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7 이블 발키리 레오나
레오나의 현 상태는 시리아 때 절반 이상 타락했던 모습과 비슷했다.
하지만 확연히 달라진 부분이 있었다.
먼저 눈매.
세화는 눈매가 순했다.
처지지 않고 곧게 뻗은 눈매와 큼지막한 눈, 그리고 세화 특유의 아름다움 덕에 보는 이들에게 하여금 굉장한 호감을 자아냈다.
그건 레오나인 상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강인한 모습의 비스트 슬레이어였음에도 눈 덕에 그 느낌이 조금 순화됐다.
타락한 레오나의 눈매는 달랐다.
시리아 때보다 더욱 치켜 올라간 눈매와 길게 뻗어 나온 속눈썹은 관능미를 더없이 높여주었고, 조금 날카로운 인상으로 변했다.
두 번째로 가슴.
티가 날 정도까진 아니지만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본다면 알아차릴 정도로 커졌다.
이 외에도 조금 더 길고 뾰족해진 손톱과, 허리춤까지 길어진 나풀거리는 연보라색 머리카락, 따로 립스틱을 바른 게 아님에도 핏빛 같은 새빨간 입술... 그리고 홍광을 줄줄 뿜어내는 음문까지.
전체적으로 시리아 때보다 더욱 심하게 타락한 모습이었다.
내 감상은 완벽 그 자체. 나의 아내상에 부합하는 미모와 몸매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기운이다.
레오나로 변신한 상태에서, 그녀가 뿜어내던 기운은 정의로운 느낌을 풀풀 풍겼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오로지 악의만 잔뜩 풍기고 있었다.
“으응...”
공중에서 변신을 끝낸 레오나의 몸이 세워지더니 서서히 땅에 닿는다.
그리고 눈이 천천히 뜨였다.
악마의 상징인, 불길하기 짝이 없는 자색 눈동자가 보라색 안광을 내뿜는다.
그녀의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자신의 모습을 살핀다.
“이게... 나...”
목소리마저도 바뀌었다.
레오나 특유의 강인하고 활기찬 목소리에서, 성숙미를 물씬 뿜어내는 하이 톤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허벅지에 팔꿈치를 올려 턱을 괴고 있던 나는 히죽 웃었다.
나는 손을 휘저어 레오나의 팔에 차진 디바이스를 조작했다.
그러자 레오나가 기존에 입고 있었던 슈트가 그 안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나신이 된 그녀의 몸은 환상적이었다.
방금까진 몰랐는데 허리도 얇아진 것 같고, 골반도 조금 늘어난 것 같다.
새하얀 가슴 중앙에 자리한 유두마저 핑크빛으로 무척 탐스러웠다.
그야말로 새로운 육체라고 할 수 있는 모습.
피부는 마르셀라만큼 빛을 못 보고 산 악마처럼 창백하지는 않았다.
굳이 인간과 비교하자면 아이리쉬 특유의 흰 피부보다 조금 진한 정도.
쭉 찢어진 배꼽 아래에 자리한 시뻘건 음문이 무척 매혹적이다.
그런 레오나의 시선이 날 향한다.
“아...”
마치 신이라도 본 듯 한, 경애심이 가득한 표정이다.
난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손을 휘저어 레오나의 팔목에 찬 디바이스를 조작했다.
우우우웅!!
큰 떨림을 발하는 디바이스에서, 거뭇한 무언가가 쑤욱 튀어나와 재탄생한 레오나의 몸을 감싼다.
그녀를 위한 새로운 슈트였다.
레오나의 발끝에서부터 다리까지, 어둑하고 끈적이는 점액 같은 게 감싸져 올라오더니 기존의 부츠보다 훨씬 굽이 높고 유연한 짙은 보라색의 하이부츠가 만들어졌다.
팔도 마찬가지. 탄성과 강도가 무척 뛰어난... 길어진 손톱을 커버할 수 있는 긴 장갑이 생겨났다.
대음순을 간신히 가리는 정도의 스트링 팬티 같은 슈트가 레오나의 가랑이를 감쌌고, 허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 유두와 가슴 밑부분만 가린 채 멈췄다.
하반신에는 나풀거리는 짧은 치마가 생겨났다.
기존의 것보다 짧은, 움직일 때마다 엉덩이 밑부분이 확연히 드러나는 치마가.
전체적으로 중요부위만 가린 본디지 슈트 같은 스타일이었다.
음문이 대놓고 드러나는.
레오나의 목엔 가운데에 속이 빈 하트모양의 초크가 장착되었다.
쇄골 가운데에 있던 아이테르는 조금 내려가 흉근 가운데에서 마름모꼴 크리스탈을 형성했다.
색 완전한 짙은 보라색. 기존의 하늘색은 그 어느 부분도 없었다.
새 슈트를 본 내 감상은 ‘마음에 들지만 어딘가 모자라다’ 였다.
첫 ‘이블 발키리’이자 내 정실이 될 레오나다.
이런 파격적인 슈트는 천박해보이기만 할뿐, 고귀한 자태가 없었다.
슈트보단 차라리 드레스가 어울릴 듯싶었다.
하지만 괜찮다. 새로운 옷을 만들 시간은 많으니까.
이젠 대놓고 집에서 디바이스를 만지작거려도 되니, 낫을 만들면서 슈트를 수정하고 보완하기엔 충분하다.
“아아아...!”
이런 내 감상과는 달리, 레오나는 새로운 슈트가 무척 마음에 든 듯했다.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쥔 그녀가 감격에 겨운 얼굴로 몸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그녀는 곧 본모습으로 돌아온 나를 주시하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주인님...!”
“변신을 해제해라.”
“네...!”
흥분에 겨워하던 레오나가 변신을 해제했다.
내 눈앞에 있는 세화는 여태까지의 그녀가 아니었다.
세화로 다시 돌아왔음에도 색기 가득한 몸매는 그대로.
머리카락의 색도 연보라색이었고, 길이가 짧아지지도 않았다.
피부와 눈매마저도 타락한 레오나와 같았다.
몸도, 마음도, 그리고 영혼마저도 완전히 내 색으로 물들었다는 증거.
말만 변신 해제지, 그냥 슈트만 집어넣었다고 볼 수 있었다.
이제 세화는 어떠한 짓을 하든 절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강제로 타락한 게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내 권속이 되길 자처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나만의 종이자 아내였다.
“넌 누구지?”
부드러운 내 목소리에, 세화가 다가와 무릎을 꿇더니 내 발을 두 손으로 잡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발등에 키스를 했다.
“마왕 타이라트 님... 주인님만을 모시는 하인입니다아...♡”
“그렇다. 넌 이제부터 내 아내이자 전사다. 이블 발키리로서 모든 힘을 바치도록 해라.”
타락한 영혼으로 나라는 악을 곁에서 받들어 모시는 여전사.
썩 좋은 이름이지 않은가?
세화의 몸이 크게 떨려왔다.
“네에...! 다시 태어난 저는 주인님의 충실한 종이자 암컷노예, 모든 것은 주인님의 뜻대로...”
암컷노예라, 좋은 울림이다.
만족스레 웃은 내가 말했다.
“인간의 모습으로 위장해보아라.”
그 말에 세화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몸 쪽으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세화의 모습이 바뀌었다.
머리카락이 줄어들면서 밝은 갈색으로 변하고, 손톱이 다시 짧아지며 홍채와 동공이 인간의 그것처럼 변했다.
피부와 몸매도 예전처럼 돌아왔다.
하지만 눈매는 그대로. 이건 세화가 일부러 남겨놓은 듯싶었다.
“눈매는 왜 남겨놓았지?”
“예전의 철없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위장 상태에서도 제 본모습 하나만큼은 남겨두고, 주인님의 종임을 계속 되새기고 싶어서이기도 해요.”
재탄생한 모습을 자신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제법이다.
좋다, 아내의 첫 응석인 만큼 받아줘야 도리겠지.
“알았다. 지금부터 넌 그 모습과 예전 레오나의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 네가 정의의 용사라고 굳게 믿게끔 인간들을 속여라.”
“네, 주인님.”
“이유는 묻지 않나?”
“주인님의 명령이니까요.”
“좋은 대답이다. 조만간 우리의 비밀기지로 안내해마. 그 전에 새로이 태어난 네가 가장 먼저 할 일이 있다. 유승현을 교육시키는 게 바로 그 일이지.”
그 말에 세화의 얼굴이 조금 구겨졌다.
표정엔 혐오스러움까지 묻어있었다.
“왜 그러지?”
“제가... 그 하찮은 인간과 함께 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아서요... 뭘 하면 될까요?”
“네가 내려주는 포상을 위해 기어다닐 정도로만 만들어줘라. 그 다음 유리아에게 놈을 넘기겠다.”
“유리아... 에게요?”
고개를 갸웃하는 세화.
여우같은 눈매와 어우러져 섹시함을 풍긴다.
“유리아를 가지고 놀다가 너처럼 만들 생각이다.”
“.....”
고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세화에게, 한쪽 입꼬리를 올린 내가 말했다.
“질투하는군. 솔직한 마음을 말해보아라.”
“.... 그따위 계집년과 제가 동등한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나빠요. 하지만...”
“하지만?”
“주인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니 기꺼이 하겠어요.”
그래, 내가 원하는 일이 곧 네가 원하는 일이잖아.
세화에게 가까이 다가간 나는, 그녀의 치켜 올라간 눈꼬리를 만지작거렸다.
“.... 흐응...”
붉게 물든 얼굴을 한 채 몸을 배배 꼬기 시작하는 그녀.
얘도 마르셀라처럼 내가 만져주면 가버리는 체질로 변하려나?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예전의 세화보다 감정표현이 더 솔직해진 거라고 보면 된다.
“시작해.”
“네...”
세화가 허공에 손을 뻗자, 휴대폰이 두둥실 떠올라 그녀의 손을 향해 날아왔다.
@@
“뭐라고요? 그런 사람들을 잡아간 적이 없다고?”
놀란 말투의 박사.
세계연합의 이사 측 일원이 당황해하며 다시 대답한다.
-예. 저희는 그쪽 단체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인도받은 적은 더더욱 없고요. 그런 단체가 있었다면 당장 제압하러 갔겠죠.
“분명 세계연합에게 인도했다고 했는데...?”
-음... 뭔가 착각이 있는 모양입니다만... 서류에 누락됐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확인해볼까요? 시리아 쿠네이트라이 있던, 예순 명이 조금 넘는 테러단체... 맞지요?
“네, 맞아요. 다시 확인해보고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박사가 생각에 잠겼다.
지혁은 분명히 시리아의 테러단체를 세계연합에 인도했다고 말해왔다.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테러단체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확인해보려다가 지금 이 소리를 들었다.
만약 세계연합 쪽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지혁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 된다.
‘세계연합은 못 믿을 족속들이긴 하지만... 이런 쪽으로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는데... 그렇다고 쏭이 내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더더욱...’
없는데... 라고 생각하던 박사는, 자신의 머릿속을 관통하는 한 생각에 흠칫했다.
레오나는 그 끔찍한 실험을 하던 단체의 사람들을 모조리 무력화시키고, 큰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하다. 괴물과 인간의 합성체라니.
문제는 그게 아니고... 만약 ‘무력화’가 아니라 ‘살인’이었다면?
그 사실을 지혁이 일부러 감추는 거라면?
‘만약 비스트 슬레이어가 살인을 했다면... 세화는 다신 레오나로 변신할 수 없을지도 몰라.’
아이테르는 순수한 힘이다.
성적인 행위로 충전한다는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성스러운, 생명을 수호하는 에너지.
만약 레오나가 거기 시설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죽였다면... 인간들을 지키는 그 힘을 이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휴대폰을 든 박사가 지혁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직접 확인해보자.’
그리 생각한 박사가 컴퓨터를 따닥따닥 두드리기 시작했다.
시리아의 정부를 털어보고, 정찰기를 날려 알아보면 윤곽이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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