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70화 (70/471)

EP.70 유리아 공략개시

폭우가 쏟아지는 저녁.

김태곤으로 변장한 상태에서 서울로 올라온 나는 강북에서 유리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세화에게 마치 따먹히다시피 당해서 거시기가 좀 아프다.

타락한 그녀의 성욕이 너무 큰데... 나름 신선해서 좋았다.

내가 발 한 쪽을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고 있으니, 멀리서 유리아가 날 발견하고는 씩씩대며 다가온다.

“아저씨!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이제부터 난 글렌 엘레나르다. 메소드 연기 장전 완료.

현재 며칠 굶은 사람처럼 핼쑥해진 얼굴을 하고 있던 난, 그런 유리아를 인자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검은 우산을 쓴 채로, 가만히 서서 말이다.

“지금 제 말을 무시... 어...?”

가까이 다가온 유리아가 성을 내려다 흠칫했다.

어때? 오랜만에 보는 네 아버지 특유의 근엄하지만 따뜻한 표정이.

이걸 연습하는데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좋은 반응 좀 보여줘라.

“아... 버지...?”

조금 밋밋한데, 그래도 표정만큼은 까무러치고도 남을 정도는 되니까 용서해주마.

“오랜만이구나, 딸아.”

바뀐 말투도 글렌의 것과 똑같다.

유리아가 우산을 옆으로 떨어뜨리며 두 손을 입으로 가져간다.

“아, 아버지...!”

난 말없이 유리아의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워주었다.

투두둑!

우산의 살을 타고 내 어깨에 쏟아진 빗물의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유리아가 내 몸을 와락 안았다.

뒤로 크게 휘청거린 내 몸.

내 허리를 감싼 유리아의 팔 힘이 꽤나 대단하다.

“아버지...! 흐아아앙!”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

도도하고 시크한 유리아 엘레나르라고 하기엔 믿을 수 없을 만한, 그런 격한 반응이었다.

나는 그녀의 등을 불규칙적으로 두드려주었다.

처음엔 당황한 듯 빠르게, 그러다가 감동적인 부녀의 상봉을 경험한 사람처럼 느리게.

그녀의 젖어버린 흰 와이셔츠 때문에 찹찹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치 떡을 치는 소리 같군.

“빗물이 차단다. 여름에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이만 떨어지거라.”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의 나무람이 서러웠을까?

유리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게 가슴에서 느껴졌다.

어리광을 부리던 그녀가 더욱 큰 울음을 터뜨린다.

“으아아아앙! 아빠...! 그런 말... 흐윽...! 하지 마요...!”

“아빠라니, 왕녀로서의 기품이 없구나.”

“흐이이잉...!”

앙탈을 부리듯 콧소리를 내는 그녀.

놀리는 건 여기까지 하자.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

“그간 고생 많았다.”

**

강북의 한 호텔을 잡은 우린 방에 들어가 따로 샤워부터 했다.

이후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리아가 가장 궁금해 하는 건 내 환생이었다.

완전히 글렌으로 돌아왔는지 아닌지. 그에 대한 여부를 궁금해했다.

그녀의 띵띵 부은 얼굴을 한 차례 쓰다듬어준 내가 방긋 웃으며 설명했다.

며칠간 빠짐없이 환생에 대한 꿈을 꿔서 연락할 겨를이 없었고, 간신히 내 존재를 찾았다는 지어낸 레퍼토리를.

“..... 그렇게 된 거다. 또한 지금 내 안엔 글렌 에드워드의 영혼과 김태곤의 영혼이 공존하고 있지.”

“공존... 이요...?”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김태곤의 영혼이 나로 바뀌는 중이라 해야 옳겠지. 김태곤의 기억도 내 안에 있다. 대전에서 태어난 토박이, 성공한 부동산 사업가라는 기억도.”

“이해가... 안돼요. 환생이 그렇게 이루어졌었나요?”

“그 환생의 산증인이 여기 있잖느냐.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내가 네 아비인 건 변함이 없단다.”

“아...”

유리아의 큰 눈에서 또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내가 돌아온 게 어지간히 기쁜 모양.

그녀의 부드러운 뺨을 쓰다듬어 눈물을 닦아준 내가 물었다.

“딸아, 대체 어떻게 살아남았느냐? 내 기억을 뒤져보니, 넌 나처럼 환생한 건 아닌 모양이다만... 어떻게 왕국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야?”

“저는...”

유리아는 두서없는 말로 자신이 여기 온 경황에 대해 설명했다.

단어와 문장이 이리 튀고 저리 튀었지만, 정리하는 데엔 쉬웠다.

왜? 유리아의 사정을 알고 있으니까.

그녀의 이야기를 종합한 내가 간단하게 요약했다.

“포탈연구에 성공해서 왔다고? 너는 이런 초월적인 기술엔 관심이 없다시피 하지 않았느냐?”

“그건 순전히 우연이었어요. 죽은 마법사들의 연구일지를 보면서 따라 만들었고... 오직 복수만을 위해 생각 없이 탔는데 다행히 타이라트의 마력을 따라갈 수 있었죠.”

나는 얼굴을 조금 굳혔다.

그러자 유리아가 바짝 긴장하더니 침을 삼켰다.

“딸아, 이 지구 저편에 있는 미국, 그곳의 목사가 한 말이 유명하더구나.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고. 오직 빛으로만 그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고.”

어때, 네 아비가 평소에 하던 말과 비슷하지?

유리아가 맞받아친다.

“성경엔 이런 격언도 있죠. 남의 피를 흘리는 사람은 자신의 피도 흘리게 되리라는 격언이요. 타이타르도 피를 흘릴 각오를 해야 해요.”

“널 말리고자 할 생각은 없다. 증오심에 휩싸인다면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네 자신을 잃지 말고 주변을 냉정하게 살피라는 뜻으로 한 말이란다.”

“아버지의 말씀은 잘 알아요. 전 복수 외에도 타이라트에게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서 온 것이기도 해요.”

그제야 내 얼굴이 다시 온화하게 돌아왔다.

“그런 이유까지 있다면 되었다. 헌데... 타이라트는 여기서 잘 활동하고 있는 모양이더구나. 게이트가 열릴 때마다 많은 희생자가 나온다던데?”

“.... 지금까지는...”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이냐? 여긴 마법도 사용하기가 힘든 황폐화된 행성이긴 하다만...”

“그건... 아니에요. 아니... 지금까지는 힘이 없긴 했는데 이젠 생겼어요.”

“이젠 생겼다?”

“이걸 봐주세요, 아버지.”

유리아가 왼팔을 내밀었다.

그녀의 얇은 손목엔 시계로 위장된 디바이스가 있었다.

고개를 갸웃한 내가 물었다.

“무엇을 봐달라는 게야?”

“이 시계요. 여기서 어떤... 신비한 힘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으음... 자세히 봐도 되겠느냐?”

“물론이에요.”

유리아는 망설임도 없이 디바이스를 풀어 내게 건네주었다.

분명히 박사와 타락하기 전의 세화에게 절대 함부로 남에게 주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을 텐데... 아무런 의심도 없는 걸 보면 혈육이 좋긴 좋아.

조심스레 디바이스를 받은 나는 그것을 눈으로 가까이 가져왔다.

지금 당장 침식시키고 싶지만 유리아는 비스트 슬레이어 다섯... 아니, 이제 넷이군.

이 넷 중에서 가장 예민하다.

괜한 행동으로 자그마한 의심조차 품게 해선 안 돼.

참자. 기회는 많다.

“내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구나.”

“그러세요...?”

“그래. 젊었을 땐 그래도 마법 감응력이 뛰어났었는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

실망스런 기색이 가득 담긴 내 얼굴을 본 유리아가 황급히 손사래를 친다.

“아니, 아니에요. 전 아버지가 곁에 있어주시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져요. 당연히 큰 도움이 되고요.”

“나도 마찬가지란다. 헌데 이 시계에 무슨 힘이 있길래 네가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거냐?”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폴리모프에요.”

“폴리모프라? 전설 속 드래곤이 쓰는 마법 말이냐?”

“네. 하지만 저희가 아는 폴리모프와는 달라요. 오히려 그것보다 더 대단하죠.”

유리아는 내게 디바이스와 아이테르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

충전방식만 빼고. 아무래도 아버지에게 아이테르의 개구쟁이 같은 힘을 설명하기가 부끄러운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런 엄청난 에너지를 처음 들어보는 사람처럼 입을 떡 벌렸다.

“.... 말이 되느냐? 아무런 조건 없이 그런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다?”

“아스타로트도 그렇게 죽인 거에요. 아니... 저와 함께하는 동료들과요.”

“아스타로트...! 마탑의 마법사들을 모조리 죽인... 그놈이... 정말 죽었느냐?”

이를 악 문 나는 지금 분노하고 있었다.

목소리 연기 좋고, 표정 연기 좋고.

나의 이 표정에 홀라당 넘어간 유리아가 자신감이 넘치는 듯 강한 콧바람을 내뱉었다.

“네. 완전히 소멸시킨 것까지 확인했어요.”

아... 슬프다.

아스타로트, 이 입은 싼데 충성심만큼은 대단한 새끼. 다시 명복을 빌어주지.

“잘했다. 네가 대견스럽구나.”

“제니퍼 캐시 박사, 이세화, 그리고 송지혁 씨가 없었다면 엄청난 희생이 일어났을 거에요.”

“송지혁 씨라...? 혹시 내가 아는 그 송지혁 씨...?”

당황해하는 나에게, 유리아가 책망하는 것 같은 눈빛을 보낸다.

“네. 입이 좀 가벼운 김태곤 아저씨께서 제 정보를 전부 말하셨거든요.”

“.... 흠...”

“하지만 아버지께서 직접 말씀하신 건 아니니까... 그냥 넘어갈게요. 그런데... 만약 아버지의 영혼이 자리를 잡으면 김태곤 씨의 영혼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걱정이 담긴 말투.

착하구나, 내 딸아. 김태곤도 걱정해주고.

“김태곤의 혼이 곧 글렌 엘레나르의 혼이란다. 오직 내 환생을 위한 매개체로 이 세상에 나타난 존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 표현이 조금 과격하긴 하다만... 걱정하지 마라.”

“.... 그래도 가슴이 아파요. 덤벙대긴 하지만 좋은 분이셨는데...”

“김태곤이었던 내가 덤벙댔던 거겠지. 신경 쓰지 말라 하였다.”

“네... 아버지.”

“그래서... 그 변신이란 모습을 조금 보고 싶다만? 내 기억 속에 있는 비스트 슬레이어 레오나와 비슷하게 변하느냐?”

유리아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비슷하게 변하긴 하는데... 사실 변신하려면 조건이 필요해요.”

“조건이라 함은 어떤?”

“그...”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넣어 뒷목을 만지작거리는 그녀.

속으로 그녀를 한껏 비웃어준 나는 얼굴에 의문이라는 가면을 씌웠다.

“왜 그러느냐?”

“그게... 그... 신비한 에너지에다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만큼 조건이 조금 까다로운데요...”

“그야 그렇겠지.”

“조, 좋아하는 사람과의... 성적인 행위로 에너지가 충전된대요...”

“.....”

미간을 좁힌 나를 본 유리아가 애꿎은 가운의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한참 침묵하던 나는 엄한 목소리로 그녀를 꾸짖었다.

“오랜만에 상봉을 하였는데도 이러한 장난을 하다니... 이 아비는 네게...”

“아니, 진짜에요! 어렸을 때 왕궁 숙수에게 빵을 훔친 일을 아버지께 들킨 이후로 거짓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구요!”

“그렇긴 하다만...”

이마를 짚은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척 손으로 여러 부위를 꾹꾹 눌렀다.

이후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개를 들었다.

“진실인 모양이구나.”

“네... 그렇다니까요.”

“마치 설화 속에서나 나오는, 유희를 즐기러 나온 드래곤 같다고 해야 할까? 참으로 장난꾸러기 같은 힘이로다.”

“그렇죠...?”

“그저 웃음밖에는 나오질 않아. 그래서, 지금 좋아하는 사람은 있고?”

유리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왜? 있잖아. 바로 나. 네가 가장 사랑하고 믿는 존재.

“없나보구나. 그럼... 디바이스는 얼마나 충전되어 있지?”

“3퍼센트... 변신하자마자 풀리는 수준이에요. 캐시 박사님과 송지혁 씨가 늘려 주겠다고는 했는데... 일단 충전이 먼저잖아요. 언제 또 마물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근데 그런 사람이 없어서 앞이 막막해요.”

“내가 조금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한데...”

“네...? 아버지가요?”

“아론을 기억하느냐?”

그 말에 유리아의 몸이 한 차례 크게 꿈틀거렸다.

그녀의 얼굴이 그리움으로 물들고, 몽환적인 꿈을 꾸듯 몽롱해진다.

정확히 기억하고 있구나. 네 약혼자를.

한참 그러고 있던 유리아가 상념을 날려버리려는 듯 고개를 턴다.

그리고는 묻는다.

“갑자기 아론 이야기는 왜 꺼내세요?”

“.....”

“빨리 말해줘요, 아버지.”

안달이 났군. 기다려. 일단 침 좀 묻히고...

“며칠 전부터 난 매일 기억을 되찾는 꿈을 꿨단다. 오늘도 마찬가지, 왕국의 기사단장이자 네 약혼자였던 아론이 이 지구에 있다는 꿈을 꿨다. 아니, 꿈을 꿨다기보다는 느낀다고 해야 옳겠지.”

벼락이라도 친 듯 광채를 내뿜는 유리아의 푸른 눈.

번쩍!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공략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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