한손을 올려 유리아의 손을 덮었고, 그녀의 검지 지문을 손톱으로 살살 긁기 시작했다.

내 이런 스킨십에, 유리아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나는 유리아가 다른 짓을 하지 못하게 술주정을 부리는 척했다.

“유리아는... 훌륭하게 컸소.”

“.....”

“의젓하더군... 다만 서운한 점도 하나 있다오.”

“서운... 한 점이요...?”

“우리가 너무 엄하게 키워서 그런가, 딱딱하게 아버지라고만 날 칭하오... 그게 못내 아쉽더구려.”

강북에서 만날 땐 펑펑 울면서 아빠라고 했었다.

하지만 딱 한 번이었을 뿐. 그 이후엔 오직 아버지라고만 날 불렀다.

서운하다. 서운해. 요즘 세상이 어느 땐데, 스물한 살 여자가 아버지라니.

내일부턴 가끔 날 아빠라고 불러라.

그러라고 이런 티를 내는 거니까.

유리아는 이런 내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무언가 결심한 눈으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일 뿐.

난 유리아의 볼을 쓰다듬으면서 독백 아닌 독백을 계속했다.

“당신을 처음 본 날이 생각나오. 조신한 몸가짐을 한 채로 아름다운 동산에서 꽃을 가꾸고 있던... 아리따운 당신을 처음 본 날이...”

“.....”

“이제라도 만났으니 되었소. 앞으론 함께... 다시 사랑을 나눕시다. 유리아와 함께 오손도손... 같이 사는 거요.”

“아, 아버지... 너무 취하셨어요. 저는 어머니가 아니라... 앗!”

더 이상은 안 되겠는지 날 말리려던 유리아가 깜짝 놀랐다.

천천히 일어난 내가 그녀를 꽉 안았기 때문.

그녀는 얕은 한숨을 내쉬면서 내 등을 안았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천천히 쓸기를 반복했다.

마치 갓난아이를 진정시키려는 듯 한 손길이었다.

팔로 유리아의 등을 두르고 있던 난, 오른쪽 손가락들을 사용해 그녀의 겨드랑이 밑부분을 지그시 눌렀다.

안다가 일어난 실수처럼 말이다.

여긴 유리아의 성감대 중 하나.

여길 만진 뒤, 그 후 가슴을 만져주면 그녀는 무척 좋아한다.

“.... 흣!”

곧바로 반응을 보이는 그녀.

동시에 디바이스가 우웅...! 하는 소리를 냈다.

약하게 충전되고 있다는 증거.

유리아는 저 소리를 들었을까?

“그만! 그만요!”

들었구나. 황급히 날 밀어내는 것을 보면 답이 나왔다.

아비의 손길로 성적인 흥분을 느꼈다는 배덕감.

이것과 유승현, 송지혁과의 삼각관계가 널 파멸로 몰아갈 거다.

김태곤도 포함되어 있을 테니 사각관계라고 해볼까?

유리아에게 밀려 침대에 털썩 쓰러진 난, 으음...! 하는 소리를 내며 입맛을 쩝쩝 다셨다.

이제 자야지.

다음 날 아침.

난 숙취가 올라온 연기를 하기 위해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린 채 거실로 나왔다.

유리아는 복잡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있었다.

“.... 일어나셨어요?”

“그래... 머리가 너무 아프구나.”

“라면이라도 끓여드릴까요...? 한국인들은 이걸로 해장을 많이 한대요.”

“되었다. 라면을 먹을 기분은 아니구나. 어제 꿈에 마가렛이 나와서...”

“.... 어머니가요?”

모른척하기로 했구나. 시선까지 슬쩍 피한다.

“그래. 정말... 간만에 꾸는 달콤한 꿈이었다. 여운에 잠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깝더구나. 일어나기 싫었다. 영원히 거기 있고 싶을 만큼.”

그 말에 유리아가 입술을 잘근 깨문다.

잠시 그러고 있던 그녀가 날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절 여기 놔두고... 떠나지는 마세요... 아빠.”

오호라... 어제 디바이스가 충전된 일로 마음이 착잡할 텐데, 날 위해 아빠라고 불러준다고?

효녀가 따로 없다.

“그거야 당연하... 방금 뭐라고 했느냐? 아빠?”

눈을 동그랗게 뜬 내 물음에, 유리아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새빨개져가는 것을 보니 상당히 쑥쓰러운 모양.

“그게... 이렇게 부르고 싶어져서요... 안 되나요?”

“안 되기는 무슨... 기쁘구나. 네가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 자주는 못하더라도 가끔은 이렇게... 부를게요.”

“허허... 오늘은 무슨 날인가보구나. 기분 좋은 꿈도 꾸고, 딸이 친근하게 아빠라고 호칭도 해주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나.

유리아는 그런 날 보고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일이 있어서 곧 나가봐야 한다. 늦을 것 같은데... 집에 혼자 두어서 미안하구나.”

“또 대전까지 내려가세요?”

“그래야지. 회사가 대전에 있으니까.”

“죄송해요. 저 때문에...”

“그런 말 하지 말거라. 요즘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바람이라도 좀 쐬러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네... 그럴게요.”

나는 유리아에게 인자한 웃음을 보여주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네가 어디 갈지는 뻔하지.

**

밖으로 나간 난 송지혁의 모습을 하고 시노페 옆 카페에서 유리아를 기다렸다.

그녀는 분명히 올 것이다. 유승현을 보기 위해.

오랜 시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자니, 간편한 차림을 한 유리아가 시노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한참 시노페 근처를 서성거리다가, 유승현이 나오질 않자 내가 있는 카페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날 발견했다.

“어? 지혁 씨?”

책에 빠진 모습을 연기하던 나는, 유리아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유리아 씨?”

“여긴 대체 무슨 일로 오셨어요?”

“그건 제가 여쭙고 싶은 질문인데요. 유리아 씨의 집은 여기서 꽤 먼 것으로 아는데... 아닌가?”

“맞긴 한데...”

“일단 앉으시죠. 음료는 뭘로 드실래요?”

“아, 제가 주문할게요.”

“예.”

카운터로 간 유리아는 음료와 조각케이크를 주문하고 내 맞은편에 앉았다.

시노페를 슬쩍 바라본 유리아가 시선을 내게로 돌린다.

“세화랑은... 잘 해결했어요?”

“아침부터 여기 나와있는 걸 보면 답이 나오죠?”

“아직 화해하지 못하셨다는 소리로 들리네요.”

“정확합니다. 근데...”

지이잉!

말을 하려는 사이, 테이블 위에 놓인 진동벨이 울렸다.

유리아가 내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문한 것들을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내게 포크를 내민다.

“당근케이크라는데... 드셔보실래요?”

유리아의 친절한 제안.

나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전 됐습니다. 단 건 싫어해서요.”

“그렇구나...”

포크로 케이크 끝부분을 잘라 입으로 가져간 그녀가 으음... 하는 소리를 냈다.

맛이 꽤 좋은 모양.

아메리카노까지 한 입 쪽 빨아먹은 그녀가 묻는다.

“세화와는 왜 싸우셨어요?”

“사소한 일이었어요. 음식투정을 하길래 편식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더니... 갑자기 버럭하더라고요. 참... 어이가 없어서...”

입으로 손을 가져간 유리아가 작게 웃었다.

“착한 세화가 그런 반응을 보였는데 뭔가 수상하게 생각하진 않으셨어요? 언제부터 싸웠죠?”

“한 사흘 전부터인가 그랬을 겁니다, 아마도.”

“세화가 월경이 온 건 아닐지...? 돌려 말하면 마법의 날... 아시죠?”

난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 얼빵한 얼굴 때문인지 유리아가 실소를 터뜨렸다.

한참 멍하니 있던 내가 이마를 딱 짚었다.

“확실히... 그래보이네요.”

“의외로 맹탕인 구석이 있네요. 마물이 나타났을 때 침착하고 결단력 있던 모습과는 다르게...”

“허... 반박은 못하겠네요.”

“왜 남자친구에게까지 숨긴 건지는 모르겠네요. 부끄러워서 그랬나? 요즘 세상이 어느 땐데... 솔직하게 말하지 않은 세화 잘못도 있어요. 그러니 너무 심란해하지는 마세요.”

피식 웃은 내가 말했다.

“오신지 1년이 좀 넘었을 뿐인데, 여기 완전히 적응하셨군요. 어쨌든 정말 감사합니다.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했어요.”

“뭘요. 전 두 사람이 잘 지냈으면 하니까... 근데 지혁 씨, 저 가게는 언제 오픈하는지 아시나요?”

유리아가 포크의 끝으로 시노페를 가리켰다.

고개를 돌려 잠시 주점을 바라본 내가 대답했다.

“유흥주점이라 저녁 늦게나 돼야 열 겁니다. 근데 저긴 왜...”

“아는 사람이 일하고 있어서요. 남자니까 웨이터겠죠?”

매니저이긴 한데, 웨이터 업무도 가끔 보긴 하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전 잘 모릅니다. 그나저나 그 아는 사람을 보려고 이렇게 일찍 여기 오신 거에요? 말씀드렸다시피 저긴 저녁에나 오픈할 텐데...”

“그렇게 늦게 여는 줄은 몰랐어요... 저번에 봤을 땐 오후에 쓰레기를 버리러 가던데... 좀 일찍 출근하지 않으려나...”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괸 유리아.

옆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카페 사람들이 멍하니 주목할 정도면 말 다한 셈이지.

“친한 사이는 아니신가봅니다?”

“음... 그건 맞아요. 그런데 사실을 알았잖아요. 세화랑 화해하러 안 가세요? 저 같으면 당장 집으로 돌아갔을 것 같은데...”

“지금 집에 없습니다. 친구 만난다고, 늦게 돌아온다고 오늘은 혼자 있으라네요.”

“그래요?”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유리아가 내 앞으로 고개를 빼고 속삭인다.

“그럼 지금 저랑 연구실에 가실 수 있나요?”

“연구실요?”

“디바이스 용량을 늘려주신다고 세화가 그랬었는데... 아니에요?”

“맞긴 한데, 지금 지인을 기다리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너무 일찍 와버려서요. 저녁에 다시 오면 있겠죠. 곤란하시다면 그냥 박사님께 말씀드릴게요.”

“아닙니다. 박사님도 쉬셔야 하고 저도 할 일이 없으니까... 같이 가죠. 케이크부터 마저 드세요. 책 읽고 있을 테니.”

고개를 끄덕인 유리아는 포크를 들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케이크. 빨리 연구실에 들르고 싶나보다.

마무리로 커피까지 크게 빨아들인 유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내가 그녀를 만류했다.

그리곤 검지로 내 입술 주변을 툭툭 두드렸다.

그쪽에 크림이 묻었으니 닦으라는 뜻.

“아...”

“맹탕인 구석이 있는 건 유리아 씨도 마찬가지네요.”

냅킨으로 자신의 입가를 닦은 유리아가 무안한 듯 목을 만지작거렸다.

“그런가 봐요. 일어날까요?”

“예,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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