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58화 (58/471)

EP.58 전초전 #3

“이건... 뭐야?”

원기둥 형 수류탄을 눈으로만 살펴보던 유리아의 물음이었다.

세화가 곧바로 대답했다.

“섬광탄인데, 박사님이 개발하고 지혁이가 개조한 거에요. 웬만한 마물들은 눈을 일시적으로 멀어버리게 할 수 있어요. 싸울 때 엄청 도움이 돼요.”

“이게 그 디바이스 안에 다 들어간다는 말이야?”

“네. 신기하죠?”

“마법이라고 할 만하네...? 축소마법 같아.”

세화의 눈에 생기가 가득 담겼다.

“언니도 마법을 쓸 수 있어요?”

“나는 못 써. 만약 쓸 수 있다고 해도 여기서는 불가능해.”

“그건 왜요?”

“자연이 워낙 많이 파괴돼서 기운이 없거든. 그래도 아마존 같은 곳에 가면 어느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거야.”

“아... 아쉽다... 보고 싶었는데...”

“나중에 타이라트를 없애고 우리나라를 수복하면 보여줄게. 꼭 보러 와줬으면 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만큼은 어떻게든 초대하고 싶어.”

“저도 꼭 가고 싶어요.”

두 사람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난 박사의 개인 연구실에서 그녀와 중요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대화란 바로 유리아의 정의감에 관한 것.

나는 집에서 유리아에게 들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박사에게 전해줬다.

“그래...? 가식으로 보이진 않았고?”

“전 고작 스무 살인 걸요. 그런 걸 파악할 정도로 연륜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유리아 씨의 말투에서 진심이 느껴지긴 한 것 같아요.”

“그래...? 그러면 부모님의 원수보다 인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볼 수 있겠네?”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입니다. 심사숙고해서 결정하세요.”

“알았어. 네 말은 꼭 참고할게.”

빨리 결정하는 게 좋을 걸?

이제 곧 아스타로트가 나와서 서울 전체에 엄청난 기운을 퍼뜨릴 테니까.

삐빅-! 삐빅!

방 바깥에서 경고음이 들린다.

왔구나. 남극 바다 깊숙한 곳에서 생명체의 기운을 빨아들인 아스타로트가.

나는 박사와 눈을 마주치고는 즉시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지혁아!”

상황판을 보고 있던 세화의 다급한 외침.

격납고 문을 열던 내가 물었다.

“퍼센테이지와 위치는?”

“75퍼센트... 위치는 서울 목동이야.”

“75퍼센트? 벌써 B등급이라고?”

“지, 지금은 81퍼센트가 됐어... A등급이야.”

세화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지금까지 나타났던 이블리언 게이트 중에서 가장 높은 등급.

그러니 당황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게이지는 87%에서 멈췄다.

심각한 얼굴을 한 내가 세화와 유리아에게 말했다.

“바로 뛰쳐나올 준비해. 유리아 씨는 저와 함께 전투기로...”

쿠구구구-!

그때, 엄청난 중압감이 연구실 안의 모든 사람들을 짓눌렀다.

그 때문에 말을 마치지 못한 내가 마치 무형의 무언가에게 어깨를 눌리는 것 마냥 상체를 숙였다.

“크윽!”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큰 범위 안의 생명체를 무기력감에 빠뜨려 모든 의욕을 상실시키는 아스타로트의 특성이었다.

개조된 몸이었다면 영향을 받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나는 인간.

영향을 받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박사는 나보다 더 심했다. 뛰쳐나오다 풀썩 쓰러져 힘없는 얼굴로 주위만 두리번거렸다.

마치 잘 침대를 찾는 것만 같다.

지금쯤 밖은 온갖 사고가 나며 난리가 났겠지. 대피할 틈도 없이 아스타로트가 나타났을 테니까.

“이런 미... 친...”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은 난, 유리아의 상태가 제법 양호하자 속으로 약간 놀랐다.

무기력에 빠지긴 했지만 움직일 여력도 있고, 허덕이는 세화를 부축하고 있었다.

잘 버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였다고? 유리아의 정신력을 과소평가했군.

“세화야...! 괜찮아?”

“언... 니... 저... 힘이 없어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이건... 타이라트의 하수인 중 하나인 아스타로트의 기운...! 송지혁 씨! 박사님! 정신 차리세요...! 이 감정에 짓눌려선...”

나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세화... 변신시켜야...”

“어떻게 하죠? 방법을... 알려줘요!”

이를 악 문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볼펜을 하나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허벅지를 깊숙이 찔렀다.

푹! 하는 얕은 소리와 함께 내 허벅지가 뚫리고, 거기서 피가 새어나오면서 정신이 돌아왔다.

허겁지겁 세화에게 달려간 나는 그녀의 힘 빠진 손을 들어 올리고는, 반대 팔에 찬 디바이스에 두 번 가져다댔다.

파앗-!

하늘색 빛줄기가 줄줄 뿜어져 나오면서 세화가 레오나로 변신했다.

초점이 없어져가던 눈은 다시금 생생해졌고, 몸은 기력이 돌아온 듯 힘이 가득했다.

“지혁아...!”

고고한 눈을 하던 레오나는 내 허벅지에 난 상처를 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랐다.

고통 때문에 얼굴을 찡그린 내가 이를 악 물고 말했다.

“가...! 일단 가서 막아...!”

“아, 알았어!”

세화는 곧 격납고로 나가 닫힌 천장을 박살내버리고는 하늘로 솟구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리아가 안절부절 못했다.

“송지혁 씨...! 아스타로트는 상위 마물이에요. 레오나 혼자서는...!”

“박사님을 부축해줘요. 그리고 격납고로...”

“네! 하지만 당신은...”

난 유리아의 걱정을 들은 체 하지도 않고 절뚝거리며 전투기로 향했다.

이후 박살난 격납고 천장의 파편들을 대충 옆으로 밀어낸 뒤 콕피트를 열었다.

유리아는 박사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그녀와 함께 개인 연구실로 갔다.

얼마 뒤 부축을 받으며 연구실을 나온 박사의 손에는 디바이스가 들려 있었다.

혹시 모르니까 가져온 모양이지? 좋아.

근데 박사야, 정신 똑바로 차려봐.

유리아가 널 한심하게 생각할 지도 몰라. 연구실 리더가 그래서야 되겠냐?

나는 두 사람이 전투기에 탄 즉시 비행을 시작했다.

**

힘을 얻은 아스타로트는 근육질의 인간형 마물이 되어 있었다.

키는 약 2미터. 지금까지 나타난 보스처럼 크지도 않고, 괴물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등장할 때 건물을 파괴하거나 하며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다.

그저 무심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

지상에선 회색의 모래 같은 먼지가 그의 칠공을 향해 들어가는 중이었다.

생명체의 무기력한 기운이었다.

-.....-

그런 아스타로트가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레오나가 도착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저의 왕이시여...-

아스타로트가 에란델 공용어를 말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치 기사가 국왕에게 무릎을 꿇는 듯 한 공손한 태도.

목동으로 날아가며 그 장면을 모니터로 보던 나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놈이 예를 표한 대상은 멀리서 날아오고 있는 내가 아니라 레오나였다.

‘이런 씨발...!’

머릿속에 경종이 마구 울린다.

레오나의 안에 뿌리를 내려 몸집을 불려가는 내 기운을, 꽁꽁 숨겨놓았던 그 기운을 아스타로트가 눈치챈 거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흘끗 유리아를 보니 박사를 챙기고 있었다.

모니터를 볼 겨를이 없구나. 통신기는 현재 나만 착용한 상태라 에란델 공용어를 듣지도 못했다.

레오나도 아스타로트의 말이 외계어처럼 들릴 테니... 정말 다행이다.

-.... 뭐야...?

레오나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그럴 만도 하지. 전투가 끝나면 더 이상하게 생각할 거다.

하지만 변신을 풀고 세화로 돌아오면 수습하는 건 일이 아니다.

상황부터 넘기자. 그게 급선무다.

허벅지를 한 차례 더 찌른 내가 소리쳤다.

“뭐하고 있어!? 공격해달라고 하고 있잖아! 가만히 있을 거야?”

-아, 응!

“멀리 데려가! 인적이 없는 곳으로!”

-알았어!

정신을 차린 레오나가 움직였다.

퍼엉-!

공기를 찢으며 순식간에 아스타로트에게 접근한 그녀는, 놈의 목을 잡아채고 저 멀리 사라졌다.

**

레오나가 선택한 장소는 인간이 없는 서해 한가운데였다.

그녀는 거기서 아스타로트와의 전투를 시작했다.

아니, 전투를 시작했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공격을 하고 있다고 봐야 옳았다.

캉! 카앙!

엄청난 속도로 아스타로트의 전신에 검을 휘두르는 그녀.

아스타로트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레오나의 검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왜 자신에게 칼을 겨누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레오나를 나로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녀를 내 수하이자, 아스타로트 자신의 동료라고는 생각하고 있다.

지금 저 모습은 동료가 공격을 해대니 의아해하는 것이다.

카아앙! 퍼석!

검을 막은 아스타로트의 팔 살점이 조금 뜯어졌다.

그때, 놈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손을 휘저었다.

화르륵!

그러자 놈의 팔에서 검은 불길이 일어나더니, 레오나를 저 멀리 날려버렸다.

분노의 감정을 여과 없이 뿜어내던 아스타로트가 자세를 고쳐 잡는 레오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변절자! 변절자로구나!-

이런 씨발... 목소리 좀 낮추라고 개새끼야.

마르셀라! 뭐라도 좀 해봐! 마법이라도 써서 저놈의 아가리를 봉하라고!

이러다가 유리아가 듣고 의심하겠어!

아, 마르셀라는 지금 아스타로트가 목동에서 보였던 행동을 수습하느라 바쁘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까지 비실거리고 있는 박사에게 다가가 그녀의 뺨을 때렸다.

짜악!

“아악!”

꽤 강하게 때렸기에 박사가 큰 비명을 내질렀다.

유리아는 놀라서 입을 쩍 벌렸고 말이다.

“소, 송지혁 씨...! 지금 무슨...!”

당황해하는 유리아를 뒤로한 채, 나는 박사의 뺨을 한 번 더 갈겼다.

짜악!

고개가 홱 돌아간 박사.

내가 소리쳤다.

“박사님! 지금 당장 디바이스를 유리아 씨에게 넘겨요!”

멍한 얼굴로 벌개지기 시작하는 뺨을 만지작거리던 박사의 초점이 다시 잡힌다.

정신이 돌아왔구나.

“뭐...? 하, 하지만...”

“레오나 혼자서는 안 돼요! 너무 강해! 한 명이 더 있어야 돼요!”

“.... 전황은 어떤데...?”

“불리해도 너무 불리해요.”

“젠장...!”

내 말을 철석같이 믿는 박사다.

넘기지 않을 수 없을 걸?

박사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하지만 콕피트 너머로 레오나와 아스타로트가 붙기 시작하자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에서 디바이스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유리아에게 내밀었다.

“팔에 착용만 해. 그러면 변신할 거야.”

유리아는 설마 이런 상황에서 디바이스를 받을 줄은 몰랐던 듯 놀란 얼굴을 했다.

그러나 이내 굳은 눈으로 디바이스를 건네받았다.

그녀가 디바이스를 팔로 가져가려 할 때, 내가 말했다.

“콕피트 열어줄 테니까 나가면서 변신해요. 전투기가 망가지면 나와 박사님은 물고기 밥이 될 테니까. 두 번째 디바이스는 용량이 별로 없어요. 변신시간이 짧다는 얘기니 낯선 감정과 힘에 당황해하지 말고 당장 저 마물부터 없애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아, 네...! 알겠어요!”

나는 조종석으로 달려가 버튼을 쾅! 눌렀다.

그러자 푸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콕피트가 입을 벌렸다.

바다 특유의 내음이 코를 찌르는 순간, 유리아가 자신의 훤칠한 다리를 내딛으며 조종석을 디딤대로 삼아 점프했다.

그리고는 디바이스를 팔에 찼다.

그러자,

파앗!

바다로 떨어지고 있던 유리아의 몸이 성층권까지 솟구치더니, 연두색 빛을 사방팔방으로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 눈이 파리하게 떨렸다.

‘드디어...!’

드디어 두 번째 비스트 슬레이어의 등장이다.

최초로 두 명이 함께 활동하며 지구를 수호하게 된다.

상황 자체는 조금 아쉽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아니, 오히려 좋다.

급박한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변신을 유도했으니까.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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